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4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98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47)
“저기! 저기입니다.”
“어디?”
“저기 근처 말입니다. 우체통 있는 곳 말입니다.”
“저기······.”
오상진이 우체통 근처로 가서 차를 세웠다.
“여기란 말이지.”
“네. 제가 우체통을 붙잡고 토를 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살짝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래? 그럼 여기서 얼마나 되려나?”
“그렇게 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대략적인 곳을 향해 갔다. 그러면서 주변을 쭈욱 훑었다. 저만치 고급 스포츠카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오, 이 동네에 저런 차도 있고······.”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아. 저 차 말입니까? 세워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오래돼?”
“네. 제가 종종 이곳을 지나다닐 때도 항상 저 자리에 차를 주차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렇군.”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포츠카를 바라봤다. 차창들은 짙은 선탠으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블랙박스가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나중에 한번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 후 차를 몰고 관사로 갔다. 관사 앞에 도착을 하고 두 사람이 내렸다. 오상진도 따라 내린 후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유 하사.”
“네.”
“빠르면 내일부터 조사가 들어갈지도 몰라.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그래. 쉬어.”
“들어가십시오.”
오상진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전화가 울렸다. 한소희였다.
“네. 소희 씨.”
-다 끝났어요?
“관사에 데려다주고 지금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상진 씨는 술 마셨어요?
“저는 운전하느라 술을 안 마셨죠.”
-그렇구나. 역시 내 남자 멋지다. 그럼 올 때요, 맥주 두 캔 사 와요.
“맥주를 사 와요? 어! 소희 씨 집에 와 있어요?”
-짜잔! 서프라이즈! 호호호.
오상진이 실실 웃었다.
“뭐예요. 설마 나 걱정되어서 온 거예요?”
-에이. 제가 상진 씨 걱정을 왜 해요. 오늘 나 오는 날이었는데. 설마 까 먹은 거예요?
“그래요? 요새 제가 부대에 하도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나 봐요. 깜빡깜빡하네. 미안해요.”
-아니에요. 저도 오늘이나 내일쯤 간다고 말을 했어요.
“아. 그랬구나. 그럼 안주도 사 갈까요?”
-안주는 내가 매운탕 끓여놨는데.
“매운탕? 그럼 맥주 말고 소주를 사 가야죠.”
-저는 그냥 맥주 마실래요.
“오케이. 제가 금방 사 갈게요.”
-조심해서 와요.
전화를 끊은 오상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무튼 요새 너무 예쁜 짓만 골라서 한다 말이야.”
오상진이 기분 좋게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딩동!
벨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소희가 따뜻한 미소로 오상진을 맞이했다.
“어서 와요.”
집 안으로 들어가서 온통 매운탕 냄새로 코끝을 자극시켰다.
“어후, 매운탕 냄새 죽이는데요.”
“그렇죠. 우리 집에 자주 오시는 이모님의 비법을 좀 빌렸죠.”
“그래요. 이야 기대해도 되겠는데요.”
오상진이 잔뜩 눈빛을 반짝이자 한소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칫! 저도 매운탕 잘 끓이거든요. 좀 더 맛있게 해주려고 이모님의 레시피를 빌린 거거든요.”
“에이. 레시피가 뭐가 중요해요. 끓인 사람이 중요하죠.”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다가가 슬쩍 허리를 감싸 안았다. 한소희가 씨익 웃으며 오상진에게서 벗어났다.
“얼른 씻고 나와요.”
“알았어요.”
오상진이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침대 위에 갈아입을 옷이 놓여 있었다.
“진짜······. 빨리 결혼을 하든가 해야지.”
오상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 길로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와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는 이미 한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상진 씨 일단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은 그녀들이 술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주를 집어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청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름진 안주만 집어 먹다가 칼칼한 매운탕 한 숟갈을 입에 넣더니 갑자기 허기가 들었다.
“와, 맛있다.”
“그래요. 많이 먹어요.”
오상진은 앉은 그 자리에서 밥 한공기를 뚝딱 비웠다.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 한소희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남자 하나는 잘 물었다니까.”
“아닌데.”
“아니에요?”
“내가 여자를 잘 만난 건데요.”
“칫! 됐어요.”
오상진은 자신을 배를 툭툭 두드렸다.
“아, 잘 먹었다.”
한소희가 피식 웃으며 치우려고 했다. 오상진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놔둬요. 내가 치울게요.”
“괜찮아요. 내가 치울 테니까. 식탁만 닦아줘요.”
“식탁?”
“우리도 맥주 한잔해야죠. 상진 씨 술 안 마셨다면서요.”
“그렇죠. 부사관들 술마시는 모습 지켜보면서 술 마시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요.”
“칫. 그럼 마시지 그랬어요.”
“어떻게 마셔요. 두 사람 관사에 데려다줘야 하는데.”
“뭐예요? 중대장님이 기사 노릇 하러 따라간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중대장이 되어서 같이 술을 마십니까. 나라도 정신 멀쩡히 차리고 있어야죠.”
“상진 씨 진짜······. 여자들에게 정말 잘한다니까.”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회귀 전 오상진은 이렇듯 군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도 그다지 인기도 없었고 말이다. 그저 나름 눈치껏 진급을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못 본 척하고 넘어갔던 것이 많았다. 그 결과 제법 빠르게 진급을 하게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그때는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심이 조금 들었다.
잠시 후 한소희가 맥주 두 병과 안주를 챙겨서 가지고 왔다.
“이건 또 언제 준비했어요?”
“이건 슈퍼에 있던 것을 가져온 건데요. 우리 마셔요.”
