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5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06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55)
“왜 그러십니까. 저 제대한 지 한 참되었습니다.”
“나도 소대장 아닌데 너는 계속해서 소대장이라고 부르잖아.”
“그거랑은 다르죠.”
“그런데 저 차는 왜? 네가 끌고 다니게?”
“아니요.”
“그럼?”
“우리 지현 씨에게 선물해 주려고요.”
“지현 씨를?”
“네. 우리 지현 씨가 예전부터 스포츠카 끌고 다니는 것이 소원이었거든요.”
“그럼 새로 하나 뽑아주지 왜?”
“새로 하나 뽑아주려고 했는데요. 새 차는 또 그렇게 부담스럽다면서 싫어하더라고요. 그런데 예전에 지현 씨가 저 차를 보고 예쁘다고 한 기억이 있어서요.”
“그래? 저 차가 또 있어?”
“아, 저 차요. 누나가 타고 다녀요.”
“최강희 대표님이?”
“네.”
“그래서 저걸 주려고?”
“그렇죠. 중고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뭐 그렇긴 하겠다. 지현 씨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럽긴 하겠다.”
“그렇다니까요.”
“야! 그러면 우리 소희 씨에게도 차를 사줘야겠는데.”
“소대장님은 소희 누나 대표를 만들어 주셨는데 오히려 소대장님이 차를 받아야죠.”
“그래도 인마. 네가 그렇게 하는데······.”
“그보다 소희 누나 면허는 있대요?”
“있을걸. 땄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은데.”
“그러면 차 사줄 때 좋은 차로 하세요. 방어운전 하게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여자가 운전하고 다닌다고 하면 장난 아니게 난폭하게 하더라고요. 사실 지현 씨도 몇 번 사고 날 뻔한 적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제가 저거 사주려고 한 겁니다.”
“그래?”
오상진은 최강철 얘기를 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한소희에게도 차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
“아무튼 고맙다. 네 덕분에 증거를 찾았네.”
“당연히 제 덕분이죠. 감사하면 아시죠?”
“뭐?”
“소대장님 우리 앞으로 쭉 같이 가는 겁니다.”
“야 인마, 너는······.”
최강철의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최강철은 선진그룹의 기획실장에 그룹 오너의 막내아들이다. 앞으로 탄탄대로일 텐데 자신과 어울리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강철 입장에서는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미운 오리 새끼였던 자신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고 또 아버지에게 인정받게 해줬다. 게다가 선진그룹에서 기획실장까지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준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오상진이었다.
무엇보다 서먹서먹하고 어느 정도 거리감까지 있었던 형 최강호하고도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신소라 때문이지만 그녀와 엮인 일을 풀어준 것이 바로 오상진이었다. 아버지인 최익현 의원도 오상진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종종 식사도 하고 그랬다.
이 모든 일이 오상진과 가까이 지내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래서 최강철은 오상진이 행운의 귀인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알았죠!”
“알았다. 알았어. 나중에 인마 귀찮다고 뭐라 하지나 마라.”
“에이. 저는 안 그럽니다. 소대장님과 평생을 같이 갈 겁니다.”
“그래 알았다.”
오상진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 길로 최강철을 돌려보내고 오상진은 기분 좋게 부대로 복귀를 했다.
오상진은 최강철이 증거를 찾은 그 시각.
박윤지 3소대장의 관사에 유선영 하사가 와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서로 사이좋게 즐기고 있었다.
“하아, 이 맛에 군 생활하는 것 같아요.”
유선영 하사가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너는 술도 못 마시면서 만날 술 마실 때마다 그러더라.”
박윤지 3소대장의 핀잔에 유선영 하사가 한마디 했다.
“언니는······. 꼭 술을 잘 마셔야 좋은 건가요. 술을 잘 못 마셔도 이렇듯 잘 놀면 좋은 거죠. 원래 나처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 된 애주가라고 하는 거예요.”
“아이고 그래요. 알았어요. 그렇다고 치자.”
박윤지 3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맥주 캔을 들었다. 유선영 하사도 함께 들며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서로 닭다리를 들고 뜯기 시작했다.
한창 닭다리를 뜯던 유선영 하사가 맥주 캔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저 있잖아요. 언니.”
“응?”
“처음에 저 4중대로 배치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진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사실 대대에 있으면서 4중대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렇지.”
박윤지 3소대장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다른 여자 장교라고는 언니밖에 없다고 하고 그래서 엄청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4중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나랑 친해지니까 좋아?”
“네. 완전 좋아요.”
유선영 하사가 히죽 웃었다. 사실 두 사람은 지난번 오상진과 셋이서 술 한잔할 때 오상진 몰래 합의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석일 때는 언니 동생으로 지내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오상진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대놓고 말은 놓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유선영 하사가 헌병대 조사과정에서 차별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니 박윤지 3소대장은 친언니처럼 가슴이 아팠다.
하물며 같은 여자로서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를 달래주는 과정에서 일과가 끝이 나고 서로 맥주를 한잔하자고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서로 말을 편하게 하게 된 것이었다.
“진짜 좋아요. 언니 생겨서 너무 좋아요.”
“선영이 너는 여자 형제가 없다고 했지.”
“네. 남자 동생들만 있어요.”
그 말을 할 때 왠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짓는 유선영 하사였다.
“어후 고생했겠네.”
“아뇨. 고생까지는 아닌데 남자들끼리 그런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 거?”
