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0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35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101)
“에이, 남자가 무슨 피부 관리에요.”
“어허. 너 진짜 모르네. 네가 하는 일은 서비스업이야. 앞으로 수많은 연예 관계자를 만나게 될 텐데 깔끔하게 다니면 좀 좋냐?”
“저 옷 매일 갈아입는데요?”
“옷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형님 하나라도 모자라서 너까지 보태지 말라고, 김우진!”
“알았어요. 나한테만 자꾸 그래요.”
김우진 실장이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면도하라면서요.”
김우진 실장이 버럭하고는 응접실을 나갔다. 서둘러 일회용 면도기를 챙겨서 화장실로 갔다. 면도를 깔끔하게 정리한 후 다시 응접실로 돌아왔다.
“됐어요?”
김우진 실장이 면도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자세히 살펴보던 오상진이 인상을 썼다.
“에헤이, 이왕 면도할 거면 좀 잘해봐라. 그게 뭐냐. 삐뚤삐뚤하게······. 안 하느니만 못하잖아.”
“아, 이건 뽑으면 되죠. 손으로······.”
자신의 손으로 잔털을 뽑으려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때 조예령이 들어왔다.
“커피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드는데 김우진 실장을 봤다.
“어? 면도하셨네요.”
“응. 안 한 지 오래되어서.”
“진작 좀 하시죠. 내가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그 말을 하고는 응접실을 나갔다. 김우진 실장이 눈을 끔뻑였다. 곧바로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뭐죠, 이건? 시그널인가? 아니면 그냥 들었다, 놨다 이건가?”
“그래서 좋아?”
“네. 난 절 막 가지고 노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나 봐요.”
“변태냐?”
“변태라니요. 말씀을 참, 거시기하게 하시네요.”
“김 실장아, 내가 말하는데 연애를 할 때는 남자 대 여자로. 무슨 소리인지 알지?”
“네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소중 픽처스 실장이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아세요. 예령 씨는 오히려 코웃음을 칠걸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넌지시 말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기획서 들어온 것 있으면 좀 줘봐.”
“거기 있잖아요. 들어온 건 그게 다예요.”
“그래?”
“안 보셨어요?”
“아니, 대충 훑어보긴 했는데······. 이거 내가 전에 봤던 거 아니냐.”
“아, 그랬나 보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김우진 실장이 후다닥 응접실을 나가서는 자신의 책상으로 갔다. 그곳에서 최근에 들어온 기획서를 챙겨서 다시 들어왔다.
“여기요. 최근에 들어온 기획서에요.”
오상진이 몇 개를 보고는 말했다.
“이것밖에 안 들어왔어?”
“안 될 것 같은 것은 제 선에서 다 정리했죠.”
“와, 김우진. 많이 컸다. 보는 눈이 생겼어?”
“에이, 왜 그러세요. 제가 지금 몇 년 차인데요.”
김우진 실장도 처음에 아르바이트로 시작을 했다가 소중 픽처스에서 나름 보람도 느꼈고. 뭐가 잘될 것 같은지 어느 정도 눈치가 생겼다. 나름 경험을 쌓은 것이었다.
다만 김우진 실장이 나이가 좀 어린 것이 조금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경력에 비해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좀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서른 좀 되면 김우진 실장에게 소중 픽처스를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그래. 잘했다.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만. 알았지.”
“네. 기획서 보고 계세요. 저는 다른 일 좀 보고 있을게요.”
김우진 실장이 응접실을 나가서는 자신의 책상으로 가지 않고, 또다시 조예령에게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 자식 또······. 에효. 그렇게 좋을까.”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기획서를 훑어봤다. 첫 번째는 그저 그랬고, 두 번째 기획서는 영 아니었다. 그러다가 세 번째 기획서를 보는데 제목이 낯설지 않았다.
“앗 나의 실수! 뭐지? 제목이······.”
오상진이 기획서를 바로 읽어봤다. 그런데 시놉시스를 확인한 순간 오상진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어? 이건 스캔들 메이커잖아.”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사실 스캔들 메이커는 연말에 개봉을 해서 900만의 관객을 동원한 초대박 영화였다. 주연배우 차현태 배우 말고는 유명한 배우도 없어 보였다.
차현태 배우의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국민 여동생 박보연을 스타 덤에 올린 위대한 영화였다.
“와, 이 시놉이 여기에 들어오다니. 대박이네.”
그런데 시놉을 확인해 보니 오상진이 알고 있는 것과 스토리가 조금 달랐다.
오상진이 기억하고 있는 박보연의 캐릭터도 비슷한 시기에 사고를 쳐서 어린 아들을 둔 미혼모로 나왔다.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시놉에는 그냥 가출 청소년으로 나왔다.
“으음······. 이렇게 보니까 좀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알던 스토리로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오상진이 책상을 톡톡톡 두드리고 있다가 그 시놉 위에 볼펜으로 뭔가를 적었다.
-여자 주인공도 미혼모 설정으로 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할아버지와 엄마에게 있던 음악적 재능을 어린 손자, 아들에게도 주는 것이 좋을 듯. +피아노 신동?
이렇듯 볼펜으로 긁적였다. 그리고 예상 캐스팅을 그 밑에 직접 적었다.
-남자 주인공은 차현태. 여자 주인공은 박보연. 손자, 아들로 나오는 아역배우로는······.
