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1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65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14)
신지애가 부엌으로 가자, 세나가 뒤따라갔다. 그런데 오상희가 입술을 쭉 내밀고는 주혁을 보며 물었다.
“야, 함주혁! 너 왜 그래?”
그러자 옆에 있던 주희가 입을 열었다.
“말도 마. 주혁이 이 자식 또 컴퓨터로 게임하다가······.”
“아이씨, 게임 아니라니까.”
“아니긴······. 아무튼 게임하다가 혼나서 저래요.”
“저놈은 혼나도 돼.”
부엌에서 다시 나온 신지애가 한마디 했다. 주혁은 또다시 입술을 쭉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나섰다.
“이모. 주혁이는 봐줘요.”
“아무리 그래도 바쁜 형이 이렇게 소고기까지 사 가지고 왔는데 안 간다고 떼쓰고 그래.”
“와, 주혁아. 너 컴퓨터 누가 사줬는데······. 그리고 형이 왔는데 안 온다고 했어?”
“······아니, 하던 것만 마무리 하고, 오려고 했어요. 엄마가 괜히 저러는 거예요.”
딱 보니 주혁이에게 사춘기가 온 것 같았다.
‘자식 고등학생인데······. 사춘기가 좀 늦게 온 것 같네.’
대부분의 사춘기는 중학교 때쯤 온다. 그래서 괜히 중2병을 얘기하지 않는가. 가만히 듣던 오상희가 한마디 했다.
“함주혁!”
“왜?”
“너 어른들 앞에서 그 말버릇이 뭐야.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어!”
순간 오상진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호호호.”
그들을 보며 오상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다들 웃어?”
“내가 살다 살다 상희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나도 동감이네.”
오상진과 오정진이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오정진이 그런 오상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상희야. 너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하냐.”
“우씨, 오빠 자꾸 세나 언니 앞에서 그럴래.”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지.”
오상희의 얼굴이 좀 더 일그러졌다. 그때 부엌에서 엄마가 나왔다.
“얘들아, 그만들 해.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이지 않았니. 꼭 싸워야겠어.”
“아니, 엄마. 오빠가······.”
“그래. 알았어. 어서 앉아서 고기 먹어. 저저, 봐라. 다 타겠다.”
“앗, 내 고기!”
오상희가 바로 고기 굽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다들 피식 웃었다. 그렇게 이모네 가족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고기 파티를 했다.
“반찬이 좀 모자라나?”
엄마의 말에 세나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앉아 계세요. 제가 가지고 올게요.”
“그럴래? 부탁할게.”
“네.”
세나가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갔고,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인자하게 웃었다.
“누구 집 자식인지 참 착해······.”
세나가 반찬들을 쟁반에 담고, 그것을 들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세나야. 너 내 딸 할래?”
“네?”
세나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환하게 미소를 보였다.
“저는 좋아요.”
그러자 바로 오상희가 발끈했다.
“엄마! 딸은 여기 있잖아. 무슨 소리야.”
“아, 딸이 여기 있었구나.”
“엄마!”
오상희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런 와중에 함기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도 한 손 거들까? 밥이라도 가져와야겠네.”
그러자 신지애가 바로 팔을 붙잡았다.
“가만히 있어요. 애들이 있는데 왜 당신이 나서요.”
“아, 왜······.”
“어이구, 당신은 괜히 쓸데없이 사고 치지 말고 자리에 앉아요.”
“당신은 무슨 내가 사고를 친다고 그래.”
“그냥 가만히 있어요. 어서요.”
신지애가 팔을 잡아 내리자 이모부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상진이와, 정진이도 어서 자리에 앉아.”
“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슬쩍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남자들을 꼴불견으로 보는 날이 오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남자들이 부엌일을 돕는다는 것이 오히려 꼴불견이라는 인식이 있지. 지금은 말이야.’
함기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방금 너희 이모하는 것 봤니?”
“그게 왜요?”
“예전에는 너희 이모가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고 많이 시켰어. 그런데 이제는 상진이 덕분에 가장 노릇을 하니까. 이모가 저렇게 이모부를 챙겨준다.”
물론 함기철이 난잡한 성격이라 음식을 가져오다가 몇 번 엎지른 경력이 있었다. 그래서 신지애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것도 있었다.
오상진 입장에서도 이모가 이모부를 생각하기에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남편이 굳이 고생하는 걸 원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부.”
“응?”
“하시는 일은 괜찮아요?”
“좋지. 좋아. 네 덕분에 편하긴 해. 그런데 뭐랄까? 이런 말하기가 좀 그런데······. 아니다, 괜찮아.”
함기철이 말을 돌렸다. 오상진이 바로 물었다.
“뭔데요.”
“아, 그것이 참······. 관리를 하는 것도 좋긴 한데 말이지. 너도 알다시피 이모부가 사업을 했잖아.”
“그렇죠. 제주도에서 크게 펜션 사업을 하셨잖아요.”
“콕 짚어서 그렇게 말하지 말고······. 갑자기 눈물 나올라고 하네.”
함기철은 바로 두 손가락으로 눈 주위를 막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족들이 웃었다. 그 당시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듯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온 것이다.
“아무튼 이모부가 펜션 사업을 하기 전에도 많은 사업을 했거든. 식당도 했고, 작은 유통회사도 차려보고. 넌 잘 모르겠지만. 친구하고 동업을 해보니, 안정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것도 참 좋은데······.”
“왜요? 몸이 근질근질하세요.”
