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6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11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60)
그런 와중에 윤태민 소위는 오상진의 코를 꿸 작전을 실행했지만 당연히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윤태민 소위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와 자신도 중대원인데 차별을 하냐며 하소연을 해봤자 헛소리라고 생각할 뿐이다.
“윤 소위. 너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 유 하사 찾아오면 그때는 내가 가만 안 둬!”
윤태민 소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대답 안 해!”
“네, 알겠습니다.”
“빨리 꺼져.”
윤태민 소위가 또다시 한숨을 내쉰 후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 그의 고개는 푹 꺼져 있었다.
그렇게 윤태민 소위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빤히 노려보던 오상진이 그제야 몸을 돌려 유선영 하사를 봤다.
“유 하사. 괜찮나?”
오상진이 나타난 이유로 유선영 하사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오상진이 손을 내밀었다.
“잡아.”
유선영 하사가 손을 내밀어 오상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의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제대로 서 있지를 못했다.
“유 하사 많이 놀랐지.”
“아닙니다. 중대장님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니, 왜 이 오밤중에 밖으로 나온 거야.”
“그것이······. 아까 황 하사가 할 얘기가 있다고 그래서 말입니다.”
“황 하사? 할 얘기가 있다면 집에서 해도 되잖아. 다음 날 부대에서 해도 되고.”
“그것이 집에 3소대장이 계셔서 말입니다.”
“아. 맞다. 그렇지. 유 하사랑 3소대장이랑 맥주 한잔한 거야?”
“네.”
“그래. 뭐! 오늘 조사받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충분히 이해는 해. 그리고 앞으로는 밤에 함부로 혼자 다니지 마. 이 사건이 다 끝날 때까지는 말이야. 윤 소위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빌미를 제공하지 마. 중대장 말 무슨 뜻인 줄 알지?”
“네. 중대장님. 그런데 중대장님은 여기까지 어쩐 일로······.”
“아! 맞다. 그 얘기를 해주려고 왔는데······. 유 하사.”
오상진이 유선영 하사를 빤히 바라봤다.
“네. 말씀하십시오. 중대장님.”
“지금부터 중대장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
“네.”
“내가 증거를 잡았다.”
“네에?”
“증거를 잡았단 말이야.”
“그게 무슨······.”
유선영 하사가 눈을 크게 떴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술을 마시고 윤 소위 차에 탄 그곳에 다행히 CCTV가 있었어.”
유선영 하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증거가 있었습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유 하사가 억울해하지 말라고 하늘이 도운 것 같아.”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나한테 감사할 것이 뭐가 있어. 그냥 운 좋게 CCTV에 찍힌 것뿐인데······.”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도와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다들 저 때문에 부대 시끄러워진다고 눈치만 주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진짜 중대장님 감사합니다.”
“뭘 그런 소리를 해. 중대장으로서 당연한 것을 한 것뿐인데.”
“그럼 내일 모두 다 밝히는 겁니까?”
유선영 하사의 물음에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당분간은 유 하사가 고생을 좀 해줘야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잘 생각해 봐. 윤 소위가 유 하사 추행하면서도 안전벨트 때문이라면 짜깁기를 하고 있잖아. 그렇지?”
“네.”
“그런데 이번에 CCTV 영상 증거가 있다고 하며 곧바로 내놔봐.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아······. 그것도 변명할 거란 말씀이시죠.”
“그래. 지금 저쪽에서는 CCTV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거야.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유 하사를 몰아붙일 거야.”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은······.”
“고생스럽겠지만 확실해질 때가지 버티는 거야. 저쪽에서 어떤 식으로 말을 하든 꾹 참고서.”
“저쪽에서 계속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앞세우게 유도하자는 말씀이시죠.”
“맞아. 저쪽에서 계속 자신만의 논리를 펼쳐야지만 우리가 증거를 내밀었을 때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하지.”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오상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지금 헌병대는 이 일을 덮으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CCTV가 정확하게 어떻게 녹화가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의 아홉은 별 거 아닌 걸로 취급하거나 증거를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되면 유선영 하사만 불리해질 것이었다.
‘그래. 이건 중대장님 말씀대로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하자.’
그러면서 유선영 하사가 이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상진은 그런 유선영 하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중대장도 유 하사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데 이 일은 우리가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내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중대장님.”
“그래. 그거면 됐어.”
“그런데 중대장님.”
“응?”
“만약에 그리했는데도 이 일을 덮으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그리 된다면 중대장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내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이 일을 바로 잡을 거야. 그러니 걱정 하지 마.”
“중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을······. 관사가 저쪽이지?”
“네.”
“가자. 가서 좀 쉬어.”
