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2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73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22)
홍일동 4소대장의 말을 듣고 김진수 1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4소대장, 체육대회인데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도 하게?”
“그래도 기왕이면 애들 실력 기준으로 테스트를 해서 뽑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도 고참 위주로 보냈다가 애들 호흡도 안 맞고 그래서 1차전에서 탈락하지 않았습니까.”
“음, 작년에 그랬어?”
오상진의 물음에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답했다.
“네. 중대장님.”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작년에 아주 개판이었습니다.”
“개판?”
“네. 작년에 4중대가 축구를 했지 말입니다. 그런데······.”
홍일동 4소대장은 작년에 했던 축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당시에는 윤태민 2소대장이 나서서 팀을 꾸렸다.
대부분은 그와 친한 병사들 위주로 팀을 만들었다. 그런 바람에 호흡도 맞지 않고, 경기 중에 서로 언쟁하고 1중대에게 일방적으로 졌다고 한다. 그것도 10 대 0으로 말이다.
그때 일이 떠오른 윤태민 2소대장도 이맛살을 찌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상진이 가만히 듣다가 말했다.
“으음, 중대장이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은 전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있었을 때 우리 중대가 대대 축구 시합에서 우승을 했다.”
“어? 그게 정말입니까?”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우승을 시켰습니까?”
“난 솔직히 일일이 실력 테스트를 해서 선수 명단을 뽑았다. 막말로 볼을 좀 차려고 하면 수비도 좀 보고, 골키퍼도 잘하는 애들로 선발해야지. 서로 공차겠다고 달려들면 그것만큼 아수라장인 것은 없어.”
오상진의 말에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말했다.
“하지만 중대장님. 그것이 또 군대 축구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 군대스리가라고도 하잖아. 저돌적인 공격축구. 나도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행보관님에게 듣기론 한 종목도 우승한 것이 없다며.”
“아, 네에······.”
대답을 하는 김진수 1소대장을 비롯해 다들 표정이 굳으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때 당시에는 4중대 성격상 이민식 대위가 그랬다. 4중대가 꼴통들만 모였는데 우리가 잘하면 되냐. 이런 식으로 말했다.
물론 고의로 지지는 않았지만 딱히 다른 중대들처럼 체육대회에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다.
오상진도 그럴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상진이 중대장으로 왔다. 기왕이면 이번 체육대회 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능하면 내 사비를 동원해서라도 이번 체육대회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지급할 생각이야.”
“유니폼 말입니까? 그거 돈이 꽤 들 텐데 말입니다.”
오상진이 바로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이럴 때 대비해서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그것보다 종목 담당을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오상진의 말에 다들 김진수 1소대장과 홍일동 4소대장이 눈을 반짝였다. 둘 다 축구팀을 맡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오상진이 고개를 들어 윤태민 2소대장을 봤다.
“2소대장.”
“네?”
“2소대장이 맡고 싶은 것이 있어?”
“어, 저는······.”
예전이었다면 축구팀을 맡고 싶다고 얘기를 했을 것이다. 축구팀 인원이 많고, 또 그 안에서 이리저리 빼 먹을 것이 많았다. 훈련을 핑계 삼아 농땡이 부릴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상진의 눈치를 보며 축구팀을 결성해 꼴통들을 이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줄다리기라든지 계주 같은 경우는 딱히 종목 담당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만만한 것을 선택했다.
“저는 씨름 하겠습니다.”
“씨름?”
씨름이라는 말에 다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오상진이 다시 물었다.
“2소대장, 정말 씨름을 맡겠다고?”
“네.”
“괜찮겠어?”
“네, 제가 씨름을 맡아서 하겠습니다.”
막말로 씨름은 정말 재미없는 종목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창 인기 있는 종목이 씨름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리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현재는 약간 구색 맞추듯이 남아 있는 종목이고, 연습을 한다고 해도 워낙에 당일 컨디션과 운에 따라서 승부가 결정되다 보니 별 보람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윤태민 2소대장 입장에서는 굳이 종목을 맡으라고 하니, 씨름이 괜찮다고 판단했다.
“그래. 2소대장이 씨름 하기로 하고. 3소대장은 맡고 싶은 종목이 있어?”
“그렇다면 저는 농구 하겠습니다.”
“농구?”
“네.”
“자네 농구 좀 하나?”
“축구보다는 농구 쪽에 좀 더 자신이 있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은 학군단을 하면서 체력 단련으로 구기종목으로 이것저것 해왔다.
그래서 농구도 별문제 없었다. 문제는 먼지 날리는 연병장을 뛰어다니거나 거칠게 몸을 쓰는 족구보다는 그래도 농구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3소대장이 농구하고. 이제 축구랑 족구인데······.”
김진수 1소대장과 홍일동 4소대장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오상진 입장에서는 김진수 1소대장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일단 홍일동 4소대장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4소대장.”
“네.”
홍일동 4소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네는 뭘 맡고 싶나.”
오상진의 물음에 바로 김진수 1소대장의 표정이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그런 김진수 1소대장의 표정을 읽은 홍일동 4소대장은 표정을 떨떠름하게 바꿨다. 막말로 축구팀을 정말 맡고 싶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았다.
