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6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2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61)
“네? 주임원사님께요?”
“내가 명색이 주임원사 아닙니까. 부대 일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내가 나서서 도와줄 테니까. 말해요.”
“네. 주임원사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요. 제발 부탁입니다. 윤 소위님 사고 좀 치지 맙시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타일르듯 말했다.
“지금 대대장님께서 육본에 올라가시려고 저렇게 몸을 사리고 계시는데 진짜 윤 소위님 때문에 하루하루 맘 편할 날이 없습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얘기를 듣고 윤태민 소위는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이 양반이 왜 불러서 조언을 하나 했더니······. 대대장님을 육본으로 올려 보내기 위해서 저러는 구나. 그런데 주임원사는 대대장님께 돈이라도 받은 거야? 왜 저렇게 열심인데.’
윤태민 소위는 민감한 일에 나서는 방대철 주임원사가 찝찝했다. 그러나 방대철 주임원사는 이 일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에 이 일로 인해 대대장의 보직 이동이 물 건너 가버리면 당연히 자신의 동생과 차릴 부식 가게도 큰일 날 판이었다. 그래서 방대철 주임원사는 어떻게든 윤태민 소위를 도와줘야 했다.
윤태민 소위는 오늘 아침 주임원사를 만났던 것을 기억하며 중얼거렸다.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했는데······. 전화 한번 해봐?”
윤태민 소위가 방대철 주인원사에게 전화를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쇼.
“주임원사님 윤 소위입니다.”
-그래요. 윤 소위님. 그런데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다급해서 그만······.”
-그건 그런데요.
“아침에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해서 말이에요.”
-아후. 그래도 윤 소위님 이건 아니죠.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됐고요. 무슨 일입니까?
윤태민 소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침에 주임원사님께서 말했지 않습니까. 유 하사에게 합의금을 주려고 했습니다.”
-전해줬습니까?
“아뇨. 갑자기 중대장님께서 나타나는 바람에 파투가 나버렸습니다.”
-4중대장님이요?
“네.”
-어떻게 그곳에 나타나셨데요.
“그것이 설명하자면 좀 복잡합니다. 그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뭘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손에 돈 봉투를 쥐여줘야죠.
“유 하사를 어렵게 불러냈는데 다시 관사로 들어갔어요.”
-하아, 정말 골치 아프게 되었네요.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것이 뭡니까? 유 하사하고 만날 기회를 달라는 겁니까?
“네. 그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기회를 만들어 드리죠. 대신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아셨죠!
“네. 주임원사님. 감사합니다.”
윤태민 소위가 전화를 끊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던 유선영 하사는 대대 주임원사의 전화를 받았다.
“주임원사님께서 무슨 일이지?”
유선영 하사는 안 받으려고 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전화가 끊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출근을 하려는데 징징 전화가 울렸다. 유선영 하사는 이번에는 고민 없이 바로 받았다.
“통신보안. 충성. 유 하사입니다.”
-전화를 왜 안 받아!
“아. 출근 준비 하느라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지금 어디야?
“출근하는 길입니다.”
-그럼 잘되었네. 4중대로 가지 말고 잠깐 나 좀 보지.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주임원사실에 말입니까?”
-그래! 출근 좀 늦어지는 건 내가 다 말해줄 테니까. 이리 와.
“네. 알겠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전하를 끊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왜 갑자기 오라고 하는 거지?”
유선영 하사는 갑자기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게 관사 문을 열고 나가는데 저만치 황하나 하사가 서 있었다. 그녀를 보자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유선영 하사였다.
“뭐야.”
유선영 하사가 관사를 나서며 황하나 하사 곁을 지나갔다.
“저어 유 하사······.”
유선영 하사는 그런 황하나 하사를 무시하며 지나갔다. 황하나 하사가 재빨리 유선영 하사를 붙잡았다.
“유 하사······.”
유선영 하사가 가만히 있다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출근해?”
“보면 몰라?”
“같이 가자.”
“왜 갑자기?”
유선영 하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 부사관 관사에는 황하나 하사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는 그런 생각을 했다.
4중대에 여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박윤지 3소대장, 자신, 그리고 황하나 하사였다.
박윤지 3소대장이야 원래 출근 시간이 좀 빨랐다. 황하나 하사는 동기니까 기왕이면 같이 움직이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가 지금까지 같이 출근하는 것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황하나 하사는 거의 매일 남자 부사관하고 같이 움직였다.
심지어 어떤 남자 부사관은 4중대까지 얼마나 된다고 차까지 끌고 와 황하나 하사를 모시고 가기도 했다.
또한 황하나 하사는 잠이 많은 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4중대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각을 2번 정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는 황하나 하사랑 같이 출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아침 일찍부터 밖에 나와 기다리며 자신과 함께 출근하자고 하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차피 가는 길인데 같이 안 간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이 잡혀 있었다. 만약에 주임원사가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황하나 하사랑 출근을 했을 것이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봤다면 다른 부사관들은 별일 없다고 여길 것이 분명했다.
