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5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4)
그날 오후 오상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네, 오상진입니다.”
-중대장님. 여기 만복 상사 김철욱입니다.
“만복 상사······. 아, 네네.”
-유니폼이 생각보다 빨리 완성되어서 말이죠. 이거 제가 부대로 배달해 드립니까?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위병소에 맡기시면 됩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병소로 유니폼이 도착했다. 위병소에서 바로 오상진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중대장이 나간다.”
오상진은 위병소로 향하다가 행정실 문을 열었다. 다들 자리에 있었다.
“시간 되는 사람 나 좀 도와주지.”
김진수 1소대장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들 일어났다. 윤태민 2소대장도 마지못해 일어났다. 부사관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희들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다 데리고 가자고? 그러자고.”
오상진은 다 데리고 위병소로 향했다. 입구에 만보상사 김철욱이 위병소 앞에 박스를 내리고 있었다. 오상진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김철욱이 환한 표정이 되었다.
“오셨습니까.”
“네. 중대장님.”
“옷이 생각보다 빨리 나왔습니다.”
“제가 재촉 좀 했습니다. 단체복 맞췄는데 기왕이면 빨리 입어보면 좋죠.”
“그렇죠. 확인해 볼 수 있습니까?”
“그럼요.”
김철욱은 하나의 박스를 뜯어서 상의를 꺼냈다.
“자, 확인해 보십시오.”
오상진이 유니폼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딱 봐도 나쁘지 않았다. 부대 마크도 왼쪽 가슴에 잘 박혀 있었다.
“좋네요.”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진수 1소대장이 물었다.
“중대장님 이게 다 뭡니까?”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단체복 맞춘다고.”
“오오. 그런데 상태가 정말 좋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우와. 단체복이라니······. 녀석들 깜짝 놀라겠는데.”
홍일동 4소대장도 단체복을 확인하며 기뻐했다. 그중 윤태민 2소대장이 슬쩍 확인을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애들도 아니고······. 저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이게 좋아? 다들 아주 정신이 나갔구만.’
오상진이 박스를 하나 들며 말했다.
“자, 하나씩 들고 가지.”
“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오상진을 필두로 각 간부들이 박스 하나씩을 들고 이동했다. 물론 병사들을 동원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병사들은 경계근무에 나가 있거나 다들 작업으로 빠져 있었다. 또한 오상진은 이런 걸로 괜히 병사들을 부리고 싶지도 않았다.
오상진이 박스를 행정반에 내려놨다. 모두 행정반에 놓은 후 오상진을 바라봤다.
“사이즈별로 있으니까. 다들 확인해서 애들에게 나눠주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부소대장들이 수고 좀 하자.”
“네. 중대장님.”
“맡겨 주십시오.”
그때 황하나 하사가 손을 들었다.
“중대장님 저희 것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 그런데 남녀구분은 없다. 그건 감안하도록.”
“당연합니다. 저희는 군인입니다. 다 같은 4중대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
부소대장들이 힘차게 대답을 한 후 단체복을 분류했다.
“거기 투 엑스라지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혹시 라지 사이즈 남은 것도 있습니까?”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소대장들이 각 소대 병사들 사이즈에 맞게 단체복을 분류했다. 그렇게 그날 오후 일과를 마칠 시간에 분류한 단체복을 각 소대에 가지고 갔다.
“와. 이게 다 뭡니까?”
“이거 중대장님께서 우리 4중대 단체복을 만드셨다.”
“오! 저 군 생활 하면서 이런 거 처음 입어봅니다.”
그러자 누군가 한마디했다.
“저는 대학교 때 과 티를 입어본 적 있습니다.”
“과 티?”
“요새는 대학생들도 단체복을 입냐.”
“네. 체육대회 때도 입고, MT 갈 때도 입습니다.”
“이야, 진짜 멋있습니다.”
“에이, 나는 그건 좀 별로더라. 괜히 집행부 애들 배만 불리는 거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누군가가 한마디 했다.
“그럼 이것도 누군가 뒤에서 해 먹는 겁니까?”
그때 옆에 있던 병사가 툭 치며 말했다.
“멍청아. 넌 무슨 얘기를 들었냐. 중대장님께서 직접 사비로 만들었다고 했잖아.”
“주, 중대장님께서 진짜 사비로 해 주시는 겁니까?”
“지난번 회식 때 너 없었냐? 그때도 중대장님께서 사비로 하셨는데······.”
“와우, 우리 중대장님 부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네. 그런데 이렇게 해주는 중대장은 처음 아니야?”
“와, 솔직히 저 중대장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자꾸 이러니까 미안해지고 그럽니다.”
“됐어! 내가 예전에 말했지. 병사들의 주적은 누구라고?”
“간부입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있으니까 중대장님이 있는 거야.”
그렇게 웃고 떠드는데 애들이 좋아는 했다. 다들 오상진이 특별히 마련한 단체복에 들뜬 얼굴이었다.
한편 4중대가 단체복을 맞췄다는 소문이 각 중대로 빠르게 소식이 흘러들어 갔다. 그중 1중대장 고영길 대위가 코웃음을 쳤다.
“4중대장은 돈도 많은 것 같네. 무슨 수로 단체복을 맞췄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챙겨 놓은 돈이 많나 보죠.”
“저도 들은 건데 말입니다. 4중대장 사단에 있을 때 장난 아니었다고 합니다.”
“뭐가 장난 아니었다는 거야?”
“앞서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4중대장이 특별히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사단장님께 잘 보이려고 그렇게 아부와 아양을 떨었다고 합니다. 또 그렇게 뭘 사다가 바치고 그랬다고 합니다.”
