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9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8)
“어······ 그랬는데요?”
“제가 술에 좀 취해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느낌적으로 2소대장에게 추행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박윤지 3소대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추행요?”
만약에 다른 사람이었다면 유선영 하사의 말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윤태민 2소대장이 어떤 인간인지 너무도 잘 알았다.
이민기 전 중대장과의 관계를 빌미 삼아 자신과 한번 자자고 난리를 쳤던 파렴치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이라면 유선영 하사를 차에 태우고 성추행이 아니라 그 이상을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요?”
“관사에 도착하고 나서 저를 성추행한 적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절대 그런 적이 없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따졌더니 처음에는 저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2소대장이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죠? 그럼 어느 정도 시인을 했다는 거네요.”
“네. 제가 느끼기에는 그랬습니다. 하아, 그때 녹음을 했어야 하는데······.”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박윤지 3소대장이 자신의 말을 믿어준다고 생각하자 눈물이 나왔다.
“흐흑······.”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유선영 하사를 보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울지 마요.”
“3소대장님. 저 어떻게 합니까?”
“중대장님께 말씀드려요.”
“네? 중대장님께 말입니까?”
눈물 가득한 눈망울이 더욱 커졌다. 박윤지 3소대장이 미소를 보였다.
“우리 중대장님 그냥 넘어가실 분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 중대장님께서 방법을 찾아주실 거예요.”
박윤지 3소대장은 그 길로 유선영 하사를 데리고 중대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네에······.”
오상진 사무실로 박윤지 3소대장과 유선영 하사가 들어왔다.
“두 사람 무슨 일이야?”
“저어 중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박윤지 3소대장은 유선영 하사를 대신해 오상진에게 얘기를 했다. 중간중간 자신의 얘기가 맞는지 유선영 하사에게 물어보았다. 그 얘기를 듣는 오상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유 하사. 정말이야?”
“네.”
“알겠다. 3소대장은 나가서 2소대장 좀 찾아와.”
“알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잠시 후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윤태민 2소대장이 들어왔다.
“저 찾으셨습니까?”
오상진이 무거운 얼굴로 윤태민 2소대장을 바라봤다.
“자네! 나한테 할 말 없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윤태민 2소대장이 말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 유선영 하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앉아 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아이, 시발. 미친년. 어제 그 일 가지고 바로 중대장에게 꼰질러?!’
사실 어제 윤태민 2소대장도 밤잠을 설쳤다. 만약에 이거 가지고 협박하면 어쩌나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중대장실에 찾아와 폭탄을 터뜨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진짜 자네 할 말 없어?”
오상진이 다시 물었다.
“어, 그게······.”
윤태민 2소대장이 우물쭈물거렸다. 여기서 시인을 해버리면 진짜 큰일 날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몰라? 자네 어제 유 하사 관사에 데려다준 거 아니야?”
“맞습니다.”
“가는 길에 유 하사 성추행했다며.”
“예에? 저 정말 그런 적 없습니다.”
“뭐라고?”
“진짜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냥 유 하사가 술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서 술을 깨우려고 가볍게 터치를 한 것뿐인데 그걸 가지고 성추행이라고 하면 억울합니다.”
오상진이 살짝 당황했다. 사실 윤태민 2소대장은 완전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따지면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받아들일 줄 알았다. 여기서 일을 키워봤자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윤태민 2소대장이 자기 버릇 개 못 준다고 또 발뺌을 하는 것이었다. 지난번 그때처럼 말이다.
만약 윤태민 2소대장이 처음이라면 오상진은 믿어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윤태민 2소대장은 외부물건 반입 사건 때에도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빠득빠득 우기며 오리발을 내밀다가 다 들통 난 전례가 있다.
그래서 오상진은 윤태민 2소대장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진짜 결백하다는 것이지?”
“네. 정말 결백합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유선영 하사를 보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유 하사. 정말 왜 그럽니까? 아니면 나에게 억하심정이라도 있습니까? 나에게 왜 그럽니까? 지난번에 뭐라고 해서 그럽니까?”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홱 돌려 소리쳤다.
“2소대장님이 먼저 저 좋아서 만졌다고 시인하셨지 않습니까.”
“인간적으로 좋다고 했죠. 인간적으로······. 말을 못 합니다. 말을!”
윤태민 2소대장도 억울해하니까 오상진이 속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윤태민 이 새끼 말을 저런 식으로 하는 것을 보니까, 분명 한 것이 맞는데······. 증거는 없고 이를 어떻게 한다?’
원래 오상진은 윤태민 2소대장을 불러서 제대로 유선영 하사에게 사과를 하고 이 같은 사실을 위에 보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윤태민 2소대장이 뻔뻔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대충 넘어가서 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아. 자네 헌병대 조사를 받아도 괜찮다 이 말이지?”
