< 04. 그 나물에 그 밥(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6화
04. 그 나물에 그 밥(3)
-내가 의원님이라면 그분밖에 더 있나. 그분 4선 되셨지 않나. 자네하고 나한테 축하 한번 받고 싶다고 그러던데 말이야. 자네 전화 한번 드렸나?
“전화는 드렸던 것으로 아는데 말입니다.”
-최 의원님께 축하하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겠나. 전화로 되겠어. 내가 언제 자네와 함께 자리 만들어서 식사하기로 했네.
“네. 알겠습니다.”
-이번 일도 있고 하니 최 의원님 한번 만나보도록 하지. 내 예상인데 이 일이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아.
“이 일이 더 커질 것 같습니까?”
-내 예상은 그러네. 솔직히 말해서 자네도 자네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일이 적당히 커져야 해. 덩치가 있어줘야 우리도 헌병대를 개혁하지. 자네 입장에서도 그래. 윤태민 소위를 관리하지 못한 대대가 바로 잡혀야 하지 않겠나.
“네.”
-그래서 만약에 대비해서 최 의원님께도 얘기를 해놓자고. 다른 일도 아니고 군대를 바로 잡자는 것인데 최 의원님께서도 마다하실 분이 아니야.
“아······.”
-왜? 갑자기 부담스럽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무슨 일만 하면 일이 점점 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상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도 눈에 보이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나가자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일이 점점 커지고 있으니 내심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임규태 중령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자네가 하는 그 일이 바른 일이라서 그런 것이네.
“네?”
-본래 바른 일은 반발이 거세지게 마련이야. 그 반발을 이겨내려면 더 큰 반발에 부딪히게 마련이고. 그렇게 일은 커지는 거야. 어쨌든 자네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니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헌병대장님.”
-그래. 그래. 그러면 조만간 약속시간 잡아서 연락하겠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오상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상진이 임규태 중령과 통화를 하는 그 시각 윤태민 소위는 바로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아, 시발······. 일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야.”
한참 전화음이 울린 후 방대철 주임원사가 받았다.
-네. 윤 소위님. 무슨 일입니까?
“주임원사님 왜 이렇게 통화가 안 됩니까.”
-내가 좀 바빠서 그렇죠. 왜요, 무슨 일인데요.
“큰일 났습니다.”
-큰일요? 무슨 큰일입니까.
“저희 중대장님께서 아셨습니다.”
-아니, 4중대장이 어떻게······. 설마 유 하사가 일렀다고 합니까?
“네.”
-하아······.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유 하사 그년을······.
“아니. 그러지 마십시오.”
-네?
“그러지 마십시오.”
-언제는 도와달라면서요.
“아니요. 중대장님께서 그러시는데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가 돈 봉투 줬다는 거 그대로 외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외할아버지? 신범규 준장님?
“네.”
-하아, 4중대장 여우네요. 그런 식으로 치고 들어올 줄도 알고.
“저 말이죠. 이 일 외할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목소리에 약간 한심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요. 윤 소위님.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세요. 이 일이 잘못되면 윤 소위님 군 생활 자체가 꼬여 버려요. 외할아버지인 신범규 준장님께서 외손자 가는 앞길을 막을 것 같습니까. 그렇게 되더라도 분명히 신범규 준장님이 알아서 어르고 구슬리고 그러지 않겠어요. 나는 그런 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주임원사님, 중대장님이 어디 다른 사람 말에 구워삶아질 사람입니까.”
-하긴 오 대위라고 하면 전 부대에서도 유명하죠.
“그리고 저희 외할아버지에게서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위로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네? 더 위로 말입니까? 아니, 그 양반은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
-진짜 너무하네. 조용히 끝낼 일을 가지고 말이죠.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막말로 유 하사하고 뭘 했다고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 작정인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얘기를 들어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돈 봉투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중대장님이 가지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네? 봉투를 왜 돌려주지 않겠다고 합니까.
“그걸 돌려주면 그 돈 가지고 또 이리저리 다른 사람들을 구워삶을지 모른다고 말이에요.”
윤태민 소위의 푸념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네?”
-잠깐만 있어 봐요. 돈 봉투로 다른 사람들을 구워삶을 거라고 했죠.
“그랬죠.”
-그 말이 재미있네요. 재밌어.
“뭐가 말이에요?”
윤태민 소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4중대장이, 아니, 오 대위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힌트를 준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힌트요?”
-잘 생각해 보세요. 윤 소위님하고 유 하사하고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야 얘기가 달라서······.”
-아니죠. 그게 아니라 서로를 지탱해 줄 증거가 없다는 것이죠.
“아!”
-만약에 윤 소위님이 증거를 만들어서 가져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당연히 유 하사가 곤란해지겠죠.”
-그거죠. 헌병대 입장에서도 그렇게 정리를 내릴 수밖에 없겠죠.
“증거를 어떻게 만들죠? 유 하사가 제 차에 탄 것을 본 사람은 황 하사밖에 없는데요.”
-그럼 황 하사를 구워삶아야죠.
“황 하사는 곤란합니다.”
-아니, 왜요?
“제가 유 하사와 자리를 만들어 달라며 협박을 했거든요.”
-아이고 윤 소위! 아무리 상황이 급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협박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황 하사를 설득한다고 해도 저한테 유리한 얘기를 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유 하사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것 같습니다.”
-하긴 황 하사도 여자인데 여자끼리 불리한 진술은 하고 싶지 않겠죠.
