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4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94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43)
“네.”
방대철 주임원사는 여기서 자신을 어필했다. 자신이 유선영 하사를 엄청 잘 챙겨 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도 바보가 아닌 것이 처음 17연대 3대대로 오고 나서 사실 방대철 주임원사랑 인사를 나눴다.
그 당시 방대철 주임원사의 시선은 황하나 하사에게 향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딸같이 생각하니 마니 말을 하니 솔직히 웃겼다.
유선영 하사는 받은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대로 내려놨다. 그것을 본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물었다.
“왜? 믹스 커피는 안 마셔?”
“아닙니다.”
“그래도 주임원사가 직접 타온 성의가 있는데 좀 마셔.”
“네. 주임원사님.”
유선영 하사가 마지못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빤히 바라보던 방대철 주임원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야. 왜 이렇게 뻣뻣해. 아무리 그런 일이 있어도 그렇지. 내가 주임원사인데······. 아니면 내가 만만한 건가?’
솔직히 부사관들 중에서 방대철 주임원사를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4중대 김태호 상사도 방대철 주임원사 앞에서 꼼짝도 못 했다. 그만큼 방대철 주임원사는 17연대에 오래 있었고, 발도 넓고 아는 사람도 많고 영향력도 많았다.
그래서 방대철 주임원사가 부르면 대부분의 부사관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선영 하사는 든든한 뒷배라도 있는 것처럼 너무도 태연하게 굴었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행동했다.
‘뭐지? 진짜 누구에게 코칭이라도 받았나? 설마 4중대장이?’
그쪽으로 의심이 가니 방대철 주임원사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원래대로라면 질질 짜는 유선영 하사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을 것이다.
‘내가 너무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군대라는 조직이 원래 그렇다. 시끄러워져 봐야 여자만 피해 보고, 손해를 본다. 그러니 내가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잘 단도리 할 테니 이쯤에서 그냥 좋게 넘어가자.’
이런 식의 달래는 것이 나와야 하는데 유선영 하사가 저런 식으로 나오니 무슨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으음······. 다른 식으로 가야겠군.’
방대철 주임원사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그것은 약간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유 하사.”
“네.”
“내가 대충 얘기는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말해봐.”
“네?”
유선영 하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내가 주임원사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니야. 그래야 내가 대대장님께 얘기를 하지. 내가 아까 들어가서 대대장실에 들어가서 혼났어. 유 하사 때문에 말이야.”
“네에?”
“아니 대대장님께서 말이야. 유 하사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혹시 아냐고 물어봐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아니 무슨 보고를 받았어야지. 내가 말을 하지.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어서······. 내가 유 하사 때문에 대대에서 관심도 없는 그런 주임원사가 되어버렸어.”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다.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짬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자 유선영 하사가 살짝 긴장을 했다. 정말로 자신 때문에 방대철 주임원사가 대대장님께 혼이 났다면 군 생활하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니야. 아니야. 유 하사가 경향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하긴 유 하사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윤 소위가 잘못한 것이지. 그렇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또 유선영 하사를 어르면서 달랬다. 그러자 유선영 하사의 표정이 살짝 풀어줬다. 그것을 확인한 방대철 주임원사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빠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얘기를 풀어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
유선영 하사는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쭉 듣던 방대철 주임원사가 속으로 생각했다.
“응? 뭐야. 가슴 좀 만졌다고 그러는 거야? 난 또 진짜 덮치기라도 한 줄 알았네.”
현재 방대철 주임원사는 괜히 유선영 하사가 유난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신체적인 접촉이 있게 마련이다.
‘군대 자원입대한 사람이 이렇듯 유난을 떨다니. 쯧쯧, 이래 가지고 군 생활 하기 힘들겠는데.’
방대철 주임원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이고, 이래서 근본 없는 것들은 안 돼.’
방대철 주임원사는 황하나 하사를 떠올렸다. 황하나 하사의 외조부는 주임원사 출신이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저 군대가 좋아서 들어왔다고 말하고 다녔다. 거기다가 군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다른 장교나 부사관들이 황하나 하사를 예쁘다고 힐끔힐끔 바라봐도 그냥 웃으며 넘기고 그랬다. 그런 모습을 봤을 때 확실히 황하나 하사는 군대 체질이고 군대생활 잘할 것만 같았다.
반면 유선영 하사는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방대철 주임원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모든 시선이 황하나에게 쏠리니 유선영 하사가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군대에 여자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군인으로 들어왔는데 고작 그런 걸 가지고 서운한 모습을 내비치면 군 생활을 할 수 없다.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실력 있고 겉모습이 좋은 사람이 인기가 있기 마련인데 그걸 가지고 시기 질투를 하면 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는 어쩌면 황하나 하사에 대한 외모적인 컴플렉스에 대한 것 때문에 그날 일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 하사.”