한소희가 맥주 캔을 따서 들었다. 오상진도 환하게 웃으며 맥주 캔을 들었다.
“짠!”
맥주 캔이 부딪치고 한소희가 시원하게 마셨다. 오상진도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칼칼한 매운탕에 배를 채우고,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하니 이것이 행복이고, 천국인가 싶었다.
“아, 좋다.”
“좋아요?”
“네.”
“그럼 더 자주 와야겠다.”
“나야 좋은데······. 안 피곤하겠어요?”
“전혀요. 이제 회사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요. 제가 할 일이 많이 줄어서요.”
한소희의 말은 회사가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한소희는 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다. 대표로서 모든 업무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업무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맡길 것은 맡기고, 챙길 것은 챙겼다. 게다가 결재서류 역시도 가장 중요한 것을 빼고는 이사 라인에서 정리하는 걸로 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 관리는 최지현 이사와 김승호 이사에게 맡겼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회사에서 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물었다.
“참! 지난번에 하기로 한 계약은 어떻게 되었어요?”
“그거요? 상진 씨 말대로 최성규 씨와 임선주 씨, 강수정 씨 세 사람하고는 계약했고요. 오민정 씨와 홍민태 씨의 계약은 정중하게 고사했어요.”
지난번에 신소라 추천이라고 해서 다섯 명의 배우를 소개시켜 줬다. 그중에서 오민정과 홍민태가 과거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서 한소희에게 조언을 해줬었다. 다행히 한소희가 자신의 말을 따라준 모양이었다.
“신소라씨가 서운해하지 않아요?”
“아니요. 오히려 놀란 눈치던데요.”
“놀라요? 왜요?”
“정확하게 말은 안 하는데요. 내 느낌에 신소라 씨가 우리를 좀 테스트한 것 같은?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테스트요?”
“네. 오민정 씨와 홍민태 씨는 계약 안 하겠다고 하니까. 살짝 놀라더니 더 물어보지도 않던데요. 아니, 그 두 사람을 왜 계약 안 하냐고 물어봤을 법도 한데 딱히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냥 소희 씨가 대표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내 촉이 그러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안목을 테스트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소희 씨 기분 나빠요?”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신소라 씨잖아요. 그냥 배우도 아니고 대한민국 톱스타인데 그 정도는 신소라 씨도 나름 우리와 일을 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본 것이겠죠. 그 정도면 이해하고 넘어가려고요.”
“잘했어요. 아무래도 소희 씨가 연예기획사 대표지만 간판 배우의 영향력이 크게 좌우하니까. 소희 씨가 당분간은 신소라 씨하고 잘 지내요.”
“나도 그럴 생각이에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오디션을 한번 보려고요.”
“오우, 좋은 생각이네요. 기획사도 큰데 배우 몇 명으로 되겠어요? 연습생들도 몇 명 뽑고 그래요.”
한소희가 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상진 씨가 와서 같이 오디션 봐주면 안 될까요?”
“제가요? 내가 봐서 뭘 아나요.”
“그래도 상진 씨가 와서 봐줘요. 강철 씨는 와서 도와준다고 하던데요.”
“강철이가요? 이 자식은 낄 데 안 낄 데 구분을 못 하네.”
“왜요. 그래도 강철 씨가 선진그룹 기획실장으로 참여해 주는 건데요.”
“으음. 그렇다면 뭐······. 아, 그럼 둘째 형님도 참여하라고 하시죠.”
“형님? 둘째 오빠를요?”
“왜요. 소중픽처스의 대표신데요.”
“으음. 우리 오빠 지난번처럼 배우에게 꽂혀서 쫓아다니는 거 아닌지 몰라요.”
“에이, 그러지 않게 소희 씨가 잘 뭐라고 해야죠. 그리고 형님이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상진 씨는 진짜 우리 오빠에게 너무 물러서 탈이에요. 우리 오빠는요. 성격이 저래서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중만 성격에 똑부러지는 여자를 만나야겠지만 그가 그런 여자를 싫어한다. 한중만 주변에 있는 여자가 엄마랑 한소희인데 두 사람 다 성격이 센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아무튼 알았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한 캔 두 캔이 들어가고 분위기도 무르익자 손을 꼭 잡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삐빅거리는 알람 소리에 오상진 품에서 잠들었던 한소희가 눈을 떴다.
“상진 씨. 아침이에요. 일어나요.”
“으음······. 벌써 아침이에요?”
“네.”
오상진은 눈을 부비며 옆 탁자에 있던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6시 30분이었다. 알람을 그 시각에 맞춰둔 것이었다. 한소희가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묶었다.
“일어나서 씻고 있어요. 내가 북엇국 끓여줄게요.”
“아니에요. 그냥 대충 먹어요. 콘프로스트 먹어도 돼요.”
“그래도 어제 술 좀 마셨잖아요. 속은 풀어야죠.”
물론 오상진이 맥주 몇 캔 정도로 취할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밤새 사랑을 나누느라 술이 다 깨버렸다. 하지만 저렇듯 자신을 위해서 아침부터 일어나는 한소희를 보면서 말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 진짜······ 행복하다.’
오상진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오상진은 칫솔질을 하며 거울을 바라봤다.
“으음······. 이거 강제로 밀어붙여야 하나?”
원래 약속대로 한소희가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 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자꾸만 조바심이 생겼다.
“일단 결혼을 최대한 빨리 하는 방향으로 잡아보자.”
오상진이 히죽 웃으며 입을 헹궜다.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나왔는데 휴대폰이 지잉지잉 하고 울렸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