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7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6)
김호동 하사는 황하나 하사 다음으로 유선영 하사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이 자신과 악수를 하고 있으면서도 황하나 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짜 뭐야!’
유선영 하사는 괜히 애꿎은 황하나 하사에게 짜증이 났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황하나 하사는 김태호 상사의 물음에 배부른 소리를 했다.
“황 하사.”
“네.”
“아까 김 하사가 그런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냥 장난스럽게 한 거야.”
“괜찮습니다. 그리고 김 하사님께 확실히 말했습니다.”
“뭘?”
“제 스타일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 그래도 김호동 하사가 우리 사단 부사관에서 제일 괜찮은데.”
“그렇습니까?”
김태호 상사의 시선이 유선영 하사에게 향했다.
“유 하사는 어때? 우리 김호동 하사 괜찮지?”
“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사실 김호동 하사 사단에 있을 때 좋다는 여자 부사관들 많았어.”
“그렇습니까?”
“그래!”
김태호 상사가 확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황하나 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저는 김 하사님 같은 사람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그러자 황하나 하사가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저는······.”
“괜찮아. 우리끼리 있는데 어때.”
김태호 상사가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살짝 머뭇거리던 황하나 하사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1소대장님 같은 분을 좋아합니다.”
“1소대장? 김진수 중위?”
“네.”
“어이구, 그래?”
유선영 하사는 김진수 1소대장을 떠올렸다. 약간 범생이 같은 스타일. 몸도 그리 좋은 편도 아닌 것 같고, 게다가 호남형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좋아해?’
유선영 하사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황하나 하사가 신분상승을 위해 장교와 연애를 꿈꾸고 있다는 착각을 말이다.
‘그러면 그렇지. 4중대에 온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유선영 하사는 4중대에 온다고 했을 때부터 힘들게 군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리가 개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여자가 없는 4중대에 가서 공주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고 혼자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김호동 하사는 자신의 스타일일 아니라면 외면하고 감히 넘볼 수 없는 장교들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코웃음이 나왔다.
‘황 하사, 너 진짜 웃긴다. 뭐 군 생활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넘어왔다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유선영 하사가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유선영 하사는 황하나 하사에게 지고 싶지 않아졌다.
그러면서도 유선영 하사는 황하나 하사에게 고마웠던 적도 있었다. 김호동 하사를 깨끗하게 정리해 줬기 때문이었다.
물론 황하나 하사가 깐 김호동 하사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준 사실에 고맙게 생각했다. 하지만 김호동 하사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황 하사 이거 좀 먹어봐.”
“이게 뭡니까?”
“별거 아니야.”
그러면서 초콜릿이든, 요구르트, 그 외 커피나 음료수 등을 가져다줬다. 그럴 때마다 황하나 하사는 재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저 먹을 걸로 넘어가는 여자 아닙니다.”
“에이, 뭘 먹는 걸로 꼬실까. 그냥 좋게 말해서 전우애. 전우애라는 것이지. 뭘 자꾸 포장하려고 해. 황 하사 설마 나 좋아해?”
“지난번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알았어. 알았다고. 나도 전우애로 주는 건데 자꾸 선 긋고 그러면 서운해.”
김호동 하사는 자꾸만 황하나 하사를 챙겼다. 그런데 그런 황하나 하사의 말이 더 웃겼다.
“아니, 김 하사님 자꾸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 자꾸 부담스럽게 말이야.”
그러자 유선영 하사가 말했다.
“김 하사님 정도는 나쁘지 않잖아.”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김 하사님은 내 스타일 아니라고.”
“그럼 정말 1소대장님을 노릴 생각이야?”
“뭘 또 노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냥 1소대장님 같은 스타일이 내 스타일이라고 말한 거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연애를 생각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모를까. 지금은 생각 없어.”
그런 황하나 하사가 양손에 떡을 쥔 것처럼 혼자 꼴사납게 구는 모습이 진짜 보기 싫었다.
‘내가 진짜 너에게는 정말 안 져.’
유선영 하사가 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래서일까? 회식 자리에서도 유선영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과음을 하고 말았다.
“아, 이제 더 못 마시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머리를 테이블이 콩 하고 박았다. 그 순간 유선영 하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쳇! 황 하사는 술도 잘 마시네.’
이미 지난 첫 번째 회식 때 황하나 하사가 은근 술을 잘 마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솔직히 첫 번째 회식 때는 유선영 하사도 살기 위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이 황하나 하사에게 술을 권해서 빨리 술이 취해서 빠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황하나 하사가 빠지면 이 중대에 여자는 자신 한 명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황하사는 철인처럼 남자보다 술을 더 잘 마셨다.
또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더 술을 마시면 취한다며 거절할 줄도 알았다. 그러다가 자신은 괜히 윤태민 2소대장과 시비가 붙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하나 하사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사관들의 시선은 모두 자신이 아닌 황하나 하사에게 향해 있었다. 그게 너무 짜증이 나서 혼자 독주를 하다가 완전 뻗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쓰러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취해버리자. 이러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겠지.’
그런데 마치 취하기가 무섭게 유선영 하사를 짐짝 취급을 했다. 김태호 상사가 그런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유 하사, 유 하사. 괜찮아?”