“그럼 어떻게 합니까.”
-다른 증거를 찾아야죠.
“절 본 사람은 황 하사뿐입니다.”
-윤 소위를 본 사람이 황 하사뿐이죠. 유 하사가 만취했다고 진술할 사람은 많을 것이 아닙니까.
“아······. 회식했던 부사관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요. 회식에 참석했던 몇 명 부사관들에게 유 하사가 얼마나 인사불성이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를 끌어내면 돼요. 그럼 유 하사의 진술서에 신빙성이 사라지잖아요.
“오오! 맞습니다. 그렇게 되는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윤태민 소위의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그래요. 그렇게 가자고요. 그리고 윤 소위님도 평소에 유 하사가 우습게 알고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고 했지 않아요.
“네네.”
-그걸 증명해 줄 사람을 찾아요. 윤 소위님의 말을 뒷받침해 줄 사람을 찾는 것에 신뢰감이 쌓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유 하사도 자신의 편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건데······. 그게 쉽겠어요.
“그렇죠.”
-그러니 내 말 믿고 그렇게 해 봐요. 나도 여기서 도울 방법을 찾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주임원사님.”
-알았어요. 이만 끊어요.
통화를 마친 윤태민 소위가 휴대폰을 꼭 움켜쥐었다. 솔직히 조금 전까지 방대철 주임원사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가 시키는 일마다 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방대철 주임원사랑 상의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군대 짬은 못 속인다니까.”
윤태민 소위가 행정반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우뚝 멈췄다.
“아니지, 아니야. 지금은 여유 부릴 때가 아니야.”
행정반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2소대로 내무실로 향했다. 2소대 내무실에는 오랜만에 소대 정비를 하고 있었다. 내무실에서 김대식 일병을 만났다.
“김대식.”
윤태민 소위가 부르자 김대식 일병이 바로 관등성명을 댔다.
“일병 김대식.”
“너 이리 와봐.”
김대식 일병이 쭈물쭈물 걸어갔다. 솔직히 지난번 중대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이후로 모든 2소대원들이 윤태민 소위를 껄끄럽게 생각했다.
윤태민 소위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데 표정을 보아하니 괜히 불렀나 싶었다.
‘아니야. 그래도 얘기는 들어봐야 하니까.’
김대식 일병이 윤태민 소위 앞에 왔다.
“야. 너 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해.”
“······네에.”
김대식 일병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윤태민 소위가 바로 물었다.
“평소에 부소대장이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해?”
“네?”
“유 하사 말이야. 나에게 무슨 얘기를 해?”
“별말 없었지 말입니다.”
“그래?”
“네.”
“정말 별다른 말 없었어?”
“그렇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바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아, 이러면 곤란하데······.’
속으로 구시렁거리는데 김대식 일병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말했다.
“아. 지난번에 제가 뭔가를 봤습니다.”
“뭘 봐? 뭘 봤는데?”
“그때 소대장님 식사 마치고 들어가실 때 말입니다. 유 하사가 소대장님 못 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뭐? 언제 어디서?”
“그거······. 지난번인데 언제였더라······. 이틀? 사흘 전이었나?”
“그래!”
윤태민 소위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너 혼자 봤어?”
“아니요, 다른 소대원들도 같이 봤습니다.”
“그랬단 말이지.”
윤태민 소위가 씨익 웃었다.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뭔가 유선영 하사를 난처하게 만들 건수를 찾은 것 같았다.
일과가 끝이 나고 윤태민 소위가 2소대에 부식을 돌렸다.
“얘들아. 알아서 먹어라.”
박스를 내려놓은 윤태민 소위가 애들에게 봉지를 하나씩 던졌다. 그 안에는 따끈따끈한 냉동만두가 하나씩 있었다. 2소대 전원 하나씩 받은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뭡니까?”
“나도 모르지. 그런데 뭘 이렇게 많이 나와.”
“설마 이게 두당 하나입니까?”
“미쳤냐!”
그때 윤태민 소위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두당 하나다. 눈치 보지 말고 먹어!”
이등병이나 일병들은 아싸 하며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등병과 일병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시절이었다. 하물며 냉동만두였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소대 분위기도 좋지 않아 PX도 가지 못했다.
반명 상병이나 병장들은 윤태민 소위를 많이 겪어봤다. 그래서 다들 2소대장 왜 저러지? 불안하게 말이야. 다들 이런 눈빛이었다. 특히나 내일모레 말년휴가를 나가는 이민균 병장은 눈앞의 냉동만두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민균 병장 옆에 앉아 있던 유석호 상병이 물었다.
“이 병장님 냉동만두 안 좋아하십니까?”
“야. 내가 냉동만두 안 좋아할 것 같아?”
“아뇨.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 나 시발 냉동만두 겁나 좋아해. 그런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것 같냐!”
유석호 상병이 슬쩍 윤태민 소위를 보며 작게 말했다.
“혹시 말입니다. 불안하십니까?”
“너는. 너는 안 불안해?”
“저도 좀 불안하지 말입니다.”
“그렇지. 소대장님이 어떤 소대장님인데 저런 부식을 사줘.”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까?”
“너는 소대장님에게 부식 받아먹은 적 있냐?”
“아뇨. 없지 말입니다.”
“그렇지. 나도 여태껏 한 번도 없었어. 나 말고 아마 위에도 없었을걸. 내 위에도 없었다면 소대장에게 단 한 번도 부식을 받아먹은 적이 없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