“네.”
“유 하사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유 하사가 원하는 것이 뭔가?”
“네?”
“정확하게 유 하사가 원하는 것이 뭐냐 말이야.”
“원하는 것이라면은······.”
“아니 내가 들어봐도 윤 소위가 잘못을 한 것 같군.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이 일을 굳이 키울 일인가 싶어서 묻는 것이네.”
“주임원사님······.”
“아니! 잘못했고 안 했고 자체의 문제가 아니야. 자네도 알다시피 군대라는 조직은 아무래도 구설수에 민감하게 마련이야. 그리고 대대장님께서도 조만간 육본으로 영전하실 분이야.”
“아······. 네에······.”
“이미 다 얘기가 나왔는데 이런 풍기문란으로 말이 나와 버리면 대대장님 영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이런 일을 자네가 원하는 건가?”
“네? 그건······.”
유선영 하사가 당황스럽게 대답했다. 방대철 주임원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렇지? 유 하사도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지.”
“······네에.”
“그래! 내가 자네가 딸 같고 해서 하는 말인데. 군 생활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기 마련이야. 물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다 군인도 사람이고 또 남녀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
유선영 하사가 입을 꾹 다물고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입을 열었다.
“내 말은 밖에서도 남녀 사이에 그런 부적절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야. 꼭 군대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네.”
“그때마다 이렇듯 소란을 떨어버리고 일을 시끄럽게 처리해봐야 서로 좋을 것이 없어. 특히 유 하사에게는 더욱 그럴 거야.”
그런 말을 들은 유선영 하사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여기 오기 전 김태호 상사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그 양반 성격에 절대 좋은 얘기 하지 않을 거야. 보나 마나 대충 넘어가자고 할 거야. 거기다 대고 알겠다고 해 버리면 일이 복잡해져 버려. 그러니 어지간하면 얘기를 듣고 그냥 와버려. 알겠지!”
그 말을 들었기에 유선영 하사도 오면서 설마 주임원사님이신데 게다가 한참 어른이신데 그럴까 했지만 김태호 상사 말처럼 그래 버리니 기운이 쭉 빠졌다.
게다가 자신이 뭘 그리 잘못했나 싶으며 서러움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말이다.
그런 유선영 하사를 보던 방대철 주임원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이쯤에서 정리하자. 내가 유 소위를 불러서 따끔하게 말을 할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말이야. 주임원사인 날 믿고 이쯤에서 정리하자. 어때?”
방대철 주임원사가 유선영 하사를 바라봤다. 유선영 하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두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허,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래. 앞으로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 한 일도 겪을 수도 있는데······. 이런 일로 그렇게 울고 그러면 앞으로 군 생활 어떻게 할 거야. 자네 장기복무 안 할 거야?”
그 말에 유선영 하사가 애써 눈물을 참았다. 솔직히 방대철 주임원사 같은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이 창피해서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장기복무라는 말이 신경 쓰이겠지. 그래 너도 원하는 것은 뻔하잖아.’
방대철 주임원사가 다시 한번 달랬다.
“자네가 이번 한 번만 조용히 넘어가면 내가 대대장님께서 잘 말씀드려서 장기복무하는데 문제없도록 하겠네. 대충 이쯤에서 덮고 넘어가는 것이 어때?”
이렇게 얘기를 하니 유선영 하사는 답을 말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였다. 그런 유선영 하사를 보면서 방대철 주임원사는 답답했다.
‘거참 답답하네. 아니,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일을 키워봤자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것을······. 쯧쯧쯧 미련해도 이렇게 미련할 수가 없네.’
방대철 주임원사는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튼 내가 자네에게 할 말은 다했으니까. 이만 가 봐. 그리고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알았지?”
방대철 주임원사가 유선영 하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유선영 하사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그래. 그래. 가 보고······. 아무튼 이 일은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알았지?”
“······네.”
유선영 하사가 밖으로 나가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유난을 떤다. 유난을 떨어.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뽀뽀라도 했다간 국방부에 투서라도 넣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그리곤 윤태민 소위를 생각하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윤 소위 이 새끼는 진짜 군대를 왜 들어온 거야. 거지 같은 새끼······. 그리고 저런 애 하나 어쩌지 못해서는······. 어휴 남자 망신 다 시키고 있네.”
방대철 주임원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어쨌든 윤태민 이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방대철 주임원사는 윤태민 소위를 생각하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하마터면 윤태민 소위 때문에 대대장의 행보가 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일 윤태민 소위를 불러서 한마디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몰랐다. 이미 이 사건이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말이다.
유선영 하사가 울먹이며 다시 4중대로 돌아오던 그 시각 오상진은 행정실로 들어왔다.
“다들 수고가 많다.”
“어? 중대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상진은 바로 손을 들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