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30)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81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30)
요새 송일중 대대장이 육본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기 때문에 대대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방대철 주임원사는 송일중 대대장에게 친근하게 굴면서도 뒤로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송일중 대대장에게 괜한 빌미를 제공한다면? 육본으로 올라가기 전에 대대장이 모든 걸 다 뒤집어 엎어버릴지도 몰랐다.
송일중 대대장은 지난번 윤태민 2소대장 건 때문에 육본으로 올라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이 일까지 알게 된다면 자신의 평판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더 난리를 칠 가능성이 높았다.
‘대대장의 귀에 들어가게 해서는 절대로 안 돼!’
방대철 주임원사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다시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다른 뜻을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때마침 치킨집에 있었는데, 동생이 걱정을 하기에 형이 되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설마 이 일을 가볍게 여기겠습니까.”
방금 전 본인이 했던 말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방대철 주임원사가 쩔쩔맸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죠, 주임원사님.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죠.”
“네네, 그럼요.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제대로 배상과 책임을 져야죠.”
방대철 주임원사가 말을 하고는 동생인 방대호 사장을 바라봤다. 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저 형은. 다 알아서 처리한다면 큰소리를 뻥뻥 치더니. 책임지기는 뭘 책임진다는 건지.’
하지만 방대철 주임원사는 여기서 더 이상 나설 수는 없었다. 부식을 맡기고 자시고 간에, 이 일을 가지고 옷을 벗기라도 한다면 답이 없는 것이다.
‘이거 뭐 부식비를 빼돌리려고 하다가 옷 벗을 수는 없지.’
방대철 주임원사는 여기서 슬쩍 빠지려고 했다.
“방대호 사장. 여기 중대장님에게 잘 말씀드렸으니까 얘기를 잘해요.”
갑자기 방대호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혀엉······ 아니, 주임원사님. 이러시면은······.”
방대철 주임원사가 재빨리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야야, 어쩔 수 없어. 얘기를 잘해서 대충 물어주고 끝내.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그 말과 함께 그는 서둘러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시동을 걸자마자 부웅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 모습을 보던 방대호 사장이 화를 냈다.
‘아니, 시발. 갈 때 가더라도 날 데려다줘야 할 거 아니야.’
욕지거리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지는 못했다. 김태호 상사가 방대호 사장을 불렀다.
“방 사장님. 얘기 좀 하실까요.”
“네네.”
방대호 사장은 최대한 굽실거리며 다가왔다. 식당 한구석에 오상진 김태호 상사 방대호 사장이 자리했다. 방대호 사장은 연신 땀을 훔치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방대호 사장이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닭에 문제가 있으니까 제가 다시 튀겨 오겠습니다. 그러면 어떠시겠습니까?”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곤란하죠.”
“네?”
“지금 한참 회식 중이었습니다. 오늘 특별히 날짜를 잡고 중대장님께서 시간을 내신 건데 언제 닭을 튀겨서 가져옵니까? 지금 닭은 있습니까?”
“닭은 뭐······ 금방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한두 시간 안에 100마리 넘는 닭을 다 튀길 수는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합니다.”
“아뇨. 그러지 말고 그냥 배상하시죠.”
김태호 상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방대철 사장은 바로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배상이라고 하시면 치킨값만 배상해 드리면 됩니까?”
방대철 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상진 역시 그렇게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태호 상사는 생각이 달랐다. 자신이 책임지고 이 일을 추진했는데 상한 닭을 튀겨 오지 않나, 더불어 주임원사까지 방패막이로 데리고 와 무마하려 하다니, 짜증이 확 치솟았다.
“사장님 그러시면 안 되죠.”
“네?”
“지금 이미 저 닭을 먹은 병사가 있습니다. 그럼 만약 그 닭을 먹고 탈이 난 병사는 어떻게 합니까?”
“그건······.”
방대호 사장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김태호 상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닭 좋은 거로 해달라고 말입니다. 중대장님께서 특별히 사비를 털어서 해준신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십니까?”
김태호 상사는 잔뜩 화가 난 상태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신경을 못 쓰고······.”
“이게 어디 한두 마리입니까? 병사들 먹는 모든 것이 다 상태가 안 좋고 그런데 간부들이 먹는 것은 또 괜찮습니다. 이거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그게 어쩌다 보니까······.”
방대호 사장은 이러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렸다. 김태호 상사는 조금 전 치킨 옮길 때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아까 치킨 옮겨드린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일부러 그러신 것 같은데요.”
방대호 사장이 바로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욕했다.
‘하, 시발······.’
김태호 상사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오상진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태호 상사의 말이 끝나자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해도 행보관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중대 회식이라는 것이 매일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자리를 모은 것입니다. 병사들 역시 실망이 클 겁니다. 오늘 저는 폐닭을 먹이는 그런 중대장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김태호 상사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말입니까?”
“다른 치킨집에서 배달 주문을 시키겠습니다. 그거 대신 결제해 주십시오.”
“다, 다른 치킨집에서 말입니까?”
“왜요. 힘드시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제가 직접······.”
