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16)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67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16)
“제가 들은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네?”
“이번에 대대장님 말입니다. 연대로 올라갈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연대로 말입니까?”
“네. 그것 때문에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의미로 체육대회를 앞당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신임 대대장님은 누가 오십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누가 오시더라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오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항상 윗사람이 바뀔 때마다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에 인재가 없는 것인지, 매번 새로 오는 사람마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서 괜히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체육대회라······. 그러면 저희 4중대도 준비를 해야겠네요.”
“그렇죠.”
“종목이 뭐가 있죠?”
“항상 똑같지 않습니까. 축구, 족구, 농구, 줄다리기, 계주, 씨름 말입니다. 아마 이번에도 이 정도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목만 봐도 변하지 않았다. 항상 군대에서 체육대회를 하면 빠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선수들인데······. 애들을 어떻게 뽑죠?”
오상진의 물음에 김태호 상사가 바로 대답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네?”
“아시지 않습니까. 저놈들 꼴통이지 않습니까. 사고만 칠 줄 알지 몸 쓰는 것은 완전 젬병입니다. 게다가 저놈들 몸 쓰는 자체를 싫어합니다.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그리고 또 이번 윤 소위 일로 한바탕 중대를 뒤집어 놓으셨지 않습니까. 사실 체육대회라고 해도 어느 정도 병사들 협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쟤네들이 고분고분 따를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상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단 뒤집어놨으니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병사들을 다독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체육대회를 하자고 하니, 막막했다.
“음, 어쩔 수 없이 병사들을 한번 풀어줘야 하긴 해야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야죠. 그렇다고 막 휴가증을 뿌리지는 마시고, 그러면 더 탈이 날지도 모릅니다.”
“에이. 그러지는 못하죠. 아시지 않습니까. 중대장에게 휴가증이 1년에 2장 정도밖에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 것을요.”
“그렇긴 하죠.”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로 풀어주죠?”
“글쎄요. 생각을 해봐야죠.”
김태호 상사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바로 눈을 반짝였다.
“중대장님.”
“네?”
“그러지 말고, 중대 회식 한번 하시죠!”
“중대 회식말입니까?”
“네. 삼겹살도 구해오고, 간단히 음주도 할 수 있게 해주고 말이죠.”
김태호 상사의 말에 오상진도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이라······. 괜찮은 것 같네요. 삼겹살도 좋지만, 치킨도 넣죠.”
“치킨 말입니까? 그것도 괜찮긴 한데······. 저희가 튀깁니까? 저희 4중대 총 인원이 간부 포함해서 대략 100여 명 정도 될 텐데 말입니다.”
김태호 상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저희 4중대에 파견된 취사병만 고생이죠. 그러지 말고, 밖에 후라이드로 주문하죠.”
“주문······ 말입니까? 그럼 돈이······.”
김태호 상사는 행정보급관으로 살짝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중대 회식으로 인한 자금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삼겹살이나 다른 것들을 구입하고 나면 빠듯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런데 치킨까지 주문을 하면 아마도 1년 예산이 훌쩍 나갈 것 같았다.
오상진도 그 점은 알고 있었다.
“하하하, 제가 행보관님을 난처하게 했네요.”
“아, 아닙니다.”
“치킨은 제 사비로 하겠습니다.”
“네? 중대장님 사비로 말입니까?”
“네. 제가 4중대로 처음 왔는데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저를 믿고 따라와줬는데 이 정도는 제가 쏴야죠.”
“꽤나 돈이 나올 텐데 말입니다.”
김태호 상사가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보다 여기 중대에 자주 시켜먹는 치킨집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부대 앞에 저희가 자주 시켜먹는 치킨집이 있습니다.”
“그럼 되었네요.”
“그럼 몇 마리를 주문하면 좋겠습니까?”
“기왕 중대장인 내가 쏘는데 1인 1닭으로 가시죠.”
“네에? 1인 1닭 말입니까? 어이구 중대장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전혀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요즘 치킨 한 마리 얼마죠?”
“아마 8천원 할 겁니다. 그래도 돈 100만 원 정도인데······.”
그러자 오상진이 미소를 보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습니다. 그럼 일단 주문해 주시고 맛있게 튀겨달라고 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잘 말해놓겠습니다.”
“네.”
김태호 상사가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날 김태호 상사는 퇴근 전 치킨 집으로 향했다. 17연대라고 해서 17연대 통닭으로 상호가 된 치킨 집이었다.
“실례합니다.”
“네, 어서오세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들어온 인물이 군복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부대에서 오셨나 봅니다.”
“어? 사장님 저 모르세요?”
“누구······.”
“저 4중대 행보관인데······.”
그러자 사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행보관님. 항상 전화로 목소리만 듣다가 이렇듯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잘 지냈죠. 그보다 밤에 치킨 배달 오고 그러면 제가 받고 그랬는데요. 밤이라 잘 모르셨나 봅니다.”