오상진이 기억하는 것을 토대로 몇 가지를 적어놨다.
“대충 이 정도만 팁을 줄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딸랑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밖이 소란스러웠다. 오상진의 시선이 밖으로 향했다.
“손님이 왔나?”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기획서로 향했다. 그러던 중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모르는 여자가 쏙 들어왔다. 오상진의 시선이 응접실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여자가 있는 것이었다.
“누구세요?”
오상진의 물음에 그 여자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어머, 손님이 와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네.”
오상진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저 모르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요새 TV를 잘 못 봐서요.”
물론 오상진이 지금 내뱉은 말은 거짓말이었다. TV도 잘 보고, 한소희랑 영화도 잘 보러 다녔다. 요즘처럼 문화생활을 열심히 한 적도 없었다.
이 일을 하려면 영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여자는 본 것도 같은데 뭔가 긴가민가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살짝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와, 어이없네······.”
“네?”
“저 홍진주예요. 홍진주!”
“아, 홍진주 씨요?”
오상진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마약을 상습 복용한 배우였다.
‘어쩐지······. 이제야 생각났네.’
오상진이 홍진주를 빤히 바라봤다. 짙은 눈 화장에 생얼처럼 이미지를 바꿔서 기자회견에 나타났다. 그때 막 울면서 기자회견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맞아. 그 배우였어.’
그러면서 슬쩍 휴대폰에 홍진주를 검색해서 확인했다. 패션모델 출신, 요즘 핫한 배우 홍진주라는 기사가 막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홍진주가 말했다.
“혹시 제 기사 찾아보신 거예요?”
“네?”
“왜요? 내가 홍진주가 아닌데 홍진주라고 했을 것 같아서요? 와, 진짜 어이없네.”
홍진주는 약간 스스로 오해하고, 화를 내는 스타일에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오상진은 홍진주에 대해서 잘 몰랐다.
다만, 마약 사건으로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을 때, 그때의 일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홍진주가 시건방진 모습을 보이니, 어이가 없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했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결례를 저질렀네요.”
“그러게요. 왜 본의 아니게 결례를 하고 그래요.”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며 한중만이 들어왔다.
“오 이사. 왔으면 연락을 줬어야지.”
그렇게 들어왔는데 홍진주가 바로 한중만에게 달려갔다.
“오빠, 이 사람이······.”
“왜? 이 사람이라니. 너 또 뭔 사고를 쳤어.”
“뭔 사고가 아니라. 이 사람이 날 못 알아보잖아.”
순간 한중만이 당황한 눈빛이 되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크흠, 오 이사······. 혹시 진주가 사고, 아니, 실수라도 했어?”
홍진주가 바로 소리쳤다.
“오빠!”
“넌 좀 조용히 해.”
“아니, 왜 나한테만 그래.”
홍진주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애써 무시하며 자리에 쓰윽 앉았다.
“오 이사. 애가 철이 없어서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니야.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그 모습을 보며 홍진주가 한중만과 오상진을 번갈아 봤다.
‘뭐야? 오빠가 여기 대표라면서······. 그런데 왜 저 사람에게 쩔쩔매지? 가만, 오 이사?’
잘나간다는 한중만을 소개받았을 때 홍진주는 실망을 했다. 그것도 투자자라고 하면 잘 꾸미고, 멋진 그런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말을 하면 깔끔한 슈트 차림에 잘 어울리는 사업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한중만은 외모도 별로고, 키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또한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수염도 밀지 않았다. 덥수룩한 수염에 꽤나 지저분해 보였다.
그래도 워낙에 잘나간다고 해서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지못해 반쯤 연인 관계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런 한중만이 저 남자에게 쩔쩔매고 있으니 실망스러웠다.
“오빠, 누군데 그래.”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우리 매제!”
“아, 대박 쳤던 영화들 기가 막히게 찾던 그분?”
“그래!”
“그분이 이분이셔!”
홍진주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하니 자신이 그토록 만나보고 싶어 했던 오상진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죄송해요, 제가 몰라보고······.”
홍진주가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아, 예에······.”
오상진이 멋쩍게 웃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한중만이 중간에 껴서 슬쩍 말했다.
“오 이사, 그러지 말고 진주 사과를 받아줘.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러자 오상진이 약간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오상진을 눈치 보다가 슬쩍 말했다.
“오 이사님. 저 미워하시면 안 돼요.”
“네네.”
오상진은 대답을 했지만 분위기는 차가웠다. 한중만이 바보도 아니고, 그 분위기를 바로 캐치했다.
“진주야. 너 저기, 길 건너 커피숍에 가 있어.”
“커피숍? 거긴 왜?”
“그냥 가 있어. 여기 얘기하고 갈 테니까.”
홍진주는 솔직히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물러나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슬쩍 오상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알았어요.”
그러곤 오상진을 향해 밝은 톤으로 인사를 했다.
“그럼 오 이사님. 다음에 또 봬요.”
홍진주는 안하무인이지만 아예 눈치가 없는 여자는 아니었다. 홍진주가 나가고 한중만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후, 요새 애들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
“그러는 오 서방은 우리 소희 어떻게 만났어?”
“갑자기 소희 씨는 왜요?”
“솔직히 뭐, 내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소희도 진주랑 별반 다를 건 없잖아. 얼굴 믿고, 안하무인인 것도 그렇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을 굳히는 오상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