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4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93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42)
“아이고 귀도 밝아. 어떻게 알았어?”
홍민우 작전과장이 모르는 척 말했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씨익 웃었다.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여기저기 심어놓은 안테나가 어디 한두 개인가. 당연히 우리 사단 일인데 알아야지.”
“하아······.”
홍민우 작전과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영도 헌병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이 일은 내게 맡겨.”
“왜, 왜?”
홍민우 작전과장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자 최영도 헌병과장이 말했다.
“뭘 왜야. 걱정 마! 내가 오상진 그 녀석을 탈탈 털어버릴 테니까. 뼛속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야.”
“에헤이. 아니야. 그 녀석이 아니라고. 오상진이 문제였다면 내가 진즉에 말을 했지.”
“그럼? 뭐야? 뭐가 문제인데.”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오상진 말고 그 밑에.”
“그 밑에?”
“설마 윤태민?”
“그래. 자네도 들었지. 윤태민 사고 친 거.”
“들었지. 그 정신 빠진 녀석······. 부대에 사재 물건을 반입했다면서. 술까지 들여왔다던데.”
“맞아. 그런데 그거 말고도 이리저리 걸리는 것이 많아.”
최영도 헌병과장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헌병대에 이런저런 비리 사건이 들어온 것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그것들 중에서도 진짜도 있고, 음해하는 것도 있었는데, 윤태민 소위에 관한 것도 제법 많았다.
“그중에 절반 정도만 진실이라고 해도 윤태민 그 녀석 군복 못 입고 있지. 진즉에 불명예제대 받아야 해.”
그런데 지금껏 아무 이상 없이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건 외할아버지인 신범규 준장의 영향이 높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입을 열었다.
“윤태민 소위······. 집 안이 어떤 집안인지 알지?”
“알지. 신범규 준장이 외조부시잖아.”
“그래.”
“지난번에도 그분이 나서서 무마시켰다며.”
“실제로는 엄벌에 처해달라고 얘기를 했는데······. 뭐, 비슷한 거지. 솔직히 말해서 그분도 전역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영향력은 상당하잖아.”
“그렇지. 신 준장님 따르는 사람도 많고, 괜히 그 라인에 밉보여봤자 좋을 것도 없지. 아이고 자네도 고생이 많아.”
“그보다 영도 자네는 언제까지 그렇게 독고다이로 살 거야. 이제 슬슬 줄을 잡아야지.”
“아이고 됐습니다. 됐어요. 나는 솔직히 헌병과장으로 있는 것이 훨씬 좋아. 막말로 내가 이 줄도 없고, 저 줄도 없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만약에 또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할 생각을 하니······. 어후, 싫어.”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홍민우 작전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뭐야, 내 욕하는 거야?”
“에헤이. 이 친구야. 뭘 또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어. 자네야 우리 동기 중에서 제일 잘나가고 어찌 보면 길을 열고 있는 거 아니야. 게다가 난 그런 깜냥은 안 된다는 거지.”
홍민우 작전과장에 비해 최영도 헌병과장은 소령으로 진급하는 것이 조금 늦었다. 그 몇 년의 차이가 앞으로 군 생활을 봤을 때 엄청난 차이를 보여줄 것이다.
홍민우 작전과장은 앞으로 이 기세로 쭉쭉 치고 나가면 최소한 별을 달고 제대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최영도 헌병과장은 별은 달지 못하더라도 대령까지만이라도 달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윤태민. 이번에는 또 뭔데?”
“아······ 성추행······.”
“성추행? 아놔, 골치 아프게 되었네. 그래서 피해자가 누군데?”
“요번에 들어온 하사.”
“부사관?”
“그나마 그건 낫네.”
“나아?”
“사단에 들어오는 성추행 사건이 하나겠냐. 엄청 많아. 그나마 부사관들은 말이 좀 통해.”
“그래?”
“장교들하고 엮이면 골치 아파지는 경우가 많은데 부사관들은 군 생활 오래 하려고 그러는 사람들이 많잖아.”
“뭐,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의 복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을 크게 키우는 것을 원치 않더라고.”
“그럴까?”
“그렇다니까. 이 일은 너무 걱정 말고 있어. 내가 잘 처리할 테니까.”
“자네가 그리해 주면 고맙기는 한데······. 저쪽에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저쪽?”
최영도 헌병과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오상진 대위?”
“응.”
“야, 그놈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뒷배를 가지고 있기에 이리 난리를 치는 거야. 이해를 할 수 없다니까.”
“알잖아. 오상진 대위 저쪽 라인인 거······.”
“저쪽이면······ 진국진 대장님 라인?”
“그렇지.”
오상진이 대놓고 진국진 대장 라인은 탄다고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기준 소장 때문에 육군참모총장 라인으로 보고 있었다.
장기준 소장이 오상진을 위로 끌어올릴 생각이 없었다면 그만큼 힘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군인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상진은 알게 모르게 진국진 대장 라인은 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상진 17연대로 왔을 때만 해도 서로 트러블이 생겼다.
오상진이 미운털이 박혀서 좌천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요즘 행동으로 봤을 때 이건 뭐, 트로이의 목마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은데?”
