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6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3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62)
“나도 그렇지 않아도 헌병대 조사 얘기 들었어. 헌병대에서 그러던데 유 하사가 착오를 한 것 같다고 말이야.”
“네? 헌병대에서 그랬습니까?”
“그걸 왜 나에게 물어봐. 헌병대에서 그렇게 말을 했는데.”
“······.”
“어쨌든 아무것도 안 나왔다면서. 유 하사의 증언이 전부고 증거도 없다며.”
“그게······.”
“유 하사······.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섭다.”
“네?”
“내가 여기서 뭐라고 했다고 여기서 나가서 주임원사가 성적 모욕을 했느니 그렇게 얘기 하려고.”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윤 소위에게도 그랬다며.”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헌병대에서 조사를 해서 결과가 나왔잖아. 그럼 헌병대가 다 짜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래?”
유선영 하사는 네 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오상진의 손에 증거가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그랬다간 모든 판이 다 깨질 수도 있었다.
유선영 하사는 억울한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방대철 주임원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독하다 독해! 아무리 세상물정 몰라도 그렇지. 저렇듯 독할 수가 있지.’
방대철 주임원사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진짜 주임원사라서 말하는 건데. 자네 군 생활 편하게 하고 싶어?”
“네?”
“군 생활 말이야. 편안하게 하고 싶냐고!”
“······.”
유선영 하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몸을 뒤로 눕혔다.
“이 부대에서 내 눈에 찍혀서 편안하게 한 사람 한 명도 없어. 전부 고생만 했어. 내 눈 밖에 나면 얄짤 없어. 그럼 유 하사. 자네도 고생 한번 해볼래?”
“그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니라면 왜 내 말을 안 들어?”
“네?”
“부사관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바로 나 주임원사란 말이야. 정신적 지주가 그렇게 부탁을 하고 얘기를 하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이야. 너는 집에서 그렇게 배웠어!”
갑자기 집안 얘기가 나오자 유선영 하사가 울컥했다. 솔직히 유선영 하사의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였다. 딸이 뜬금없이 군대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묵묵히 응원해 주고 밀어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주임원사라고 저딴 식으로 말하는 것이 화가 났다.
겉으로 그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니 방대철 주임원사가 코웃음을 쳤다.
“왜? 너희 집 욕하니까. 싫어? 그래?”
“······.”
“유 하사 대답해 봐. 싫으냐고.”
“네. 좋지는 않습니다.”
“내참······. 그런데 왜 자네는 날 욕 먹이나.”
“무슨 말씀입니까.”
“봐봐. 지금 자네가 날 욕 먹이고 있잖아.”
“제가 언제 말입니까.”
“자네의 그런 행동이 날 욕 먹이는 거야. 아니면 내 말은 들을 가치조차도 없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아니지. 내가 자네 때문에 얼마나 욕을 먹는 줄 알아. 부사관 관리를 어떻게 했느니. 자네 때문에 내 군 생활이 꼬이게 생겼어. 내가 여태까지 여기서 근무하면서 성 군기 위반으로 헌병대 조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 부대는 잘 돌아갔고, 아무 문제 없었어. 이게 뭐야! 미꾸라지 한 마리가 잘못 들어와서 물을 흐려놓기나 하고 말이야.”
방대철 주임원사의 모욕에 유선영 하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그렇다고 해서 3대대가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17보병 연대 자체가 이런저런 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는 부대였다. 3대대도 몇 번 크고 작은 일도 있었다. 오죽하면 분란을 없애기 위해서 4중대를 따로 편성했을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뻔뻔하게 나갔다.
“자네하고 그 뭐냐. 4중대장. 뭐야. 두 사람이 오기 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 하루도! 어떻게 문제가 생기면 다 4중대야.”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유선영 하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자네 말이야. 날 미치게 할 작정이야? 아니면 돌아버리게 만들 작정이냐 말이야.”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뭐? 헌병대 조사에서도 저렇게 나왔는데 계속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헌병대에서도 아무 문제 없다고 나왔는데 자네 혼자 성추행이니 부대에서 떠들고 다녀서 내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닐 거야. 그래?”
“······.”
유선영 하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방대철 주임원사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려쳤다.
“유 하사! 지금 내 말이 우스워!”
유선영 하사는 화들짝 놀라며 방대철 주임원사를 바라봤다.
“······아, 아닙니다.”
“아니면 대답하는 태도가 왜 이래. 부사관 학교에서 그따위로 가르쳤어. 상명하복! 내가 자네 친구야?”
방대철 주임원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유선영 하사는 눈을 찔끔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탁자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왜 저러는지 알고 있는데······. 저런 식으로 험악하게 몰아붙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유선영 하사가 울음을 터뜨리자 방대철 주임원사는 항복의 의미로 알았다.
‘어차피 질질 짤 것을 저럴 거면 뭐하러 버텨!’
방대철 주임원사가 코웃음을 치며 얘기했다.
“이거 받아!”
탁자 위로 흰 봉투 하나가 툭 하고 던져졌다.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탁자 위에 놓인 흰 봉투가 어디서 많이 본 것이었다.
“그거 받고 여기서 마무리 지어. 알았어!”
훌쩍.
“이, 이게 뭡니까?”
유선영 하사는 눈물을 훔치며 애써 모르는 척 물었다.
