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5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03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52)
“······.”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 유격훈련 때 앞서가는 여자 부사관 등을 밀어주고 허리 밀어주고 그런 것도 성추행이겠네. 아니지 훈련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닿은 것도 다 성추행이겠어. 아니, 무슨 군대에서 남자 여자를 따져. 다 같은 군대인데. 안 그래?”
“······.”
갑자기 흥분하는 최영도 헌병과장의 모습에 오상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오상진도 유선영 하사의 말만 듣고 윤태민 소위를 의심했던 것도 없잖아 있었다. 윤태민 소위는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오상진도 머릿속이 좀 복잡해 졌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뭐, 며칠 더 추가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이게 헌병대까지 나섰어야 할 일인가 싶어. 자네도 그래. 아니, 중대장이라면 정확한 상황 파악부터 했어야지. 다짜고짜 일을 이렇게 키우면 어쩌자는 건가? 뭐, 자네 일 아니라고 대대장이고 연대장이고 다 같이 깨져도 상관이 없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아니, 군 생활 열심히 해서 자네 동기보다 훨씬 빨리 진급한 사람이 왜 이래. 자네가 이러면 자네 동기들을 뭘 믿고 자네를 따르겠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이기적으로 군 생활할 건가?”
오상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아무리 자신보다 선배고 상급자이긴 하지만 대대 자체가 다르다. 지금 한 말은 어느 정도 선은 넘은 것 같았다.
“헌병과장님.”
오상진의 눈빛을 본 최영도 헌병과장이 바로 손을 들었다.
“아. 미안해. 내가 좀 흥분을 했어.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어이없는 경우는 오랜만이라서 그래. 그리고 말이야. 자네도 생각을 해봐. 자네 육사 출신이잖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얼마나 힘든 곳인가. 얼마나 힘들게 들어갔어. 그런데 만약 이 문제로 성 군기 위반으로 걸려 들어가 봐. 윤태민 소위는 군 생활 못해. 반면에 유 하사는 그냥 부사관 교육만 받고 임관한 거 아니야. 그럼 누가 더 잃을 것이 많고, 누가 더 힘들겠어.”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윤 소위가 잃을 것이 많아서 무조건 윤 소위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누가 윤 소위의 편을 들라고 했나. 윤 소위가 그만큼 잃을 것이 많은데 현재 그의 상황도 좋지 않잖아. 그런데 그런 무리한 일을 벌였겠나 이 말이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그런데 지금 4중대장은 오히려 선입견으로 윤 소위를 보고 있어. 아니야?”
“그건······.”
오상진도 바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자네에 대해서 기대 많이 하고 왔는데 실망스럽군. 아무튼 조사는 2, 3일 더 진행할 테니 그리 알고. 내 말에 반박하고 싶으면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와.”
최영도 헌병과장은 자신의 할 말이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그런 최영도 헌병과장을 보면서 오상진은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그날 저녁 오상진은 최강철과 부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기껏 내려왔는데. 정말 술 안 드실 거예요?”
“너도 올라가야 하잖아.”
“소대장님 술 드시면 저도 그 핑계로 한잔하려고 했죠.”
“야, 됐어! 너 엊그제도 술 마셨고, 어제도 마셨어.”
“와. 진짜······. 소대장님 너무 하십니다.”
갑자기 최강철이 평택까지 내려 온 이유는 평소와 다름없이 안부전화를 했다가 오상진의 무거운 목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위로 차 내려온 것이다.
오상진이 삼겹살을 구우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회사는 잘되고 있지?”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 그 얘기는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연습생 애들 입주시킬 겁니다.”
“뭐? 아직도 입주시키지 않았어?”
“처음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어떻게 바로 들어옵니까. 도배도 하고, 인테리어도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싹 해주고 그랬죠.”
“어이구, 돈도 많이 들었겠네.”
“아, 그 돈은 너무 걱정 마십시오. 선진그룹 아닙니까. 다 회사 물건으로 꽉꽉 채웠습니다.”