황하나 하사도 그런 것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행동을 하는 그녀의 행동이 여우 같았다.
‘어제 나에게 윤태민을 날 팔아먹은 주제에······. 뭐 어쩌고 어째?’
유선영 하사가 그런 황하나 하사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황 하사는 먼저 가.”
“응? 왜? 혹시 나랑 가는 거 부담스러워?”
“언제 나랑 출근을 같이 했다고 그래. 지난번 황 하사가 나에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내가 뭐?”
“아니, 여자라는 이유로 같이 붙어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며. 군대에서 여자 남자가 어디 있냐고 자신의 입으로 그랬잖아.”
“그, 그건······.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야.”
“뭐야. 그때는 그렇게 말했으면서 이제 와 뭐? 갑자기 왜 이래, 사람 불편하게. 그리고 나 어차피 오늘 들를 곳이 있어. 먼저 가!”
“들를 곳? 어디?”
“알아서 뭐하게.”
“아니, 그게 나는······.”
황하나 하사가 우물쭈물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돼. 왜 저러니 진짜······.”
유선영 하사는 황하나가 들으라는 듯이 구시렁거리면서 대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 유선영 하사를 바라보는 황하나 하사가 울상이 되었다.
유선영 하사가 대대로 가는 길에 휴대폰을 꺼내 박윤지 3소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 하사. 출근 하는 길이야.
“네. 언니.”
-유 하사 지금 근무시간인데.
“아, 죄송합니다. 3소대장님.”
-아니야. 괜찮아.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실수할까 봐 그런 거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니에요. 제가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괜찮아. 그보다 왜 전화했어? 출근하면 행정반에서 볼 텐데.
“다른 것이 아니라 저 지금 주임원사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주임원사님? 그분이 왜?
“모르겠습니다. 저 아직 출근 안 했다고 하니까. 바로 대대로 오라고 합니다.”
-불안한데.
“그렇죠. 저도 불안합니다.”
-하아······. 설마 어제처럼 2소대장이 있는 거 아니야?
“그래서 말입니다. 2소대장 출근 했습니까?”
-2소대장? 글쎄다 온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
박윤지 3소대장이 잠깐 동안 목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다시 들려왔다.
-어, 저기 4소대장 말로는 2소대장 화장실 갔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그럼 아닌가······.”
-아니겠지.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설마 또 그럴까?
“하아, 저 진짜 너무 불안합니다.”
-유 하사. 침착하고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신 거 잊지 않았지? 우리 조금만 더 버티자.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3소대장님.”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유선영 하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유선영 하사는 박윤지 3소대장에게 모든 것을 얘기해 줬다. 박윤지 3소대장은 윤태민 소위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오상진이 유선영 하사를 도와줬다는 말에 제 일처럼 기뻐했다. 게다가 오상진이 증거를 찾았다는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이 두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우리 이제 중대장님만 믿고 가자! 우리가 일을 망쳐서는 안 돼. 내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알죠!”
“중대장님은 이 일에 모든 것을 걸 수도 있어. 대위가 계급이 높지 않아. 오히려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윗사람들 눈치를 봐야 한다고 알고 있거든. 그런데 중대장님 봐봐 우리 때문에 이렇듯 고생을 하시잖아. 그런데 우리가 만약에 여기서 중대장님 배신을 하면 천하의 나쁜 년이 되는 거야. 그러니 유 하사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그럼요. 걱정 마요. 절대 중대장님 배신할 생각없어요.”
어제 박윤지 3소대장과 얘기한 것을 다시 되새기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정신 차려 유선영.”
대대에 도착을 한 유선영 하사는 곧바로 주임원사실로 갔다.
똑똑!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2소대장은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앉아 있었다. 그를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잠깐 신문을 보고 있던 방대철 주임원사가 유선영 하사를 봤다.
“왔나.”
“네.”
“여기 앉아!”
유선영 하사가 자리에 앉았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아침은 먹었나?”
“네.”
“커피 한잔할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싫으면 말고.”
지난번에는 손수 커피까지 타서 주더니 이제는 됐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이에 방대철 주임원사의 온도 차이가 확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유선영 하사는 긴장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행동은 방대철 주임원사의 의도된 행동이었다. 원래 사람을 다루는 일은 어르고 달래는 일과 병 주고 약 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게다가 사람이 좋게만 대하면 우습게 알고 엄하게만 대하면 무서워하니까 완급조절을 잘해야 한다.
한마디로 냉탕과 온탕을 적절히 잘 섞어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야 사람이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를 자각을 한다.
특히나 방대철 주임원사 같은 경우는 사람을 워낙에 잘 다룬다. 유선영 하사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구는 저런 애들은 마냥 좋게만 대해주는 것보다 자신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지난번에 했던 얘기는 생각해 봤어?”
“네?”
“내가 말했잖아. 부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아직 헌병대 조사 중이라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