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0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3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03)
“으응, 그렇지. 지금까지 내 도움으로 만든 작품이 10개는 넘지.”
“그렇게나 많이요?”
“어? 이거 괜히 말했나?”
한중만이 순간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벌어다 준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걸 이실직고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런 한중만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협회에 지원하세요. 그러다 보면 협회에서도 한자리 주지 않겠어요?”
한중만이 눈을 크게 하며 손으로 턱을 쓸었다.
“어! 그 생각을 못했네.”
“그러니까요. 좋은 투자자만 하실 거예요. 지금까지 충분히 노력하셨잖아요. 그러니 협회에 한자리 차지하시고, 회사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회사를 키워? 아, 그래. 소희에게 얘기를 들었다. 자네 기획사 차렸다면서.”
“네. 저희 기획사에 신소라 씨 있는 거 아시죠?”
“들었어. 신소라······. 우리 팀에 넣어 주는 거지?”
“작품만 좋으면 계약하죠.”
“어후, 신소라 캐스팅하기 하늘의 별 따기인데······. 역시 내가 처남 하나는 잘 뒀다니까.”
한중만 껄껄 웃었다.
“그러니까요. 소희 씨도 오 엔터를 본격적으로 키워볼 생각인데, 형님도 같이 맞춰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서로 윈윈하면 좋잖아요.”
한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엔터에서 좋은 배우들을 키우고, 좋은 배우들을 소중 픽처스에서 캐스팅해서 영화 제작에 참여를 시킨다. 그렇게 서로서로 도와주면 나쁠 것도 없었다.
“그래, 알았어. 나도 이번에 마음을 잡고 회사를 좀 키워볼게.”
“네. 형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한중만도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윤태민 2소대장이었다.
“응? 이 친구가 무슨 일이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바로 말했다.
“형님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왜? 여기서 받아.”
“아뇨, 부대 일이라서요. 그럼······.”
“알았어.”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그래. 무슨 일이야?”
-중대장님 바쁘십니까?
“아니야. 얘기해.”
-중대장님 지금 부대에 계십니까?
“아니, 지금 서울에 올라와 있는데.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신지 여쭤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저녁에? 왜?”
-술 한잔했으면 합니다.
“술 한잔?”
오상진이 그 얘기를 듣고 피식 웃었다. 대전에 교육을 받으러 갈 때만 해도 다시는 안 올 것처럼 말하고, 갔었다. 그랬던 인간이 지금 통화 목소리를 들어보니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어쭈, 부대에 돌아와야 할 것 같으니, 슬슬 약을 파시겠다.’
오상진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오상진은 윤태민 2소대장과 가까워질 필요가 없었다.
“미안한데.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다음에 하지. 다음에.”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충성.
“그래.”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후후후, 윤태민.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될 것이라 생각은 하지 마.”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오상진이 소중 픽처스를 나선 후 한중만도 건너편 커피숍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석에서 홍진주가 선글라스를 낀 채 혼자 셀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너, 뭐 해.”
“오빠! 왜 이렇게 늦게 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문 쪽으로 시선을 뒀다.
“그런데 왜 오빠 혼자 와?”
“나 혼자 오지. 또 누가 와.”
“오 이사님은?”
한중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이사를 네가 왜 보게.”
“어머, 오빠는······. 나 주연시켜 주기로 했잖아.”
한중만이 그런 홍진주를 빤히 바라봤다. 솔직히 한중만은 주연을 시켜주겠다고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진주야.”
“왜?”
“나 이러려고 만나는 거니?”
“응?”
“주연배우 따내고 싶어서 나 만나는 거냐고.”
“무슨 소리야. 내가 그렇게 속물인 줄 알아.”
“그래?”
한중만의 얼굴을 보던 홍진주가 팔짱을 꼈다.
“뭐야, 오빠. 설마 내가 오빠랑 안 자줘서 그러는 거야?”
곧바로 한중만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야, 목소리 낮춰. 무슨 여자애가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고 그래.”
“와, 오빠 너무하다. 내가 전에 말했잖아. 나는 남자 오래 보는 편이라고. 남자들이 여자랑 잠자리를 갖고 나면 바로 말 바꾸고, 금방 사랑도 식고 말이야. 나도 다 들어서 알거든. 그래서 그러는 건데······. 오빠 진짜, 해도 너무하네.”
홍진주는 억울하다는 듯 바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감정에 호소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한중만은 그런 홍진주의 가식에 어이가 없었다. 정말 순수한 애가 그런 말을 하면 말도 안 했다.
홍진주는 자신이 사준 메이커 선글라스를 끼고, 자신이 돈을 내준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에 머리까지 다 했다. 게다가 자신이 사준 원피스, 액세서리, 최신형 휴대폰까지 다 해줬다.
‘내가 진짜 너에게 쓴 돈이 얼마인데······.’
그 돈이 아까워서 더욱 만나고 그랬던 것도 있었다. 이만큼 정성을 들였으니 좀 더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것을 봐서는 홍진주는 계속 자신을 호구 취급할 것 같았다.
“진우야. 너 캐스팅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만 들어가 봐.”
홍진주가 바로 정색했다.
“오빠! 너무한 거 아니야? 무슨 제작사 대표가 여자 친구 하나 캐스팅을 못 해줘?”
“뭐? 여자 친구? 네가 내 여자 친구였냐?”
“그럼!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오히려 내가 궁금하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너 내 여자 친구 맞아?”
