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1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51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17)
“그런 말 하지 말게. 막말로 자네 같은 군인이 어디 있었나.”
“선배님께서 이렇듯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이 친구도 참······. 그보다 자네 여긴 어쩐 일인가? 그냥 안부 물으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정웅인 작전본부장의 물음에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선배님. 저기 제 외손주 놈들 중에 군대밥 먹고 있는 녀석을 아십니까?”
“자네 외손주? 어어, 소위라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자네가 기뻐했잖아. 손주 중에 한 놈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 같다면서. 그때 참 좋아했었지. 막 자랑하고 그랬지 않나.”
“······네, 그랬죠.”
장웅인 작전본부장이 어렴풋이 기억을 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도 생겼나?”
“저어, 그게 말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장웅인 작전본부장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의 말을 듣고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군 생활을 잘했던 외손자가 군대에서 그렇게 이탈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인가?”
“네. 선배님. 솔직히 제가 교육을 잘못 시킨 겁니다. 모두 제 불찰이고, 제 잘못입니다.”
“그것이 어찌 자네 탓인가. 자네 외손주가 잘못한 것이지.”
“아닙니다. 다 제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들들도 내 뜻대로 안 되고. 손자 중에서 단 하나 그놈이 육사를 가겠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때 제가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
“아예 처음부터 단호하게 그러지 못하도록 가르쳤어야 했는데, 제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자책하면 할수록, 장웅인 작전본부장의 마음이 불편해졌다.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자신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렇듯 찾아와 모든 얘기를 다 해줬는데 도움을 못 줄 것 같아서 말이다.
‘이것 참 골치 아프게 되었군.’
게다가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이미 전역한 지 꽤 됐지만 그럼에도 그의 입김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전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었다. 그가 군 정치적으로 얽매이고 쉽지 않아서 이러고 있는 것이지, 만약에 국방부 장관 쪽 편을 들어버리면 중립에 있는 모든 지지 세력들이 그쪽으로 가버릴 공산이 컸다.
한마디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 균형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다. 장웅인 작전본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자네 외손자 문제에 대해서 내가 좀 도움을 주길 원하는 건가?”
“아닙니다,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응?”
장웅인 작전본부장의 눈이 커졌다. 원래라면 도움을 청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그 반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선배님, 잘못 들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외손자가 이번 일로 제대로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인가? 처벌을 바란다고?”
“네. 제 외손주 놈입니다. 만약에 제가 아직 군복을 입고 있었다면 제 손으로 직접 벌을 내렸을 것입니다. 다만 그러지 못하기에 이렇듯 선배님께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괜히 다른 사람에 맡겼다가 제 손주라는 것을 알고 봐줄까 봐 말이죠.”
“그래서 제대로 처벌을 해달라?”
“네. 선배님.”
장웅인 작전본부장이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바라봤다. 그 말이 진심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할 위인은 아니야. 그럼에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외손자잖아······.’
장웅인 작전본부장이 고심을 했다.
“제대로 된 처벌을 하라.”
“네. 제 얼굴을 봐서라도 꼭 제대로 된 처벌을 해주십시오.”
그렇게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작전본부장 방을 나서고, 잠시 후 장기준 작전부장이 들어왔다.
“본부장님 찾으셨습니까.”
“어, 그래. 작전부장, 어서 와.”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다른 것은 아니고 신범규 준장이라고 아나?”
“네, 물론이죠. 제 바로 두 기수 선배님이십니다.”
“그렇지. 자네 선배지. 그것 말고 자네 따로 신범규 준장에 대해서 들은 거라도 있나?”
“신범규 준장에 대해서 말입니까?”
장기준 작전부장이 가만히 생각을 했다. 그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론 군 생활 잘하셨고, 딱히 라인이 없으셔서 일찍 옷을 벗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그 정도면 돼. 그보다 신 준장이 왔다 갔네.”
“신 준장이······. 왜?”
“거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그러니까, 외손주가 군 생활을 하고 있나봐. 소위인데, 아무래도 사고를 쳤나 보더라고.”
“사고 말입니까? 어떤 사고를 쳤습니까?”
“얘기를 듣기로는 외부 물건을 반입해 병사들에게 장사를 했던 모양이야.”
“네에?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나도 자세히는 잘 몰라. 얘기만 들었거든.”
“그럼 제가 자세히 알아봅니까?”
“그것도 알아보고, 신 준장 말로는 이번 기회에 정신 바짝 차리도록 제대로 된 처벌을 했으면 한다는군.”
“오, 신 준장님 대단합니다. 존경할 만합니다. 원래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외손주를 감쌌을 텐데 말입니다.”
장기준 작전부장도 깜짝 놀랐다. 장웅인 작전본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장기준 작전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는 아직 신 준장을 모르는 것 같군.”
“네?”
“신 준장이 왜 날 찾아왔겠나. 다 알고 찾아온 것이야. 다 알고.”
“무슨 말씀이신지······.”
