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2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1)
“맞는 말씀입니다.”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간부들은 서로 하하 호호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반면 우연치 않게 그 얘기를 듣게 된 윤태민 2소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이러다가 체하겠네.’
어쨌든 윤태민 2소대장은 모든 일이 불편했다. 아니, 중대장과 함께 있는 자리는 가시방석이었다. 그래서 먹던 치킨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대장님 저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먼저 가 봐.”
“네.”
그런데 눈치 없는 유선영 하사가 윤태민 2소대장을 불렀다.
“저기 소대장님.”
“왜요?”
“치킨 다 드신 겁니까?”
“그런데요.”
“그럼 제가 먹어도 되는 겁니까?”
“마음대로 해요.”
“감사합니다.”
유선영 하사가 환하게 웃으며 윤태민 2소대장이 딱 하나만 먹고 남긴 치킨 박스를 챙겼다. 그 모습을 본 윤태민 2소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유선영 하사가 4중대에 부임하고 나서 처음으로 감사하다 하며 웃는 모습을 본 것이다.
‘하아, 어이가 없네. 저런 것을 부소대장이라고······.’
윤태민 2소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식당을 벗어난 윤태민 2소대장은 곧장 행정실로 들어갔다.
그 시각 닭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호되게 당한 방대호 사장은 방대철 주임원사에게 하소연했다.
“형! 이게 뭐야. 형이 알아서 다 한다며.”
“인마. 거기서 대대장님께 보고하겠다고 협박을 하는데 내가 거기서 뭐라고 답을 해.”
“아니, 형은 주임원사라면서 그 정도도 안 돼?”
“야! 아무리 주임원사라고 해도 대대장을 어떻게 해. 막말로 대대장 눈 밖에 나면 부식사업 하지도 못해.”
“형! 그깟 부식사업 때문에 나한테 이런 거야?”
“대호야. 누가 썩은 닭을 튀겨서 가져가래.”
“그거 썩은 닭 아니거든?”
“그럼 네가 먹을 수 있어?”
“······그걸 왜 못 먹어. 먹을 수 있어.”
“그래? 좋아. 어디 한번 먹어봐. 당장 먹어봐. 내가 봐도 닭이 아주 그냥 잡내가 심하던데.”
“그 정도는 아니거든.”
방대호 사장은 식당에서 수거한 치킨들 중 닭다리 하나를 들어서 확 깨물었다. 순간 훅 하고 치미는 누린내와 뭔가 찝찝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퉷 하고 입에 있던 것을 뱉어냈다.
“저 봐. 지도 못 먹을 것을 병사들에게 줬으니······.”
“식어서 맛없는 거거든. 그리고 형이 언제 병사들을 그렇게 챙겼다고.”
“야. 나 주임원사야. 대대에서는 엄마야. 막말로 애들이 전부다 소원수리 적어서 17연대 치킨에 문제 있다고 적으면 어쩌려고 그래.”
“그게 형이 지금 할 소리야.”
“인마! 너 나 때문에 지금 이 정도로 넘어간 거야. 너 나 아니었으면 다시는 여기서 장사 못 해. 아니지, 4중대장이 고소했을지도 모르지.”
물론 주임원사로서 뭔가 해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오상진이 이 정도에서 끝내준 것만 해도 자신이 신경 써준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오상진은 딱히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하아, 제기랄······. 이번 달도 손가락 빨게 생겼네.”
방대호 사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니까 너는 되지도 않는 사업하지 말고 내 말 듣고 부식사업이나 해.”
방대호 사장이 눈을 반짝였다.
“형! 진짜 그거 하면 돈 벌 수 있는 거야?”
“이 자식은 속고만 살았나. 형이 그랬잖아. 너는 정해준 물건만 받아서 배달해 주면 되는 거야.”
“중간에서 형이 해 먹고.”
“새끼가 말은 꼭 그렇게 하냐. 관리비라고 했잖아. 관리비! 어차피 다른 누군가가 해 먹을 것을 내가 해 먹는 건데. 뭐가 문제야. 안 그래?”
“그래서 진짜 나 제대로 챙겨 줄 거야?”
“너 하는 거 봐서.”
“뭐야. 이랬다저랬다. 나 고생만 하라고?”
방대호 사장이 불만 어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러자 바로 방대철 주임원사가 말했다.
“처음부터 어떻게 다 해줘. 너도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할 거 아니야.”
“형! 나 치킨만 여기서 8년째거든.”
“8년이나 치킨 해놓고 꼬라지 봐라. 지금 이게 장사 잘되고 있는 거냐.”
“아, 진짜······. 아무튼 나 형 한 번만 믿는다. 나 망하면 완전 끝이야. 그러면 형이 책임져야 해.”
“안 망해, 걱정하지 마.”
방대철 주임원사기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탁자를 두드렸다.
“야, 치킨 한 마리 튀겨 오고 오늘 늦게까지 술이나 마시자. 셔터 내려라.”
“에이씨! 나도 모르겠다.”
방대호 사장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방대철 주임원사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이씨, 배 아프지 말입니다.”
“너도 그러냐. 나도 그런데······.”
4중대 병사들 중에서 수십 명이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먹었을 때는 괜찮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탈이 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상진에게 보고가 되었다.
“중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애들이······.”
“뭐?”
오상진은 곧바로 군복으로 갈아입고 4중대로 차를 몰았다. 도착하자 복통을 호소하는 4중대 병사들이 의무대로 실려 갔다.
“도대체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상한 치킨을 먹었더니······.”
“상한 치킨? 무슨 소리야.”
