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60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9)
다음 날 오상진은 미리 준비한 선물을 챙겨서 한소희 집으로 향했다. 한소희 집에 도착한 오상진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잠시 후 한소희가 문을 열어주었다.
“왔어요?”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오상진을 맞이했다.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뭐하러 직접 나와요. 문만 열어주지.”
“우리 상진 씨 먼저 보려고 나왔죠.”
한소희는 오상진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쭉 훑고는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씨익 웃었다.
“괜찮아요?”
“내가 입으라는 옷 정확하게 입고 왔네요.”
“그럼요, 누구 명령이신데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오상진이 들고 있는 쇼핑백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술이 들어 있었다.
“그거에요?”
“네.”
“하아······. 상진 씨 진짜 여기까지만 해요. 상진 씨 덕분에 아빠 입맛이 점점 고급이 되어가고 있어요. 이러다가 우리 아빠 술값으로 집안이 거덜 날지도 몰라요.”
한소희의 우스갯소리에 오상진은 그저 웃음만 보였다. 한만식이 고급술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일같이 수백만 원짜리 술을 먹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만식도 나이도 있고, 몸도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술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한만식이 절주를 하다 보니, 이왕 먹는 것 좋은 술, 고급술로 입을 상쾌하게 하자는 의도였다.
원래 애주가들은 다 한 번씩은 수백만 원짜리 술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있다. 모든 젊은 남자들이 슈퍼카를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한소희는 오상진이 이런 비싼 술을 사다 나를 것 같아 걱정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어서 들어가요. 아버님 기다리시겠어요.”
“먼저 다짐부터 하고요.”
“네, 다음부터는 안 그러겠습니다.”
“정말이죠. 다음에 또 이러면 진짜 미워할 거예요.”
“그럼요. 우리 소희 씨에게 미움받으면 안 되죠.”
“약속 지켜요.”
“네.”
“들어가요.”
한소희는 오상진에게 확답을 받고는 집 안에 들였다. 집 안에 들어가자 한소희 엄마인 이선주가 웃으며 오상진을 반겼다.
“어서 와요, 오느라 고생했죠?”
“아닙니다, 어머님.”
“어서 들어와요.”
“네.”
오상진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그런데 거실에 소파에 한만식이 신문을 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크흠······.”
그 모습을 보며 한소희가 버럭 했다.
“아빠, 그런 것 좀 하지 마요.”
“내가 뭐, 이 녀석아!”
“방금 전까지 상진 씨 언제 오냐고 물어봐 놓구선 이제 와 신문을 봐요!”
“어후, 이 녀석이 진짜······. 아빠가 신문을 볼 수 있는 거지. 왜 그래.”
“아빠가 그러니까, 상진 씨가 어려워하는 거잖아요.”
그러자 한만식이 깜짝 놀라며 오상진을 봤다.
“자네 정말인가? 내가 어려워?”
“아닙니다, 아버님. 저는 친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렇지. 이리와 어서 앉게.”
“네.”
오상진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아버님 그래도 약소하지만······.”
“허허, 뭘 또 이런 것을 가지고 왔어.”
쇼핑백을 받은 한만식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난번 사온 양주의 학습 효과일까?
한만식이 아주 조심스럽게 양주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주방에 잠깐 갔다가 나온 이선주가 잔소리를 했다.
“뭐예요, 그거?”
이선주가 다가와 물었다. 한만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이거. 우리 오 서방이 선물로 가져온 거야.”
“뭘 이런 걸 가지고 와요. 저 양반 술 마시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어머님. 제가 아버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이선주가 손을 내저었다.
“뭘, 그렇게까지 말할 것은 아니고······. 아무튼 술은 그만 사와요. 지난번에 사온 그 술도 이 양반이 다른 사람 손 못 대게 말이에요. 혼자서 얼마나 쩨쩨하게 굴던지.”
“어허, 이 사람이 진짜······. 오 서방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언제부터 오 서방이었다고, 오 서방, 오 서방 그래요.”
“당신이 오 서방이라고 부르잖아.”
“그거야 우리 소희가 데리고 온 남자니까. 그런 것이고요. 당신은 원래 안 그러잖아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
한만식이 멋쩍게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예전보다는 우러나오게 오 서방이라고 불러주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당신! 그거 뜯지 마요. 뜯지 말고, 저쪽에 둬요. 알았죠!”
이선주가 단단히 일러뒀다.
“이 사람아. 그래도 사람이 선물로 가지고 온 것인데 뭔지는 봐야지 않겠나.”
“또또, 그래놓고 홀짝홀짝 마시려고 그러죠.”
“안 마셔! 안 마신다고.”
한만식이 한마디 하고는 다시 시선을 오상진에게 뒀다.
“그래, 자네 이거 말이야. 어떤 술인가?”
“로얄 샬룻트입니다.”
“호오, 로얄 샬룻트.”
한만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몇 년산이려나.”
그러면서 슬쩍 쇼핑백에서 꺼내니 완전 병부터가 고급이었다.
로얄 샬롯트는 보통 21년산, 32년산, 38년산 정도가 보편적이었다. 한만식은 32년산은 종종 마셔왔다. 32년산도 술집에서 백만 원 정도면 먹을 수 있었다. 혹은 면세점에서는 그보다 좀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38년산을 사 왔으려나? 그 정도면 뭐······.’
한만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쇼핑백에서 꺼냈다. 고급진 케이스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하는데 깜짝 놀랐다.
“어?”
앞에 적힌 숫자가 달랐다. 5가 떡하니 찍혀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건······.”
한만식이 깜짝 놀라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 옆에 있던 한소희가 다가왔다.