“정말이야? 어쩐지 눈에 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 참! 그 얘기는 들었습니다.”
고영길 1중대장의 시선이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향했다.
“뭘 말입니까?”
“4중대장이 치킨 가지고 난리를 쳤다고 말입니다.”
“와! 그때 내가 서러워가지고······. 알지 않습니까. 우리 막내놈. 그놈은 법 없이도 살 놈입니다.”
그 말에 다른 간부들이 피식 웃었다.
“네. 뭐······ 그렇죠.”
“네네.”
그런데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은 아니었다.
‘법 없이도 살기는 그 법을 무시하고 살 놈이지.’
‘주임원사 당신을 빼다 박았잖아.’
방대철 주임원사는 그것도 모르고 하소연을 했다.
“아니, 그놈이 모처럼 단체주문을 받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나 봅니다. 게다가 장사가 하도 안되어서 있던 직원들을 자르고 같이 일하던 제수씨도 다른 식당에서 일하고 그러거든요.”
“어이구 그렇습니까.”
“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바뀐 닭도 몰랐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상한 닭도 들어가고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정 없이 무슨 다 물어내라고 하지 않나. 돈만 받았으면 됐지. 또 다른 치킨집에서 치킨을 구입해 물어내라고 하지 않나. 어후, 갑질도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었습니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학을 뗀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4중대장이 그랬습니까?”
“네! 저 말입니다. 4중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피도 눈물도 없었습니다.”
“이야. 4중대장 안 되겠네. 내가 1중대장으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겠습니다.”
“그래요. 1중대장님. 꼭 한마디 해 주십시오. 이러다가 대대장님 머리 꼭대기에 앉을까 봐 겁이 납니다.”
“에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런데 대대장님은 육본에 가시는 겁니까. 안 가시는 겁니까?”
“저도 확실하게 들은 것이 없어서 말입니다. 가시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육본이 이렇게 자리가 안 나나? 원래 대충 얘기가 나오면 올라가지 않습니까?”
“내 생각인데 공식적인 루트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뭡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서로서로 미리미리 얘기를 해놓고 올려놓는 것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아직 자리가 생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 저는 말이죠. 대대장님이 계속 여기 남아 있는 것이 더 불안합니다. 대대장님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육본 올라가는 것 때문에 몸 사리고 제대한 조용히 좋게 지내고 계시는데 만약에 육본 가는 것이 취소된다면 저는 그 성격 감당 못 합니다.”
방대철 주임원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대장이 올라가야 부식 문제를 마무리 짓는데. 참 골치 아프게 되었어.’
그렇게 고영길 1중대장과 방대철 주임원사는 서로를 바라보며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저녁 오상진에게 사전 양해를 얻은 부사관들이 돼지 껍데기 집에 모였다.
“아이고 다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돼지 껍데기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일행들을 맞이했다.
“다들 훈련하느라 바빠서 그렇지 뭐. 나라 지키는 군인이 매일같이 술 마시러 오면 되겠습니까.”
김태호 상사가 나서며 사장과 얘기를 했다.
“어이쿠. 어처구니가 없네. 김 상사, 아니, 우리 행보관님 예전에는 외상까지 걸어놓고 술 마셔놓구선.”
“에헤이, 또 언제적 일인데 지금 얘기를 합니까. 자자, 후배들 와 있으니까. 말 그만하시고 어서 안주랑 술 좀 가지고 오세요.”
“안주는 주겠지만 술은 알아서 꺼내 먹어요. 저기 술 냉장고 있으니까.”
사장이 그 말을 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김호동 하사와 이기상 하사가 발 빠르게 술잔과 술을 챙겨서 가지고 왔다.
사실 이곳은 김태호 상사의 단골집이었다. 대대 행보관 자리에서 밀려 4중대로 왔을 때 속상한 마음에 이곳에서 술을 먹었다. 하물며 4중대 있을 때도 이민식 대위에게 시달림을 받고 술로 지냈었다.
그때는 말이 좋아 행보관이었지 완전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그랬다.
그때의 김태호 상사는 그런 식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자자! 다들 한 잔씩 하자고.”
“넵!”
“잔 다 따랐습니다.”
“그럼 건배!”
“건배!”
그들은 특별한 건배사도 하지 않고 담백하게 건배만 외쳤다. 술 한 잔을 들이켠 김태호 상사가 황하나 하사에게 물었다.
“황 하사 어때? 여기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저 이런 곳에 한번 와 보고 싶었습니다.”
황하나 하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답했다. 이번에는 유선영 하사에게 물었다.
“유 하사는?”
“저도 좋습니다.”
“참, 미리 말하는데 우리는 술 강요하거나 그런 분위기 아니니까 못 마시면 술잔을 덮어놔. 괜히 억지로 마시지 말고.”
유선영 하사가 바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유 하사. 지난번처럼 그렇게까지 술 취하면 안 돼. 그때는 3소대장이 같이 있어서 부축했지만 이번에는 황 하사 한 명밖에 없어. 알았지?”
“알겠습니다. 행보관님. 제가 잘 조절하겠습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유선영 하사는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또 술을 과음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도 빨리 취해버렸다.
김태호 상사가 그런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유 하사!”
“네!”
“지금 내 손가락 몇 개야.”
“세, 세 개입니다.”
“뭔 소리야. 지금 한 개인데······.”
“하나인데 흔드시니까 세 개처럼 보였습니다.”
“큰일인데 이러다가 유 하사 쓰러지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