“보면 몰라? 돈이잖아. 돈!”
“네?”
“500만 원이야. 어제 윤 소위가 자네 주려고 했다면서.”
“······.”
“윤 소위도 억울한 것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데도 부대 시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이렇게 성의를 보이는데 자네는 도대체 뭐야. 뭔 배짱으로 이렇게 막 나가는 거야. 윤 소위 반만 닮아라. 반만! 어떻게 부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렇게도 없나.”
그 말에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각오까지 했는데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주는 몰랐다.
“그만 질질 짜고! 그거 가지고 꺼져! 다시 말하는데 이 일 여기서 끝내! 여기서 더 부대 시끄럽게 만들면 내가 진짜 그때는 자네 가만히 안 둬. 대한민국 군대에서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할 테니까. 알았어!”
“흐흑, 흐흐흐흑······.”
유선영 하사가 대답을 하지 않고 울고만 있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답 안 해!”
“네, 알겠습니다.”
“들고가!”
유선영 하사는 나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돈 봉투를 받아 들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유선영 하사가 나가자 바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아, 시발······. 아주 그냥 이래서 여자들이 문제야. 뭘 잘났다고 부대 기어 들어와서는······.”
방대철 주임원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어 윤태민 소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소위. 나요. 주임원사.”
-네, 주임원사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돈은 잘 전달했습니다.”
-하아, 다행입니다.
“내가 말했죠. 그년 나에게 안 된다고. 이 자리에 또 윤 소위 있었어 봐요. 또 무슨 얘기가 나왔을까요.
-어후. 그러게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임원사님 덕분입니다.
원래는 윤태민 소위가 자리만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침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전화를 해서 윤태민 소위는 끼지 말라고 했다. 이 자리에 끼면 일이 또 안 좋게 흘러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이미 한 번 윤태민 소위가 유선영 하사에게 돈 봉투를 건네려다가 실패를 했다. 그것도 오상진이 직접 목격을 했다.
그런데 또 윤태민 소위가 같은 일을 벌였다가 걸리면 주임원사 자신에게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방대철 주임원사가 중재하기로 돈 봉투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전달하겠다고 말이다.
처음에 윤태민 소위도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지금 주임원사의 전화를 받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뭘 어떻게 되겠어요. 돈까지 다 받았는데. 설마 이제 와 윤 소위에게 돌려주겠습니까.”
-아후, 아무리 돌려준다고 해도 제가 받겠습니까. 절대 안 받죠!
“아마, 윤 소위랑 얼굴 붉히고 싶지 않더라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면 그때 윤 소위가 자연스럽게 말하세요. 헌병대에서 다시 조사를 하면 말이죠.”
-아, 합의 했다고 말이죠.
“그렇죠. 그렇게 하면 어쩌겠습니까. 미안하다고 합의까지 하고 돈까지 줬는데. 이제 와 딴 소리하면 오히려 유 하사만 욕 먹는 거죠.”
-역시 현명하십니다.
“윤 소위님. 제발 부탁입니다. 앞으로 사고 좀 치지 마십시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걱정 할 것을 만들지 말아야지. 걱정을 하지 않죠.”
-죄송합니다.
“아무튼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도와드립니다.”
-네. 주임원사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아무튼 어린 새끼들이 문제야. 나 때에는 이렇게 군 생활을 했으면 당장에······. 어후. 세상 많이 좋아졌다. 좋아졌어. 괜히 당나라 부대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니까.”
방대철 주임원사가 구시렁거리다가 책상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동생인 방대호 사장이었다.
“어, 왜?”
-형, 바빠?
“한가하겠냐? 지금 근무시간이잖아.”
-뭐가 그리 바쁘기에 어제 전화 달라고 했더니 전화도 주지 않고.
“야. 어제도 바쁘고 오늘도 바쁘지. 지금 부대사건 터져서 머리 아파 죽겠다.
-뭔 놈의 부대는 만날 사건이 터져.
“말도 마라. 말도 마. 그런데 왜 전화했어.”
-왜 전화했기는 우리 계약 언제 하냐고.
“계약 무슨 계약?”
-장난해! 형 말대로 부식업체 차렸는데 계약을 해줘야 할 것 아니야. 주변 식당 돈 얼마 되지도 않는 거 물건 팔아먹고 어떻게 살아.
“기다려 봐. 때가 되면 연락해 준다고 했잖아.”
-그게 언제인지 정확하게 말을 해 줘야지. 지금 와이프 난리도 아니야.
“제수씨가? 제수씨가 왜?”
-왜긴 왜야. 형만 믿고 가게 다 정리하고 그랬는데. 이러다가 손가락 빨게 생겼어.
방대호의 말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 이 전에도 치킨집 망해가서 손가락 빨고 있었잖아. 이제 와서 난리야.’
그렇다고 자기 때문에 부식업체 차린 것이 아닌가.
“아무튼 조만간 결론을 지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정말이지. 나 형만 믿는다.
“알았다니까! 끊어.”
전화를 끊고 난 후 방대철 주임원사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아, 요즘 내 주위에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은지······.”
담배 연기를 내품으며 말했다.
“빨리 대대장이 육본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야. 말년에 군 생활 더럽게 힘드네.”
방대철 주임원사 입에서 푸념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