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0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3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04)
오상진의 방으로 들어온 세나는 감상하듯 찬찬히 방 안을 훑어봤다. 남자 형제가 없는 세나는 남자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랐다.
막상 오상진의 방에 들어와 보니 뭔가 없었다. 장롱 하나에 매트리스만 있는 침대. 책 한 권 꽂혀 있지 않은 책상. 그리고 TV 하나가 전부였다. 천천히 둘러보던 세나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으음, 여기가 오빠가 지냈던 방이구나. 왠지 오빠 냄새가 나는 것 같네.”
세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오상희가 방 안에 들어와 코를 벌렁거렸다.
“응? 냄새나?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지? 엄마가 청소했다고 하던데.”
“아니야, 아무 냄새도 안 나.”
세나는 당황한 얼굴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틀었다.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이불이 없네.”
“이불은 내가 가져다 줄 거고. 잠깐만.”
오상희가 여기저기를 확인하며 말했다.
“언니! 여기 비었다. 여기 서랍을 사용하면 될 것 같고. 옷장도 그냥 사용해도 될 것 같은데. 오빠 옷을 한 쪽으로 치우고. 오빠 옷이 몇 개 없어서.”
“음, 알았어.”
“아니다. 그냥 오빠 옷 꺼내서 한쪽으로 치워 버릴까?”
“아니야, 괜찮아. 내 옷도 많지 않은걸. 그냥 한쪽으로 밀어서 사용할게.”
세나가 다급히 오상희를 말렸다. 솔직히 오상진 방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주인 없는 방의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았다.
“알겠어. 언니, 정리하고 있어.”
“그래.”
오상희가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그사이 세나는 자신의 캐리어를 열어 옷과 생필품을 꺼내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서랍 제일 아래 칸에 속옷을 집어넣고, 그 위에 티셔츠를 포함해 몇 가지 생필품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그다음 옷을 꺼내 옷장에 걸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오상진과 함께 지내는 그런 착각이 들었다. 옷장 한편에 밀려나 있는 오상진의 옷을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움찔하고 놀랐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로 양손을 볼에 가져갔다. 그런데 오상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언니, 이것 좀 받아줘.”
오상희가 밑에서 뭔가 낑낑거리며 가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세나가 깜짝 놀라며 나갔다.
“이게 뭐야?”
“뭐긴 이불이지. 보고만 있을 거야? 좀 도와주지.”
“으응, 미안······.”
세나가 재빨리 도와주러 가서 보니, 베개랑 몇 장의 이불이었다.
“뭐야. 무겁지도 않은데.”
“이게 안 무거워? 언니. 나 이거 들고 올라오다가 완전 뒤로 구를 뻔했잖아.”
“그래. 고생했다.”
세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을 챙겨주는 오상희가 고마웠다.
“고마워.”
세나는 오상희가 가져 온 이불을 펼쳤다. 빈 매트리스에 이불을 깔고, 베개를 놨다. 그렇게 침대를 정리하고 보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사람이 사는 방 같다. 그치 언니.”
“그러네.”
세나가 방긋 웃었다. 그런데 띠리릭 하며 1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상희가 바로 몸을 돌렸다.
“응? 엄마가 왔나?”
오상희가 후다닥 아래로 내려갔다. 세나 역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가 오셨다고?”
세나 역시 내려가려다가 방 한쪽에 있는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얼굴과 흘러내린 앞머리를 쓰윽 올린 후 방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은 오상희가 소리쳤다.
“엄마야?”
오상희가 현관 앞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람은 오정진이었다. 오정진도 오상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뭐야, 너 왜 집에 있어?”
“오빠는 왜 집에 온 거야?”
“오늘은 집에서 지내려고 왔지. 그런데 너 휴가야?”
“아니. 엄마에게 얘기 못 들었어? 나 당분간 집에서 살 건데.”
“뭐? 당분간 언제?”
“나도 모르지. 한 달이 될지, 두 달이 될지.”
“진짜? 하아, 이게 뭐야. 모처럼 집에 왔는데.”
오정진이 잠깐 고민을 하다가 몸을 돌렸다. 오상희가 깜짝 놀랐다.
“으잉? 모처럼 집에 왔는데 그냥 간다고?”
“나 공부해야 한다니까.”
“누가 공부 못하게 해? 공부하면 되지. 누가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뒤늦게 2층 계단에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세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오정진을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에. 안녕하세요.”
같이 인사를 하는 오정진의 표정이 달라졌다. 오상희가 바로 세나를 소개했다.
“오빠, 우리 팀 세나 언니. 알지?”
“으응······.”
오정진이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오상희가 바로 세나에게 말했다.
“언니, 우리 작은 오빠.”
“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색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 오상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언니, 오빠 집에 공부하러 왔대.”
“죄송해요, 제가 허락도 받지 않고, 집에 들어왔네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여기서 당분간 지내시는 거죠?”
오상희가 미리 얘기를 한 게 있어 오정진도 얼추 알고 있었지만 그날이 오늘인 줄은 몰랐다. 오상희가 세나에게 팔짱을 꼈다.
“맞아. 오늘부터 언니랑 함께 지내기로 했어. 숙소 정해질 때까지만. 오빠 괜찮지?”
“나야, 뭐······. 아래층에 있을 테니까.”
“공부에 방해 안 되게 조심할게요.”
“괜찮습니다. 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세요.”
그 말을 들은 오상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어이가 없네. 나한테도 좀 그래봐.”
“넌 만날 시끄럽게 굴잖아.”
“쳇!”
오상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오정진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럼 난 방에 들어간다. 그럼 쉬세요.”
