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6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5)
김태호 상사는 바로 옆에 있는 황하나 하사를 불렀다.
“황 하사.”
“네.”
“안 되겠다. 유 하사 술 취했다. 이제 더 이상 술 먹이지 마.”
“저도 그러고 있는데 말입니다. 자꾸 혼자서 홀짝홀짝 마십니다.”
“그래도 억지로 술잔을 빼앗아! 절대로 못 마시게 말려!”
“네, 알겠습니다.”
여차했다간 황하나 하사가 유선영 하사를 업고 가야 할 분위기였다.
“자네 감당할 수 있겠어?”
“저 혼자 안 됩니다. 지난번에도 3소대장님 덕분에 간신히 데리고 갔는데 말입니다. 유 하사 그만 마셔!”
유선영 하사가 또 혼자 홀짝 마시려고 하자 황하나 하사가 바로 말렸다.
“괜찮아. 나 괜찮아요. 더 마실 수 있어요.”
“아냐. 아니야! 안 돼! 그만 마셔!”
그렇게 유선영 하사가 헤롱헤롱거렸다. 황하나는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옆에 있는 술병을 치운 후 술잔에 물을 담았다. 그런데 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사이 유선영 하사가 자작을 했다.
쿵!
갑작스러운 소리에 황하나 하사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탁자에 머리를 박은 유선영 하사가 쓰러져 버린 것이다.
“유 하사! 유 하사 정신 차려!”
황하나 하사가 흔들어 깨워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김태호 상사도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뭐야? 유 하사 왜 쓰러져?”
“헐! 술잔에 물 버리고 또 소주를 따른 모양입니다.”
“아이고 유 하사는 진짜······. 감당하지도 못할 술을 왜 그렇게 마시는 거야.”
“후후후, 아무래도 지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황 하사 때문에.”
황하나 하사가 깜짝 놀랐다.
“네? 저 때문에 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아니 황 하사가 워낙에 군 생활을 잘하니까 동기로서 승부욕도 생기고 질투도 나고 그런 거지.”
“어? 우리는 그런 거 없는데······.”
황하나 하사가 해맑게 말했지만 그 말을 다 믿는 사람은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그런 것은 다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지.”
“기왕 이렇게 된 거 황 하사가 유 하사 데리고 가. 황 하사도 이쯤에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저도 말입니까?”
“미안한데 유 하사 업어가기가 좀 그렇지 않아? 황 하사가 고생 좀 해줘.”
솔직히 여기 있는 부사관들 대부분이 적잖이 술을 먹었고 취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누가 누구를 부축할 상황은 아니었다.
게다가 유선영 하사 때문에 분위기가 틀어진 상태라 두 사람을 보내고 남은 부사관들끼리 다시 다른 곳에서 2차를 하려고 했다. 그 분위기를 느낀 황하나 하사가 바로 말했다.
“칫! 저희 빼고 2차 가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 말입니다.”
“어험! 아니야.”
“눈치챘습니다. 그래도 뭐, 유 하사가 취했으니까 저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미안한데 조금만 고생해 줘. 가다 보면 술이 깨겠지.”
“네.”
황하나 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선영 하사의 팔을 어깨에 걸쳤다. 그때까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가 부대로 가는 길에 그대로 푹 쓰러져 버렸다.
술에 취한 사람의 무게는 엄청 무거워졌다. 황하나 하사 역시 술에 조금 취한 상태라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털썩!
“어멋! 유 하사. 유 하사······.”
황하나 하사가 살짝 비틀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그때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쓰윽 멈췄다.
조수석 창문이 열리며 누군가 황하나 하사를 불렀다.
“황 하사?”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황하나 하사가 윤태민 2소대장을 봤다.
“어? 2소대장님. 어디 가시는 길이십니까?”
“저 부대 복귀하는 길입니다. 왜 그러시죠?”
“아니 유 하사가 술이 많이 취한 상태라서 말이죠.”
“술이요?”
“네. 오늘 저희 회식을 했습니다.”
“아, 회식······.”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차에서 내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유선영 하사를 보며 혀를 찼다.
“아이고 무슨 술을 이렇게까지 마셔요.”
“분위기에 취해서 어쩌다 보니 그랬습니다.”
“타요.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윤태민 2소대장이 조수석 차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황하나 하사가 유선영 하사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유 하사 정신 좀 차려봐. 유 하사!”
하지만 이미 만취한 유 하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힘겹게 유선영 하사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황하나 하사가 말했다.
“아, 2소대장님.”
“네?”
“그러지 말고 2소대장님이 유 하사를 관사로 데려다주시면 안 됩니까?”
“황 하사는요?”
“아, 유 하사가 취해버려서 제가 급하게 집에 데려다주려고 한 거였거든요. 2소대장님이 괜찮으시면 이만 가 보면 안 되겠습니까?”
황하나 하사는 솔직히 말해서 유선영 하사를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군 생활도 잘하고 싶고 선배들하고 잘 어울리고 싶고, 여자라고 은근히 빠지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것이 황하나 하사의 로망이었다.
