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5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201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50)
“에헤이. 울지 말라니까.”
박태진 중위는 괜히 위하는 척 옆에 있던 휴지를 건넸다.
“괜찮습니다.”
“닦아요. 이미 흐르고 있잖아요.”
박태진 중위는 억지로 휴지를 유선영 하사에게 쥐여줬다. 유선영 하사도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며 휴지로 눈을 비볐다.
“울지 말고. 우리 마저 조사를 합시다. 조사 진행해도 되죠?”
“네.”
“그래요. 좋아요. 유 하사가 줬다는 진술서요. 사본을 받아서 읽어봤어요. 읽어봤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유 하사의 말에 신빙성이 있어요. 그런데 하나가 빠졌어요.”
“하나가 말입니까?”
“그래요. 윤태민 소위가 유선영 하사를 추행했다는 증거!”
“······?”
“유 하사 말로는 그런 것 같은데 정확하게 증거가 없으니까······. 그리고 유 하사가 여기에 써 놨잖아요. ‘잠깐 취기가 올라서 누워 있었는데 누군가 가슴을 만진 느낌이 있었다.’라고 말이에요. 그렇죠?”
유선영 하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게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느낀 거잖아요. 느낌만 있다는 거. 솔직히 술을 먹고 온몸에 취기가 돈 상태에서 그 감각이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요? 내 주변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100% 인지할 수 있냐는 말이에요. 술이 잔뜩 취한 상태에서 말이죠.”
박태진 중위의 말에 유선영 하사가 똑바로 노려봤다.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으로 헌병대가 조사하러 오면 자신의 진술에 대해서 믿어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네 말을 어떻게 믿니?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영도 헌병과장이 입을 열었다.
“야! 박 중위. 너무 몰아붙인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해서 저희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저희가 신도 아니고 말입니다. 만약에 조사를 잘못해서 뒤집어지면 저희 다 모가지 아닙니까?”
“에이, 또 무슨 얘기를 그렇게 살벌하게 하냐. 너 좀 쉬어라!”
최영도 헌병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태진 중위와 자리를 바꿨다. 이미 박태진 중위가 유선영 하사를 엄청 두드려 놨다.
“유 하사. 이해하라고. 헌병대 조사가 원래 이래. 우리는 감정 같은 거 배제하고 분위기도 험악하게 갈 수밖에 없어. 우리에게 온 사건을 웃고 떠들며 조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 이해하죠?”
“······네.”
“그러니까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요. 알아서 당사자들끼리 잘 풀지. 거참 헌병대 조사가 얼마나 힘든 줄도 모르고.”
최영도 헌병과장이 푸념하듯이 말을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말해서 유 하사가 100% 피해자라고 볼 수 없어요.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그러니 내가 시간을 줄게요. 시간을 줄 테니까 가능하면 일을 키우지 말고 윤태민 소위랑 잘 풀어봐요.”
그렇게 유선영 하사의 첫 조사가 끝이 났다. 조사가 끝난 다음에 행정반에 들어온 유선영 하사가 책상에 엎드린 채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윤지 3소대장이 달래고, 황하나 하사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윤태민 소위는 그 자리가 불편한지 슬쩍 행정실을 나가버렸다. 김진수 1소대장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고 김진수 1소대장이 들어갔다.
“중대장님.”
“그래. 1소대장 왜?”
“조사가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유 하사는 어때?”
“지금 울고 난리가 났습니다.”
오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어떻게 조사를 했기에······. 유 하사 좀 진정되면 내 방으로 데려와.”
“알겠습니다.”
“올 때는 자네 말고 3소대장하고 같이 오라고 해.”
“네, 중대장님.”
김진수 1소대장이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오상진이 말했다.
“1소대장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여자 하사 아니야. 달래고 해야 하는데 남자인 1소대장보다는 3소대장이 낫잖아.”
“네. 이해합니다.”
“그래. 나가봐.”
김진수 1소대장이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오상진이 인상을 썼다.
“하아, 진짜 불안불안했는데······.”
그로부터 30여 분이 흐른 후 박윤지 3소대장이 유선영 하사를 데리고 중대장실로 왔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가 오상진을 보자 또다시 펑펑 눈물을 흘렸다.
“흐흑, 중대장님······.”
그런 유선영 하사를 보며 오상진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유선영 하사가 오상진의 위로를 받던 그 시각. 윤태민 소위가 상담실로 불려갔다.
“윤 소위. 어서 와. 앉아.”
윤태민 소위가 긴장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박태진 중위가 말했다.
“그럴 것 없어.”
박태진 중위가 윤태민 소위를 지나가며 어깨를 툭 쳤다.
“뭘 그렇게 긴장해. 그럴 것 없어.”
“예?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아니지. 자랑스러운 육사 후배가 설마하니 정말로 막 그런 거 아니지?”
박태진 중위의 말에 윤태민 소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잠깐의 혹한의 마음에 유선영 하사의 가슴을 만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내심 걱정도 했다. 헌병대를 어떻게 조사가 이루어질지 말이다.
그런데 박태진 중위의 표정을 보아하니 자신에게 썩 불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옆에 있는 최영도 헌병과장도 한마디 했다.