“야! 아무리 기획실장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제가 한 거 아닌데요.”
“그러면?”
오상진이 의문을 가지자 최강철이 바로 미소를 보였다.
“저희 형이 했죠.”
“최 본부장님께서? 이야, 감사하다고 해야겠는데.”
“아이고, 감사는 무슨······. 그 인간이 뭐 처음부터 그랬는 줄 아세요.”
“그럼?”
“소라 누나가 제일 꼭대기 층으로 이사했잖아요.”
“어.”
“그런데 기존에 있던 가전제품들이 낡았나 봐요. 그래서 우리 선진전자가 가전제품을 잘 만들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가전제품하면 선진전자지.”
“와, 또 알아주시네요.”
최강철이 씨익 웃으며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입을 이어갔다.
“그래서 교환을 했죠. 요새 잘 나가는 최신신제품으로 싹 다 바꿨죠. 그런데 소라 누나가 그랬어요. 자기만 이렇게 받는 거냐고.”
“오, 소라 씨가 신경 써준 거야?”
“그렇죠. 소라 누나 입장에서는 언제고 다른 아티스트들하고도 자기 집에서 회식도 하고 그럴 수도 있잖아요. 나중에 자기 집 와서 보면 좀 그렇지 않겠냐고 했어요. 자기만 잘 꾸미고 살면 말이에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소라 씨는 톱스타잖아.”
“물론 그랬는데 소라 누나가 워낙에 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잖아요. 잘나간다고 유세떠는 것도 싫어하고 자랑하는 것도 싫어해서요. 그것 때문에 저희 형이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만약에 소라 누나가 톱스타라고 해서 으쓱대고 그랬다면 형이 절대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래? 그건 또 우리 소희 씨랑 똑같네.”
오상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여자 친구인 한소희를 슬쩍 끼워넣었다.
“에이. 비슷한 걸로 따지면 우리 지현 씨도 마찬가지죠.”
최강철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됐고! 이제 뭐? 소라 씨 때문에 최 본부장님이 가구도 뭐고 새로 싹 다 교환해 주신 거야?”
“네. 그런데 가구만 새로 넣으려고 하니까. 전체적으로 다 교환할 시점이 왔더라고요.”
“오피스 전체를?”
“요즘 대세는 빌트인이잖아요.”
“그래서 싹 다 바꿔 준 거야?”
“네! 그 정도는 저희 형 포켓머니로 충분해요.”
“뭐? 요, 용돈으로?”
“에이, 뭘 그걸 가지고 놀라고 그러세요. 저희 형이 한 달에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인데요.”
“인마 나 같은 서민은 그 정도면 깜짝 놀라지.”
“소대장님도 저보다 돈 잘 버시면서······.”
“야, 아무리 그래도 난 최 본부장님에게 명함도 못 내밀겠다. 아무튼 너무 일을 크게 벌이신 것은 아니야?”
오상진이 조금 부담스런 얼굴로 말했다. 최강철이 젓가락질 하는 오른손을 빼고 왼손을 흔들었다.
“전혀 부담 느낄 필요 없습니다. 우리 형이 또 한 번 해야겠다고 맘먹으면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 게다가 자기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또 막으면 기분 나빠해요.”
“그래?”
“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최강철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자 오상진은 멋쩍게 웃었다.
오피스텔을 오상진은 저렴하게 그것도 은행 대출까지 받게 해서 매입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각 방 가전제품까지 싹 다 바꿔주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참 형이 이 얘기는 꼭 했어요.”
“뭐라고?”
“다음번에 가전제품을 교체할 때는 소대장님이 돈 많이 벌어서 기분 좋게 교체해 주시라고 했어요.”
“당연하지.”
“그때도 선진전자 걸로 해주셔야 하는 거 알죠?”
“그럼 네 이름으로 구입해 줄게.”
