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4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96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45)
“유 하사. 주임원사실 다녀왔다면서.”
“네.”
“주임원사가 뭐라고 그래?”
“그것이······.”
유선영 하사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유선영 하사에게 오상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중대장도 대충 뭐라고 했을지 알고 있으니까 편안하게 말해봐. 미리 말을 해두지만 중대장은 유 하사 편이야.”
오상진의 말에 유선영 하사가 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주임원사님이 장기복무해야 하지 않겠냐며 별것도 아닌 일 크게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임원사가 정말 그렇게 말을 했어?”
오상진이 어이없어 했다. 박윤지 3소대장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대대장님 이번에 육본 올라가셔야 한다면서······.”
“그래서! 대대장님 육본 올라가야 하니까 훼방을 놓지 말라 이거네. 괜히 일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고!”
“네. 거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와! 진짜······. 주임원사 해도 너무 하시네. 지난번에도 그냥 좋게 넘어갔는데······. 도대체 왜 저러시지.”
오상진은 방대철 주임원사의 행동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록 자신보다 계급은 낮지만 그래도 짬이 있는 분이라 존중을 해줬다. 그런데 이제 막 들어온 부사관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는 바꿔 말하면 신참 소대장의 일을 대대장이 대충 묻고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경험이 미숙한 군인들은 누굴 믿고 군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방대철 주임원사의 행동은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 하사는 뭐라고 했어?”
“일단 대답을 하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아마 헌병대 조사가 들어갈 거야.”
“헌병대 말입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아침에 대대 올라가서 작전과장님하고 얘기를 나눴어. 그러니 헌병대 조사가 진행될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 마. 무엇보다 유 하사는 헌병대 조사가 있을 때 시종일관 일관된 말을 해야 해. 중대장이 무슨 말 하는지 알지?”
“네.”
“유 하사도 알겠지만 자네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어. 2소대장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야. 이럴 때는 일관된 진술이 중요해. 조사를 받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해.”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뭔가 상황을 만들고 떠올리려고 하지 마. 오히려 그러다가 나중에 일이 잘못될 경우도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헌병대에서 조사가 나오면 중대장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해줄게. 그때 그 상황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소대장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헌병대도 알아야 하니까.”
“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그러고 있는데 유선영 하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유선영 하사가 당황하며 자신의 배를 가렸다.
“유 하사 식사를 못 했나?”
“네?”
“아이고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밥을 못 먹었나?”
“죄송합니다. 입맛이 없어서······.”
“하긴 무슨 밥이 제대로 넘어가겠나.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지.”
박윤지 3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그럼 제가 유 하사 따로 데리고 가서 밥을 먹이도록 하겠습니다.”
오상진은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이 기특했다.
‘예전에는 저러지도 않았는데······.’
그러다가 오상진이 바로 말했다.
“아니지. 그러지 말고 나랑 밥 먹지 그래. 어때, 유 하사.”
“네? 중대장님하고 말입니까?”
“아······. 나랑 둘이 먹는 것은 부담스럽나? 그럼 3소대장. 자네는 시간 괜찮나?”
“저는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이렇게 셋은 어때?”
“네. 전 좋습니다.”
“내가 중대장으로서 잘 챙기고 그래야 하는데 다 내 부덕의 소치인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 그렇다고 저녁 한 끼로 때운다는 말은 아니고. 이제라도 좀 더 우리 4중대 간부들에게 중대장으로서 챙길 테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아닙니다. 오히려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유 하사. 당당하게. 기죽지 말고.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중대장실을 나갔다. 오상진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상진 씨 지금 쉬는 시간이에요?
“일하는 시간에 잠깐 짬이 나서 전화했어요. 소희 씨는요?”
-아······. 저는요. 지금 외부업체랑 미팅 중이에요.
“일은 할 만해요.”
-어려워요. 솔직히 힘들고······. 그런데 재미있어요.
“재미있으면 됐어요.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요.”
-무슨 소리예요. 상진 씨가 날 믿고 맡겼는데 두고 봐야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로 만들 테니까요.
“아이고 그러다가 너무 바빠서 우리 소희 씨 얼굴도 못 보는 거 아니에요.”
-칫! 아무리 바빠도 상진 씨하고 데이트할 시간은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 얘기에 오상진이 피식 웃다가 말했다.
“아참. 오늘 3소대장하고 부사관 한 명하고 같이 밥 먹기로 했어요.”
-3소대장? 혹시 여자 소대장 아니에요?
“맞아요. 그리고 부사관도 새로 온 여자부사관이에요.”
-오, 그래서 여자 두 명이랑 밥 먹는 거예요?
한소희의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말고요. 나도 어지간해서는 사적으로 식사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럴 만한 일이 있어요.”
오상진은 유선영 하사의 일을 간략하게 얘기해 줬다. 그러자 한소희가 제 일처럼 화를 냈다.
