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5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08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57)
황하나 하사의 집안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무슨 여자가 군대냐고, 좋은 직장 다니다가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이나 가라는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황하나 하사는 굽히지 않고 부사관 지원을 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장기복무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윤태민 소위의 말처럼 이 일이 잘못되어서 황하나 하사의 의도치 않은 행동이 비난받으면 남자 부사관은 물론 여자 부사관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할 확률이 높았다.
윤태민 소위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황하나 하사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중대에 여자라고는 셋밖에 없어서 가만히 있는 거죠. 황 하사 대대에는 안 들어가 봤죠?”
“대대 말입니까? 거긴 왜 그러십니까?”
“거기 나이 많은 여자 상사 알죠?”
“네. 만난 적 있습니다.”
“거기 최 상사가 아주 벼르고 있다고 합니다.”
“네?”
황하나 하사는 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가 윤태민 소위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 저를 말입니까?”
“그럼 누굴 벼르겠어요. 여자가 되어서 술에 미쳐서는 동료를 내팽개치고 갔는데······. 게다가 여자 군인들은 전우애도 부족하고 동료애도 부족하다고 듣고 있잖아요. 그런데 황하나 하사가 그 예를 들어 줬어요. 이제 어쩔 겁니까. 내가 그랬죠. 헌병대 조사도 끝이 났고. 나는 그냥 조용히 경고 먹고 부대 옮기면 그만입니다. 유 하사는 나름 저렇게 지내다가 딴 부대 가서 조용히 지내겠죠. 그런데 황 하사는요? 황 하사는 그 비난을 받을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뭔 줄 알죠? 여자들끼리 뒤통수치는 것을 제일 싫어해요.”
윤태민 소위의 말에 황하나 하사는 뭐라고 변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다물었다. 솔직히 윤태민 소위의 말처럼 된다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자 오히려 화가 났다.
“그래서 저 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황하나 하사의 말에 그제야 윤태민 소위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날 도우라고. 날 도우는 것이 황 하사에게도 도움이 되는 겁니다. 나 솔직히 유 하사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고 그런데 술 취해서 조금 닿은 거? 그래요. 그거 내 잘못이라고 해요. 내가 아예 잘못을 안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책임져요. 진다고요. 그래서 유 하사하고 합의를 보려고 해요.”
“합의······ 말입니까?”
황하나 하사가 눈을 크게 떴다.
“네. 합의요. 합의를 하려면 뭘 해야겠어요?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그렇게 얘기가 되어야 될 것 아니에요.”
“네.”
“그러면 자연스럽게 황 하사가 한 일이 묻히겠네요. 만약 합의를 하면 이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되니까요.”
물론 합의를 한다고 해서 이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합의를 하면 윤태민 소위와 유선영 하사의 문제에 낀 황하나 하사의 문제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단 윤태민 소위는 한시가 급했다.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헌병대에서 이 일을 덮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또 그러면서 박태진 중위 말로는 이런 상황일 때는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직접 만나서 적당한 돈으로 합의를 해라. 이런 조언을 해줬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가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500만 원을 준비했다. 솔직히 500만 원 주는 것이 아깝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가지고 가야 유선영 하사도 마지못해 받아들일 것 같았다.
문제는 유선영 하사 옆에 박윤지 3소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유선영 하사에 접근이 가능하려면 여자인 황하나 하사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가 황하나 하사를 불러서 이렇듯 반협박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황 하사가 가서 유 하사를 따로 불렀으면 좋겠어요. 내가 유 하사하고 합의를 잘하고 나면 황 하사도 유 하사에게 사과를 하는 데도 마음 편해지지 않겠어요?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어렵게 꼬지 말자고요. 아니, 서로 인생 골치 아프게 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서로 풀자고요. 내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윤태민 소위의 말에 황하나 하사도 속으로 동의를 했다. 솔직히 유선영 하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을 가지고 군 생활하는 동안 평생을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조금 억울했다.
“제가 가서 유 하사만 불러오면 되는 겁니까.”
“네.”
“아. 그리고 3소대장이 따라올 수 있어요. 3소대장에게는 말하지 말고요. 내 말 무슨 뜻인 줄 알죠?”
“네에······.”
“내가 단둘이 얘기를 해야지 일이 빨리 끝나죠. 괜히 3소대장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해서 합의 못 하게 하면 난처해지지 않겠어요. 나 그때는 진짜로 황 하사 신경 안 씁니다.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갈지 모릅니다. 막말로 황 하사가 그때 유 하사를 제 차에 태우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는 3소대장님이······.”
“그러니까!”
윤태민 소위가 바로 황하나 하사의 말을 잘랐다.
“날 좀 도우라고요.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유 하사 좀 데리고 오세요.”
황하나 하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여자 부사관들이 머물고 있는 관사로 이동했다. 그런 황하나 하사를 보며 윤태민 소위가 가볍게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딩동딩동!