“하하하, 제가 정신이 없어서요. 여기저기 주문이 많이 오다 보니까요.”
사장이 껄껄 웃었다.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안을 살폈다. 그런데 천장과 몇 군데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장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맞나? 무슨 거미줄이······.’
김태호 상사가 그 생각을 했다. 솔직히 김태호 상사도 가게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의 대부분 전화로 주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요새 장사는 잘되시죠?”
“아, 예예. 그럼요. 치킨 한 마리 튀겨 드릴까요?”
“그것보다. 이번에 저희 4중대에서 회식을 하기로 했거든요.”
“아, 회식요.”
사장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회식이라면······ 양이 많겠네요.”
“네.”
“그럼 어떤 걸로······.”
“중대장님께서 이번에 큰 마음먹고 사비로 치킨을 쏘시는 것이라서요. 그것도 1인 1닭으로 말입니다.”
“오호, 1인 1닭으로요. 이번에 오신 중대장님 통이 크십니다.”
“하하하.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주문량도 100마리 정도 될 것 같고······. 가격을 맞춰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태호 상사가 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가격을요?”
“네. 그래서 제가 직접 온 것이거든요. 100마리나 주문을 하는데 8천 원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김태호 상사는 혹시라도 가격을 깎아주지 않을까, 해서 말을 꺼냈다.
막말로 오상진이 원한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튀겨 준다면 원가를 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김태호 상사는 그래도 신경 써 준다고 이렇듯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사장이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자신들도 남겨 먹어야 할 것이 있어야 했다.
“······한 마리에 5천 원 정도면 어떻습니까?”
“조금 아쉽긴 한데······. 콜라나 무는 많이 주셔야 합니다.”
“아, 물론이죠. 그렇게 해드려야죠.”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중대 회식은 언제쯤 하십니까?”
“아, 그건 제가 중대장님께 보고를 한 후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마 이번 주말쯤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요.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는 자기 할 일이 끝났는지 바로 치킨 집을 나섰다. 사장은 멀어지는 김태호 상사를 향해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연락 주셔야 합니다.”
그러곤 재빨리 가게로 들어온 사장이 뒤쪽 냉장고로 황급히 뛰어갔다.
“어이구, 100마리라니. 이게 무슨······.”
사장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냉동실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꽁꽁 언 닭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거 괜찮으려나?”
사장은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론 냉동으로 되어 있지만 제법 오래된 닭들이었다. 이미 폐기를 했어야 할 닭인데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냉동을 했으니까······.”
이렇듯 자기 합리화를 하며 냉동실에 있는 닭 한 마리를 꺼냈다. 이리저리 상태를 확인하던 사장이 냄새를 맡았다.
킁킁.
“으음······.”
살짝 인상을 찌푸린 사장. 약간이지만 구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장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도로 냉동닭을 집어넣었다.
“에이. 냉동을 해놨으니까. 괜찮겠지. 병사들이야 대충 먹어도 별문제 없겠지. 그 정도 나이면 돌도 씹어 먹을 정도인데 뭐. 간부들 먹을 것만 적당히 좋은 걸로 튀기면 되겠지.”
냉장고 문을 닫은 사장이 히죽 웃었다.
“닭은 저 정도면 충분하군. 저 닭을 사놓고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을 했는데······. 또 이런 식으로 풀리네. 아무튼 꼴통 중대장이 왔다고 그리 난리던데.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네.”
사장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렸다.
다음 날 김태호 상사는 오상진을 만나러 중대장실로 갔다.
똑똑.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네. 행보관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 네에. 제가 말입니다. 어제 퇴근하다가 치킨 집에 들렀습니다. 그래도 우리 중대장님께서 크게 한 턱 쏘시는데 도움을 드릴 까해서 말이죠. 치킨 가격을 좀 조정했습니다.”
“네? 얼마나요?”
“원래 후라이드 7천 원, 양념 8천 원인데. 후라이드로 해서 5천 원으로 퉁 쳤습니다.”
김태호 상사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어이구, 우리 행보관님 제대로 하셨네요. 그런데 5천 원으로 하고 치킨 제대로 오는 것 맞습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서 100마리 단체 주문하면 그 정도 해줍니다. 그리고 저희 17연대 이름 간판 걸고 하는 치킨집인데 닭가지고 장난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원래 이렇게 단체 주문 해주고 그러면 저쪽도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서로 좋은 것이 좋은 겁니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태호 상사는 오상진이 이런 것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비록 어린 나이에 중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원래 대대장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 행보관이니까.’
오상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호 상사가 저렇게까지 나서서 하는데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김태호 상사가 뭔가를 빼돌릴 사람도 아니었다.
아마도 거금을 지출해야 할 오상진을 생각해서 저렇게 나서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라고 말도 하지 않았다.
“참! 황 하사와, 유 하사에 대해서 알아보셨습니까?”
“아, 네에. 안 그래도 대대쪽에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황 하사는 확실히 사람이 활기차고, 거의 군대 체질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거의 FM 식으로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유 하사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