“아빠 왜요?”
이 자리에 한대만이나 한중민이 있었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오늘은 둘 다 일이 있어서 집에 못 왔다. 한만식의 호들갑을 받아 줄 사람이 없었다.
“이 귀한 것을 어디서 구했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그 친구에게 구했습니다.”
“그래? 어이구, 고맙네. 잘 마시겠네.”
이선주가 궁금해서 다가왔다.
“뭐예요? 지난번에 그것보다 더 좋은 거예요?”
“이거는 지난 것보다 구하기 더 힘든 거야. 아이고야, 이거 말로만 들었지 내가 직접 볼 줄은 꿈에도 몰랐네.”
한만식은 완전 보물 다루듯 로얄 샬롯트를 다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선주가 말했다.
“그럼 그거 나에게 줄 거죠?”
“이 사람아, 이건 말이야. 조만간 한의사 협회해서 학회 할 때 그때 따야지.”
이선주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오상진을 봤다.
“오 서방. 봤죠? 저 인간이 저래요. 내가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진짜······.”
오상진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는 와인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머?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혹시 소희에게서?”
“네. 이번에 제가 일이 좀 많아서 준비를 못 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좋은 와인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이선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머나, 오 서방. 센스가 아주 좋아요. 맞다, 아직 밥 안 먹었죠. 얼른 부엌으로 와요.”
이선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소희가 다가왔다.
“상진 씨 가요.”
“네.”
“어험. 식사하러 가지.”
“네, 아버님.”
한만식을 필두로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는 해물탕부터 시작해서 갈비찜까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와, 어머니. 이걸 다 준비하셨어요?”
“소희도 도와줬어요. 어서 앉아요.”
“네.”
오상진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자, 먹자고.”
한만식은 기분 좋은 얼굴로 수저를 들었다. 이선주도 오상진에 조기의 뼈를 발라서 앞접시에 놔줬다.
“먹어요. 이번에 온 조기가 실하네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그래요.”
그런 사위가 될 오상진과 장모가 될 이선주의 흐뭇한 모습을 바라보는 한소희는 절로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괜히 한마디 했다.
“엄마. 왜 그래?”
“뭘? 어차피 사위 될 사람인데 이 정도는 못 해주니?”
한소희가 어이없어했다.
“엄마. 아빠나 챙겨줘.”
한만식 역시 조금 전부터 서운하다는 듯이 이선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선주도 조금 전 한만식이 로얄 샬롯트를 주지 않겠다고 하자 삐져 있었다.
“당신은 내가 안 해줘도 알아서 잘 챙겨 먹죠.”
“크흠, 내가 뭐 젓가락질도 못 할까 봐. 혼자 잘 챙겨 먹어. 걱정 마.”
그러면서 혼자 조기의 살을 발라 먹었다. 그 모습에 오상진은 슬쩍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한만식도 오상진에게 받은 것이 있어,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오 서방도 많이 먹게.”
“네, 아버님.”
그러자 이선주는 아예 맛있는 반찬은 죄다 오상진 앞으로 가져다 놨다.
“이것도 먹어봐요. 갈비찜이 아주 잘됐어요.”
“네.”
“아,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그 모습을 한만식과 한소희가 멍하니 바라봤다. 오상진은 그저 조금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준 것 같아 기분은 최고였다. 그 상태로 기쁜 마음으로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한만식은 오상진을 자리에 앉혀놓고 물었다.
“자네 말이야. 군 생활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그러자 옆에서 과일을 손질하고 있던 한소희가 바로 도끼눈을 떴다.
“아빠도 참······. 우리 상진 씨 군 생활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봐요.”
“아니, 그것보다 군에 평생 있을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
“네, 아버님. 저도 언젠가는 군복을 벗을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알기로는 재력도 있는 것 같고······. 또 사업수단도 있더만. 그보다 이번에 연예기획사도 차렸다고 들었는데.”
“네.”
“거봐라. 실력이 있잖아. 너희 작은 오빠를 봐라. 완전 헛똑똑이야. 헛똑똑이!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밖에 나가서 이것도 말아먹고, 저것도 말아 먹었잖아. 그런데 오 서방은 말이야. 네 작은 오빠보다도 훨씬 나이가 어린데 지금 빌딩이 몇 채이고, 게다가 연예기획사까지 차리고 말이야. 이 정도 사업수단이면 군대에 있기만은 아깝지. 안 그런가?”
“네. 아버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이선주가 다른 과일을 가져왔다.
“오 서방. 이이 말하는 것을 너무 서운하게 듣지 말아요. 솔직히 군인을 무시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군 생활이 쉽지 않잖아요. 또 지금처럼 다른 부대 전출 가면 자주 보지도 못하고요. 지금 큰 아들은 분가를 했고, 우리 둘째는 밖에서 저러고 있지. 이놈은 결혼할 생각이 있는지······.”
그러다가 오상진을 보며 바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호호호, 미안해요. 내가 좀 주책을 부렸네요.”
“아닙니다, 어머님.”
“어쨌든 이제 집에 남은 자식이라고는 소희 한 명뿐인데······. 그래도 우리가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서인지 소희가 오 서방 따라서 지방 가서 2년 살고, 3년 살고 그러는 것이 좀 그래요. 그렇다고 식 올리고 나서 소희만 서울에 두고 움직일 수 없잖아요.”
말은 저렇게 둘러서 말했지만 이선주는 한소희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한소희가 워낙에 유복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타지 가서 고생하는 것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의 한소희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아직 물가에 내놓은 아이고, 나중에 사니 못 사니 이런 말을 할까 봐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