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2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72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21)
임상기 일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인범 상병이 군대재판을 받고, 다른 곳으로 쫓겨나자 두 사람은 믿는 구석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추영호 일병은 밖에서 주먹 좀 치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전 중대에서 폭력사건으로 이쪽으로 밀려왔다. 그래서 대놓고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에 반해서 임상기 일병은 위로는 조인범 상병, 아래로는 추영호 일병을 믿고 상당하 나댔다.
실제로 3소대원들 중에서는 조인범 상병보다는 옆에서 깝죽대는 임상기 일병이 밉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임상기 일병은 그동안 자신이 주둥이로 건드렸던 고참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었다.
그 중에서 공대익 상병이 아주 임상기 일병이 천적처럼 굴었다.
보통 이 정도 했으면 군대에서 보낼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임상기 일병이 쥐죽은 듯 지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밀렸다간 병신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와중에 공대익 상병이 임상기 일병과 추영호 일병에게 몇 차례 얼차려를 준 적이 있다. 그런 상태로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 냉랭한 상태였다.
임상기 일병이 벌떡 일어났다. 마치 당장에라도 계급장 떼고 한번 붙자는 식이었다. 그러자 공대익 상병이 바로 앓는 소리를 했다.
“와, 시발. 군대 진짜 좋아졌다. 일병 나부랭이 새끼가, 상병에게 저러고 있고. 이거 뭐, 하극상이 따로 없네.”
공대익 상병이 힐끔 고개를 돌려 안태규 상병을 봤다.
“태규야. 네가 봐도 말이 되지 않지? 이게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안태규 상병이 정색하며 말했다.
“말이 안 되죠.”
“인호 네 생각은 어때?”
“진짜 이해가 안 됩니다. 쟤네들은 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습니까.”
안태규 상병과 강인호 상병은 솔직히 3소대 내에서는 평범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인범 상병이 워낙에 더럽게 지랄을 했기 때문에 엮이기 싫어서 조용조용 지내고 있었을 뿐이다.
두 사람 다 군대 짬을 먹은 상태였다.
당연히 조인범 상병을 믿고 까부는 임상기 일병과 추영호 일병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임상기 일병이 미친개처럼 나불거리는 모습에 안태규 상병과 강인호 상병이 공대익 상병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임상기 뭐?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판 하자고?”
공대익 상병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추영호 일병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자신보다 체격이 작고, 주댕이로만 싸울 줄 아는 임상기 일병을 상대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송찬우 상병이 내무반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나 공대익 상병을 바라보며 씩씩거리는 임상기 일병을 보며 말했다.
“뭐야, 또.”
“공 상병님이 또 건들지 말입니다.”
이번에 시선은 공대익 상병에게 향했다.
“공대익 뭔데?”
“아니, 저 자식이 내가 잠깐 봤다고 시비를 걸지 않습니까.”
임상기 일병이 버럭했다.
“기분 나쁘게 꼬나봤지 않습니까.”
“야, 내가 기분 나쁘게 꼬나봤냐?”
옆에 있던 안태규 상병과, 강인호 상병 두 사람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그냥 봤지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 말에 송찬우 상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짝 귀찮은 얼굴이 된 송찬우 상병이 임상기 일병을 봤다.
“임상기. 그래서 너 지금 뭐 하자고 그러는 거야.”
공대익 상병이 바로 말했다.
“지금 저랑 한 판 뜨자고 저러고 있는 겁니다.”
“공대익 넌 조용히 해.”
공대익 상병이 입을 다물었다. 송찬우 상병이 다시 임상기 일병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임상기 너 진짜 그랬어?”
“아, 저는 공대익 상병님에게 그랬습니다.”
“그래서 너 진짜 그런 말 했냐 말이야. 일병이 상병에게 한 판 뜨자고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럼 공 상병님이 자꾸 저를 갈구지 않습니까.”
송찬우 상병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너 예전에 어떻게 했는데. 결국 네가 예전에 했던 짓 때문에 돌려받는다고는 생각 안 해?”
송찬우 상병의 그 한마디에 가만히 있던 추영호 일병이 고개를 홱 들어 말했다.
“그만하십시오.”
“뭐?”
“그만하시라고 했습니다.”
추영호 일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찬우 상병도 몸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추영호 일병도 상당히 몸이 좋았다. 서로가 싸움 고수라는 것을 느낀 두 사람이 공중에서 스파크가 튀듯 눈빛이 부딪쳤다.
바로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박민태 병장이 나섰다.
“야! 너희들 뭐 하냐.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줄래? 괜히 너희들 때문에 여기 있는 사람들 곤란해지거든.”
그 한마디에 상황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이에 눈치 없는 공대익 상병이 바로 입을 열었다.
“와, 박 병장님. 카리스마! 멋집니다.”
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박민태 병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러곤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책으로 시선이 갔다. 그런 박민태 병장을 보며 송찬우 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김성민 병장은 진짜 이번에 휴가 다녀오면 끝이고, 홍인규 병장은 조인범 상병이 있던 시절에 하도 털려서 그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
박민태 병장이 분대장을 달아놓고, 저런 식으로 소대 관리를 소홀히 하니까, 자꾸 소대 분위기가 계속 개판이 되는 것 같았다. 송찬우 상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분대장 단다고 했을 텐데······.’
사실 김성민 병장이 분대장을 놓고, 송찬우 상병에게 주려고 했다. 그 당신 송찬우 상병은 귀찮은 것이 많을 것 같아서 안 맡는다고 거절했다.