“제가 어떻게 사장님을 믿고 맡깁니까? 이미 잃어버린 신뢰 아닙니까. 게다가 생각을 해보십시오. 치킨이 어디 한두 마리입니까? 무려 100마리입니다. 지금 저희를 가지고 장난하십니까?”
“죄송합니다.”
“그리고 드렸던 치킨 값은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네에? 그럼 저는 손해가 막심한데······.”
“방 사장님!”
김태호 상사가 눈을 부릅뜨며 불렀다. 방대호 사장이 그 눈을 보며 움찔했다.
“애당초 안 그러셨으면 되지 않습니까. 솔직히 묻겠습니다. 정말 몰랐습니까? 이거 정말 우연의 일치입니까? 닭 손질을 할 때 확인하지 않으셨습니까. 100마리입니다. 정말 이걸 몰랐습니까? 자꾸 이러시면 저희는 경찰을 부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다 하겠습니다.”
방대호 사장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쉬며 오상진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봤다. 막말로 이렇게 된 이상 답은 없었다. 불쌍한 눈빛으로 동정심을 얻어 닭값을 조금이라도 받아낼 요량이었다. 하지만 오상진도 김태호 상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굳이 여기서 착한 척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자세한 얘기는 행보관님께서 처리해 주십시오. 저는 속이 좀 거북해서 화장실 좀 가야겠습니다.”
“아, 많이 불편하십니까?”
김태호 상사가 좀 과장 된 몸짓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상진이 애써 괜찮다며 손을 들었다.
“아닙니다. 마무리 좀 부탁드립니다.”
“네. 여긴 걱정 마십시오.”
오상진이 그 자리를 떠났다. 방대호 사장은 울상이 되었고, 김태호 상사는 더욱 기세등등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경찰을 부를까요?”
“저기 행보관님······. 저희도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러시면 손해가······.”
“자꾸 손해 손해 하시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서로에게 좋을 것 없습니다. 병사들의 입이 얼마나 가벼운데 말이죠. 만약 병사들의 입에서 사장님의 가게 평판에 대해서 나오면 장사하시겠습니까?”
‘하아, 시발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반만 섞는 건데······.’
방대호 사장은 후회를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문은 저희가 할 테니까 결제는 알아서 해주십시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네, 알겠습니다.”
방대호 사장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모처럼 푼돈 좀 챙기려다가 목돈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오후 부대에 다시 따끈따끈한 치킨이 도착했다. 다시 한번 식당에는 치킨 파티가 벌어졌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치킨들을 보며 누군가 말했다.
“이것도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이놈들아! 문제없으니까 먹어라.”
그 말에 병사들이 하나둘 치킨을 뜯었다. 확실히 치킨 색깔이 달랐다.
“와. 이거 너무 맛있는데 말입니다.”
“이게 진정한 치킨이지.”
“그럼 우리 조금 전에 먹었던 치킨은 진짜 뭡니까?”
“와이씨. 이러다가 나 설사하는 거 아닙니까.”
“설사? 야 이 새끼야. 치킨 먹는데······. 더럽게.”
“위장이 놀랄 것 같아서 그럽니다.”
병사들은 저마다 치킨을 뜯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방대호 사장이 폐기된 치킨을 수거해 갈 때만 해도 아쉽다며 손가락을 빨았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처박고 치킨을 흡입했다.
“얘들아. 한 박스씩 받았지?”
“네.”
“이놈들아. 아무리 급해도 중대장님께서 이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먹자!”
물론 아까 인사는 받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새로운 치킨이 왔다. 병사들 역시 김태호 상사의 말에 다시 한번 외쳤다.
“중대장님 잘 먹겠습니다.”
“완전 최고입니다.”
“중대장님 최고!”
그런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들 맛나게 먹어라.”
모든 병사들이 치킨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본 다음에 오상진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소대장들과 부사관들도 치킨을 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뭐해, 안 먹고.”
“중대장님께서 아직 드시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요즘 세상에 뭘 그런 걸 가지고······. 자자, 먹자고.”
오상진이 치킨 다리 하나를 들었다. 그제야 간부들도 환한 표정으로 치킨을 뜯었다. 그렇게 먹고 있는데 장하나 하사가 오상진을 불렀다.
“중대장님.”
“응?”
“여기 닭다리 하나 드십시오.”
“아이고 장 하사. 날 이렇게 챙겨주고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중대장님 챙겨드려야죠.”
장하나 하사가 싱긋 웃으며 자리로 갔다. 그 모습을 꼴사납게 바라보는 박윤지 3소대장이었다. 여태까지 여자군인이라고는 박윤지 3소대장뿐이었다. 그런 박윤지 3소대장이 살갑지 않아서일까? 다른 간부들은 그런 장하나 하사의 행동을 보며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김태호 상사가 슬쩍 오상진에게 말했다.
“저기, 중대장님.”
“네.”
“노파심이긴 한데 주임원사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저 양반 뒤끝이 심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대 주임원사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생이 잘못한 일을 가지고 간섭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군대의 부조리가 이런 식으로 쌓이면 발전은 하지 못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