“행보관님 저 속이 안 좋습니다.”
“그래? 그러면 안 되는데······. 어디 화장실에 가서 게워내기라도 할래?”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튼 자네 취한 것 같으니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떤가?”
“······네.”
유선영 하사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김호동 하사가 자신을 바래다주길 바랐다. 그런데 김태호 상사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이유로 여우 같은 황하나 하사에게 자신을 맡겨 버린 것이다.
황하나 하사가 유선영 하사를 부축하며 걸어가며 말을 붙였다.
“유 하사. 정신 좀 차려봐. 좀 걸을 수 있겠어?”
“으응······.”
“아니 이기지도 못할 술을 왜 자꾸 마셔.”
“······.”
“자꾸 이러니까, 남자 찾고, 여자 찾고 그런다니까.”
마치 술을 못 하는 자신을 탓하듯 말하는 황하나 하사가 더 짜증이 났다.
‘젠장,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마셨는데······. 그래 너 어디 한번 골탕먹어 봐라.’
그러면서 중심을 못 잡는 척하며 황하나 하사에게 매달렸고, 그러자 자신을 부르는 힘겨운 목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렇게 힘겹게 끌려가고 있는데 차가 한 대 도착했다.
그 차의 주인은 윤태민 2소대장 나타났다.
“황 하사?”
그 목소리의 주인은 윤태민 2소대장이었다. 유선영 하사가 속으로 말했다.
‘뭐야, 이 사람은······.’
솔직히 윤태민 2소대장에게 술 취한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다. 아무리 무시해도 된다고 하지만 2소대장이었다. 떠나려면 한참이지만 그동안에는 술 취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이 얘기를 하더니 자신을 차에 태우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유선영 하사는 깜짝 놀랐다.
‘뭐야? 미쳤어? 네가 뭔데 날 태우라 마라 하냐고.’
그런데 황하나 하사의 말에 기가 막혔다.
“그러지 말고 2소대장님이 유 하사를 관사로 데려다주시면 안 됩니까?”
“황 하사는요?”
유선영 하사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어? 황 하사 뭐지? 그렇게 술자리가 좋아서 동기를 버리겠다는 거야?’
물론 자신이 약간 여우짓을 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황 하사가 주목받는 것이 싫어서 억지로 달렸고 술 취한 척해서 내심 김호동 하사에게 부축을 받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분위기를 깨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가 자신을 이렇게 버릴 줄은 몰랐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몸을 차에 뉘어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아, 안 돼······. 정신 차려.’
그렇게 끊어지려는 정신을 꽉 붙잡은 유선영 하사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뭐지?’
유선영 하사가 힘겹게 눈을 떠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윤태민 2소대장이 큰 잘못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손을 뺐다. 유선영 하사가 물었다.
“뭐······ 하는 거죠?”
윤태민 2소대장이 마른 침을 꾹 삼켰다.
‘시발, 뭐야. 들킨 건가?’
그러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윤태민 2소대장이 말했다.
“어······ 그러니까. 유 하사 그게······.”
유선영 하사는 윤태민 2소대장이 망설이는 것을 보면서 캐묻고 싶은데 머리가 너무 아팠다.
“으으윽······.”
잔뜩 인상을 쓰며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바로 윤태민 2소대장의 음성이 들렸다.
“유 하사 괜찮아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말입니다.”
“큰일인데? 그럼 조금 이따가 출발해요?”
“네? 출발하다니······ 무슨 소리입니까?”
“무슨 소리긴, 관사 가야죠. 나도 마침 들어가는 길이라 유 하사를 데리고 가는 것인데. 그건 기억나죠?”
“······.”
유선영 하사는 거기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일단 말없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유선영 하사의 눈치를 살피던 윤태민 2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아무래도 유 하사 상태가 영 아니네. 가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차 출발해요.”
“······네.”
윤태민 2소대장이 조심스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그러면서 머릿속이 엄청 복잡했다.
‘하아, 제기랄······. 참았어야 했는데 뭐지? 왠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고 있나? 아니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윤태민 2소대장도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려 했던 자신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그렇지. 시발 유선영이라니······.’
지난번에 박윤지 3소대장을 어떻게 해보려다가 된통 당한 후 부대 사람은 절대 건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여차하면 자신이 피를 뒤집어쓸 수 있고, 옷을 벗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유선영 하사에게 손을 댔다는 것에 스스로 너무 수치스러웠다.
‘하아, 제기랄 미치겠네. 어떻게 해야 하지?’
윤태민 2소대장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욱!”
유선영 하사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윤태민 2소대장이 당황하며 말했다.
“어어······. 유 하사 뭡니까. 왜 그래요.”
“소, 소대장님······. 저 토가······ 우욱!”
“잠깐, 잠깐만요. 좀 참아봐요. 차에서는 안 됩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급히 차를 도로 옆에 세웠다. 그러자 유선영 하사가 다급하게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아, 시발······. 진짜 가지가지 한다.”
윤태민 2소대장이 인상을 쓰고는 차에 있는 휴지를 챙겨서 유선영 하사가 뛰어간 곳으로 걸어갔다. 유선영 하사는 나무 기둥을 붙잡고 힘겹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