“저쪽에서 나중에 딴소리가 나오지 않게 그냥 철저하게 조사를 해줘.”
“철저한 수사?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윤태민을 털어버리면 안 좋은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윤태민이 신범규 준장님 아니었으면 나도 싸고돌고 싶지도 않아. 자네나 나나 그런 스타일은 딱 질색이잖아.”
“그렇지. 집안 믿고 설치는 놈들은 딱 질색이었지.”
홍민우 작전과장도 최영도 헌병과장도 군인으로서 인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냥 선후배 정도가 끝이었지, 외조부가 별까지 달았던 윤태민 소위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윤태민 소위는 군대에서는 황금수저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은 물론 지금은 잘나가고 있지만 윤태민 소위에 비하면 흙수저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흙수저는 금수저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윤태민 소위처럼 제대로 일도 하지 않고, 사고만 치는 녀석들에게는 말이다.
“좋아. 정리를 한번 해보자. 저쪽에서 뭔가 공정한 조사를 원하는 것 같고 이 사건을 제대로 파고들어야 할 것 같은데······.”
최영도 헌병과장이 슬쩍 홍민우 작전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적당히 무마되길 바라는 거지?”
홍민우 작전과장이 미소를 보였다.
“역시 최 소령이야. 내가 별말을 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는단 말이지.”
“이런 사건이 어디 한두 번이야.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걸 하면서 제대로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 위선에서는 헌병대 수사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긴 조용조용히 넘어가려고 하지.”
“그래. 그런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난데······. 걱정 말고, 피해자 여자 하사 이름이나 알려줘.”
“유선영 하사라고······.”
“오케이! 내가 그 하사에 대해서 제대로 한번 알아볼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잘 처리할게.”
홍민우 작전과장이 안도하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괜히 와서 귀찮은 일 떠넘기고 가서 미안해.”
“에헤이. 이 친구가······. 별소리를 다 하네. 우리 사이에 말이야. 자네는 뭐 예전에 그래서 날 도와줬나.”
“그 얘기는 왜 꺼내.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자네나 나나 이미 잊기로 한 거잖아.”
홍민우 작전과장의 말에 최영도 헌병과장이 피식 웃었다. 최영도 헌병과장은 이래서 그가 좋았다. 막말로 동기들 중에서 홍민우 작전과장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서 누구도 홍민우 작전과장은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보답 역시 원하지 않았고······. 그저 홍민우 작전과장이 원하는 것은 서로 함께 잘 이겨내자는 것뿐이었다.
물론 최영도 헌병과장도 홍민우 작전과장이 도와줬던 금전적인 부분은 다시 되갚았다.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고 했는데 거절을 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최영도 헌병과장에게는 그때 도와줬던 마음의 빚이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신이 직접 나서려고 한 것이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슬쩍 시계를 보며 물었다.
“참! 오늘 몇 시에 끝나?”
“끝나는 것이야. 항상 똑같지. 별다른 일은 없어. 왜? 모처럼 술 한잔하게?”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하지. 한잔해.”
“어후, 나야 좋지!”
최영도 헌병과장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슬쩍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지금 일어나자. 어차피 30분 후면 퇴근인데.”
“아니야. 정시에 나가야지.”
“에헤이. 이 친구야. 이 정도 시간에 나가는 것은 흉도 아니야. 왜 그래?”
“그럴까?”
“그래! 나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유선영 하사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방대철 주임원사는 호들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선영 하사는 방대철 주임원사를 보며 어색한지 쭈뼛거렸다. 그런 유선영 하사에게 방대철 주임원사는 환한 얼굴로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읍!”
유선영 하사가 눈을 크게 떴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마치 딸자식을 대하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어이구, 그런 일이 있었어? 나에게 말을 하지 그랬어.”
유선영 하사가 오기 전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녀를 어떻게 구워삶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의 인적사항까지 찾아서 확인했다.
유선영 하사는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장사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두 동생을 보살폈다.
신체조건상 딱히 부사관에 지원할 동기는 없었지만 자기소개에 따르면 두 동생을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다 보니 좀 더 활동적이고, 외향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지인의 추천으로 부사관에 지원하게 되었다.
여기서 보면 유선영 하사에 대해서 딱히 뭔가 파고들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엮은 것이 ‘모든 부사관의 아버지다’ 이 컨셉을 가지고 유선영 하사를 대했다. 만약에 유선영 하사가 여기 오기 전 김태호 상사로부터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홀딱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선영 하사는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괜히 머쓱해졌다.
“그래, 그래. 일단 자리에 앉지.”
“네.”
“차라도 한잔 줄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커피 한잔하자. 내가 자네랑 커피 마시려고 오늘 아침에도 참았단 말이야.”
“네. 그러면 제가······.”
유선영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방대철 주임원사가 바로 말렸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타주고 싶어서 그래. 자리에 앉아 있어.”
“그래도······.”
“어허, 아니라니까. 가만히 있어.”
방대철 주임원사는 제대한 인자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탔다. 잠시 후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타서 가지고 왔다.
“자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커피를 잘 안 타주는데 우리 유 하사는 특별히 내가 딸 같아서 챙겨 주는 거야.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