-와! 진짜 어이가 없네. 군대에서는 아직도 그런 일이 있어요?
오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한민국 군대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회귀 전에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십수 년이 지나도 대한민국 군대는 계속 이 모양 이 꼴일 것이다.
하물며 언론을 통해서 대한민국 군대가 좋아지고 있다고 떠들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달라지려면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럴 때마다 오상진은 군인으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미안해요. 소희 씨.”
-상진 씨가 왜 미안해요. 상진 씨가 그러는 것도 아닌데······.
“내가 부하장교 관리를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아 마음이 좀 그래요. 게다가 내 부대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씁쓸하네요.”
-괜히 그런 소리 말고요. 아무튼 오늘 저녁 잘 챙겨줘요. 그래도 상진 씨가 지금 부대에서는 큰 어른이잖아요. 그렇죠.
“네.”
-나는 괜찮으니까. 맛있는 많이 사줘요. 술도 괜찮아요.
한소희가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주니 고마웠다.
“고마워요. 소희 씨 이해해 줘서······.”
-고맙긴요. 우리 사이에 별소리를 다 한다.
“그래도 항상 고마워요.”
-알겠어요. 어······. 저 또다시 미팅 들어가 봐야 해요.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그래요.”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퇴근 시간.
오상진은 행정실로 갔다.
“3소대장, 유 하사 준비됐어?”
“네. 유 하사 갑시다.”
“네.”
유선영 하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 준비를 하던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3소대장하고 어디 가십니까?”
“내가 3소대장하고 유 하사 밥 한 끼 사주기로 했어.”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하고도 내가 시간을 내서 따로 식사를 하면서 얘기도 나눌 생각이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1소대장.”
“아닙니다.”
오상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 준비 끝났으면 갑시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가려는데 황하나 하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중대장님.”
“그래 황 하사. 왜?”
“저······ 저도 같이 가면 안 됩니까?”
황하나 하사가 눈치를 봤을 때 4중대 여자 간부는 셋인데 둘이 가버리면 자신만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꼭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오상진도 그런 황하나 하사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만약에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니, 배려심이 없었다면 황 하사도 갑시다 하고 말을 했을 것이다.
오상진은 유선영 하사의 진술서에 따르면 황하나 하사가 부축을 해주다가 윤태민 2소대장의 차에 태웠다는 진술이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황하나 하사가 식사에 합류를 하면 유선영 하사가 많이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으음······. 황 하사.”
“네!”
“황 하사는 다음에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하지.”
“······아, 네에. 알겠습니다.”
황하나 하사가 살짝 서운하다는 듯이 물러났다. 오상진이 유선영 하사와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다시 말했다.
“이제 가지.”
“네!”
“네, 중대장님.”
그렇게 세 명이 행정실을 나갔다. 그러자 4소대 부소대장 하진균 하사가 황하나 하사에게 말했다.
“황 하사.”
“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중대장님께서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겠지. 그러지 말고 우리끼리 한잔하자. 정 하사는 어때?”
“나야 좋지!”
“황 하사 우리랑 같이 가.”
그러나 황하나 하사는 살짝 빈정이 상했다.
“아닙니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황하나 하사가 행정실을 나갔다. 그런 황하나 하사를 보면서 두 사람이 말했다.
“어후, 황 하사 삐졌나?”
“그러게. 황 하사도 살짝 눈치가 없는 편인가?”
“왜?”
“아니, 딱 봐도 중대장님께서 유 하사 걱정이 되어서 따로 챙겨 주시는 모양인데. 굳이 거기에 낄 필요가 있었나 싶어서.”
“아니, 여자 셋인데 자신만 빠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죠.”
“그래도 그렇지. 아니, 무슨 중대장님이 3소대장하고 유선영 하사에게 딴 맘이 있어서 맛있는 거 사주는 것도 아닐 테고.”
하진균 하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 그건 또 모르지 않나?”
정윤호 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이고. 몰라?”
“뭐가?”
“중대장님 여자 친구 장난 아니야.”
“중대장님 여자 친구가 있으셔?”
“그렇다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 중대장님이 계셨던 사단에 있었는데. 거기 사단에서도 중대장님 여자 친구는 장난 아니었데. 완전 연예인 뺨친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어쩐지 3소대장을 보고서도 적당히 거리 두시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했는데······. 여자 친구분이 계셨구나.”
“그러니까 괜히 어디 가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정윤호 하사의 말에 하진균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때 김진수 1소대장이 퇴근하려다가 고개를 돌렸다.
“참! 정 하사.”
“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으면 나랑 오늘 술 한잔해.”
“좋죠.”
정윤호 하사가 후다닥 김진수 1소대장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하진균 하사가 홍일동 4소대장을 봤다.
“4소대장님.”
“네?”
“저희도 술 한잔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 말입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도 술 한잔할까요?”
“좋죠.”
그렇게 일과를 마친 장교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