중대 회식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병사들 중에서 누군가가 상한 치킨이 왔는데 그것을 돌려보내고 새로운 치킨을 먹었다. 그전에 상한 치킨을 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의무대 입장에서도 식중독이라는 것에 대해 보고가 올라갔고, 오상진도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이 보고를 했다.
똑똑똑!
“들어와.”
난을 닦고 있던 송일중 대대장이 고개를 돌렸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급히 들어오며 보고했다.
“대대장님 4중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 무슨 문제!”
송일중 대대장의 눈빛이 사납게 바뀌었다. 얼마 전 윤태민 2소대장의 일을 간신히 해결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에 잔뜩 열이 난 것이다.
“4중대에서 집단 식중독이 발생했습니다.”
“식중독? 도대체 뭘 했기에!”
“4중대장 말로는 중대 회식을 했는데 그때 먹은 치킨 때문에 식중독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한답니다.”
“병사들은?”
“식중독으로 걸린 병사들은 전부 의무대로 보냈습니다.”
“도대체 치킨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아무래도 상한 치킨을 먹었던 모양입니다.”
“상한 치킨? 4중대에서 상한 치킨을 가지고 중대 회식을 했단 말이지.”
“일단 듣기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허허, 오상진 이 자식 만날 잘난 척을 그렇게 하더니······. 병사들에게 상한 치킨을 먹여서 식중독에 걸리게 만들어!”
“······.”
“그보다 이 자식은 왜 나에게 보고를 안 해.”
“대대장님.”
“왜?”
“오 대위가 계속 대대장님께 연락을 취했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런데 통화가 안 된다고······.”
“뭐?”
송일중 대대장이 휴대폰을 확인해 봤다. 정말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들어와 있었다.
“아······. 그 전화가 그 전화였나?”
송일중 대대장은 아침 일찍 오상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또 무슨 쓸데없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싶어 아예 무음으로 바꿔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설마 그 전화가 식중독에 관한 보고인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오 대위가 나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핑계로 한마디 하려고 했더니.’
입맛을 다시던 송일중 대대장이 홍민우 작전과장에게 말했다.
“자네가 직접 가서 철저히 조사해.”
“제가 말입니까?”
“그럼 내가 갈까?”
“아닙니다.”
“아무튼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오상진 이 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아.”
“네. 알겠습니다.”
홍민우 작전과장은 오상진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들떴다. 그렇게 4중대에 내려간 홍민우 작전과장은 전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행보관 다시 한번 말해보시죠. 17연대에서 주문한 닭이 폐기되어야 할 것이 튀겨져 왔다는 겁니까?”
“네. 과장님.”
“그래서 4중대장이 전량 돌려보내고 새로운 닭은 주문해서 병사들하고 회식을 했다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4중대장은 그 치킨이 폐기해야 하는 닭이라는 것을 전혀 모랐고, 병사들이 먹었다는 말이죠.”
“네. 사실 거기 치킨집에서 장난을 친 것 같습니다.”
“장난요?”
“네. 거기서 우리들에게는 좋은 닭을 주고 병사들에게는 폐급 닭을 줬던 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4중대장이 병사들이 잘 먹고 있나 일일이 확인을 하다가 닭 뼈 색깔이 이상하고 냄새도 나고 그래서 그것 가지고 전부 확인을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홍민우 작전과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 치킨집을 섭외한 것입니까?”
홍민우 작전과장은 그것으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김태호 상사가 조용히 말했다.
“그게 말입니다. 치킨집은 제가 찾았습니다.”
“행보관이요?”
“네네. 거기 아실지 모르겠지만 17연대 치킨이라고······.”
“17연대 치킨? 아······.”
홍민우 작전과장은 거기가 어딘지 알고 있었다. 홍민우 작전과장도 몇 번 거기서 시켜 먹었는데 정말 맛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대 주임원사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가신 겁니까?”
“저도 여기서 몇 번 시켜 먹어봤었고, 거기가 또 상대적으로 저렴하지 않습니까. 중대장이 직접 사비로 치킨 100마리 넘게 산다고 하는데 어쨌든 좀 아끼자는 생각에 제가 적당히 가격을 맞추다 보니 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흐음, 이거 참 난감하군요.”
막말로 17연대를 엮으면 아마도 주임원사가 난리를 칠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처리를 잘하셨습니까?”
“네.”
“그래도 이 일 지휘관으로 경솔했습니다. 일일이 확인을 했어야죠. 병사들에게 폐기된 닭을 먹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만약에 이 일로 처벌을 하시려면 저를 해주십시오. 솔직히 중대장님은 잘못이 없고 병사들이랑 회식을 한번 하시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4중대 분위기도 흉흉해서 말이죠. 뭐 그 일 가지고 뭐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중대장님은 절대로 잘못이 없습니다.”
“으음······.”
김태호 상사가 이렇게 나올 줄을 몰랐다. 솔직히 홍민우 작전과장은 오상진의 잘못으로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이유가 어떻든 병사들을 저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했다.
“그래도 4중대 책임자로서······.”
“과장님. 솔직히 폐기된 닭을 가져다준 사람은 17연대 치킨집입니다. 저희는 그곳을 믿었고, 직접 사비까지 주며 주문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마음 같아서 경찰에 신고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신고?”
“그러려고 했는데 중대장님이······. 과장님도 아시죠. 거기 주임원사 동생분인 거.”
“어어, 그랬던가요?”
홍민우 작전과장은 일부러 모른 척했다.
“어쨌든 그 일 때문에 부대가 또 시끄러워지면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조용히 치킨값 받아내고 새로운 치킨을 결제해 주는 것으로 끝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