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90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9)
심도윤 소령이 자세히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왜 문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해는 했다.
오상진이 보고체계를 무너뜨리고 그러면 연대에서도 분명 말이 나올 것이다. 절차를 어겼다는 것이 질책이 내려올 것이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단 헌병대에 보고를 할 수 있지만 그건 정말 이례적인 상황일 때였다.
이 일은 그런 상황에 해당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대에서 이 사건에 대해서 무마를 시도하려고 한 다음 헌병대에 고발을 하면 또 모를 일이었다.
단순히 대대장을 못 믿어서 헌병대에 고발을 했다면 이것 역시 얘기가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은 지난사건에 직접 움직여서 일심회라는 일로 양보를 얻어냈다.
만약에 오상진이 이번에 또 직접적으로 윤태민 소위 고발을 한다. 그 내용이 바로 신범규 예비역 준장에게 들어가면 또다시 일심회 쪽으로 붙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현재 일심회 쪽 라인과 진국진 대장 쪽 라인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립세력인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범규 준장이 저쪽으로 붙어버리면 꼬여 버린다. 한마디로 여러모로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거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대대장에게 얘기를 해.
“후우······.”
오상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송일중 대대장은 이 일을 공론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아, 그렇다고 이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것이 아니야. 대대장에게 얘기를 하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헌병대에 조사를 요청할 것이야. 그리고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확실한 증거는 없는 것 같던데. 맞나?
“네.”
-그게 문제가 될 수 있어. 자네도 알다시피 군대라는 조직은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고서야 쉽게 움직이지 않아. 오히려 어지간한 증거는 대충 넘어가잖아. 그런데 여하사의 말만 믿고 일을 벌인다면 자네만 다칠 수가 있어.
심도윤 소령은 정말 오상진을 아끼는 마음에 충고를 해줬다.
“그럼 심 소령님의 말씀은 여하사의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아니. 믿네. 충분히 믿고 있어. 솔직히 100%는 믿지는 못하지. 하지만 정황상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윤태민 그놈이 그런 식으로 이리저리 사고를 한두 번 쳤어야지.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반대로 물어보지. 자네는 그 여하사를 100% 믿나? 아니면 얼마나 믿고 있나?
“그건······.”
-보라고. 윤태민 때문에 자네도 감정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어. 그렇게 감정적으로 고발을 해서 만에 하나 윤태민이가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결과가 나와 버리면 자네 입장은 물론이고 자네를 연대로 보낸 우리 입장도 곤란해질 수 있어. 자네는 그런 것을 원하는 건가?
오상진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래 자네가 원하는 것은 이 군대가 바로잡히는 것이 아닌가. 기강을 바로잡고,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 말이야. 그렇지?
“네.”
-그래서 말하는 거네 바로 잡으려면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거지. 감정적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네. 알겠습니다.”
-일단은 홍민우 소령 있지? 그 친구에게 얘기를 해. 그럼 홍 소령이 대대장에게 보고를 하겠지.
“알겠습니다. 만에 하나 헌병대에서 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합니까?”
-내 생각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야. 자네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인데 대충 덮으려고 할까? 그렇다고 저쪽에서 자네를 설득하려고도 한다고 해서 설득당할 사람도 아니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저쪽에서 어쨌든 헌병대를 움직일 거야. 뭐, 헌병대가 조사를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절차를 밟아. 그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그다음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심 소령님.”
-그리고 증거는 지금 당장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잘 찾아보면 분명 증거가 있을 거야. 아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증거가 나올 수 있다고 봐. 그러니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있는지 잘 찾아보고. 그 증거를 찾으면 바로 터뜨리지 말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네.
그렇게 심도윤 소령이 전화를 끊었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심도윤 소령의 얘기는 간단했다. 이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오상진은 유선영 하사에게 살짝 미안했다. 유선영 하사가 윤태민 2소대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그걸 가지고 살짝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좀 미안했다.
하지만 오상진도 최연소 대위를 달았고 진급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라인에 입장을 이해해 줄 수밖에 없었다.
“유 하사 미안해. 하지만 이 일은 무조건 윤태민 소위 만큼은 확실히 벌을 받게 하겠다.”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며 다짐을 했다.
17연대 소속 작전참모 배운혁 중령을 만나고 온 홍민우 소령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송일중 중령이 육본을 떠나고 나면 자신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새로운 대대장이 와도 자신이 신뢰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홍민우 소령은 작전과 연대 소속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물론 송일중 중령이 말로는 육본으로 이끌어 주겠다고 했지만 지금 분위기상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지금 육본에는 차이고 차이는 것이 대령이고 원스타였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챙겨주지는 못할 것 같았다.
예전에는 연대로 올라와서 그렇게 자신을 도와달라던 배운혁 중령이 지금은 선을 그었다.
