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4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3)
“아, 진짜······. 그 얘기가 왜 나와. 아무튼 빨리 보내줘. 나 이번 달 카드 못 막았단 말이야.”
-뭐? 카드를 못 막아? 넌 도대체 카드를 얼마나 쓰기에 그걸 못 막아.
“나도 몰라. 그리고 생활비 안 줄 거면 미리 얘기를 해주든가. 그럼 나도 알아서 조절하지. 말도 없이 끊어버리고······. 나보고 어쩌라고!”
-하아······. 알았어. 이번 달까지는 넣어 줄게. 하지만 다음 달부터는 국물도 없어, 알았어?
“엄마······. 그냥 할아버지 몰래 생활비 넣어 주면 안 돼?”
-너 그러다가 엄마 쫓겨나면? 너 외할아버지 성격 몰라서 그래? 게다가 너희 아빠도 저러고 있는데 우리 집은 누가 돈 버니? 네가 원하는 것이 그거니? 아니면 네가 생활비 보내줄 거야?
엄마의 다그침에 윤태민 2소대장이 인상을 썼다.
“아, 진짜······. 미치겠네.”
-그러니까, 아들! 3~4달 죽었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지내봐. 그 정도 고생은 할 수 있잖아. 그 이후에 엄마가 외할아버지한테 잘 말해볼 테니까.
“알았어.”
윤태민 2소대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인상을 팍 썼다.
“아이씨. 이게 뭐야. 그깟 푼돈 좀 벌어보겠다고 했다가······. 아, 시발. 일이 꼬여 버려서는······.”
윤태민 2소대장의 아버지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진즉에 일을 때려치우고 싶어 했다.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 희망퇴직 권고문이 붙었고, 냉큼 희망퇴직을 해버렸다.
그 이후 사업을 하겠다고 여러 곳에 손을 댔지만 쫄딱 망해버렸다. 그때 윤태민 가족을 도와준 사람이 바로 외할아버지인 신범규 준장이었다.
그는 윤태민이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엄마에게 갈빗집을 차려줬고, 그 갈빗집이 제법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자식이 윤태민의 희생(?) 덕분에 가게를 차렸고, 먹고살 길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껏 군소리 없이 매달 생활비로 200만 원을 보내줬다. 윤태민 2소대장은 그 돈과 소위 월급을 합치면 남부럽지 않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윤태민 2소대장은 자신의 젊음을 육군사관학교와 군대에 바쳤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많이 겉돌았다.
한마디로 유흥에 빠졌고, 주색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부대에서 병사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가 이번에 된통 깨졌다. 그렇게 갑자기 돈이 말라버리니 윤태민 2소대장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아, 시발. 돈을 어디서 구하지?”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유선영 하사와 황하나 하사가 둘이 걸어오고 있었다.
“에효······. 저것들은 아주 해맑네. 남의 속은 문드러지고 있는데.”
윤태민 2소대장은 억울한 표정으로 담배를 거칠게 껐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는데 갑자기 유선영 하사가 윤태민 2소대장을 발견했다.
“2소대장님.”
“왜요?”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거기 담배꽁초 떨어졌는데 말입니다.”
“뭐라고요?”
윤태민 2소대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유선영 하사는 태연하게 다시 말해줬다. 그것도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말이다.
“거기 말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꽁초 말입니다. 그거 제대로 버리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기 병사들도 있는데 담배꽁초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자신을 훈계하는 말투에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 미치겠네. 이제 별의별 것들이 다 시비네.’
윤태민 2소대장은 표정을 잔뜩 굳힌 채 유선영 하사에게 걸어갔다.
“이봐요, 유 하사.”
“네.”
“유 하사는 내가 그렇게 만만해요?”
“만만한 것이 아니라, 제가 봤을 때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담배꽁초 그냥 바닥에 버리셨지 않습니까. 저기 휴지통이 버젓이 있는데 말입니다.”
“아놔, 미치겠네.”
윤태민 2소대장이 어이없어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황하나 하사가 재빨리 나섰다.
“아이고 두 분 또 왜 그러십니까. 제가 치우겠습니다. 그냥 가십시오, 2소대장님.”
“됐어요!”
윤태민 2소대장은 유선영 하사를 한 번 노려본 후 몸을 홱 돌려서 자신이 담배를 피웠던 곳으로 갔다. 거기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유선영 하사를 빤히 바라보며 담배꽁초를 흔들었다.
“자, 됐죠!”
“······.”
윤태민 2소대장은 바로 몸을 홱 돌려서 자기 갈 길로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는 윤태민 2소대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유선영 하사였다. 황하나 하사도 걸어가려는데 멈칫했다.
“유 하사, 안 가?”
“잠시만.”
유선영 하사는 저 멀리 사라지는 윤태민 2소대장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윤태민 2소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홱 하고 던져 버렸다.
그러면서 별생각 없이 뒤를 돌아봤는데 유선영 하사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유선영 하사는 거기서 끝냈으면 괜찮았다. 그런데 자신을 보며 흠칫 놀라는 윤태민 2소대장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자.”
황하나 하사가 유선영 하사에게 말했다. 유선영 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갔다.
“그런데 유 하사.”
“응?”
“2소대장님하고 왜 그래?”
“뭐가?”
“아니, 내가 지금 지켜보는데 왠지 네가 2소대장님을 자극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 그런 거 아니야. 황 하사 너도 얘기 들었지?”
“뭘?”
“2소대장 조만간 다른 곳으로 전출 가는 거.”