“당연하지. 그럼 내가 오빠 여자 친구이지. 누가 여자 친구야. 아니면 오빠, 나 말고 다른 여자 생겼어?”
“하아, 진주야. 어느 여자 친구가 너처럼 그래.”
홍진주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오빠 진짜······. 똑바로 말해봐. 내가 오빠랑 자지 않아서 그런 거지? 알았어, 가자, 가! 지금 호텔로 가!”
그 모습에 더 정내미가 떨어지는 한중만이었다.
“됐고!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내 주제에 너는 너무 과한 것 같아서 그것 때문에 오늘 보자고 한 것이었어.”
물론 한중만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홍진주랑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간단히 술을 먹으며 진도를 뺄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상진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게다가 스캔들 메이커까지 듣자, 홍진주가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았다.
“오빠 진심이야?”
홍진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한중만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진심 후회하지 않지?”
“응!”
“그래서 뭐? 지금까지 나 사준 거 다 달라고?”
“왜? 내가 달라고 하면 다 줄 거야?”
“미쳤어? 오빠, 그렇게 찌질한 사람이었어?”
“됐어. 난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너도 앞으로 잘 지내라.”
한중만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홍진주가 말했다.
“오빠, 지금 일 분명 후회할걸.”
“어, 후회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맞는 것 같다. 오빠가 아무래도 바빠질 것 같거든.”
“뭐? 바빠? 뭔데······.”
“그런 것이 있어. 나중에 지나가더라도 아는 체는 하지 말자. 잘 지내고!”
한중만은 그 말을 끝으로 거기서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래. 아니, 진짜 뭐지? 괜히 불안하네. 일이 있다고? 혹시 영화 제작하나? 그럼 나 좀 캐스팅 해주지. 아, 짜증 나.”
그러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지잉, 지잉.
“어, 왜?”
-바쁘냐?
“아니, 안 바빠!”
-너 소문을 들어보니 너 놈팡이 하나 물어서 팔자 피려고 하고 있다며.
“뭐라는 거야.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야, 너 소문 다 났거든.
“아니거든. 그냥 아는 관계자거든.”
-그래? 그럼 너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라.
“왜?”
-왜긴 왜야. 오랜만에 불타는 밤을 보내자는 거지.
“뭐라는 거야. 쳇!”
홍진주가 어처구니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나가는 한중만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니야. 오늘 저녁에 보자!”
-각오해. 오늘 밤 화끈하게 보내 줄 테니까.
“왜? 혹시 좋은 거 들어왔어?”
홍진주의 눈이 반짝였다.
-야, 장난 아니야.
“진짜? 믿어도 돼?”
-너는 내가 어디 쓸데없는 물건을 준 적이 있니. 믿어봐.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화끈한 거니까.
“좋아, 믿어보지. 몇 시까지 가면 돼.”
홍진주는 전화를 받으며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진 씨 일 끝났어요?
“네.”
-오빠랑 얘기는 잘 끝냈고요?
“네. 그런데 홍진주 씨가 왔던데요.”
-와. 또 왔어요?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잘 말했어요. 그 여자 만나지 말라고.”
-잘했어요. 역시 상진 씨밖에 없어요. 그런데 홍진주 씨가 상진 씨 보고 뭐라고 안 해요?
“아, 자기 못 알아본다고 화내던데요.”
오상진이 웃으며 말하자, 한소희가 바로 열을 냈다.
-와, 어이가 없네.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요?
“뭘 뭐라고 그래요. 그냥 무시했어요.”
-참! 아까 최 이사에게 연락이 왔는데요. 이사 잘 끝났다고 그래요.
“잘했네요. 그런데 세나는······.”
-상진 씨 집으로 들어갔다고 하던데요.
“아, 그렇구나. 어차피 갈 곳이 형님네 집밖에 없어요. 그런데 거기 애가 둘이라서 편히 지내기가 좀 힘들어요.”
-맞다. 얼마 전에 언니가 둘째 낳았다고 했죠.
“네.”
-알겠어요. 조금 있다 저녁에 봐요.
오상진과 한소희는 전화를 끊었다. 잠깐 생각을 하던 오상진이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오상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왜?
“집에 잘 도착했어?”
-응. 지금 짐 풀고 있어.
“알았다. 금방 숙소 구해줄 테니까. 짐 적당히 풀어 놔. 곧 다시 이사할지도 모르니까.”
-알았어.
“그래, 세나 옆에 있으면 바꿔줘.”
-기다려.
잠시 후 바로 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오빠.
“그래, 세나야. 불편하지는 않고?”
-아뇨, 여기 너무 좋아요. 그런데 상희가 자꾸 오빠 방을 쓰라고 하는데······. 써도 돼요?
세나가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했다.
“그럼, 써도 돼. 괜찮아. 오빠 방 써.”
-저어, 그래도······.
“왜? 내 방이 지저분해?”
-아뇨. 그건 아니에요. 제가 쓰면 오빠는······.
“어차피 너희들 거기 계속 있을 것도 아닌데 뭐. 걱정 하지 말고. 그냥 마음껏 써.”
어차피 빈 방이었다. 한소희와 따로 지낼 아파트를 마련한 이후로 집에서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기본적인 가구들은 배치되어 있으니 잠깐이라도 세나가 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알겠어요, 오빠. 그럼 잘 쓸게요.
“그래. 그리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네.
“잘 지내고. 곧 숙소 구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쉬어.”
-오빠도요.
그렇게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내가 청소를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