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5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02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51)
“정리하자면 유선영 하사를 여자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네.”
“무슨 여자로 봅니까.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유선영 하사랑 같이 온 여자 부사관이 있습니다.”
“여자 부사관?”
“네. 혹시 못 보셨습니까?”
“아아아······. 저기 뭐냐. 행정실에 예쁘장하게 생긴 그 부사관?”
“네.”
“확실히 아름답긴 하더라.”
“그러니까 말입니다. 솔직히 같이 왔는데 시선이 그쪽으로 가지 유 하사에게 가겠습니까? 막말로 박 중위님은 둘 중에 누구한테 더 호감이 가겠습니까?”
“나야 뭐······ 그 친구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열이면 열! 전부 그 친구에게 갈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그러겠습니까. 솔직히 저는 그 부사관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제 처지가 있고, 제가 좀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보니 그런 티도 못 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무슨 제가 유 하사에게 다른 마음을 품겠습니까.”
“으음. 확실히 자네는 정황상 유 하사에게 좋은 마음을 품을 수가 없겠어. 뭐 안 좋은 마음을 품었으면 품었지.”
“네.”
“그러면 말이야. 진술서는 봤는데 가는 길에 유 하사는 어떻게 태워주게 된 거야?”
“그냥 바람도 쐴 겸 잠깐 부대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가는 차였습니다. 그런데 황 하사가 유 하사를 부축하고 가는 겁니다.”
“그래? 그래서 유 하사가 걱정돼서 태웠던 거야?”
“그게 아닙니다.”
“그러면?”
“황 하사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아하, 유 하사는 핑계고 황 하사와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거지.”
박태진 중위가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윤태민 소위가 대충 상황을 짜 맞췄는데 충분히 납득이 되는 상황처럼 만들어졌다.
그 옆에 있던 최영도 헌병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성 군기 위반 상황에서는 당사자들끼리 서로 유리한 말만 하다 보니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정황이 필요한 것이고 보통 이런 성 군기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오랫동안 염두에 뒀다가 실행해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주변 탐문을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드러나기는 했다.
하지만 윤태민 소위 같은 경우는 중대에서 거의 왕따나 다름이 없었고 여러모로 부사관을 위협해서 성추행할 그럴 입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근신하고 있을 상황이었다.
게다가 유선영 하사가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다면 모를까. 오히려 윤태민 소위의 사정을 알고 건방지게 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윤태민 소위가 유선영 하사를 성추행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황하나 하사에게 관심이 있는 윤태민 소위의 말을 듣고 보니 퍼즐이 다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황하나 하사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차를 세웠던 거네.”
“네.”
“그럼 왜 유 하사를 차에 태웠나.”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까. 황 하사가 유 하사를 부축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거기다 대놓고 제가 유 하사를 내버려 두고 황 하사를 차에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하긴 그건 그렇지. 그래서 자네가 직접 유 하사를 태웠나?”
“아닙니다. 황 하사에게 물어보십시오. 황 하사가 직접 유 하사를 조수석에 태웠습니다.”
“그래? 자네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네.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오오······. 그래?”
“네.”
하긴 진술서에 그런 말들은 없었다. 박태진 중위는 여기에서도 윤태민 소위의 말에 신빙성이 더 느껴졌다. 윤태민 소위가 유선영 하사를 차에 태운 것이 아니라 황하나 하사가 차에 태운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유 하사와 단둘이 있게 된 거야?”
“제가 황 하사와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황 하사가 유 하사 때문에 제대로 회식을 마치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 참석한다고 가버렸습니다.”
“하이고, 좀 황당했겠네.”
“네. 그 와중에 유 하사는 조수석에서 자고 있어서 제가 좀 황당했습니다.”
“그래? 그럼 말이야. 저건 뭐야. 유 하사는 단추가 풀렸다고 하던데.”
“아, 그거 말입니까? 제 기억에는 유 하사가 좀 답답했던지 가슴 쪽을 움켜쥐다가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자네가 한 것이 아니라 유 하사가 풀었단 말이지.”
“네.”
“좋아. 그런데 유 하사 말로는 자네가 실수를 했네. 어쩌네 했다고 하던데 말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건 또 얘기를 하자면 복잡한데 말입니다. 유 하사가 자꾸 절 무시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홧김에 고백을 하기라도 했나?”
“네, 뭐 비슷합니다.”
“뭐? 정말?”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전출 가기 전까지 유 하사와 잘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유 하사에게 비굴하게 앓는 소리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냥 나는 좋게 말했습니다. 유 하사가 마음에 드니까, 잘 지내고 싶다.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렇게 말했는데 유 하사가 오해를 한 것이네. 자네가 마친 사귀자고 추근댄 것처럼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그때그때 맞춰서 말을 막 지어 짜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박태진 중위는 윤태민 소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줬다.
유선영 하사가 진술하는 과정에서는 허점들이 많았는데 그런 허점들을 윤태민 소위의 말이 정확하게 퍼즐처럼 맞아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윤태민 소위의 말에 신뢰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뭐야? 유 하사가 왜 그런 거 같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추를 가지고 성추행을 했느니 안 했느니 그랬는데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최영도 헌병과장이 끼어들었다.
