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33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9)
“뭐 인마? 그럼 우리는 뭘 먹고 살아야 해?”
“그래서 제가 영인식품 유 사장을 만났잖아요.”
“유 사장을 만나면 뭐 해. 세나하고 제시카가 나가버렸는데.”
“대표님도 참······. 답답한 소리를 하세요. 아니, 일단 우리가 약속한 것은 그 자리에 앉히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 자리에 앉혀 놓고 얼굴만 비춰주자고요. 얼굴만.”
“그러고 나서? 뭐?”
“일단 들어보세요. 물론 우리가 스폰을 받겠다고 했지만 세나하고 제시카가 원치 않으면 안 받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유 사장에게도 할 말이 있죠.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 그러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않겠어요.”
“그럼 네 생각은 새로 연습생 구해서 유 사장에게 소개시켜 주자고?”
“유 사장 말 들어보니 때 묻지 않은 애를 원하는 것 같은데 요새 연예인 되고 싶어 하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런 애들 잘 다독여서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고 그러면 되는 거죠. 세나하고 제시카만 원하겠어요?”
황인철의 말에 최규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규식이 직접 유창석 사장을 만난 것이 아니라서 정확히 어떻게 얘기가 진행이 되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 황인철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지금은 회사에 돈이 돌아야 해. 돈이!’
조금 비열한 일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회사에 자금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유창석이 원하는 것은 투자를 하고, 가볍게 놀 여자라면 굳이 세나나 제시카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유창석 사장이 세나와 제시카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2년 3년 만날 것도 아니었다. 이런 부류는 아주 짧게 여자를 만나고 새로운 여자로 대처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결국은 세나와 제시카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도 유창석 사장은 언젠가 다른 새 여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그러니 그냥 그것을 좀 더 당기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일단은 이번에 생색만 내자 이거지?”
“네.”
“만약에 세나나 제시카가 스폰을 받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러면 우리가 중간 수고료를 받아야죠.”
“뭐? 그게 가능해.”
“원래 이 바닥이 그런 거죠. 연예 기획사 중에서 자기들이 들어올 것이 아니라면 알아서 챙겨주는 것이 예의 아니에요.”
“그래도 말이야. 인철아,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
최규식은 막상 하려는 다소 걱정이 되었다. 황인철이 당당하게 말했다.
“대표님. 뭘 이제 와서 고민을 합니까. 정 그러면 정아를 내보내시든지요.”
“야, 인마! 정아를 내보내면 형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넌 감당이 되겠냐.”
“그러니까요. 어차피 여기까지 왔잖아요. 뭘 그렇게 고민을 하십니까. 우린 지금 막다른 골목이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낭떠러지에요.”
“후우······ 그래 좋아. 그러면 세나하고 제시카는 어떻게 데려오게? 이미 그 녀석들 방을 뺐잖아.”
“두 녀석은 제가 따로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네가? 무슨 수로?”
“에이, 저만 믿어보시라니까요. 그동안 함께한 정이 있는데 얼굴 한번 보자는데 안 보겠어요?”
최규식이 못 미더워하는 눈치로 황인철을 바라봤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황인철 말고는 이 일을 맡길 사람이 없었다.
“아무튼 잘해. 사고 안 생기게.”
“걱정 마시고. 운영비 결재를 좀 해주십시오.”
“운영비. 뭔 운영비?”
“제가 만나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 이곳저곳에 들어가는 돈이 좀 많습니다.”
“인마. 아직 한 달도 안 되었어. 네가 2주 만에 가져간 돈이 얼마인 줄 알아. 5백이 넘었다. 5백이!”
“또 그러신다. 또! 비즈니스 안 하실 겁니까? 대표님은 몸 생각해서 대신 술 마셔. 온갖 꼬장 다 받고 있는데 자꾸 이러시면 저 정말 서운합니다.”
최규식은 작년 건강검진 때 지방간이 많고, 간 수치가 높게 나와 술을 거의 안 먹는 상태였다. 아니, 술을 끊지 않으면 빨리 죽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해서 이 바닥에 대해서 잘 아는 황인철에게 모든 접대를 맡기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이번 운영비 결재가 초과돼서 추가로 결재는 곤란하고. 기다려 봐!”
최규식이 뒤쪽 책상으로 향했다. 맨 밑 서랍을 작은 열쇠로 얼었다.
그 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수표 몇 장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보던 황인철이 씨익 웃었다.
한편, 세나는 이사를 하는 와중에 언니인 김선아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네, 대표님 짐 다 뺐어. 응! 그렇다니까. 상진 오빠? 상진 오빠는 안 왔는데. 으응, 이사님 오셨어. 무슨 이사님하고 통화를 해. 괜찮다니까. 뭐? 상희?”
세나가 힐끔 상희를 봤다. 상희가 손짓을 하며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잠시만.”
휴대폰을 건네받은 오상희가 환한 미소로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으응, 상희야 오랜만이야.
“네. 언니. 잘 지내셨죠.”
-나야, 뭐 잘 있지. 지난번에 잠깐 얼굴 보고 오랜만에 통화한다 그렇지.
“네. 주호는 잘 커요?”
-응. 잘 크지. 벌써 엄마, 아빠 그런다.
“우와, 완전 신기해.”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김선아가 슬며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세나가 신세를 져서 어떻게 하니.
“에이, 무슨 신세에요. 어차피 집에 방 많은데요. 저도 언니랑 같이 있어서 좋아요.”
-세나가 귀찮게는 안 해?
“그럼요. 전혀 안 그래요.”