박윤지 3소대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유선영 하사와 공포 영화를 두 손 꼭 잡고 보고 있었다.
“응? 누구지?”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물었다.
“누구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 이 시간에 누가 올 사람이 없는데······.”
박윤지 3소대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2소대장?”
“에이 설마요. 그러면 완전 소름인데······.”
유선영 하사는 소름이 끼치는 듯 두 팔로 자신을 감쌌다. 박윤지 3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있어봐 내가 다녀올게.”
박윤지 3소대장이 입구로 향했다. 물론 박윤지 3소대장도 윤태민 소위가 부담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태민 소위에게 꼼짝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박윤지 3소대장은 유선영 하사를 당당하게 보호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 할 수 있어.’
박윤지 3소대장이 속으로 말을 한 후 입구로 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십니까?”
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하사 나야.”
“누구입니까?”
“나 황 하사.”
“황 하사?”
박윤지 3소대장이 눈을 크게 하며 조용히 앉아 있는 유선영 하사를 봤다. 유선영 하사도 의외로 놀란 모습이었다.
“황 하사라고 하는데?”
“황 하사가 여기 무슨 일이지?”
유선영 하사가 중얼거렸다. 박윤지 3소대장이 물었다.
“어떻게······ 문 열어줘?”
“아뇨.”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우리끼리 맥주 마시고 있는 거 보여주면 안 되니까요. 제가 밖으로 나갈게요.”
“괜찮겠어?”
“뭐, 어때요.”
유선영 하사가 손에 들고 있던 맥주와 치킨을 내려놓고 물티슈로 입과 손을 닦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는 황하나 하사가 살짝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황 하사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어······. 유 하사. 혹시 지금 시간 괜찮아?”
“무슨 일인데?”
“그게······. 내가 유 하사에게 잠깐 할 얘기가 있었어.”
“할 얘기? 무슨 얘기?”
유선영 하사는 솔직히 황하나 하사와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황하나 하사가 자신에게 사과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황하나 하사를 얍삽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충분히 사과를 할 수 있으면서 또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 때문에 그냥 괜히 미안한 척하면서 동정심을 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유선영 하사가 보는 눈에는 말이다.
그냥 당당하게 찾아와서 다른 사람이 보든 말든 진지하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유선영 하사가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그래, 그게 어떻게 황하나 하사 잘못이겠나. 더러운 윤태민 소위 잘못이지. 그렇게 충분히 넘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일과 시간에는 자기도 피해자인 것처럼 풀이 죽어서는 시무룩하게 앉아서 주변사람 불편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자신한테 할 말이 있으면서 하지 못하는 것처럼 혼자서 끙끙거리는 그런 가식적인 모습이 싫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관사까지 찾아와서 이런 행동을 하니 정말 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는 진짜 마음 같아서는 사과도 안 받아주고 싶었다. 자꾸 여우같은 짓만 골라서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계속 모른척 할 수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유 하사. 지난번에 있었던 일은 내가 미안해.”
“지난번일 뭐?”
“내가 유 하사를 끝까지 집에 데려다줬어야 하는데 2소대장님에게 왜 맡겼는지 나 스스로도 모르겠어.”
유선영 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황 하사 너도 참······.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나 지났는줄 알아? 그 얘기 나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진짜 오래도 걸린다.”
“미안해 유 하사. 너무 경황이 없어서······.”
황하나 하사도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자신도 지레 겁을 먹고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황하나 하사라도 마음이 편할까?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보다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사과는 받을게. 됐지?”
“어? 어어······.”
“그럼 난 이만 쉬어야겠어. 이만 가 봐.”
유선영 하사가 다시 몸을 돌려 가려는데 갑자기 황하나 하사가 다시 불러 세웠다.
“유 하사······.”
“응?”
“따로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좀 시간을 내어주면 안 돼?”
황하나 하사가 다급하게 유선영 하사를 붙잡았다.
이대로 유선영 하사가 들어가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유선영 하사가 말이 좋아서 사과를 받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지못해 받아준 것이었다. 정말 용서를 해서 받아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 진짜로 유선영 하사가 헌병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 일이 커지고 그래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면,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 소문이 대대를 넘어서 연대, 또 옆 부대까지 퍼져 나가게 된다면 황하나 하사는 앞으로 군생활 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사과하러 온 것이 아니었어?”
“물론 사과도 하러 오고 유 하사에게 따로 할 얘기도 있고······.”
황하나 하사는 유선영 하사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말했다.
“그냥 여기서 해.”
“그게······.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 좀 하면 안 될까?”
“하아······.”
유선영 하사는 한숨을 내쉬며 관사 입구를 바라봤다. 그 안에는 박윤지 3소대장도 있다. 그렇다고 황하나 하사를 방에 들일수도 없었다. 황하나 하사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