“조사 중에 미안한데 윤 소위 내가 하나만 물어보지.”
“네.”
“자네는 유선영 하사 몸에 털끝 하나도 손 안 댔어?”
“어, 그게······.”
윤태민 소위의 표정을 바로 확인한 최영도 헌병과장. 그는 바로 눈치를 챘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충동적으로 스킨십이 발생한 것 같긴 했다. 이 와중에 윤태민 소위가 인정을 해버리면 일이 복잡해져 버렸다. 그래서 최영도 헌병과장이 입을 열었다.
“혹시 안전벨트를 매어 주려고 했다가 슬쩍 몸에 닿았다거나 하지 않았어?”
그 말에 윤태민 소위의 눈이 번쩍 떠졌다.
“네. 맞습니다. 이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안전벨트를 매어 주려고 했는데 유 하사가 깨어나서 잠시 얼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대놓고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호. 그래서 아까 그런 말을 했던 것이야. 겸사겸사 호감이 있다는 그런 말을 말이야.”
“네네. 그때 유 하사가 계속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해를 사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유 하사도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을 때는 살짝 마음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
“네. 토할 것 같아서 중간에 내려서 등을 두드려주고 그랬는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시 차를 타고 나서 제가 챙겨주고 그러니 호감을 가지고 그랬습니다.”
“갑자기 그랬던 유 하사가 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성추행을 했느니 그랬단 말이지.”
“네.”
“자네 생각에는 왜 그랬던 것 같아.”
“제가 만만해서 그랬던 것도 있고, 처음에는 좋아했다가 제가 전출을 가야 해서 그것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죠.”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은 그걸 빌미로 자네에게 뭔가를 얻어내려고 했다거나?”
“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흐흠······. 알겠어. 확실히 자네가 억울한 면이 많겠어.”
그 말에 윤태민 소위는 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윤태민 소위를 보며 최영도 헌병과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최영도 헌병과장은 윤태민 소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가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황 근거상 윤태민 소위를 억울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게다가 윤태민 소위가 억울해야 이 사건이 잘 덮이고, 그래야 동기인 홍민우 작전과장이 덜 골치 아파진다.
“으음. 그래 이 일은 쉽게 쉽게 풀리겠어. 어차피 증거도 없고 하니까.”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박태진 중위를 봤다. 박태진 중위도 생각보다 조사가 잘 풀렸다는 사실에 씨익 웃었다.
그리고 윤태민 소위의 조사가 끝이 나고 최영도 헌병과장이 오상진이 있는 중대장실로 갔다.
똑똑!
문을 두드린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리에 있던 오상진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는 잘 끝나셨습니까?”
“어어, 그래.”
최영도 헌병과장이 자리로 와서 앉았다. 원래 오상진이 상석에 앉아야 하지만 예의상 맞은편에 자리했다. 그 모습을 힐끔 보고는 최영도 헌병과장이 피식 웃었다.
“참. 내가 윤 소위랑 얘기를 해봤는데.”
“네네.”
“이거 뭐 성 군기 위반으로 조사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아.”
“네? 애매한 부분이······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일단 유선영 하사의 진술에 신빙성이 많이 떨어져. 스스로도 만취한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뭐 그렇습니다만······.”
“자네도 술을 먹어서 알겠지만 보통 만취한 상태에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텐데 말이지. 뭐가 미묘하게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의심스럽고. 그리고 4중대장이 알진 모르겠지만 유 하사가 윤태민 소위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고.”
“아, 예에······.”
“그래서 유 하사가 윤 소위에게 선을 그었던 모양이야. 윤 소위 입장에서는 유 하사가 밉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추행을 했다는 것이 너무 말이 되지 않잖아.”
그런 입장에서는 솔직히 오상진도 할 말이 없었다. 둘의 입장이 어떤지 정확하게 100%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헌병대 조사과정에서 유선영 하사가 윤태민 소위가 다른 부대로 전출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와 적당히 거리를 뒀다면 호감보다는 반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건 당일에는······.”
오상진을 말을 하려는데 최영도 헌병과장이 바로 말을 자르며 자신이 얘기했다.
“그 사건 당일에는 말이야. 그 상황도 좀 웃겨!”
“네?”
“윤태민 소위가 황하나 하사라고 있지?”
“네. 있습니다.”
“그 황 하사에게 관심이 있었데. 보니까 예쁘더만, 부사관 하기에 아까운 외모고.”
“······네.”
“황 하사가 유 하사를 부축하고 가고 있는데 그 때문에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황 하사가 유 하사만 태우고 다시 회식하는 곳에 돌아갔다고 하더군.”
“아, 네에······. 그랬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오상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부분도 윤태민 소위가 자신 있게 말을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유 하사 진술서에도 황 하사가 윤태민 소위의 차에 태웠다는 얘기는 없잖아.”
“네······.”
“뭐 좀 있다가 황 하사에게 물어보겠지만 아마 그 얘기는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그렇게 관사로 데려다주는데 안전벨트를 매야 할 것 같아서 도와주는 과정에서 살짝 몸이 닿았던 것 같기는 했다더군. 그런데 그걸 가지고 내 참 성추행이니 뭐니······. 군대에서 이게 뭐냐고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