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59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8)
“어, 그게······.”
윤태민 소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 쭈물거렸다. 그의 표정만 봐도 엄청 욕을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을 필요도 없군.’
물론 홍민우 작전과장 역시 복도에서 혼내는 소리를 듣긴 했다. 하지만 홍민우 작전과장은 이걸로 안심이 되지 않았다.
“자네 상황실로 따라와.”
“······.”
상황실에 앉은 그 앞으로 A4용지와 볼펜을 내밀었다.
“자, 써!”
“네?”
“각서 말이야. 앞으로 이런 일은 다시는 행하지 않겠다는 각서 말이야.”
“······작전과장님.”
“안 써? 자네 때문에 나까지 난처해졌는데 말이야. 그리고 자네 한번 살려보겠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안 써?”
“어······.”
윤태민 소위는 계속해서 주저했다. 홍민우 작전과장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써!”
“네에, 알겠습니다.”
윤태민 소위는 홍민우 작전과장이 보는 앞에서 각서를 썼다. 날짜와 이름 옆에 지장까지 찍었다. 그것을 챙겨서 확인한 홍민우 작전과장이 말했다.
“이거 내가 잘 보관할 거야. 만약 또 사고를 치면 알지?”
“네에······.”
윤태민 소위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앞으로 군 생활 똑바로 해.”
“알겠습니다.”
“이제 가 봐!”
윤태민 소위가 상황실을 나왔다. 고개를 흔들며 투덜거렸다.
“와, 각서는 완전 오버 아니야. 무슨 각서야. 이건 진짜 아니지.”
그렇게 투덜거리며 복도를 걸어가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신범규 준장, 즉 외할아버지였다.
“하, 할아버지······. 왜 전화하신 거지?”
눈알을 굴리던 윤태민 소위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전화기가 울렸다. 몇 번 걸다가 말 줄 알았다. 그러나 신범규 준장은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었다.
“아이씨······.”
결국 전화를 받은 윤태민 소위였다.
“네, 할아버지.”
-너 이놈. 뭐 하고 있기에 전화를 안 받아.
“어, 지금 훈련 중이어서······.”
-훈련? 무슨 훈련?
“저어, 그것이······.”
윤태민 소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놈! 할아버지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지. 너 정말 안 되겠다. 퇴근하거든 이쪽으로 튀어와!
“네?”
-못 들었어? 튀어오라고!
“할아버지······.”
-할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튀어오라면 튀어와. 알았어? 죽기 싫으면.
뚝!
신범규 준장은 마지막 자신이 한 말을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윤태민 소위가 잔뜩 인상을 썼다.
“아니, 진짜 다들 왜 나만 갖고 그래! 짜증 나게!”
하지만 그의 푸념을 들어주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본가를 다녀온 윤태민 소위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행정실로 출근을 했다. 그런 윤태민 소위를 보며 힐끔거렸다.
“2소대장.”
김진수 1소대장이 그를 불렀다.
“네.”
“표정이 왜 그래?”
“별거 아닙니다.”
“집에서 혼났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면 표정 좀 풀자. 아침부터 그런 꼴로 들어와야겠어? 애도 아니고 말이야.”
그 말에 윤태민 소위가 울컥했다.
‘시발 사람이 무슨 로봇이야? 24시간 365일 항상 기분이 좋을 수 있어. 나도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지. 시발, 더럽고 치사해서······.’
윤태민 소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행정실을 나갔다. 그런 윤태민 소위를 보며 홍일동 4소대장이 한마디 했다.
“와, 1소대장님 좀 세게 말씀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도 2소대장 요즘 많이 심란할 텐데 말입니다.”
“4소대장. 심란한 것은 심란한 것이고. 어쨌든 이곳은 혼자 있는 공간이 아니잖아. 할 일은 해야지. 막말로 지금 보직해임을 당했어, 직무정지를 당했어. 뭐야!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잖아. 이럴 때일수록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애도 아니고 말이야.”
김진수 1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자신도 윤태민 소위와 같았다면 많이 심란했을 것이다. 일에 집중하는 것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윤태민 소위가 자초한 일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여태껏 지금까지 4중대에서 해 먹었기 때문에 일이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이제 와 억울하다고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진짜 꼴불견이었다.
그런데 박윤지 3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 같으십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내가 그 일에 대해서 살짝 알아봤거든. 사실 일이 좀 복잡해졌어.”
“네? 일이 복잡해지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홍일동 4소대장도 흥미를 가지며 물었다.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입구 쪽을 보고는 이야기를 했다.
“2소대장 외할아버지가 신범규 준장님인 것은 다 알고 있지?”
“알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전역하셨지 않습니까.”
“전역은 했지.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았잖아. 아직 군에 입김 정도는 불 정도는 되시는 것 같아.”
“아······.”
“아무튼 그 양반이 움직인 것 같다.”
“와······. 너무하시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박윤지 3소대장도 인상을 썼다. 김진수 1소대장이 조용히 말했다.
“신범규 준장님 입장에서는 윤 소위가 고맙지. 다른 자식, 손자들 모두 자신의 뒤를 따르지 않겠다는데 혼자 이렇듯 자신을 따르겠다고 말을 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 녀석이 개차반이었다는 소문이 나봐. 그동안 쌓아온 신 준장님의 체면은 뭐가 되겠어.”
“그래도······.”
