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잘 좀 하지 그랬어?(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53화
03. 잘 좀 하지 그랬어?(2)
이민식 대위 전 부임했던 중대장도 거의 반쯤 방관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김진수 1소대장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소대장들이 싹 물갈이가 되고, 이민식 대위가 부임하자 조금 아주 조금은 기대를 했다.
이민식 대위가 첫 부임하고 나서 한 말이 있었다. 4중대가 언제까지 꼴통 중대로 남아 있을 것이냐면 다 함께 바꿔보자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윤태민 2소대장과 쿵짝이 맞은 이민식 대위는 중대를 방치했고, 그 안에서 계속 윤태민 2소대장이 왕 노릇을 하면서 4중대를 곪게 만들었다.
거의 수습 불가능한 상태인 4중대. 단지 임기만 채워서 다른 곳으로 전출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 중대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뭔가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의욕적으로 나서 봤자, 바로 커트를 당해버리니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오상진이 나타났다.
김진수 1소대장도 중대장이 바뀐다는 소식에 소문을 듣긴 했다. 워낙에 잘나가는 선배다.
솔직히 육사 시절에 그렇게 눈에 띄는 선배는 아니었다. 오상진도 자신처럼 뒷배도 없었고, 부지런히 공부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딱히 잘될 것 같지 않은 그런 사람 말이다.
또한 워낙에 조용히 지내던 분이라 주변 친구들도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았다.
그랬던 분이 어느 날 쭉 치고 나가더니 이제는 동기들 중에서 가장 선두에 계신 분이었다. 그런 오상진을 보는 김진수 1소대장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왜 이제야 왔을까? 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원망도 했었다. 그랬다면 자신도 의욕적으로 했을텐데······. 그런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썩어빠진 4중대를 오상진이 와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것에 대한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오상진이 부임하기 전부터 4중대에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었다.
하나씩 하나씩, 4중대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4중대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윤태민이라는 종양까지 덜어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김진수 1소대장은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다. 알게 모르게 윤태민 2소대장이 중대를 망치는 것을 방관했고, 그것에 대해 반성도 많이 했다. 1소대를 이끌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반성을 했다. 그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족함에 대한 반성으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소주요.”
이모가 소주를 가지고 오자 곧바로 뚜껑을 딴 김진수 1소대장이 오상진에게 말했다.
“중대장님 잔 받으십시오.”
“어, 그래.”
술잔을 따르며 입을 연 김진수 1소대장.
“중대장님 지금까지 정말 제가 죄송했습니다.”
“에헤이. 자네 왜 그래. 뭘 잘못했다고 자꾸 그래.”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4중대로 전출 오면서 의욕이 많이 떨어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군인이 어떤 자리로 가려서는 안 되는데······ 어떤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또 그래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4중대 와보니, 이건······. 정말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중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나약하게 마음을 먹으니까. 주변에 문제들을 보고도 눈감았던 것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 중대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님을 보고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자자, 일단 한잔해.”
오상진이 잔을 들어 김진수 1소대장과 잔을 부딪쳤다. 곧바로 쭉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나도 자네 같은 시절이 있었네.”
“네?”
김진수 1소대장의 눈이 커졌다. 절대 앞에 있는 오상진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중대장도 한때는 로또에 빠져서 허송세월했던 적이 있어.”
“네? 로, 로또 말입니까?”
“어, 그래. 그때는 그랬지.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듣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실 우리 집도 가난했거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내가 원하는 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 그래서 선택한 곳이 육사야. 졸업을 하고 군인이 되었는데 갈 길이 너무 먼 거야. 어쩌다 보니 1소대장 자리를 맡았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어. 말이 좋아, 장교지. 거의 군대에서 말단에, 아니, 이등병보다 못한 존재라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아, 그 맘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소대장은 그럴지도 몰라. 계급을 봤을 때는 짬으로 따지고, 짬으로 따지려니 이제는 일반 병사들까지 인정해 주지도 않고. 장교로서 병사를 잘 이끌어야 하는데 말이야. 내가 아는 리더십이 아니었어. 나는 당연히 장교가 솔선수범을 보이고, 그것을 보고 사병들이 따르고. 그런 모습을 생각했단 말이야. 이것 뭐, 정치하듯이 타협하고, 좋은 것이 좋은 거라고 넘어가 주고 말이야. 그런 것이 소대장 생활을 잘하는 것이더라고.”
김진수 1소대장이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솔직히 이 진로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되었지.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리게 되었던 것 같아. 그 당시 한 방! 크게 한 방해서 나가자. 그런 생각이었거든.”
“그래서 당첨되셨습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웃으며 물었다. 오상진이 움찔하다가 말을 돌렸다.
“그 당시 나에게도 중대장님이 계셨거든 그분이 참 잘해주셨어. 솔직히 1소대장이라는 놈이 로또에 빠져서 헛짓거리를 하고 다니면 나 같아도 쫓아버렸을 텐데 그렇지 않았어. 날 계속 붙잡아주고, 또 동생처럼 아껴주시고 말이야. 중대장님 사모님이 계셨거든, 항상 도련님이라고 불러주시며 날 챙겨줬어.”