“이 녀석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엄마 대신 밥도 차려주고 숙제도 도와주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크더니 나를 무시하고는 지들끼리 놀러 다니고 그러더라고요. 치사하게······.”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언니는 형제가 어떻게 돼요?”
“나? 나는 언니 하나 있고, 남동생 하나 있어.”
“와. 언니 있어서 좋겠다.”
“언니가 있어서 좋아?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차라리 남동생 한 명 더 있는 것이 좋지. 뭐 남동생이랑은 가끔 티격태격하며 지냈지만 괜찮았거든. 그런데 언니하고는 진짜······ 너무 힘들었어.”
그때 그 생각이 나는지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요? 언니분이 한 성격 해요?”
“한 성격뿐일까? 나와 모든 것이 맞지 않았어. 그래서 독립하기 전까지 매일같이 언니랑 싸웠던 것 같아.”
사실 박윤지 3소대장이 ROTC를 통해 군대에 자원입대한 것도 언니가 버티고 있는 집에서 독립하기 위한 것이 어느 정도 이유가 되었다.
“그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유선영 하사가 혼잣말로 살짝 중얼거렸다. 그 얘기를 듣지 못한 박윤지 3소대장이 물었다.
“응? 뭐라고 했어?”
“아니에요.”
유선영 하사가 환하게 웃었다. 다시 맥주 캔을 부딪친 두 사람.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박윤지 3소대장이 물었다.
“참! 선영아.”
“네. 언니.”
“너 말이야. 아직도 황 하사랑 서먹서먹하지?”
“······네, 뭐.”
“너 계속 그럴 거야?”
“하아······.”
유선영 하사가 손에 들고 있던 치킨을 도로 내려 놓았다.
“언니. 나 진짜 치킨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왜? 황 하사 얘기를 해서 갑자기 치킨 맛이 뚝 떨어졌어?”
“네! 그러니 오늘은 하나 얘기 좀 하지 마요. 왜 이렇게 주변 사람들은 하나 하나 하는지 모르겠어요.”
유선영 하사는 그동안 중대 남자 부사관들이 황하나 하사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도 동조를 했다.
“그건 그렇지.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렇지?”
“네.”
유선영 하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바로 입을 열었다.
“참, 언니!”
“응?”
“아까 나 무슨 얘기 들었는지 알아요?”
“무슨 얘기?”
“2소대장이 하나에게 관심이 있었데요.”
“2소대장이? 정말이야?”
“네.”
유선영 하사는 학을 뗐다는 듯 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윤지 3소대장이 씁쓸하게 말했다.
“하긴 2소대장은 원래 그런 스타일 좋아해.”
“그런 스타일이 어떤 스타일인데요?”
“뭐, 여자가 보기에도 황 하사 예쁘잖아. 늘씬하고 여성스럽고.”
“어후 난 황하나 완전 별로예요.”
“왜?”
“지난번에 안 봤죠?”
“지난번 뭐?”
“아니, 아침구보를 하는데요. 자신도 상의를 탈의하고 아침구보를 하더라고요.”
“황 하사가?”
“네. 내가 오히려 민망해서는······.”
“좀 더웠나 보지.”
“아침에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리고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있지. 딱 달라붙는 상의 있죠? 가슴이 여실히 드러나는······. 아무튼 가슴 덜렁거리면서 뛰는데 병사들이 다 바라보고 있는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박윤지 3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선영이 황 하사 너무 의식하는 거 아니야?”
“하아, 솔직히 말할게요.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의식이 되잖아요. 언니 황하나하고 저하고 같이 들어왔잖아요. 동기인데 황하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쁘다는 이유로 저렇듯 챙겨주고 우쭈쭈 해주는데 저는 이렇듯 고생하고 있는데 화가 안 나겠어요.”
“선영아. 그렇다고 너무 미워하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같이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저는 언니랑만 친하게 지내려고요.”
“그럼 황 하사하고는 계속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얘기하고 말고가 있겠어요. 저희 사실 별로 친하지도 않았어요. 그랬으니까 저 관사에 데려다주라고 했는데 2소대장 차에 버리고 갔죠. 어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진짜······.”
“그래. 그건 좀 심했다.”
박유진 3소대장이 유선영 하사의 편을 들어줬다. 물론 유선영 하사가 필요 이상으로 황하나 하사를 질투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하나 하사가 지난번 회식 때 확실히 잘못한 것은 맞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것은 유선영 하사의 잘못이 맞지만 그런 동기를 버리고 다시 회식 자리에 갔다는 자체가 박윤지 3소대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에 자신이 취했는데 황하나 하사가 윤태민 소위 차에 태웠다면 박윤지 3소대장도 유선영 하사 이상으로 화가 났을 것이다. 윤태민 소위에게 추행을 당했든 안 당했든 그것을 떠나서 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런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자. 우리 더 이상 황 하사 얘기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네. 언니. 그런데요 언니.”
“응?”
“중대장님요.”
“중대장님이 왜?”
“여자 친구분은 어떤 분이실까요?”
“으음······ 글쎄다. 내가 예전에 보기는 했는데 교복이 잘 어울리는 사람?”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게······ 아니야.”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유선영 하사는 잔뜩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뭔데요. 얘기해 주세요.”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언니! 우리 사이에 그러기 있어요. 난 언니 믿고 온갖 모든 일 다 말했는데.”
“그래도 이 일은 중대장님 개인사인데 함부로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