서로 인사를 하고 방으로 가려는데 오상희가 바로 오정진을 붙잡았다.
“오빠, 이대로 들어갈 거야?”
“뭐?”
“아니, 뭐 잊은 거 없냐고.”
“뭘 말이야. 말을 해, 그냥!”
“우씨, 그냥 들어가지 말고 우리 뭐 좀 사 줘.”
세나가 난처한 얼굴로 오상희의 팔을 붙잡았다.
“상희야 그러지 마.”
“괜찮아, 언니. 가만히 있어봐.”
그리곤 오상희는 오정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니, 오빠가 되어가지고 오랜만에 동생이 집에 왔는데 어떻게 이러냐! 좀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알았어, 알았어! 뭐 사 줘?”
“헤헤, 당연히 치킨이지. 치킨 사 줘.”
오상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세나 역시도 치킨이라는 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정진은 바로 지갑에서 만 원권 3장을 꺼내 내밀었다.
“알아서 시켜 먹어. 난 이만 들어갈게.”
“오케이. 고마워, 오빠.”
“이럴 때만?”
“응, 이럴 때만.”
오상희가 3만 원을 낚아채며 말했다. 오정진은 그런 오상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히려 세나가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죄,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럼 둘이 맛나게 시켜 먹어요. 전 이만······.”
오정진이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상희는 신나하며 치킨을 시켰다. 그것도 1인 1닭을 원칙으로 해서 주문했다.
잠시 후 치킨이 배달되었고, 오상희가 치킨을 풀며 소리쳤다.
“오빠! 작은 오빠! 치킨 먹어.”
밖으로 나온 오정진은 치킨 세 마리를 보며 깜짝 놀랐다.
“야, 무슨 세 마리나 시켰어.”
“무슨 소리야. 1인 1닭이지.”
오상희가 당당하게 말했고, 세나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정말 이거 다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당연하지.”
“못 먹기만 해봐.”
오정진이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두 사람이 앉고, 각자 하나씩 치킨을 앞에 뒀다. 그리고 세 사람은 말없이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정말 야무지게 치킨의 살을 발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발골이 되었다.
심지어 오정진이 반마리를 먹을 동안 두 사람은 한 마리를 다 먹었다.
“오빠, 그거 다 먹을 거야?”
오상희가 입맛을 다시며 오정진 앞에 놓인 치킨을 봤다. 오정진은 질렸다는 얼굴로 남은 반 마리를 오상희에게 줬다.
“아니, 나는 다 먹었다. 남은 거 너 먹어라.”
“헤헤, 고마워. 언니도 더 먹어.”
“나, 나도······.”
세나 역시 더 먹을 수 있었다. 다만, 앞에 앉은 오정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짝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맛있는 치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오정진이 궁금증이 느꼈다.
“그런데 당분간 집에서 살겠다는 것이 무슨 뜻이야?”
“어? 큰오빠에게 얘기 못 들었어?”
“나도 정신이 없는데 형하고 통화할 시간이 어디 있어.”
“에이, 무슨 형제가 이래.”
오상희는 뜯다 만 치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쭉 설명했다. 얘기를 다 들은 오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사에 문제가 생겨서 형이 차린 기획사로 들어갔다고?”
“응!”
“형은 그런 일이 있었으면 얘기를 해줘야지.”
“으구, 오빠가 먼저 좀 연락하면 안 돼? 큰 오빠는 군대에 있다가 주말에만 잠깐씩 올라와서 우리 일 해주고 있는데.”
오정진이 살짝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언제쯤 숙소가 정해져?”
“몰라, 큰오빠 말로는 기왕 잡는 숙소, 괜찮은 곳으로 잡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하던데.”
“숙소를 매매하기로 한 거야?”
“그럴 것 같은데?”
“형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기에 매매를 생각해.”
“나도 모르지. 어쨌든 엄청 많다는 것을 알지.”
오상희가 말했다. 세나는 말할 틈을 엿보다가 잠깐 끊어지자 곧바로 질문을 했다.
“저어, 정진 씨는 한국대 법대생이라고 들었어요.”
“아, 네에.”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한국대 법대에 들어가셨어요. 정말 똑똑하신가 봐요.”
“아니에요. 오히려 공부는 저희 형이 더 잘했죠.”
“어머, 그래요?”
“네. 형도 법대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당시 저희 형편이 좋지 않아서요. 그래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육군사관학교로 간 겁니다. 그런데 형이 어떻게 돈을 벌어서 저랑 상희 뒷바라지도 해주고, 어머니 가게도 차려주고 그랬습니다.”
오정진의 그 말에 세나는 또 오상진이 멋져 보였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오상희가 세나를 놀렸다.
“또또, 언니. 우리 큰오빠에게 빠졌죠.”
“아, 아니야. 얘는······.”
그때 세나의 휴대폰이 지잉지잉 울렸다. 세나가 곧바로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
“응? 황인철 이사님?”
세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오상희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황인철 이사? 이 인간이 왜?”
“나도 몰라.”
“그냥 받지 마.”
오상희가 만류했다. 세나도 한참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내렸다.
“그래, 받지 말자.”
세나 역시도 황인철 이사와 통화하는 것이 껄끄러웠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왔다. 황인철 이사였다.
“왜 자꾸 전화를 하지? 무슨 일 있나?”
세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러곤 오상희를 향해 말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아니, 언니! 왜 받아? 이제 우리는 그쪽 소속사가 아니잖아. 그런데 굳이 전화를 받을 필요가 있어?”
“그래도······ 인사도 못 하고 나왔잖아.”
“언니······.”
그런 오상희를 뒤로하고 세나는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