“듣긴 했지.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해?”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2소대장 사고 쳐서 4중대에서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더라고. 그런데 굳이 내가 살갑게 굴 필요 있어? 솔직히 다른 소대장님들 전부 2소대장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흔들던데. 그러다가 괜히 2소대장이랑 친하게 지내다가 같은 취급 받고 싶지 않아.”
“뭐, 그건 그렇지.”
“그건 그렇고 황 하사는 어때? 3소대장님이랑 잘 지내?”
“3소대장님이랑? 으음······. 솔직히 잘 지낸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왜? 그래도 같은 여자인데 잘 챙겨 주지 않아?”
“아니, 처음에 3소대장님이 여자고 해서 내심 반가웠는데 나하고는 묘하게 안 맞는 느낌이네.”
“그래?”
“응. 군 생활이 영 쉽지가 않네.”
윤태민 2소대장은 걸어가며 인상을 썼다.
“시발 진짜 같잖은 것이······. 감히 나에게? 진짜 옛날이었으면 찍소리도 못할 년이······.”
휴게실로 온 윤태민 2소대장이 씩씩거렸다.
“아무리 자신이 우스워도 어디 부사관 따위가······. 그것도 새로 온 신참 부사관 따위가······.”
윤태민 2소대장은 속이 부글거렸다.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 할 그런 일들이었다. 격세지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별로 볼 것도 없는 것이 아주 그냥······. 어후 진짜!”
윤태민 2소대장이 홀로 열불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 휴게실 안으로 김호동 하사와 이기상 하사가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윤태민 2소대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에이씨······.”
윤태민 2소대장이 담배를 비벼 끄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이기상 하사가 중얼거렸다.
“에이, 진짜······. 2소대장 언제 전출 갑니까?”
김호동 하사가 슬쩍 물었다.
“왜 그럽니까. 불편합니까?”
“당연히 불편하죠. 얼마 전까지 제가 부소대장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불편하면 이 하사가 4중대에 안 오시면 되지 않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매일 부식차가 와야 하는데······.”
“뭐,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언제는 4중대 뜨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소원 이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죠. 하지만 제가 또 고향은 잊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죠.”
이기상 하사가 피식 웃었다. 이기상 하사는 대대로 들어가 그곳에서 부식 담당관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김 하사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까지 4중대 뜨고 싶어서 안달이지 않았습니까.”
“제가 언제 말입니까?”
“에이, 피차 알 건 다 아는 사람끼리 계속 이럴 겁니까?”
“하하하, 그건 아니죠. 참, 오늘 환영식도 올 거죠?”
“당연히 가야죠. 가는데 우리끼리 따로 술 마셔도 되는 겁니까?”
김호동 하사가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이기상 하사가 손을 흔들었다.
“안 될 건 또 뭐가 있습니까. 부사관들이 새로 오면 환영식 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새삼스럽게 말을 하고 그럽니까.”
“그렇긴 하죠. 그런데 두 사람 다 여자라······.”
“그렇지 않아도 행보관님이 슬쩍 물어봤다고 합니다. 우리 부대 전통이 있어서 환영식을 하는데 지난번에 중대장님이 마련한 걸로 퉁 칠 것이냐. 그랬더니 황 하사도 그렇고, 유 하사도 그렇고 그냥 환영식 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렇습니까?”
“어? 의외입니다. 보통 여자들은 딱히 환영식 하는 것을 별로라고 생각하던데 말입니다.”
“그만큼 차별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보다 이 하사는 누가 마음에 듭니까?”
“네? 황 하사와 유 하사 중에서 말입니까?”
“네.”
“당연히 황 하사 아닙니까.”
“그렇죠. 황 하사는 확실히 눈에 띄죠.”
“유 하사도 자세히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 이 하사는 유 하사 같은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냥 슬쩍 봤는데 조금만 꾸미면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김호동 하사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가. 난 황 하사가 나은 것 같던데 말입니다.”
“에이. 황 하사는 노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갑니까?”
“그런 사람이 있긴 하던데 말이죠.”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뭐······.”
김호동 하사는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몰랐다. 벌써 한 번 황하나 하사에게 차였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기상 하사는 어디서 들었는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김 하사.”
“네?”
“내가 듣기로는 대차게 한 번 까였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크흠······.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전 까인 적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소문이 파다하던데······.”
“어험! 담배 다 피우셨죠? 빨리 업무 보러 갑시다.”
김호동 하사가 서둘러 이기상 하사를 끌고 갔다. 그런데 잠시 후 휴게실 뒤편에 숨어 있던 윤태민 2소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휴게실 뒤편으로 옮겨서 숨어 있었던 것이다.
“뭐야. 그러니까 오늘 지들끼리 환영회를 한다고? 아무튼 당나라부대도 아니고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시네.”
윤태민 2소대장이 투덜거리며 휴게실을 벗어나는데 그 자리에 멈칫하더니 아까 두 사람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잠깐 환영회를 한다고?”
윤태민 2소대장은 지난 회식 때 황하나 하사는 술을 잘 마셨고, 유선영 하사는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웃긴 것은 꾸역꾸역 술을 마셨다는 것이었다. 또 인사불성이 되어서 황하나 하사가 어렵게 부대 숙소까지 데리고 갔다는 소문도 들었다.
“음, 그렇단 말이지. 만약에 이번에도 술에 취하면······.”
윤태민 2소대장 입가로 스르륵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의 머릿속으로 뭔가 재미난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래. 이번 기회에 기어오르지 못하게 완벽하게 찍어 눌러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