“아무튼 그 일 때문에 나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처럼 설치고 다니지는 못할 거야.”
김진수 1소대장이 3소대장과 4소대장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솔직히 김진수 1소대장도 신범규 준장이 나섰다고 해서 실망했다.
충격도 좀 받았고 말이다. 이대로 윤태민 소위가 기고만장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고.
그런데 열심히 안테나를 돌려본 결과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다. 윤태민 소위가 이렇듯 큰 사고를 쳤는데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다.
윤태민 소위가 가진 뒷배에 대해서 말이다.
‘정말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하지만 김진수 1소대장이 걱정하는 것처럼 윤태민 소위가 기고만장할 상황은 아니었다. 어제 신범규 준장에게 불려가서 제대로 호되게 혼이 났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야단맞는 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원해 줬던 것을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단 한 번만 더 사고를 치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말을 했다.
윤태민 소위 집안에서 신범규 준장 외가의 입김은 막강했다. 진짜 호적에서 파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재산상의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윤태민 소위도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외할아버지를 믿고 군 생활을 했는데 더 이상 편의를 봐주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으니 말이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군 생활이 구만리네.’
그리고 신범규 준장은 윤태민 소위에게 한 가지 미션을 줬다. 그것은 오상진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다.
“하아, 진짜······.”
담배를 피우는 윤태민 소위는 짜증이 치솟았다.
“그나저나 중대장님께 뭐라고 해야 하나?”
지난번까지만 해도 윤태민 소위는 절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발뺌을 하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다시 찾아갔을 때 이민균 병장이랑, 황익호 병장이 외부에서 물건을 받아왔다는 증거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업자까지 만나서 설득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다시 가서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시인을 한다는 것이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신범규 준장이 확인까지 한다고 했다.
“시발, 진짜 엿 같네.”
담배를 탁탁 털어서 버린 윤태민 소위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대장실로 간 그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결재서류에 사인을 하고 있던 오상진이 고개를 들었다.
“어. 윤 소위. 지난번에 그 일은 알아봤어?”
윤태민 소위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중대장님, 죄송합니다.”
그의 행동에 오상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래. 이 친구······. 일어나!”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모두 제 잘못입니다.”
“도대체 뭐가 자네 잘못인가?”
오상진이 물었다. 윤태민 소위는 잠깐 눈동자를 굴러더니 이내 말했다.
“저어 그것이······.”
“왜, 뭐? 부하 병사들 잘못 관리한 것이 또 잘못이야?”
“저, 그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일어나. 그런 얘기 들을 필요도 없으니까. 알아보라고 했던 것은 알아봤어?”
“······.”
“빨리빨리 알아봐. 그렇지 않으면 헌병이 참여할 거니까.”
“네? 헌병대가 말입니까?”
윤태민 소위의 눈이 커졌다. 신범규 준장이 나서서 일이 잘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헌병대 얘기를 하니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오상진도 헌병대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윤태민 소위가 이렇듯 질척거리고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니 그 자체도 꼴 보기가 싫었다.
하물며 최소한 이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신범규 준장을 외할아버지로 둔 것 때문에 운 좋게 한 번 넘어갔지만 이 일이 없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 주고 싶었다.
“윤 소위.”
“네.”
“왜? 자네가 외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어?”
“아닙니다.”
윤태민 소위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그 뒤로 오상진의 훈계가 이어졌다.
“요즘 같은 시기에 쉬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 일이 평생 묻어질 것 같아. 언제 어디서 이 얘기가 다시 나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그때도 자네 외할아버지가 다 해결해 줄까?”
오상진의 말에 윤태민 소위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오상진의 한숨을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윤 소위. 제발 부탁 좀 하자. 자네 군인이잖아. 군인이면 군인답게 굴어. 애처럼 굴지 말고. 알았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네는 몇 다른 얘기가 나올 때까지 근신하고 있어.”
“네에, 알겠습니다.”
“좋아하지 말고! 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
오상진의 말에 윤태민 소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이 모든 일이 오상진이 4중대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일어났다. 그렇다 보니 오상진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됐으니까, 나가봐.”
“네. 추, 충성.”
윤태민 소위가 경례를 하고는 바로 중대장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이렇게라도 고삐를 잡아야 할 텐데······.”
오상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오상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대에 출근을 했다. 간략하게 회의를 하고, 각자 업무를 봤다. 4중대 병사들이 주로 하는 일은 해안 경계근무였다.
서해안과 가깝기 때문에 근처 소초를 24시간 경계근무를 선다. 오늘도 다음 해안경계초소에 나갈 소대에 대한 것을 보고받았다.
“으음······.”
서류를 보고 있던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소희였다.
“네. 소희 씨.”
-혹시 전화 통화 가능해요?
“네. 말해요.”
-내일 우리 집 올 수 있는 거 맞죠?
“아, 내일 토요일이죠?”
-으음, 바빠요? 날짜 가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요?
“아니에요. 그런 것은 아니고······. 가야죠. 갈 겁니다.”
-정 바쁘면 안 와도 돼요. 제가 아빠에게 잘 말해놓을게요.
“어후,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당연히 내가 가야지. 절대 아버님께 말하지 마요.”
-알았어요. 아버지께는 말씀드려 놓을게요.
“그래요.”
한소희의 전화로 잠깐 기분이 좋아진 오상진은 다시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중대장으로서의 생활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