“박 중위. 윤 소위랑 좀 알아?”
“제 육사 후배입니다.”
“그래? 육사 다닐 때 좀 친했어?”
“에이. 후배가 어디 한두 명도 아니고 말입니다. 어떻게 친하게 지냅니까. 그래도 같은 육사 출신 아닙니까. 저희가 육사에서 제대로 된 장교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안 그래, 윤 소위?”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나는 윤 소위를 선입견 없이 대할 거야. 앞서 유선영 하사를 조사하기는 했지만 미심쩍은 점도 많고······. 난 윤 소위가 좀 억울한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래는 유선영 하사가 고발을 하고 윤태민 소위가 전례가 좀 화려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마치 면죄부로 주듯이 조사를 시작하면 안 되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듯 같은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하지만 박태진 중위는 최영도 헌병과장으로부터 이 일을 최대한 덮으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최영도 헌병과장도 박태진 중위가 육사 출신이라고 윤태민 소위를 싸고도는 건 그냥 못 본 척했다. 실제 최영도 헌병과장 역시도 육사 출신이다. 육사 출신끼리는 어느 정도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 정도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이제 조사를 해볼까.”
“네. 말씀하십시오.”
“별거 아니고 유선영 하사에 대해서 얘기해 봐.”
“유 하사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래! 내가 유 하사에게 반대로 물어봤거든. 그런데 윤 소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더라.”
“그렇습니까.”
윤태민 소위는 대답을 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유선영 하사와 친하지도 않다. 그저 자신을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한 번 벼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가 아마도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단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으니······.’
윤태민 소위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유 하사랑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유 하사가 그랬습니다. 처음에 우리 2소대 부소대장으로 부임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따로 불러서 어떤 소대 관리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가 제 조언을 띠껍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띠꺼워? 자대배치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하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제 생각이긴 한데······. 지난 실수가 있어서 올해가 끝나는 대로 다른 부대로 전출 가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에 좀 만만하게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유 하사가 그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거지?”
“네. 제 느낌에는 그랬습니다.”
박태진 중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까 유선영 하사와 들었던 얘기와 일정 부분 일치했다. 물론 유선영 하사가 대놓고 윤태민 소위를 무시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선영 하사의 입장이었다. 듣는 상대방인 윤태민 소위는 무시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유선영 하사는 윤태민 소위가 다른 부대로 전출 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윤태민 소위에게 굳이 잘 보일 필요가 없었고, 그런 유선영 하사의 태도를 윤태민 소위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정리가 될 수 있었다. 퍼즐을 짜 맞추듯이 말이다.
“그래. 그렇고! 또 유선영 하사랑 다른 일은 없었어?”
“말씀을 드려야 할지······.”
“뭐든 말해봐. 판단은 내가 할 테니까.”
“저어, 부대 회식 자리에서 말입니다. 거기서 중대장님이 술 한 잔씩 따라주고 서로서로 주고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네가 따라 주는 술을 유 하사가 거부했어?”
“아뇨. 사실 제가 술 한 잔 따라 줄 만큼 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살갑게 굴고 그래야지 저도 나름의 성의를 표시하고 그러죠. 처음에 오자마자 선부터 그었는데 제가 무슨 수로 예뻐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유 하사가 1소대장하고 4소대장에게는 술을 따라주는데 저한테만 안 따라주는 겁니다.”
“어이구, 대놓고 먹인다는 거네.”
“그래서 제가 화가 나서 왜 나한테는 안 따라 주냐며 화를 좀 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좀 따라 달라며 술잔을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박태진 중위는 마치 재미있는 영화를 보든 듯 흥미로운 듯 말했다.
“그랬더니 중대장님께서 오해를 하셔서······.”
“오해를 하셔서? 자네에게 뭐라고 했나?”
“네. 제가 뭐······ 위력을 행사하는 그런 놈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고 중대장님도 참······. 회식이라는 것이 친목을 다지는 자리가 아니야? 먹는 것 가지고 뭐라고 그러면 군 생활은 어떻게 한다는 거야. 도대체!”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때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유선영 하사는 어땠는데?”
“기고만장했죠. 거의 저를 본체만체했고 말입니다.”
“그럼 자네도 유 하사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았겠네.”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말입니다.”
“그래도 같은 소대를 관리하는 입장인데. 그때는 어떻게 했나.”
“그냥 행정실에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업무 지시만 했습니다. 그리고 유 하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잘하는 척을 했습니다. 저한테 그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가면을 썼다 이거군.”
“네.”
“그런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이 있나?”
“아닙니다. 지금 이곳 중대에서는 제 편이 하나도 없는데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그런 얘기를 해봤자 누가 들어주겠습니까. 다들 뒤에서 비웃을 텐데 말입니다.”
“자네가 참 군 생활이 힘들겠어.”
박태진 중위의 말에 윤태민 소위가 순간 울컥했다.
물론 윤태민 소위는 자신이 부대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군 생활 편안하게 받고 외할아버지 뒷배를 믿고 까불다가 4중대로 내려왔고, 4중대에서도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겠다고 들이대다가 새로 온 오상진에게 탈탈 털렸다.
그런데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었다. 때문에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온 부사관에게까지 무시당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