윤태민 2소대장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시발! 뭔 이 일을 가지고 헌병대 조사까지 받아.’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지만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네! 상관없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내가 정식으로 수사를 청하도록 하겠네. 그리 알도록.”
“네. 알겠습니다.”
“알았어. 그만 나가봐.”
윤태민 2소대장이 구석에 앉은 유선영 하사를 한차례 노려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의 행동에 유선영 하사는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선영 하사를 박윤지 3소대장이 달랬다.
“괜찮아요. 괜찮아. 다 잘될 거예요.”
오상진이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유 하사. 걱정 마. 만약에 윤태민 2소대장이 잘못이 밝혀진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처벌받도록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가,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오상진의 말에 위로가 되었을까? 유선영 하사는 감사 인사와 함께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울음을 멈춘 유선영 하사는 그날 있었던 일을 서면으로 진술서를 작성해 오상진에게 줬다. 오상진은 그 진술서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상세하게 읽었다.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일이기에 유선영 하사가 객관적으로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상진은 울컥울컥 감정이 치솟았다.
“아니, 윤태민 이 새끼는······ 왜 군대에 온 거야? 병사들 괴롭히고 여군들 추행이나 하려고 군대에 온 건가? 도대체 신범규 준장님의 뭘 보고 배운 건지······.”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쳤다. 오상진은 지난 사건 이전에 신범규 준장을 좋게 봤다. 그와 함께했던 군인들은 하나같이 좋은 군인의 표본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오상진 또한 그리 생각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지난 윤태민 소위 사건 때 결과적으로는 손을 써서 징계를 막았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신범규 준장이 존경스럽지 않았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의 뒤를 이을 유일한 외손주라는 것 때문에 신범규 준장이 싸고도는 것은 이해는 되었다.
그때 만약 윤태민 2소대장을 바로 잡았으면 어땠을까? 유선영 하사가 이렇게 성추행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술서 쓰느라 고생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 몇 번 더 이런 진술서를 써야 할지도 몰라. 괜찮을까?”
오상진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선영 하사도 어느 정도 각오는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유선영 하사가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오상진이 그런 유선영 하사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유 하사. 중대장이 자네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네.”
“그래. 그만 가 봐.”
“네. 충성.”
유선영 하사가 경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갔다. 홀로 진술서를 보는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원칙대로라면 절차를 받고 올라가야 했다. 송일중 대대장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고 그 이후에 사단 헌병대에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과연 송일중 대대장에게 보고를 올렸을 때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진급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는 송일중 대대장이었다. 이 일을 올렸을 때 송일중 대대장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보나 마나 뻔한 일이었다.
“그래! 내가 욕을 들어먹더라도. 이 일은 내가 직접 사단 헌병대에 수사 의뢰를 해달라고 해야겠어.”
오상진이 마음을 다잡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심도윤 소령에게 온 전화였다.
“응? 심 소령님이 왜······.”
오상진은 곧바로 휴대폰을 받았다.
“충성. 대위 오상진입니다.”
-오 대위. 잘 지냈나.
“네.”
-별건 아니고 잘 지내고 있나 해서······.
“괜찮습니다. 별일 없습니다.”
오상진의 목소리를 들은 심도윤 소령은 예전 통화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에 슬쩍 물었다.
-자네 목소리가 영 좋지 않군. 무슨 일 있나?
“제 목소리가 무슨······. 괜찮습니다.”
-그런가? 아니면 내가 좀 이상한가? 나는 왠지 오 대위에게서 무슨 일이 생겼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심도윤 소령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주변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빨리 파악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신경을 쓴다. 그래서 심도윤 소령에게 뭔가 숨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같이 사단 헌병대에 수사 요청을 하면 심도윤 소령 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중대에 일이 생겼습니다.”
-아이고 또 무슨 일이야? 오 대위가 이렇게 목소리까지 굳는 것을 보면 큰일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윤태민 소위가 또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윤 소위가? 무슨 사고를 쳤는데?
오상진은 그동안의 일을 쭉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심도윤 소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 새끼는 진짜 왜 군대에 온 거야?
“저도 그게 정말 궁금합니다.”
-진짜······. 신범규 준장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더니······. 이게 뭐야. 그냥 말로만 하고 끝낸 거야? 그 사고를 치고도 또 여군을 건드릴 수가 있어?
“······.”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은 일단 절차대로 하는 게 원칙이긴 하지만 만약 이대로 대대장님께 보고를 하면······.”
심도윤 소령 역시 뻔하다는 듯 말했다.
-보나 마나 덮으려고 하겠지.
“네. 그래서 직접 사단 헌병대에 요청을 할 생각입니다.
-오 대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네?”
-군대는 절차라는 것이 있어. 그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일 처리를 하면 좋지 않아. 자네는 물론이고 작전본부장님께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