“에이. 이럴 때 술 한 잔을 마셔야 하는데 마시지도 못하고······. 그러지 말고 소주 한 병 까시죠.”
“됐어. 너 오늘 올라가야 하잖아.”
“괜찮습니다. 저 여기서 자고 가도 됩니다.”
최강철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하는데 때마침 전화기가 울렸다.
“응?”
최강철이 슬쩍 휴대폰을 열어 확인했다. 여자 친구인 최지현이었다.
“응. 자기야. 여기? 평택. 아, 소대장님하고 밥 먹고 있지. 술? 무슨 술이야. 안 마셔. 아, 참······.”
최강철은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소대장님 전화 좀······.”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받았다.
“네, 지현 씨.”
-대표님. 죄송해요.
“아닙니다.”
-정말 강철 씨하고 술 안 마셔요?
“어제 저도 소희 씨랑 술 마신 것도 있고 해서 오늘은 술 안마시기로 했어요.”
-어후, 다행이다.
“왜요? 강철이랑 무슨 약속이라도 했어요?”
-강철씨 내일 저랑 미팅 가기로 했는데 술 마시면 안 돼요.
“아. 그래요. 걱정 마세요. 술은 쳐다도 못 보게 하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할게요.
“그래요. 다시 강철이 바꿔줘요?”
-아뇨. 됐어요. 나중에 자기가 전화하겠죠.
“알겠어요. 들어가요.”
-네. 대표님.
그렇게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다시 최강철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뭐야, 너? 완전 꽉 잡혀 사는 거야?”
“소대장님이야말로 소희 누나하고 어제 술 한잔했다고 술 못 마시는 거예요?”
“됐다. 그냥 고기나 먹자.”
그렇게 잘 구워진 삼겹살에 밥을 얹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된장찌개로 입가심을 하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참. 소대장님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까?”
최강철이 밥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오상진은 살짝 굳어진 얼굴이 되었다.
“무슨 일? 그게 말이다. 아니다. 부대 얘기를 너에게 해서 뭐하냐.”
“와, 소대장님 서운하네.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에요? 전우잖아요.”
“야, 인마. 너는 병사고 나는 장교였는데 뭔 전우라고······.”
“그래도 같이 한솥밥 먹던 사이 아닙니까. 얘기 좀 해보세요. 혹시 알아요? 내가 뭔가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줄지.”
오상진은 혹시나 해서 얘기를 해줬다. 최강철은 삼겹살을 오물거리며 그 얘기를 듣었다. 한참 듣던 최강철이 한마디 툭 던졌다.
“간단한 것 같은데요.”
“뭐가?”
“증거가 없다고 했다면서요. 그럼 증거를 가져다주면 되죠.”
“야! 그게 말처럼 쉽냐!”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이건 좀 말이 안 됩니다.”
“말이 안 된다니 뭐가?”
“아니, 진술증거만으로 가해자가 됐잖아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비슷한 일 뭔데?”
“여자 대리가 있었는데 그 여자 대리가 이번 진급 심사에서 과장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물을 먹었어요.”
“물을?”
“원래부터 일은 참 잘했어요. 그런데 라이벌이 좀 셌어요. 그래서 잘하면 올라갈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안 된 거죠.”
“그래서?”
“부장님이 다음번에 기회가 또 있을 거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나 봐요.”
“그랬는데?”
“그 부장님이 새로 과장으로 임명된 그 과장이랑 좀 친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렇잖아요. 여자 입장에서는 둘이 작당을 하고 자기 엿 먹인 것이라 생각을 하겠죠..”
“그래서 뭐 어떻게 됐는데. 여기까지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이어지는 얘기가 가관이었다.
“그 과장 승진 축하한다고 회식을 했는데······. 화장실로 가는 통로가 좁았나 봐요. 어쨌든 부장님이 화장실로 가는데 그 여자 대리랑 슬쩍 스쳤나 봐요. 뭐, 부장님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여자 대리 말로는 부장님이 팔로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고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