“내 손에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기에 날 찾아온 거야.”
“아, 그런 것입니까?”
“그러네. 그 친구 말이야. 이번 기회에 정신 바짝 차리게 처벌을 해달라고 했지만. 만약에 정말로 제대로 처벌을 하면 그 친구는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렇게 되면 옷을 벗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옷을 벗게 되면 신 준장 체면은 또 뭐가 되고. 그걸 보고 신 준장이 좋아하겠어?”
“어어, 그러면······.”
“그래. 잘 덮어달라는 부탁이야. 만약에 이 일로 신 준장이 국방부 라인 쪽으로 붙어버리면 우리가 곤란해지잖아.”
“하긴 그렇죠. 아직 중립 쪽 사람들은 신 준장의 말을 다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거지. 어쨌든 신 준장이 국방부 라인 쪽과 거래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날 찾아 온 이상, 어떻게든 신 준장에게 빚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장기준 작전부장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일을 덮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좀 그랬다. 그것을 알기에 장웅인 작전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작전부장.”
“네.”
“우리 멀리 보도록 하지. 아직 일심회가 얼마나 큰지 가늠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 준장이 저쪽으로 붙어버리면 우리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할 것이야. 지금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 않나.”
“네. 그렇죠.”
“너무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말고, 융통성을 발휘해 보자고.”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 이만 나가보게.”
“네.”
장기준 작전부장이 사무실을 나섰다. 자신의 사무실로 간 장기준 작전부장. 잠시 후 심도윤 소령이 찾아왔다. 장기준 작전부장이 호출을 한 것이었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어, 심 소령. 자네 혹시 신범규 준장이라고 아나?”
“네. 알고 있습니다.”
“장교로 있다는 외손자는?”
“외손자라면······ 윤태민 소위 말입니까?”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자네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군. 뭔가?”
“아, 그게 말입니다.”
심도윤 소령이 오상진과 있었던 일을 천천히 풀어서 얘기했다. 장기준 작전부장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랬군. 그랬던 거였어.”
“네? 무슨 말씀입니까?”
“신 준장이 작전본부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해.”
“네? 신 준장이 말입니까? 뭐라고 합니까? 혹시 외손자 일을 무마시켜달라고 했습니까?”
“아니, 오히려 처벌을 원한다고 하더군.”
“네에?”
심도윤 소령이 눈을 크게 했다. 장기준 작전부장이 피식 웃었다.
“자네도 놀랍지.”
“네. 놀랍습니다. 그런데 외손자 아닙니까.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정상이지 않습니까. 이 말을 도로 삼켰다. 어쨌든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했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
“네에?”
이건 또 무슨 반전인지 몰랐다. 장기준 작전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본부장님 말씀에는 오히려 반대라고 하더군.”
“반대라면······ 알아서 잘 마무리 지어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역시······.”
“자네도 알잖아. 만약 처벌을 하면 어떻게 될지.”
“네. 그렇죠. 정말로 우리가 윤태민 소위를 처벌하면 일이 좀 꼬일 수도 있죠. 만약에 처벌을 하더라도 우리쪽에 하면 더 곤란해지는 거죠.”
“그래, 그걸 알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지. 자신은 어쨌든 외손자의 처벌을 강력히 원한다고 말을 한 거야. 하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은 그게 아니지. 안 그런가?”
“네. 정말 능구렁이 같습니다.”
“그게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
“하아, 맞습니다. 사실 저는 윤태민 소위에 대한 처벌을 송일중 중령과 곽종윤 준장에게 넘길 생각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이 일을 덮으면 덮는대로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 일에 대해서 징계를 하면 신범규 준장은 자연스럽게 국방부 쪽 라인하고 척을 지게 될 테니까요. 당연히 우리쪽으로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말입니다.”
심도윤 소령이 그런 식으로 적당히 판을 짜놓았다. 그런데 신범규 예비역 준장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장웅인 작전본부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이대로 사건을 떠넘겨 버리면 국방부 장관 쪽에서 신범규 예비역 준장을 포섭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아마 작전본부장님을 찾아 온 것도 그쪽의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해. 신 준장같이 대쪽같은 사람이 국방부 장관하고 어울리지 않지. 절대 친해질 수 없는 두 사람이야.”
한마디로 물과 기름같은 사이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말해보게.”
“오 대위가 적당히 덮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맞아. 그런데 그리되면 오 대위 꼴이 말이 아니게 되잖아. 지금 그곳은 이미 오 대위를 물어뜯으려고 난리인 곳인데 말이야. 만약 조용히 덮으라면 한마디로 힘을 잃게 되는 것이야. 막말로 기껏 중대 개혁을 위해 그곳으로 내려갔는데 우리 계획을 위해 오 대위 체면을 깎아서야 되겠나.”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송 중령 좀 만나지.”
“제가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송 중령을 만나서 이 일을 잘 매듭지었으면 좋겠어.”
장기준 작전부장의 지시에 심도윤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작전부장님.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