그렇다고 김성민 병장이 홍인규 병장에게 줄 수는 없어서 박윤지 3소대장과 상의를 한 끝에 박민태 병장에게 주는 걸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송찬우 상병에게 박민태 병장을 잘 보좌하라고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박민태 병장은 소대 관리는 뒷전이고 두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말년놀이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귀찮은 일에는 나서지도 않다가 자신이 나서면 그때서야 은근슬쩍 나서서 중재를 하고 그랬다.
사람이 그렇게 안 봤는데 박민태 병장도 은근히 얌체 같은 구석이 있었다.
‘하아, 진짜. 제대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건가.’
그렇고 있는데 갑자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김태호 상사가 들어왔다.
“소대 차렷. 충성.”
“그래. 수고가 많다. 다들 점심은 맛있게 먹었냐?”
“네.”
“왜 이렇게 자리가 비었어?”
“민호수 이병은 의무대 갔습니다.”
“의무대? 거긴 왜?”
“발톱이 빠졌다고 해서 말입니다.”
“아이고, 조심해야지. 그리고 한 명밖에 빠진 사람이 없어?”
“나머지는 아무래도 화장실을 간 것 같습니다.”
“그래?”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일 때 문이 열리며 도해명 일병과 안세호 일병, 나재민 일병이 들어왔다. 그들은 눈치를 보다가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야, 너희들은 지금 자대배치 받은 적이 언제인데. 아직도 전우조야?”
그 말에 소대원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김태호 상사가 박수를 쳤다.
짝짝!
“자, 이제 다들 온 것 같으니까. 자리에 앉아봐.”
김태호 상사가 문 뒤를 향해 말했다.
“황 하사. 들어와.”
“넵!”
황하나 하사가 내무실로 들어왔다. 예쁜 모습의 황하나 하사는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자 내무실에 있던 소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오오오오!”
“완전 예쁩니다.”
“이야!”
얘기 들었던 것보다 실물로 보니 더 예뻤다. 공대익 상병도 눈을 반짝이며 황하나 하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아, 대박. 진짜 예쁘잖아.”
공대익 상병의 눈에는 하트가 뿅뿅 그려졌다. 다른 소대원들도 난리가 아니었다. 이에 김태호 상사가 버럭 했다.
“이놈들아! 부소대장 오셨는데 어디서 그런 말들을 내뱉고 있어.”
그러자 황하나 하사가 입을 열었다.
“행보관님, 괜찮습니다. 소대원들이 절 반겨주는 거지 않습니까.”
그리곤 앞으로 나서서 3소대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친 후 말했다.
“안녕, 반갑다. 나는 황하나 하사라고 한다. 앞으로 3소대 부소대장으로 너희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잘 지내보도록 하자.”
간단하면서도 힘있는 황하나 하사의 말이었다. 그러자 다시 3소대원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
“최고다.”
그런 3소대원들을 보며 김태호 상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야, 이놈들아! 귀 아프다. 귀 아파. 소리 좀 그만 질러라.”
그렇게 간단히 대화를 마치고 김태호 상사와 황하나 하사는 3소대를 나왔다.
“와이씨! 장난 아니지 말입니다.”
“얼굴 봤습니까? 완전 섹시한 것이 제 스타일이지 말입니다.”
그러자 바로 공대익 상병이 정색하며 말했다.
“아까 내가 말했지. 내가 찜했다고.”
“와, 공 상병님 양보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인마, 어디 일병 나부랭이 새끼가 양보하란 마란 소리를 해. 미쳤니? 정신 안 차려?”
“공 상병님······.”
“시끄러!”
이렇듯 웃고 떠는 모습을 보는 박민태 병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다시 보고 있던 책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날 오후 중대장실에서 소대장들을 모아서 회의를 열었다. 오상진은 소대장들을 한번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다들 점심은 맛나게 먹었나.”
“네. 잘 먹었습니다.”
솔직히 오상진은 1, 3, 4소대장과 같이 먹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윤태민 2소대장은 함께 먹지 않았다.
다분히 윤태민 2소대장을 의식해서 물어본 말이었다. 하지만 윤태민 2소대장은 오상진의 시선을 받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네에······.”
“2소대장.”
“네.”
“점심 잘 먹었냐고.”
“대충 챙겨 먹었습니다.”
“대충 챙겨 먹으면 어떻게 해. 밥심으로 버텨야 하는데. 어쨌든 위에서 공문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2소대장도 4중대 사람이니 식사는 같이 하도록 해.”
오상진이 말하는 것은 윤태민 2소대장을 배려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을 혼자두면 어떤 일을 할지 몰라 자신의 곁에 두고 감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황에서 윤태민 2소대장은 오상진의 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힘없이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바로 인상을 썼다.
‘아이씨. 밥도 같이 먹자고 해. 여기가 무슨 학교야. 진짜 왜들 이래.’
오상진의 시선이 윤태민 2소대장에게서 거둬지고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원래는 오전에 회의를 했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새로온 부사관 두 명과 면담 때문에 오후에 잡았다. 그 점은 양해해 주고.”
오상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2주 후에 체육대회가 갑자기 잡혔다.”
“체육대회 종목은 원래대로 하는 것입니까?”
“그래. 행보관님께 얘기를 들어보니 축구, 족구, 농구, 줄다리기, 계주, 씨름 등이 있다고 하더군.”
홍일동 4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2주 후면 너무 촉박하지 않습니까? 따지고 보면 1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선수들 선발이나, 훈련들을 생각하면 좀 촉박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축구를 예를 들어보면 팀을 따로 꾸려야 합니다. 이렇게 급하게 일정이 잡혀 버리면 제대로 된 팀을 꾸릴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