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5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09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58)
유선영 하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려보내기에는 자신이 좀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또 황하나 하사가 집 앞까지 와서 사과를 했는데 자신이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소문이 나버리면 오히려 유선영 하사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좋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어디 한번 들어주지.’
유선영 하사는 결심을 하며 말했다.
“가! 가자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얘기를 하자며.”
“괜찮겠어?”
“여기까지 와서 긴히 하고 싶다는 말이 있다며. 그럼 들어줘야지. 일단 가자.”
“알았어.”
황하나 하사는 이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어떻게하면 유선영 하사를 윤태민 소위에게 데리고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가 이렇듯 쉽게 따라 나서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가는 내내 황하나 하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이 윤태민 소위 심부름을 한 것을 안다면······.
‘하아. 미치겠네.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할까? 아니지, 아니야. 괜히 솔직히 말하면 날 더 싫어하고 더 미워할 거야.’
황하나 하사가 가슴이 두근거리며 윤태민 소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유선영 하사는 황하나 하사를 따라가며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저쪽에 조용한 곳이 있어.”
“저쪽에 벤치 있어. 저쪽으로 가자.”
“뭐. 그래.”
유선영 하사가 따라가며 인상을 썼다.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진짜······. 아니면 조용한 곳에서 무릎이라도 꿇을 건가?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만 해.’
유선영 하사가 따라가는데 저쪽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후 누구야?”
순간 황하나 하사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고 유선영 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는 윤태민 소위가 서 있었다.
“두 사람 어디 가요?”
“네?”
유선영 하사가 눈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기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그래요. 나도 유 하사에게 할 얘기가 있는데······.”
윤태민 소위가 슬쩍 황하나 하사를 바라봤다.
“황 하사.”
“네?”
“유 하사라 할 얘기가 있는데 자리 좀 비켜주겠어요?”
“네?”
황하나 하사가 눈을 크게 떴다. 유선영 하사도 놀란 듯 눈을 크게 한 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윤태민 소위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내가 유 하사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다니까요. 그러니 자리를 좀 비켜줘요.”
윤태민 소위의 말에 유선영 하사는 크게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뭐지? 갑자기 나타나서는······. 왜?’
윤태민 소위가 무슨 할 말이 있어서 황하나 하사보고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유선영 하사가 다급하게 황하나 하사를 보는데 그녀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당연히 자신이 불러냈으면 윤태민 소위가 아무리 저런 말을 해도 먼저 선약을 했다고 하며 말려야 하지 않는가.
순간 유선영 하사가 눈치가 들었다.
‘뭐지? 설마······. 윤태민이 시켜서 날 불러낸 거야?’
유선영 하사의 싸늘해진 시선이 황하나 하사에게 향했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는 유선영 하사의 눈빛을 읽지 못했다. 그때의 황하나 하사의 시선은 윤태민 소위에게 향해 있었다.
윤태민 소위는 황하나 하사에게 눈짓으로 빠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황하나 하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 하사 미안해. 나 먼저 가 볼게.”
황하나 하사가 몸을 돌려 빠르게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유선영 하사가 불렀다.
“야! 황 하사! 황하나! 여기서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황하나 하사는 마치 자신은 모르겠다는 듯 걸음을 내뺐다. 그런 황하나 하사를 보며 윤태민 소위가 피식 웃었다.
‘참, 대단하다. 대단해. 아무리 내가 시켰다고 해도 저렇게 뒤도 안 보고 도망가고. 진짜 여자들의 의리 아름답다, 아름다워.’
그러면서 윤태민 소위가 유선영 하사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유선영 하사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가,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유 하사. 내가 뭐 어쨌다고 그래요? 설마 내가 여기서 유 하사에게 허튼짓이라도 할 것 같습니까. 황 하사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여, 여기까지 왜 오신 겁니까?”
유선영 하사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물었다.
“유 하사에게 사과하러 왔죠. 사과 말이에요.”
“사과 말입니까? 무슨 사과를 말입니까?”
“어찌 되었건 나 때문에 헌병대 조사를 받게 되었고 그리되었지 않습니까. 물론 나도 유 하사 때문에 헌병대 조사를 받게 되었지만······.”
“그게 왜 저 때문이죠?”
“유 하사. 우리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그래요, 막말로 내가 유 하사 안전벨트 매주려고 하다가 스친 것 같긴 해요. 그게 뭐?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일입니까?”
윤태민 소위는 뻔뻔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실수라고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 상황을 어떻게 넘어갈까 했는데 헌병대에서 아예 시나리오를 그런 식으로 짜주니 너무 편했다. 그대로 밀고 가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바보가 아니었다. 윤태민 소위가 정말로 안전벨트를 채워주려고 했으면 정말 채워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안전벨트는 채워져 있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안전벨트 채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안전벨트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그거야······. 손을 뻗었는데 유 하사가 반응을 하니까. 내가 놀라 가지고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서 뺐던 거지요. 중간쯤에 유 하사가 잠에서 깼잖아요. 그리고 날 바라봤잖아요. 그래서 유 하사가 뭔가 눈치를 챈 것인 줄 알았지요.”
