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그 나물에 그 밥(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4화
04. 그 나물에 그 밥(1)
4중대로 돌아온 유선영 하사는 곧장 오상진을 만나러 갔다.
똑똑똑!
“네.”
오상진의 목소리를 듣고 유선영 하사는 흐른 눈물을 손으로 훔친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 하사.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주, 중대장님······.”
유선영 하사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유선영 하사에게 자리를 권했다.
“유 하사. 일단 이곳으로 와서 앉아.”
자리에 앉은 유선영 하사는 울지 않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내뱉었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오상진은 유선영 하사의 모습을 찬찬히 봤다. 숨을 고르는 모습에서 분명 아침부터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오상진의 시선이 유선영 하사의 손으로 향했다. 그 봉투는 두툼한 것이 딱 봐도 돈 봉투인 것 같았다.
“그거 뭐야.”
“중대장님께서 이것 좀 맡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유선영 하사가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돈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
오상진이 예상했던 대로 돈이 들어 있었다. 오상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설마 윤 소위가······.”
유선영 하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윤 소위가 아니라 방금 주임원사실에 다녀왔습니다.”
“주임원사실에? 주임원사를 만났어?”
“네.”
“아침부터 왜 거길 갔어?”
오상진은 대충 예상이 갔지만 유선영 하사 입으로 듣고 싶었다.
“저보고 부대 시끄럽게 한다고······. 2소대장이 합의를 하자고 하는데 왜 거절했냐며 이 돈 봉투 가져가라며 억지로 손에 쥐여줬습니다.”
“정말 주임원사가 줬다고?”
“네.”
“미치겠군. 왜 주임원사라는 사람이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오상진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상당수의 주임원사들이 그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대대장들과는 달리 주임원사는 오래 한 부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주임원사는 대대가 최대한 원만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곤 했다.
오상진이 지난번에 봤던 그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김태호 상사에게 듣기론 욕심도 많고, 뒤에서 이래저래 해 먹는 것도 많다고 했다.
동생이 저질렀던 치킨 사건을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것만 봐도 어떤 성향인지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얘기는 없었어?”
“군 생활 꼬이고 싶지 않으면 이거 가지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중대장님 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상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다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자신뿐만이 아니라 유선영 하사까지 피해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 하사는 괜찮아?”
“저는······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어서 참고 버티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저를 너무 힘들게 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마무리 지을까?”
유선영 하사가 조용히 물었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우리에게 증거가 있다는 것을 알리면 헌병대에서도 무작정 윤 소위 편을 들지는 못할 거야. 아마도 윤 소위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정리를 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로 윤 소위가 큰 처벌을 받지는 않을 거야.”
“증거가 있는데도 말입니까?”
“일단 증거가 있기는 하지만 헌병대 입장에서는 대단치 않은 것이라 생각할 거야. 물론 유 하사에게는 큰일이지만 성추행도 정도라는 것이 있거든.”
오상진이 얘기를 하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아, 나도 참 이런 얘기를 하는 내가 싫다.”
“아닙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오상진은 미래에서 왔다.
미래에는 여성 인권이나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 세상에서 오상진은 살았고, 동기들보다 빠른 진급을 했기에 여성 인권이나 처우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군들에게 함부로 얘기하지 않고, 그녀들의 얘기와 고충을 잘 들어주는 그런 대대장이었다.
하지만 과거 대대장 시절과 회귀한 지금의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의 시대에는 아직도 여군이 적고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오상진이 너무 앞서가고 깨어 있는 것도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울지도 몰랐다.
다행인 것은 유선영 하사가 오상진을 많이 신뢰하기에 무슨 소리를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만약에 이대로 증거를 공개하게 되면 아마 헌병대에서는 윤 소위에게 가볍게 징계하는 식으로 마무리 지을 것 같아.”
“가볍게 징계라 하시면······.”
“아마 전출 날짜가 더 빨라지겠지. 원래 내년 초쯤에 다른 부대로 옮겨가기로 얘기가 끝난 상황이야. 하지만 그보다 빨리 앞당겨지겠지.”
유선영 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윤태민 소위만 안 봐도 살 것 같았다.
이 부대에서 윤태민 소위만 사라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인가?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계속 불편한 사람은 불편한 대로 봐야 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자신을 좋게 볼까? 윤태민 소위가 옷을 벗은 것도 아니고, 크게 징계를 받은 것도 아니다. 군법재판소에 회부가 된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전출!
이 정도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방대철 주임원사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유선영 하사의 시선이 다시 오상진에게 향했다.
“그럼 만약에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솔직히 이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어.”
“네?”
“유 하사를 공범 만드는 것 같아서 그냥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이야. 유 하사가 걱정을 하니까, 중대장 생각은 그래. 난 이대로 계속 헌병과 윤 소위가 오해하게 만들 생각이야.”