“홍 소령 사정은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좀 있어 보자고. 3대대장이 언제 보직을 옮길지도 모르는 거잖아. 벌써부터 아랫사람이 이렇게 마음에 콩밭에 가 있으면 될 것도 안 돼. 그러니 진득하게 기다려 봐.”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길이었다. 다시 대대로 복귀를 한 후 사무실로 올라가며 구시렁거렸다.
“되려던 일도 안되기는 무슨······. 가만히 있다가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겠는데.”
그 말과 함께 사무실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 오상진이 도착해 있었다.
“어? 오 대위?”
“충성.”
“그, 그래······.”
홍민우 소령은 오상진을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보며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사실 홍민우 소령이 부대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1순위가 바로 송일중 중령이었다.
물론 평소에는 살갑게 지내고 그렇지만 몸보신을 할 시기라 만날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자신도 억지로 비위를 맞춘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예전처럼 송일중 중령과 함께 한배를 탔다는 생각으로 보필을 했었다. 홍민우 소령 스스로도 송일중 중령이 육본으로 가면 자신은 버려진다는 인식이 들면서 진심으로 보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피하든가 최대한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다음으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바로 앞에 서 있는 오상진이었다.
오상진은 만나봐야 항상 좋은 일이 없었다. 괜히 오상진과 엮여서 사건 사고만 일어났다.
그런 오상진이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이건 뭔가 분명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과장님 혹시 바쁘십니까?”
“하아······. 작전과장이 바쁘지 않으면 거짓말이고 얘기는 들어줘야겠지. 조용히 얘기할 건가? 아니면 편안하게 얘기해야 하는 건가?”
“조용히 얘기했으면 합니다.”
“그래? 그럼 날 따라오게.”
“네.”
홍민우 작전과장이 사무실을 나섰다. 바로 옆 빈 상황실로 이동했다. 상황실은 아침과 저녁만 빼면 낮에는 조용한 편이었다.
“앉지.”
“네.”
상황실 아무 의자에 앉았다. 홍민우 작전과장도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커피는?”
“괜찮습니다.”
“그럼 말해보게. 뭔가?”
“우선 이것부터 봐주시겠습니까.”
오상진은 유선영 하사가 쓴 진술서를 내밀었다.
“이건 뭔가?”
“일단 읽어보십시오.”
홍민우 작전과장이 헛기침을 한번 한 후 진술서를 쭉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홍민우 작전과장의 눈이 엄청 커졌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새로 온 부사관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을 보고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윤태민 이 개새끼가······. 진짜 이 새끼는 왜 이러지? 어떻게 하루를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어.’
이제 다른 사람은 윤태민 소위가 중대에 외부 물건을 반입한 사건만 기억하고 있다.
홍민우 작전과장은 윤태민 소위가 오상진을 엿 먹이기 위해 했던 짓거리를 다 알고 있었다.
오상진의 여자 친구인 한소희가 교복을 입은 것으로 협박을 하려고 했던 것과 그와 별개로 전 중대장이었던 이민식 대위와 3소대장이 서로 함께 있었던 것을 빌미로 박윤지 3소대장을 협박도 했었다.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이다 보니 열불이 났다. 솔직히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진술서를 그냥 넘기지 못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진술서를 내려놨다.
“그래서? 이걸 나에게 가져온 목적인 뭔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조언? 조언이라······.”
홍민우 작전과장이 피식 웃었다. 오상진이 어디 자신에게 조언을 구할 사람인가? 지금껏 수도 없이 잘 지내보자, 너무 모나게 굴지 마라, 그렇게 부탁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조언이라니······. 어림도 없었다.
“······이거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는 봤나?”
“네. 그런데 윤태민 소위는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고 있습니다.”
“윤 소위야 잡아떼겠지. 증거는?”
“증거는 현재 확보 중입니다.”
오상진이 담담히 얘기했다. 홍민우 작전과장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확보? 확보라······. 그럼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는 건데. 흐음······.’
만약에 다른 사람이 이걸 가지고 왔다면 시끄럽게 굴지 말고 그냥 묻어 두라고 말했을 것이다. 군대에서는 당연한 기본 조치였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조직인데 이런 문제가 발칵 뒤집어 놓으면 여러 사람이 골치 아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오상진이었다. 여태껏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해온 녀석이었다. 부대를 계속해서 시끄럽게 구는 오상진에게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이 일을 덮으라고 한다면 과연 들을까?
‘흥! 아마 오 대위가 그럴 생각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홍민우 작전과장이 그 생각을 하며 슬쩍 얘기를 꺼냈다.
“평소 자네였다면 헌병대에 바로 갔을 텐데 왜 나에게 온 거야?”
“솔직히 그럴까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절차를 무시하고 행동한 것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번에는 절차대로 해보려고 말입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바로 어이없는 콧방귀를 꼈다.
“흥! 그걸 이제 알았나?”
하지만 솔직히 자신을 이렇게 찾아온 오상진의 꿍꿍이가 궁금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