“제가 족구 하겠습니다.”
홍일동 4소대장 입장에서는 솔직히 선택권이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눈 감고 축구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양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족구도 뭐, 맡고 싶긴 했지. 2선택이지만······.’
홍일동 4소대장은 속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오상진이 김진수 1소대장을 봤다.
“그럼 1소대장이 축구를 맡아보겠나.”
“아, 네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아. 참고로, 축구는 중대장도 들여다볼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있고.”
2, 3, 4소대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히려 김진수 1소대장은 이렇게라도 오상진과 좀 가까워져서 기분이 좋았다.
“넵, 중대장님.”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난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중대장님.”
“그래.”
“환영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부소대장이 두 명이나 왔는데 말입니다.”
“환영회라······.”
오상진이 말끝을 흐리며 슬쩍 윤태민 2소대장을 봤다. 윤태민 2소대장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오늘은 제가 일이 있어서 환영회 참석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오상진은 윤태민 2소대장이 이런 식으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자기 멋대로 중대를 쥐락펴락해 놓고선 말이다.
“2소대장.”
“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 다 같이 왔는데 환영회를 한다면 당연히 2소대장도 참여를 해야지. 자네 소대 부소대장도 왔잖아.”
“저어 그게······.”
“엄청 급한 일이 아니라면 참석하는 거로 해.”
“알겠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대답을 하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참석하기 싫다는데······. 왜 자꾸 날 못살게 구는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전출을 갈 걸 그랬나.’
윤태민 2소대장이 속으로 짜증을 냈다. 게다가 아직 자신은 유선영 하사와 제대로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환영회를 한다고 하니 짜증이 났다.
어쨌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윤태민 2소대장이 유선영 하사를 불렀다.
“유 하사.”
“네.”
“잠깐 저랑 얘기 좀 나누시죠.”
“네.”
유선영 하사는 드디어 때가 왔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정실을 나온 윤태민 2소대장이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자판 커피를 뽑아서 내밀었다.
“자, 마셔요.”
“감사합니다.”
빈 벤치에 앉은 윤태민 2소대장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유 하사, 혹시 담배 피워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폅니다.”
“그럼 한 대 피워요. 혼자 피우기는 좀 그런데······.”
윤태민 2소대장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그런데 유선영 하사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담배 안 피웁니까?”
“네. 지금은 생각 없습니다.”
‘뭐야. 시발······. 너도 내가 우습냐?’
윤태민 2소대장은 괜히 저런 행동까지 기분이 나빴다.
“오늘 퇴근 후에 환영식이 있다고 합니다.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유 하사 술은 잘 마십니까?”
“잘 마시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잘 취하지도 않습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유선영 하사를 올려다봤다.
‘뭐야. 잘 마신다는 거야. 못 마신다는 거야.’
그가 속으로 빈정거렸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유선영 하사를 빌빌 기도록 만들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유선영 하사에게 무시를 받는 것 같고, 기분이 별로였다. 그렇다고 해서 밟으려고 하니 자신이 지은 죄가 많아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혹시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기 들었어요?”
“자세히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럼 뭐야. 듣긴 들었다는 거네. 벌써 소문이 돌고 미치겠네.’
윤태민 2소대장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동안은 소대장이니까. 잘 부탁합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유선영 하사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딱 부소대장으로서 선을 지키는 그런 행동을 보였다.
‘와, 시발. 재미없네.’
악수를 끝낸 윤태민 2소대장이 말했다.
“퇴근 후 잊지 말고요. 먼저 들어가 봐요.”
“네. 그럼······.”
유선영 하사가 몸을 돌려 걸어갔다. 윤태민 2소대장이 담배를 거칠게 피웠다.
“와, 시발 진짜······. 그냥 때려치울까?”
요즘따라 군 생활에 회의가 드는 윤태민 2소대장이었다.
일과를 끝내고, 4중대 장교와 부사관들은 오상진의 필두로 삼겹살집에 들렀다. 그리고 자리를 배치했다. 오른쪽으로는 장교들이 왼쪽으로는 부사관들이 자리를 잡았다.
오상진이 쭉 한 번 바라보고 앞에 놓인 잔을 들었다.
“자, 다들 잔 채웠습니까?”
“넵!”
“그렇습니다.”
“그럼 다들 건배 한번 합시다.”
김진수 1소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대장님 한 말씀 해주시죠.”
다들 눈을 반짝이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솔직히 이런 문화는 오상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꼰대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이런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한마디 하자만 새로 온 부사관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오상진이 말을 하고 자리에 앉자,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소리쳤다.
“4중대!”
“파이팅!”
그리고 전부 술을 입에 가져가서 마셨다. 오상진이 술병을 들고 일어나 새로 온 황하나 하사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4중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술은 억지로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받기만 해요.”
“아닙니다, 마시겠습니다.”
황하나 하사가 쭉 들이켰다.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유선영 하사에게도 술잔을 건넸다. 유선영 하사가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유 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넵!”
“아니면 유 하사는 술 좀 마십니까?”
“예, 어디 가서 못 마신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오호, 다행입니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자 갑자기 황하나 하사가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