-세나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그 얘기를 들은 오상희가 씨익 웃었다. 오상희가 웃는 모습에 불안한 느낌이 든 세나가 손을 내밀었다.
“어서 줘. 무슨 통화를 그리 오래 해.”
“저기 언니, 세나 언니가 휴대폰 달라고 해요.”
-어, 그래. 다시 바꿔줘.
세나가 냉큼 휴대폰을 받으며 말했다.
“언니!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너는 거기 있을 때 하는 거 언니한테 반의반만큼만 해봐라.
“뭔 소리야. 끊어!”
세나가 황급히 휴대폰을 끊었다. 그러고는 오상희를 보며 말했다.
“가자, 애들 있는 곳으로.”
“응.”
두 사람이 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애들은 한동안 집으로 돌아가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못 볼 것을 생각하니 조금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언니는 상희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면서요.”
“응, 당분간 신세 지기로 했어.”
“와, 부럽다. 상희야, 나도 너희 집 가면 안 돼?”
“방이 남긴 하는데······.”
오상희가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애들이 바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다 너희 집으로 가면 안 돼?”
“안 돼!”
오상희가 거절하자, 이은영이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너희 집에 다 모여서 지내자!”
“너희들! 우리 지금까지 계속 같이 있었거든. 그랬는데 징글징글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잠깐 휴식 후 또 합숙 생활 해야 하잖아. 그동안 집에 가서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밥 먹고. 모처럼 부모님들하고 시간도 같이 보내고 그래. 그렇게 건강하게 다시 합숙소에서 만나자고.”
“그렇지. 나도 모처럼 집에 가서 엄마가 해 주시는 된장찌개 먹고 싶네.”
“나도. 집에서 편안하게 잠자고, 놀다 와야지.”
“그러자.”
“알겠어.”
애들 모두 수긍을 했다. 그런 그녀들에게 먼저 차를 태워서 보냈다. 그러자 세나가 오상희를 보며 말했다.
“오오, 우리 상희 의젓한데.”
“뭐가?”
“아니, 아까 애들에게 한 얘기 말이야. 모처럼 부모님들과 시간 보내라는 그 말.”
“어후. 언니는 몰라도 난 쟤네들 싫어요.”
오상희가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흔들었다. 세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애들 싫어?”
“애들이 싫은 것이 아니라. 쟤네들과 같이 한집에 있으면 얼마나 시끄러울 거예요.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수다 떨 건데······. 저는 감당 못 해요.”
최정아가 들어오기 전까지 김승혜, 오상희가 한 방을 썼고, 이은영하고 박승미가 한 방을 썼다. 세나는 맏언니로서 개인 방을 썼다.
그런데 오상희는 김승혜와 함께 지내면서 단 한 번도 편안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놀든가, 아니면 노트북으로 자꾸 뭘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탓에 잠을 편히 못 잤다.
그러다 최정아가 들어왔고, 세나와 오상희가 작은 방으로, 이은영, 김승혜, 박승미가 중간 방을 사용한 것이다.
그때부터 오상희는 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세나는 워낙에 사람을 잘 배려하는 스타일이었다. 오상희의 라이프 스타일을 맞춰줘서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저 세 명이 온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언니, 솔직히 나 멤버로서는 다들 좋은데. 같이는 못 살 것 같아.”
“우리 숙소 어떻게 정해지는지 모르잖아. 그러다가 작은 숙소로 가서 애들이랑 같이 지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자 오상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언니! 어제 저녁에 오빠랑 통화를 했는데 뭐라는 줄 알아요?”
“뭐라는데?”
“우리 다 같이 개인 방 주기로 했어요.”
“진짜? 그게 가능해?”
세나가 깜짝 놀랐다. 오상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가 숙소로 사용할 오피스텔을 아예 사버리기로 했다던데요.”
“와, 정말? 상진이 오빠가 돈이 그렇게 많아?”
세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모습에 오상희의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으흐흐, 언니. 우리 오빠가 탐나요?”
“얘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요. 언니 우리 오빠 처음에 좋아했잖아요.”
“으음······.”
세나가 시선을 피했다. 오상희는 그런 세나의 마음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말이에요. 진짜 소희 언니만 아니었으면 진작 언니를 우리 오빠에게 소개시켜 줬다.”
그 말을 듣고 세나가 멋쩍게 웃었다. 세나도 한소희를 잘 알고 있다. 아이돌을 준비하고 있는 자신보다, 아니, 기존 톱 여자 연예인보다도 예뻤다. 여자가 봐도 정말 아름답고 예쁜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오상진과 한소희는 서로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이였다. 전혀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오상희가 허리에 손을 올렸다.
“또또, 그런 표정 짓는다. 언니! 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그랬죠. 솔직히 우리 오빠가 뭐 소희 언니랑 계속 잘 지낼지 아니면 중간에 헤어질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 그럴까?”
“그럼요. 나중에 언니가 톱스타 되고, 우리 오빠 소희 언니랑 헤어지면 그때 언니가 오빠 책임지면 되는 거죠.”
“얘는 부끄럽게.”
세나는 괜히 기분이 좋으면서 오상희의 등을 때렸다. 오상희는 바로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언니, 아파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가 저 멀리 정리를 끝낸 최지현 이사가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가자!”
세나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가요.”
세나와 오상희는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고는 손을 잡고 뛰어갔다. 오상희가 먼저 차에 올라타고 세나도 올라타려다가 멈칫했다.
“언니······.”
세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빅스타 시절 사용했던 허름한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여기서 한때는 꿈과 희망을 키웠는데······.’
이제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서 더욱 확실하게 꿈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고마웠다.’
세나가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차량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