“아닙니다. 중대장님. 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아니지. 윤 소위가 또 언제 나타날지 모르잖아.”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과 유선영 하사가 나란히 걸어갔다. 관사까지 데려다 준 오상진은 다시 몸을 돌려 중대로 향했다. 그 모습을 윤태민 소위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하아, 시발 진짜······. 왜 저러는 거야.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이기에 저래.”
윤태민 소위는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오상진이 만에 하나 자리를 뜨면 유선영 하사를 다시 만날 생각이었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유선영 하사를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오늘 오상진에게 방해를 받긴 했지만 오늘이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오늘 유선영 하사의 손에 돈 봉투를 쥐여줘야 했다.
유선영 하사가 싫다고는 하지만 봉투 안에 있는 오백만 원을 보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 있단 말이다.
그런데 오상진이 나타나면서 완전히 꼬여 버렸다.
“이거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윤태민 소위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렇다고 외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없었다.
외할아버지인 신범규 준장은 처음 윤태민 소위가 육군사관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해준 말이 있었다. 그것도 딱 하나였다.
“여자 조심해라!”
솔직히 다른 문제들은 신범규 준장 선에서 어느 정도는 무마시킬 수 있었다. 신범규 준장이 나름 영향력이 있는 만큼 윤태민 소위가 사고 치는 것은 커버를 쳐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자 문제는 안 되었다.
성 군기와 관련해서 자칫 잘못했다간 그 사건 하나로 옷을 벗게 될 수 있었다. 윤태민 소위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한동안 신범규 준장이 매번 하는 얘기가 있었다.
“여자 조심! 여자는 멀리 하고 있지?”
그때마다 윤태민 소위는 네 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육사때도 만나는 여자가 한 두 명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신범규 준장 앞에서 솔직히 대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 신범규 준장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아, 아니지. 할아버지가 절대 들어줄 리가 없지.”
윤태민 소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윤태민 소위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방대철 주임원사가 떠올랐다.
“맞다. 주임원사······.”
윤태민 소위는 오늘 아침 방대철 주임원사를 만났다. 그것도 방대철 주임원사가 따로 만나자고 했다.
“주임원사님, 저 보자고 하셨습니까?”
“윤 소위님. 여기 좀 앉아보시죠.”
윤태민 소위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임원사의 짬은 어마어마하고 이제 임관한 지 1년 반이 좀 넘었다. 하지만 계급은 자신이 더 높았다. 이렇듯 자신을 부르는 것이 좀 못마땅했다.
하지만 주임원사고 대대에서도 대대장 다음으로 어른이기에 존중을 해주는 것이었다.
“헌병대 조사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대대 주임원사 아닙니까. 그런 소문은 대번에 알죠. 그보다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무슨 준비가 있겠습니까? 그냥 물어보는 것에 대답하면 되는 거죠.”
방대철 주임원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윤 소위님 건들 사람이 없어서 여자 부사관을 건드립니까. 부사관이 만만합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아무튼 내가 진짜 마음 같아서는 부사관들 다 데리고 대대장실에 쳐들어갈까 했습니다.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참고 있는 중입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윤태민 소위는 아침부터 고개를 주억거렸다. 방대철 주임원사랑 딱히 친하지는 않지만 이제 막 임관한 유선영 하사보다는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지 않아도 어제 유 하사 불러서 적당히 합의하라고 일러뒀습니다.”
“합의 말입니까?”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헌병대를 부를 줄은 몰랐네요. 누가 불렀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보나마나 4중대장 짓이겠죠.”
멋대로 오상진을 오해하는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윤태민 소위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윤태민 소위가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위에서 헌병대 조사가 내려 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 다였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입을 열었다.
“헌병대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와 합의만 한다면 다 끝나요.”
“합의요?”
“그렇죠. 아니, 윤 소위님도 운전하잖아요.”
“그렇죠.”
“가벼운 접촉사고가 일어나면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하면 끝나는 거죠. 경찰이 와서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이 웃기지 않아요?”
“······.”
“헌병대 조사야 똑같은 겁니다. 헌병대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들끼리 조용히 해결하겠다고 하면 헌병들도 적당한 선에서 덮고 넘어가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합의를 봐요. 돈을 줘서라도 말이죠.”
“어······. 돈까지 줘야 합니까?”
“그럼요. 유 하사가 왜 저럴 것 같습니까. 유 하사 입장에서도 억울한 것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닙니까.”
“주임원사님 저도 억울한 것은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합니까. 아무튼 유 하사 입장에서는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쪽에서도 뭔가 끝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보상이 윤 소위의 처벌? 끝까지 처벌을 원한다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네. 그렇긴 한데요.”
“그러니까요. 적당히 돈으로 무마해요. 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에 윤태민 소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방대철 주임원사의 말처럼 가벼운 접촉사고라고 생각하고 합의금을 지급하면 의외로 깔끔하게 끝날 것 같았다.
“그리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나에게 말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