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1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69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18)
“아니, 학군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도 학군단에 들어갈 뻔했습니다. 제 친구들 중 몇몇도 학군단에 들어갔었고 말입니다. 제가 그때는 공부 욕심이 좀 있어서 말이죠. 친구들이 학군단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친구가 군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며 살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부사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황하나 하사는 자신이 왜 군대에 지원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박윤지 3소대장은 평소에도 학군단이라는 것에 자격지심을 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뭐야, 자기가 마음만 먹었으면 학군단 정도는 충분히 올 수 있다는 거야. 뭐야.’
물론 학군단이 3사관과 육군사관학교에 비해서 쉬운 길인 것은 사실이었다.
육군사관학교는 4년 동안 기숙사 생활에 엄청나게 공부도 해야 한다. 하물며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해야 했다. 3사관학교도 기간이 좀 짧은 것뿐이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서 학군단이 그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두 학교보다는 조금의 자율성이 존재했다.
게다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훈련을 받는다. 그래도 아무래도 육군사관학교와 3사관학교와는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박윤지 3소대장 본인은 장교고, 황하나 하사는 부사관이었다.
부사관이 되어서 이렇듯 무시를 하니 짜증이 좀 났다.
사실 박윤지 3소대장이 출신에 대해서 무시받은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다.
이전에 함께했던 부소대장 김호동 하사도 사실은 그런 면에서 좀 무시를 한 경향이 있었다.
어떤 때는 부사관들끼리 자신을 보면서 쑥덕거리는 것이 왠지 여자 때문도 있지만 출신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부소대장이었는데 황하나 하사가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박윤지 3소대장의 표정이 좀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한 황하나 하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부소대장은 처음이라서 말이죠. 제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박윤지 3소대장은 애써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췄다.
“특별히 할 것은 없어요. 어지간한 일은 내가 알아서 관리를 하니까. 황 하사는 나 없을 때 애들 관리만 잘 해주면 됩니다.”
“아. 그런 것은 자신 있습니다. 제가 좀 사교성이 좋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 중대에 대해서 소문 들은 것이 있습니까?”
“4중대 말입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황하나 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꼴통······ 부대?”
“듣긴 들었네요.”
“그 말 진짜입니까?”
“아예 아니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대대에서 문제 있는 애들을 전부 4중대로 보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병사들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황나하 하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박윤지 3소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 줬다.
“맞아요. 보통 여자 간부가 성인 병사들을 지도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특히나 4중대 병사들은 여자 간부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단호하게 대처를 해야 합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얘기해 줬다. 그런데 황하나 하사가 얘기했던 것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병사들도 좀 힘들지 않겠습니까.”
“뭐가 말이죠?”
“솔직히 문제 있는 병사들을 모아두면 그 안에서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제가 듣기론 일반부대에서 관심병사 한 명만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신경도 써야 하고, 불편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모아두면 병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그런가요.”
“전임 부소대장은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제가 뭘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3소대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서 소대장님이 소대를 이끄시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그래요.”
황하나 하사의 말을 들은 박윤지 3소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말이 알쏭달쏭했다. 박윤지 3소대장의 말은 소대원들이 거치니까, 너무 가까워지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부소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면서 말이다. 정작 황하나 하사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이대로 나둬도 될까?’
박윤지 3소대장은 여기서 더 얘기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앞으로 잘해보도록 해요.”
“네. 아, 참! 소대장님.”
“네.”
“저기 식사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아니면 약속 있으세요?”
“그것이 아니라, 혹시 제가 매번 소대장님과 식사를 같이 해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죠.”
“그렇죠. 감사합니다.”
“왜요? 따로 식사를 같이 하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유선영 하사랑 같이 먹습니까?”
“유 하사도 유 하사지만 제가 일단 왔으니까. 부사관 선배님들과 식사를 하면서 안면을 터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업무적으로 소대장님하고 자주 함께해야 하는데 식사까지 매번 같이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같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런 것을 신경 쓰죠. 식사는 각자 알아서 하면 됩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바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꼭 말하는 것이 자기랑 식사를 하기 싫다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그런 것입니까. 다행입니다.”
황하나 하사의 표정이 밝았다. 그 모습을 보는 박윤지 3소대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꼭 나랑 밥 같이 먹기 싫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 같잖아. 기분 나쁘게······.’
솔직히 박윤지 3소대장은 새로 여자 부사관이 온다고 했을 때 기대가 되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한 연령대니까, 친구처럼 지내고 싶기도 했다.
평소에 밥 먹을 때마다 조금 불편했다. 4중대에 여자라고는 자기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남자 장교와 밥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윤태민 2소대장도 있었기에 밥 먹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물론 홍일동 4소대장이 알게 모르게 많이 챙겨줬지만 그래도 어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여자 부사관이 오면 부대밖에도 나가서 같이 밥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황하나 하사의 말은 마치 벌써부터 장교와 부사관 사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박윤지 3소대장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됐어. 장교와 부사관의 사이다 이거지. 그래, 알았어. 나중에 서운하다고나 하지 마.’
