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2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78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27)
하지만 저 두 사람이 있으면 느낌상 거의 짱박혀 있고 공만 달라고 난리를 칠 것 같았다.
‘중대장님이 보고 계시는데 너희들을 쓸 수는 없지.’
지난주 회식 자리에서 듣기로 오상진은 과거 소대장 시절에 중대를 우승까지 올려놓았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김진수 1소대장도 책임감이 무거웠다. 하물며 이번 체육대회에서 가장 점수가 많은 것이 축구와 줄다리기였다.
다른 것보다 김진수 1소대장은 축구에서 우승해 오상진에게 눈도장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렇게 연병장 달리기가 이어질수록 30명에서 20명으로 줄어들었다.
삐이이익!
김진수 1소대장이 호각을 불러서 연병장 달리기를 멈췄다. 병사들이 저마다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했다.
“자, 다들 고생했다. 그 상태로 숨을 고르면서 듣는다. 탈락자들은 한쪽으로 빠지고 나머지는 공을 찰 준비를 해.”
“알겠습니다.”
“10분간 휴식 후 다음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병사들이 한쪽에 앉았다. 바로 이등병들이 움직여 주전자에 물을 받아왔다.
“와, 여기 물!”
“네.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병사들이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10여 분이 흐른 후 김진수 1소대장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익!
“휴식 끝! 자, 이번에는 공 좀 차보자.”
두 사람씩 편을 짜서 패스하는 모습. 공의 위치와 때리는 발의 위치까지 하나하나 보며 체크를 해나갔다.
김진수 1소대장은 패스를 잘하는 녀석을 보며 다가갔다.
“너!”
“상병 최윤호.”
“몇 소대야?”
“4소대입니다.”
“4소대······. 너는 패스가 좋다.”
“감사합니다.”
“혹시 축구 선수 했었냐?”
“아뇨,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그렇군. 너 특별히 하고 싶은 포지션은 있어?”
“저는 어디든 다 자신 있습니다.”
“그래? 수비도 가능해?”
“수비는 좀······.”
“왜? 힘들겠어?”
“기왕 축구를 하는데 공격수를 했으면 합니다.”
“물론 널 공격수를 시키고 싶은데 축구를 하다 보면 전부 다 공격하려고 올라가잖아. 그러면 수비가 비어서 개판이 되어버리잖아.”
“그게 또 군대스리가의 매력 아닙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사실 이번 체육대회에 중대장님의 기대가 엄청 커. 그래서 윤호, 네가 우리 중대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줬으면 좋겠다.”
김진수 1소대장이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니 최윤호 상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수비를 맡긴다고 하는 것은 아니야. 수비도 좋지만 너를 중앙에서 수비와 공격을 다 조율했으면 좋겠는데.”
“그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좋아!”
김진수 1소대장이 흐뭇한 얼굴로 최윤호 상병을 적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김진수 1소대장이 애들을 선발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홍일동 4소대장이 혀를 내둘렀다.
“어후, 1소대장님.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잘 뽑으십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3소대장은 선수 뽑았습니까?”
“아뇨. 죄다 축구에 몰려가서 말입니다. 축구 테스트 끝나면 그때 한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에 족구를 말년 병장들이 한다고 인식하는 애들이 많아서 말이죠. 그래서 족구 하려고 하는 애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2소대장 씨름 선수는 다 구했다고 합니까?”
홍일동 4소대장의 물음에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합니다. 듣기론 거의 강제적으로 찍어서 뽑았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음,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어쩔 수 없죠. 2소대장은 어쨌든 중대장님께 찍혔고, 이제 와 열심히 한다고 하는 것도 우습죠. 조만간 다른 부대로 전출 갈 건데요.”
“하긴 그렇죠.”
홍일동 4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번뜩 생각이 나서 다시 물었다.
“참, 3소대장님.”
“네?”
“우리 내기 하나 하겠습니까?”
“무슨 내기를 말입니까?”
“우리 각자 맡은 종목이 있지 않습니까.”
“네.”
“만약에 좀 더 순위가 높은 쪽 소원 들어주길 하죠.”
“소원? 무슨 소원 말이죠?”
“에이, 그건 말하면 안 되죠.”
그러자 박윤지 3소대장이 빤히 홍일동 4소대장을 바라봤다. 사실 박윤지 3소대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홍일동 4소대장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홍일동 4소대장이 빤히 바라보는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
“아, 절대 이상한 소원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예.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좋습니다. 그럼 전 더욱 힘을 내 보겠습니다. 절대 질 생각 없습니다.”
“후후후,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활활 타올랐다. 김진수 1소대장이 고개를 돌려 홍일동 4소대장을 바라봤다.
“4소대장.”
“네.”
“자네 말이야. 심판을 봐줄 수 있나?”
“심판 말입니까?”
“그래. 이제 대충 20여 명 정도 남았는데 이대로 하는 것보다는 나눠서 연습경기를 봤으면 하는데.”
“네.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가 심판 보겠습니다.”
“어, 그래.”
박윤지 3소대장이 말했다.
“그럼 저는 뭐 합니까?”
“3소대장은 점수 좀 체크해 주고, 누가 골을 넣었는지 적어주고.”
“네, 알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두 소대장을 나름 활용했다. 운동 좋아하고 체력 좋은 4소대장에게는 심판을, 꼼꼼한 면이 있는 3소대장을 외면하지 않고, 기록원을 맡겼다. 자신은 병사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체크할 생각이었다.