“아, 그러셨습니까?”
“그래. 그렇게 늦게 정신을 차렸지. 존경받고, 인정받고 하다 보니까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날 좋게 봐주는 그 당시 중대장님과 형수님을 위해서 정신 바짝 차리라고 다짐을 했지. 아마 그때부터 내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 정확하게 말을 하면······.”
오상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주잔을 기울였다.
더 정확하게 말을 하면 과거로 회귀하기 전이었다. 따지고 보면 시점상 그때가 맞았으니까. 게다가 김진수 1소대장은 오상진이 회귀한 것을 모른다. 그렇게 둘러대는 것이 맞았다.
“아무튼 그때부터 열심히 했어. 내가 달라져 봤자 얼마나 달라지겠어. 이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러고 보니까, 많은 것이 바뀌더라. 군 내 비리들도 잡게 되었고. 그런 것을 윗분이 좋게 봐주시기도 하고. 물론 부대 내에서 나를 다 좋아할 수는 없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면 또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시샘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써서는 군 생활 오래 못해.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신념을 믿고! 그렇다고 2소대장처럼 그러면 안 되고 말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자, 한 잔 받아.”
“네.”
두 사람은 다시 술을 따랐고, 잔을 부딪쳐 마셨다. 오상진은 잘 구워진 장어를 장에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이 집 장어 맛나게 하네.”
“그렇죠? 많이 드십시오.”
“김 중위도 많이 들지.”
“네.”
그리고 이런저런 다른 얘기를 하다가 김진수 1소대장이 다시 오상진을 불렀다.
“저기 중대장님.”
“왜?”
“외람된 말이지만 2소대장은 어떻게 하기로 생각하셨습니까?”
“으음······. 나도 그것이 고민이야. 솔직히 이 정도 했으면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본인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직도 말입니까?”
“그래.”
“뭐라고 합니까?”
“다 이 병장하고, 황 병장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부대에 반입했는지 조사해서 가지고 오라고 했어.”
“윤 소위에게 말입니까?”
“그래.”
“그러다가 이 문제를 2소대장이 덮기라도 하면······.”
“만약에 그리되면 2소대장은 본인이 억울함을 풀 방법이 없겠지. 본인이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할 거야.”
“아, 그럼 중대장님께서는 그걸 노리고······.”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잔을 들어 김진수 1소대장에게 내밀었다.
“술이나 마시자.”
“넵!”
오상진과 김진수 1소대장은 밤늦도록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오상진은 다시 자신의 소대장시절 얘기를 해줬고, 김진수 1소대장과 유대감이 한층 더 상승되었다.
김진수 1소대장과 헤어진 오상진은 아파트에 들어섰다. 다시 텅 빈 아파트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씁쓸했다.
“하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오상진은 고개를 들어 자신이 기거하는 층수를 바라봤다.
“어?”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기거하는 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지?”
오상진은 출근할 때 불을 켜고 나갔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분명히 불을 다 끄고 나갔다.
“그럼 소희 씨가?”
오상진은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층수를 누른 후 기다렸다.
“누가 왔지?”
혼자 중얼거리다가 띵동 하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오상진은 재빨리 자신의 집 앞 현관으로 갔다. 비밀번호를 누른 후 안으로 들어갔다.
“상진 씨예요?”
한소희의 목소리였다. 오상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소희 씨, 언제 왔어요?”
오상진이 밝은 목소리로 중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소희가 환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소희 씨······.”
오상진은 곧바로 한소희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한소희가 제지하며 말했다.
“내 문자 못 받았어요?”
“문자요? 잠깐만요.”
오상진이 서둘러 문자를 확인했다. 한 통이 와 있었다.
“어이쿠야. 내가 문자를 확인 못 했네요. 미안해요.”
“오늘 바빴어요?”
“바쁜 일도 있었고, 부대 일도 그렇고······. 제가 휴대폰을 볼 정신이 없었네요.”
“어쩐지······. 저도 바쁠 것 같아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연락이라도 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제가 술자리를 빨리 파하고 왔을 텐데······.”
“오늘 회식 있었어요?”
“아뇨. 1소대장이 술 한잔하자고 하네. 부대 오고 처음이거든요.”
“아, 그래요. 예전에 자기 소대장 시절에 형부랑 한잔했던 그때를 추억하면서요?”
한소희는 이미 김철환 소령을 형부라고 불렀다. 김선아를 언니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야, 우리 소희 씨는 척하면 척이네. 어떻게 다 알지.”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상진 씨에 관한 것은 다 알죠.”
“그래요. 이제 안아도 되죠?”
오상진이 두 팔을 벌렸다. 한소희가 새침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이 와락 한소희를 안았다.
“하, 좋다.”
오상진이 한소희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한소희가 살짝 눈을 흘겼다.
“상진 씨는 좋겠지만 저는 안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