“뭐, 그렇지. 그런데 오해하지는 마라. 네 돈 가지고 사업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너희 이모가 당장에라도 이혼하자고 난리일 거다. 아무튼 그래도 뭔가, 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조금은 생각하고 있지.”
“아, 그러셨어요. 음. 이모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불현듯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소희 오피스텔이 생각났다.
“아, 참! 이모부.”
“응?”
“으음······. 그러면 다른 것을 한번 해보시겠어요?”
“다른 거?”
“네. 오피스텔 관리는 어때요?”
“오피스텔? 너 오피스텔을 매입했어?”
함기철의 눈이 크게 뜨며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강남에 오피스텔 건물을 매입했거든요.”
“뭐라고? 아니 어떻게? 강남이면 엄청 비쌀 텐데······.”
“운 좋게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말이죠.”
오상진은 가족들이 많아서 간단하게 얘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함기철이 까끌까끌한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으음, 오피스텔, 오피스텔이라······. 뭐 재미는 있겠네.”
“그런데 기존에 관리하시는 분들은 있어요. 관리 소장님도 계시고요.”
“그래? 그럼 내 자리는 있는 거야?”
“기존에 관리하시는 분들은······. 에잇, 이게 설명하기가 복잡한데. 제가 투자를 받는 곳이 있어요.”
“그래서.”
“그쪽에서 오피스텔을 넘겨받은 것이라서요.”
“아, 전 주인 사람들이라는 거지. 이제 네가 그 오피스텔을 물려받았으니, 네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네, 뭐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그렇죠.”
“그러면 당연히 이모부가 가야지. 내가 누구야, 너의 최측근 아니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오상진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곳저곳 빌딩 돌아다니면서 관리하는 것보다는 큰 오피스텔에서 관리하는 것이 조금 더 체면이 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했던 음식들이 더 추가 되었다.
“자자,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먹고 하자고.”
그렇게 또다시 뜨거운 불판에 고기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빠, 나 거기 김치 좀.”
“여기.”
“고기 더 먹을 거야?”
“나 패스! 완전 배불러.”
“난 더 먹을래.”
오정진이 손을 흔들었고, 오상희는 아직 아니라는 듯 고기를 더 달라고 했다. 엄마는 고기를 더 가져왔고, 오상진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너 더 먹을 수 있어?”
“그럼!”
“아직도 배가 안 찼어?”
“지금은 한 80% 정도?”
“야야, 그럼 그만 먹어.”
“싫어!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먹으라고. 나중에 다시 모이면 이런 거 제대로 먹지도 못해.”
“크응······.”
오상진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 많이 먹어라.”
“응! 헤헤헤······.”
오상희는 마치 고기를 흡입하듯 익자마자 입으로 직행했다. 그 모습을 보는 오정진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응?”
한소희였다. 오상진은 바로 환한 미소로 전화를 받았다.
“네, 소희 씨.”
오상진은 전화를 받으면서 2층 계단을 밟았다.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밥 먹고 있죠.”
-그렇구나.
“소희 씨는요?”
-저도 방금 식사 마치고 내 방에 들어와 있어요.
“어머님이랑 아버님은 별일 없죠?”
-별일 없어요. 아빠가 또 상진 씨 보고 싶어 한다는 것 빼고는요.
“아버님께서요? 다행이네요. 아버님께서 절 좋아해 주셔서.”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었다. 혹시라도 자기를 싫어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듯 좋아해 주시니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처럼 또 술 사 오시면 안 돼요. 그때 엄마랑 아빠랑 또 싸웠단 말이에요.
“아니, 왜요.”
-아빠가 그 술을 진열장에 놓으셨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술병이 예쁘고, 고급스러우니까 사진 한 번 찍겠다고 진열장에서 뺐는데 그걸 가지고 아빠가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어후, 아버님은 또 왜 그러셨을까.”
-어쨌든 그때 싸우고 아직 냉전 중이세요.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어머니 선물을 준비해야겠어요. 아주 괜찮은 와인으로요.”
-안 그래도 되요. 엄마는 말씀만 그러셨어요. 안 사도 된다고 했어요.
“아니에요. 제가 준비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칫! 우리 엄마한테마저 점수를 따려고 그래요.
“그럼 안 돼요?”
-왜 안 되겠어요. 엄마에게 점수를 따겠다는데요. 말릴 수는 없죠. 아무튼 밥 맛있게 먹고······. 오늘은 못 보는 거죠?
“으음, 가기 전에 소희 씨 얼굴 한번 봐야 하는데······.”
-그럼 우리 저녁에 집에서 볼까요?
“저는 괜찮은데······. 소희 씨는 어때요?”
-어머나, 상진 씨도 참······. 상진 씨 저희 집에서 뭐라고 불리고 있는 줄 알아요?
“오 서방?”
-그러니까요. 내가 내 남자 만나러 나가겠다는데 엄마, 아빠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저 이제 눈치 안 본 지 꽤 됐어요.
“알겠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
-그래요.
오상진이 막 전화를 끊었을 때 누군가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상진은 내려가려는데 오정진이 올라왔다.
“왜?”
“어? 소화 좀 시키려고. 이상하게 속이 좀 불편하네.”
오정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손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오상진이 바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어디 안 좋은 거 아니야?”
“아니야. 공부만 하느라 앉아 있어서 그런가 봐. 정 안 되면 소화제 먹을게.”
“그래라. 그보다 이왕 올라왔으니 형이랑 잠깐 얘기 좀 나눌까?”
오상진의 말에 오정진이 바로 기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