그사이 오상진은 차를 주차한 후 연병장에 모인 병사들을 봤다.
“으음, 지금 한창 축구선수를 뽑고 있으려나.”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봤다. 병사들이 열심히 뛰어놀고, 소대장들이 옆에서 같이 함께하는 것을 보고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이제야 좀 중대다운 느낌이 드는군.”
오상진은 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지나고 다들 각자 내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스피커를 통해 김태호 상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행정반에서 전한다. 경계 병력을 제외한 모든 4중대 병력은 식당으로 모이길 바란다.
방송이 나오고, 한창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력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모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제가 듣기로는 오늘 부대 회식을 한다고 합니다.”
“회식? 나 못 들었는데.”
“가 보면 알겠지 말입니다.”
“에이, 무슨 회식이야.”
“그런데 메뉴는 뭐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라면 가지고 생색내는 것 아닙니까?”
“라면? 에이, 아무리 그래도 부대 회식인데 무슨 라면이야. 삼겹살이면 또 모를까.”
“삼겹살? 와, 완전 입에서 군침 돕니다.”
“됐어! 절대 삼겹살 안 나와.”
그렇게 모든 병력이 식당에 모였다. 병사들은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냄새부터 맡았다.
“헉! 이, 이건 치킨 냄새 아닙니까.”
“치킨?”
다들 놀란 눈이 되며 냄새를 쫓아 시선이 옮겨졌다. 식당 옆 차에서 한가득 실려 있는 치킨이 내려지고 있었다.
“오오오, 대박! 진짜 치킨입니다. 치킨이 배달되어 왔습니다.”
“야, 흥분하지 마. 우리에게 안 줄 수도 있어. 간부들 것일 수도 있잖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기 양 보십시오. 어마어마합니다.”
“뭐지?”
병사들은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식당으로 다 들어왔다.
“자자, 빨리 자리에 앉았다. 각 중대별, 소대별로 앉아라.”
“네,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의 지시로 병사들이 자리했다. 각 소대 부사관들도 함께 움직였다. 17연대 통닭집 사장인 방대호는 기분 좋은 얼굴로 치킨을 내렸다.
“저희들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자신을 돕겠다는 장교들을 만류하고 방대호가 직접 옮기며 스캔했다.
‘음, 저쪽이 병사들이고 이쪽 책상이 간부들 자리구나. 그럼 이것은 이쪽으로 빼야지.’
방대호은 두 종류의 닭을 튀겼다. 하나는 상태가 안 좋은 폐급 닭들로 튀겼고, 나머지 30마리 정도는 상태가 좋은, 매장에서 직접 파는 그런 것으로 준비를 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는 안 되지만 어차피 병사들은 닭에서 조금 누린내가 나더라도 치킨이라고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방대호가 치킨을 옮기고 있는데 오상진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방대호 사장은 오상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김태호 상사가 소개했다.
“이분이 저희 중대장님이십니다. 중대장님 치킨집 사장님.”
“네. 오상진 대위입니다.”
“아, 네네. 중대장님.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100마리가 넘는 닭을 튀기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방대호는 손까지 흔들며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마리당 5천으로 해서 120마리면 60만 원이었다. 오상진은 바로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네?”
“치킨값입니다.”
방대호가 흰 봉투를 받아서 확인해 봤다. 현금으로 돈이 들어 있었다.
“아이고, 현금으로 주십니까?”
“기왕이면 현금이 좋지 않겠습니까.”
“네네. 그렇죠.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앞으로도 자주 애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방대호는 치킨값이 든 돈 봉투를 챙겨서는 차를 타고 갔다. 다시 식당으로 들어온 오상진은 쭉 훑어봤다. 모두에게 치킨 한 마리씩이 돌아가 있었다. 다들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김태호 상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놈들아! 누가 먼저 치킨을 먹으라고 했냐. 아직 중대장님께서는 손도 안 댔는데. 망할 놈들!”
병사들이 치킨 뚜껑을 열어 기름 냄새를 맡다가 후다닥 다시 뚜껑을 닫았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다들 점심은 맛나게 먹었냐?”
“네, 그렇습니다.”
“점심 먹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래도 중대장이 부대에 오고 제대로 얘기도 못 한 것 같고. 이래저래 사건 사고도 많았다. 그래서 중대장이 치킨을 준비했다. 다들 맛있게 먹기 바란다. 한 사람들 치킨 한 마리씩이다. 다들 받았나?”
“네.”
“못 받은 사람, 거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하고. 그리고 음료수는 콜라로 각 테이블당 피처 5개씩 돌아가게 했으니까. 그것 역시 모자라면 말하고.”
“네, 알겠습니다.”
“이제 먹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 뒤로 병사들은 걸신들린 듯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입안 가득 치킨의 흰 살과 육즙과 어울린 기름이 쭉 나왔다.
“오오오, 치킨······. 너무 맛있어.”
“얼마 만의 치킨이냐.”
“내가, 그것도 부대 식당에서 치킨을 먹을 줄이야.”
병사들 모두 감격한 듯 치킨을 마치 영접이라도 하듯이 바라봤다. 그렇게 치킨을 먹던 한 병사가 닭다리를 뜯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
“왜?”
“닭에서 약간 냄새가 나지 말입니다.”
“쯧쯧쯧, 아직 넌 사회의 떼를 벗지 않았구나.”
고참의 한마디에 일병이 살짝 억울한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