박윤지 3소대장은 괜히 투정부리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곤 손에 든 음료수를 보며 말했다.
“음료수 다 먹었죠?”
“아, 네에.”
“그럼 들어가죠. 업무도 봐야 하니까.”
“네, 소대장님.”
쓰레기통에 음료수 캔을 버리고, 행정실로 향했다. 그 뒤를 황하나 하사가 기분 좋은 얼굴로 따라왔다.
‘흥.’
그런 모습마저 마음에 들지 않은 박윤지 3소대장이었다.
점심 무렵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한소희였다. 오상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네, 소희 씨.”
-상진 씨, 뭐 해요?
“업무 보고 있죠.”
-지금 점심시간인데 점심 먹으러 안 가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점심 먹으러 가야죠. 그럼 소희 씨는 점심 먹었어요?”
-아뇨. 저도 아직요.
“왜요? 아직 일이 안 끝났어요?”
-방금 미팅이 끝났어요.
“아이고, 우리 소희 씨 고생이 많았네요. 맛난 것 먹어야겠다.”
-저요. 있잖아요. 아침부터 한 번도 못 쉬고 지금까지 일했잖아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요?”
-힘들긴 한데······. 저보다는 상진씨가 더 힘들죠. 나라 지키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인가요.
“이야, 오늘 우리 소희 씨 어쩜 이렇게 말을 예쁘게 하실까. 보고 싶게.”
-어멋! 보고 싶어요? 그럼 오늘 저녁에 저 내려갈까요?
“힘들지 않겠어요? 왔다가 아침 일찍 올라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뭐요? 가지 마요?
“아뇨, 저야 좋죠. 막말로 제가 올라가야 하는데······. 미안하게 소희 씨가 내려와야 하니까요.”
-상진씨가 어떻게 올라와요. 아침 일찍 부대 출근을 해야 하는데.
오상진은 그렇게 말해주는 한소희가 고맙고 미안했다.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서울에 계속 있는 거였는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진급하려면 다른 부대에서 군 생활 해야 했잖아요. 나중에 우리 결혼하고 난 다음에 떨어져 지내는 것보다 지금 고생하는 것이 낫죠.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그보다 오늘 별일 없었어요?”
-오늘요? 사실은요.
한소희가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예전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것만 얘기했는데 요새는 얘기가 달라졌다.
오 엔터테이먼트의 대표로서 할 얘기가 많았다. 그렇게 말을 하면 한소희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었다.
“소희 씨 일은 안 힘들어요?”
-바쁘긴 한데요. 재미있어요. 뭔가 사람 사는 것 같고.
“참! 대학 공부는요?”
-아, 맞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지금 당장은 수업만 듣고 있는데요. 이번에 학기 끝나는 대로 휴학을 할까 생각 중이에요.
“휴학요? 괜찮겠어요?”
-뭐, 일이 바쁘니까요. 솔직히 아버지는 병원으로 출근해서 행정업무를 봐 달라고 해서 겸사겸사 공부를 더 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오 엔터 대표 됐다고 하니까, 대학 안 다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그럼 소희 씨는요?”
-저도 여태껏 공부한 것도 있고, 당장 그만 두는 것은 좀 그래요. 일단 수업을 줄일 수 있으면 최대한 줄여보고요. 석사는 따고 싶어요.
“그래요. 소희 씨가 뭐든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죠. 둘 다 가능하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네. 결혼하고 나면 시간도 없을 텐데요.
“네?”
-애 키우다 보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요.
한소희는 자연스럽게 말을 하는데 오상진은 괜히 부끄럽고 그랬다.
-왜 대답이 없어요?
“아니에요.”
-왜요. 내가 이렇게 말을 해서 이상해요?
“이상하다기보다는 뭐랄까. 기분이 좋네요.”
-나같이 예쁜 여자가 상진 씨랑 결혼해 준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물론이죠. 기분 엄청 좋아요.”
-저도 상진 씨처럼 멋진 남자가 저랑 결혼을 해줘서요.
“고마워요.”
그때 중대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어? 소희 씨 저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아요. 누가 찾아왔네요.”
-아쉽다. 좀 더 통화하고 싶었는데. 알겠어요, 있다가 저녁에 또 통화해요.
“그래요.”
오상진은 후다닥 전화를 끊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며 김진수 1소대장이 들어왔다.
“오, 1소대장. 어쩐 일이야.”
“중대장님 식사 안 하십니까?”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고 했어. 이야, 우리 1소대장이 중대장 식사까지 챙겨주는 거야?”
오상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진수 1소대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물론이죠. 같이 가시죠.”
“그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