또 오늘 내심 남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는 것과 공주 대접 받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유선영 하사 때문에 깨지나 싶었는데, 다행히 윤태민 2소대장이 나타나서 맡기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윤태민 2소대장 역시 유선영 하사에게 골탕을 먹이고 싶었는데 황하나 하사가 알아서 빠져주니 고마웠다.
‘와, 이럴 듯 알아서 빠져주네. 고맙게 말이야.’
윤태민 2소대장은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스읍! 나 혼자 유 하사 감당 못 할 것 같은데.”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유 하사 때문에 빠지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뭐, 그럽시다. 어차피 나도 관사 들어가는 길이었으니까 내가 맡죠.”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황하나 하사가 경례를 하고는 몸을 돌려 뛰어갔다. 멀어지는 황하나 하사를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따돌리나 고민했는데 제 발로 떨어져 주네.”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쓰러진 유선영 하사를 봤다. 잠시 주위를 확인한 윤태민 2소대장이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조수석에 비스듬하게 기대 있는 유선영 하사를 봤다. 완전히 술에 취했는지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뻗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윤태민 2소대장이 툭툭 치며 불렀다.
“유 하사, 유 하사! 정신 차려봐, 유 하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선영 하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진짜 뻗어버린 거야?”
그때 윤태민 2소대장의 눈길로 살짝 솟아오른 유선영 하사의 가슴으로 시선이 갔다. 약간 흐트러진 단추와 단추 사이가 벌어지며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국방색 티셔츠가 보였다.
평소처럼 즐기고 다녔다면 솔직히 유선영 하사가 눈에 차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활비도 없고, 외할아버지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윤태민 2소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으로 손이 갔다.
“유 하사 진짜 자는 거야? 유 하사······.”
윤태민 2소대장이 유선영 하사의 가슴을 슬쩍 건드려봤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되자 윤태민 2소대장이 좀 더 자극적으로 손을 움직여 봤다.
그 순간 유선영 하사는 몸을 흠칫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유선영 하사가 힘겹게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거죠?”
그런데 바로 옆에 그토록 싫어하는 윤태민 2소대장이 앉아 있었다.
처음 17연대에 배치를 받았을 때 유선영 하사와 황하나 하사는 대대 인사과에 제일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인사과장 황명수 대위가 들어왔다.
“어, 이번에 온 부사관?”
“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황하나 하사와 유선영 하사는 바짝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자리에 앉은 황명수 대위가 두 사람을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배치될 곳이 정해졌어. 그런데 말이야. 한 사람이 4중대로 가야 하는데 누가 갈래?”
황명수 대위는 물어보면서 시선은 유선영 하사를 봤다. 마치 네가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듯 말이다. 그런 태도가 못마땅한 유선영 하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황하나 하사가 손을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 황 하사가?”
“네.”
“자네가?”
황명수 대위는 마치 네가 왜 거길 가냐는 말투였다. 유선영 하사의 시선도 황하나 하사에게 향했다가 황명수 대위를 슬쩍 노려봤다.
‘뭐지? 저 말투는? 안타까워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날 보내려고 했구나.’
유선영 하사가 시선을 전방으로 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뭔가 처음부터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4중대가 독립중대라고 들었습니다. 독립중대는 군 생활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하는 군 생활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런 황하나 하사의 말에 황명수 대위가 크게 웃었다.
“허허, 이거 제대로 된 부사관이 들어왔네.”
물론 유선영 하사는 그런 황하나 하사의 행동이 눈곱만큼도 고맙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행동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스스로 간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선영 하사까지 같이 4중대로 가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4중대에서 필요한 부사관이 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됐어. 너희 둘이 넘어가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말이야. 유 하사도 그러는 것이 아니야.”
“뭐가 말입니까?”
“황 하사가 유 하사 대신해서 4중대 간다고 했잖아. 그곳에 여자 부사관은 황 하사뿐인데 그러고 싶어? 나 같아도 미안해서라도 같이 가겠다고 하겠다.”
“······.”
유선영 하사는 졸지에 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었다. 4중대로 가는 내내 황하나 하사는 잘되었다고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 가면 심심했을 텐데······. 정말 잘됐다. 그렇지?”
“으응······.”
유선영 하사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거기서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만약에 황하나 하사가 아니라 자신이 간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인사과장이 황하나 하사를 대대에 남겨 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잘 지내는 척이라도 해보자.’
유선영 하사는 원래 사교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잘 지내보고자 황하나 하사와 애써 살갑게 지냈다. 그런데 부사관들과 상견례를 하면서 또 부딪쳤다.
“이쪽은 김호동 하사.”
“그래, 반가워.”
김호동 하사는 예쁜 후배 부사관이 들어오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던 유선영 하사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어쩜······. 내 이상형이야.’
보통 군인이라고 하면 햇볕에 탄 구릿빛 피부에 상남자 같은 스타일을 떠올렸다. 실제 봤던 군인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래서 유선영 하사는 군에서는 절대 연애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김호동 하사를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정말 묘했다.
약간 덩치도 좋은데 눈은 소처럼 크고 웃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김호동 하사의 미소가 황하나 하사에게 향하고 있었다.
“반가워, 황 하사. 잘 부탁해.”
“잘 부탁드립니다.”
“유 하사도 앞으로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