“오해 말입니까?”
“그래. 우리에게는 증거가 없고 유 하사가 억지를 부리고 저쪽은 유 하사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 치밀하게 짜인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거야.”
유선영 하사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도 봐봐. 안전벨트 얘기가 나왔잖아.”
“네.”
“그리고 윤 소위는 유 하사가 아니라 황 하사에게 호감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고.”
“네.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변명하면서 튀어나온 어떤 거짓말이라고 생각을 해. 그런 거짓말들이 쌓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나중에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커지겠지.”
“네.”
“그렇게 커졌을 때 증거를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
유선영 하사가 눈을 끔뻑거렸다. 솔직히 그녀의 생각은 그때 내놓나, 지금 내놓나 크게 차이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상진의 얘기는 달랐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헌병대 입장에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야. 이미 조사를 일방적으로 진행했고, 완벽한 증거가 나왔어. 이 상태가 되면 헌병대 입장에서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어.”
“그럼······.”
“당연히 누군가 책임을 져야지. 그게 헌병대든······ 아니면 윤태민 소위든. 그 과정에서 과연 헌병대가 책임을 지려고 할까?”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 윤 소위가 책임지게 될 거야. 그리고 헌병대는 원래보다 더 큰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과 말을 맞춘 윤태민 소위에게 잘못을 지을 수밖에 없거든.”
“아······.”
유선영 하사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대장 생각에 아마 높은 확률로 윤 소위는 옷을 벗게 될 거야. 그리고 윤 소위가 그 정도로 크게 징계를 받으면 아마 다른 주변에서도 이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지.”
오상진의 말에 유선영 하사도 어느 정도 원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뒤에서는 유 하사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그럴 거야. 그것은 미안한 말이지만 유 하사가 어느 정도 버티고 감내할 수밖에 없어. 원래 군대라는 곳이 폐쇄적이고 남의 얘기를 좋아하게 마련이잖아.”
“······.”
“유 하사는 모르겠지만 중대장도 사단에 있을 때 별의별 얘기를 다 들었다.”
오상진이 씁쓸히 웃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유선영 하사가 동병상련을 느꼈다. 유선영 하사도 박윤지 3소대장을 통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상진이 얼마나 힘든 군 생활을 했는지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뒷얘기를 듣고 다 이겨낸 후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게다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쩌면 자신도 오상진처럼 멋진 군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말씀대로 좀 더 참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어? 더 힘들어질 건데.”
“중대장님 말씀대로 꾹 참고 견뎌내 보겠습니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알지?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절대 외부로 발설하면 안 돼. 만에 하나 저쪽으로 이 얘기가 들어가면 역으로 당할 수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금만 더 참아봐. 그리고 그 돈 봉투는 중대장이 가지고 있을 게.”
“알겠습니다.”
“그래. 유 하사는 그만 나가서 일봐.”
“충성.”
유선영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한 후 중대장실을 나갔다. 자신의 자리로 온 오상진은 수화기를 들었다.
“윤 소위 중대장이다. 잠시 내방으로 와.”
잠시 후 오상진은 윤태민 소위가 중대장실에 나타났다.
“충성. 저 찾으셨습니까?”
윤태민 소위는 연신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오상진은 무서운 눈빛으로 앞 테이블로 돈 봉투를 던졌다.
턱!
그것을 본 윤태민 소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시발. 왠지 이럴 것 같더라······.’
윤태민 소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유선영 하사가 생각보다 늦게 행정실로 들어오기에 혹시 중대장을 만나고 있나?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오상진의 손에 돈 봉투가 있었다.
“앉아.”
“네.”
윤태민 소위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각을 잡으며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평소에 군 생활을 잘했어야지. 저 녀석은 지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꼭 저런 식으로 행동하더라. 가증스러운 녀석······.’
오상진이 그런 윤태민 소위를 불렀다.
“윤 소위.”
“네.”
“내가 어제 저녁에 알아들을 수 있게 충분히 경고를 했을 텐데······.”
“어, 그게······.”
“자네 앞에 있는 것이 뭔가?”
윤태민 소위는 돈 봉투를 바라봤다. 분명 자신의 돈 봉투가 확실했다.
여기서 잘 모르겠다고 시치미떼기엔 금액이 너무 컸다. 무려 500만 원이었다.
그리고 오상진이 말하는 뉘앙스가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유선영 하사가 아무 말도 없이 돈 봉투만 두고 갔을 리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돈이나 쥐여주고 뭐하는 짓이야.”
“그게······.”
“그리고 주임원사도 그래. 아무리 자네가 부탁했다고 해도 이제 갓 들어온 새파랗게 어린 여자 부사관을 불러다가 강제로 합의를 종용하고 말이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