윤태민 소위가 계속해서 변명에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그 상황에서 유선영 하사가 깬 것 같아서 추행을 멈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중간에 제가 토했을 때 그때 한 말은 뭡니까?”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요.”
“저에게 관심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윤태민 소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유 하사.”
“네!”
“왜 내 얘기를 곡해해서 받아들여요? 그 얘기는 간단한 거잖아요. 유 하사 나 싫어하잖아요. 안 그래요?”
“네?”
“나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왜 2소대장님을 싫어합니까.”
“우리 솔직해집시다. 나에게서 안 좋은 소문을 듣고 싫어했던 거 아닙니까.”
“그건······.”
유선영 하사가 당황했다.
“그래! 유 하사가 나 싫어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고 부소대장이라고 왔는데 같이 잘 지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요. 난 유 하사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 하사에게 호감으로 대하고 있다. 좋은 감정으로······.”
“그때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난 그런 뜻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유 하사가 술에 취해서 잘못 들은 거 아닙니까.”
“와, 진짜 어이가 없습니다. 계속 이러실 겁니까!”
“내가 뭘요? 솔직히 유 하사야말로 나에게 왜 그럽니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내가 그렇게 유 하사에게 죽을 짓을 했습니까.”
“그럼 이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유 하사. 제발 일을 크게 만들지 맙시다. 유 하사야 군 생활 짧게 할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갈 길이 먼 사람입니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예비역 준장이십니다. 준장! 원스타 말이에요. 내가 외할아버지 뒤를 이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 내가 외할아버지 명예에 먹칠을 할 그런 일을 하겠어요. 게다가 난 이미 근신상태입니다. 물론 그것도 내가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근신 처분당한 상태에서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유 하사에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진짜 해도 너무합니다.”
“······.”
유선영 하사는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윤태민 소위는 뻔뻔하게 자기 할 말을 했다.
“술 취해서 비틀비틀거리며 가는데 황 하사는 유 하사를 똥 씹은 얼굴로 부축해 가고 있고. 저러다가 유 하사 다칠 것 같아서 차를 세워 태워주려고 했던 건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왜 저를 만졌냐 말입니다.”
“아까 내가 말했잖아. 가는 길에 혹시라도 토할지도 모르고, 또 갑자기 오바이트 할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안전벨트를 매주려고 한 것인데······. 결국 안전벨트는 매주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유 하사 중간에 토했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건······.”
“봐! 그래서 안전벨트를 매주려고 했던 것이라니까요.”
“그러면 저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말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때는 얘기하기가 좀 그랬습니다. 아니, 매정하게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합니까. 게다가 유 하사 말입니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나하고 얘기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안전벨트 매라고 했으면 유 하사 퍽이나 얘기 들었겠습니다.”
“하아······.”
유선영 하사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헌병대의 태도 때문일까? 윤태민 소위는 말로는 사과를 하는데 표정이라든지 말하는 것이 기세등등했다.
‘진짜 이게 뭐야!’
유선영 하사가 속으로 짜증을 냈다. 그런 와중에 윤태민 소위가 말했다.
“유 하사.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그냥 이쯤에서 조용히 합의합시다.”
“뭘 합의를 합니까. 제가 2소대장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십니까.”
“그러니까. 내가 헌병대 조사하면서 얘기를 들었어요. 그쪽에서 그러더라고요. 각 부대별로 이런저런 남녀들 일이 있는데 증거가 확실하지 않는 이상에서는 헌병대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해요. 만약에 흐지부지 일을 처리하면 오히려 여자 쪽만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네?”
“생각해 보세요. 여자 쪽에서 성추행이라고 신고를 했는데 그 일이 증거 없음으로 처리되어 버리면 여자 쪽은 뭐가 됩니까.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고발한 것밖에 더 됩니까.”
“저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조금 스친 것에 대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잖아요. 내 의도는 생각지도 안하고 성추행이니 뭐니 몰아가고 말입니다. 이게 진짜 뭡니까! 나도 이제 앞으로 어딜 가든지 얼굴 못 들고 다니게 생겼어요. 이만큼 망신 줬으면 됐지. 끝까지 가야 되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여기까지만 합시다. 자, 이거 받아요.”
윤태민 소위가 봉투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유선영 하사가 물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뭐야. 내가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그렇다고 많은 것은 아니야. 오백만 원인데······ 내 성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받아줘요.”
유선영 하사가 어이없어 했다.
“그래서 2소대장님 말씀은 이거 받고 넘어가자는 겁니까!”
“유 하사. 내가 여태껏 얘기 했잖아요. 지금 무슨 소릴 듣고 있는 겁니까. 난 헌병대 조사에서 솔직하게 말했어요. 유 하사에게 조금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헌병대에서 그러더라고요. 그 정도 가지고 성추행이니 해버리면 대한민국 군대에 남녀가 같이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유 하사가 술기운에 오해를 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오해를 삼을 만한 행동을 한 것은 미안해요.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어요. 유 하사가 자꾸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