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8)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32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8)
몇 번 통화음이 가고 최규식이 전화를 받았다.
-어, 형. 무슨 일이야.
“방금 정아랑 통화를 했다. 그런데 정아가 이상한 소리를 하네. 같이 있던 애들이 전부 짐을 싸서 방을 뺐다는데 무슨 소리냐?”
최대식의 물음에 최규식은 올 것이 왔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아, 애들 방 뺀 거 맞아. 우리 회사랑 계약을 해지했거든. 아마 그래서 그럴 거야.
“뭐라고? 계약을 해지해? 인마, 네가 저번에 말하길 곧 데뷔한다며, 그런 거 아니야?”
-맞아. 데뷔하기로 했지. 그런데 일이 꼬이려니까, 이렇게 꼬이네. 뭐, 다른 연습생들 금방 구하면 돼.
“인마, 그게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을 해봐!”
수화기 너머 최규식의 한숨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후우, 형. 그게 일이 좀 꼬였다니까.
“꼬여? 그래, 어떻게 꼬였다는 건데. 너 빨리 말해라. 나도 엄연히 투자자다. 뭔데? 왜 그런 건데.”
최대식을 다그침에 최규식이 입을 열었다.
-형, 혹시 우리 회사에 김승호 이사라고 알고 있지?
“김승호 이사? 김승호 이사라······. 아, 작곡한다는 친구.”
-맞아.
“갑자기 그 친구는 왜? 그 친구 그만뒀다고 하지 않았냐.”
-그만뒀지. 그런데 나중에 아주 기가 막힌 투자자를 물어왔더라고.
“투자자?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투자자를 물어왔기에 그래!”
-형, 알고 놀라지 마라.
“빨리 말하기나 해. 어디야!”
-선진그룹.
“뭐라고? 선진그룹? 내가 아주 잘 아는 그 선진이야?”
-맞아.
“말도 안 돼······. 너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그럼 내가 바보야. 제대로 확인했지. 그쪽 법무팀까지 나섰는데 내가 그걸 모를까? 그리고 그쪽에서 강하게 나오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선진그룹을 이기냐. 그냥 뭐 꼼짝없이 당한 거지.
“병신같은 새끼야. 그런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 줄 알고 계약을 해지해 줘.”
-아, 나도 진짜 어쩔 수 없었어. 막말로 나도 요새 힘들어. 데뷔를 시켜야 하는데 돈은 없지, 그전에 애들은 크게 한 번 사고를 쳤지. 솔직히 나도 쪼들린다고. 가뜩이나 약속했던 애들 데뷔도 못 시켜주고······.
“지랄을 한다. 진짜······. 너 솔직히 말해. 김승호 그 녀석에게 줄 돈 있었지?”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리고 말이야. 너 뒷주머니 채우라고 거기에 투자를 한 줄 알아? 그 김승호라는 녀석이 제법 잘 키운다고 하니까 정아도 넣고, 투자까지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최대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 안 되면, 정아 솔로로 데뷔시키면 되잖아.
“정아를 솔로로 데뷔를 시켜? 만약 그게 됐다면 네 녀석이 여태껏 가만히 있었겠냐? 벌써 데뷔를 시켰겠지. 그리고 네가 전에 네 입으로 그랬지. 지금 정아의 실력으로는 절대 솔로로 데뷔할 실력이 아니라고!”
-그럼 지금 어떻게 해. 형 말대로 일단 정아부터 데뷔시켜 놓으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정 아니면 연습생들 다시 모아서 아이돌로 데뷔시키면 되고. 아직 우리 회사에 연습생들 있어.
“걔네들은 언제 케어해서 훈련시키고 언제 데뷔를 시키려고 그래.”
-사실 형 때문이잖아. 정아를 리더시키라고 해서 질질 끌다가 말이야. 막말로 지금 정아가 리더가 실력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리더를 하려면 그만큼 실력이 바탕이 돼야 애들을 잡고 그러지. 솔직히 지금 이 사달이 난 것도 정아 때문이잖아.
“뭐 인마?”
-그러니까, 차라리 오히려 잘된 건지도 모르지. 이참에 정아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걸 그룹을 만들자고. 지금이라도 잘 키우면 괜찮잖아.
“하아, 나는 모르겠다. 너 알아서 해. 그런데 말이야. 올해 안에 정아 데뷔 못 하면 너 진짜 고소한다.”
-형, 진짜 우리 가족 아니야? 정아는 내 조카 아니야. 가족끼리 그러지 맙시다.
“가족에게 그러지 말라니. 미친 새끼야. 네가 집 돈을 해 먹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이야. 아무튼 너 각오해 이번에 약속 제대로 안 하면 너 진짜 죽여 버린다.”
최대식이 반협박을 한 후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최규식은 자기 한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진짜······. 형이면 다인 줄 아나. 나는 무슨 성질이 없어서 안 부리는 줄 알아.”
휴대폰을 붙잡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니, 몇 년 먼저 태어났다고 어지간히 형 노릇 하려고 해. 부모님이 남긴 돈은 자기가 다 챙겼으면서.”
최규식이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그때 황인철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똑똑.
“대표님.”
최규식은 황인철을 보며 소리쳤다.
“야이씨, 넌 또 어디 갔다가 이제야 기어들어 와.”
“밥 먹고 왔잖아요. 밥도 못 먹습니까.”
“너 지금 상황에서 밥이 목구녕으로 들어가냐. 들어가!”
“그러게 아까 저랑 같이 먹자고 그랬잖아요. 대표님이 싫으시다면서요.”
“하아, 내가 널 믿고 같이 일을 해야 하나?”
“왜요? 또 무슨 일인데요.”
“몰라서 묻냐? 애들 지금 짐 뺐단다.”
“벌써요? 빨리 뺐네요.”
황인철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벌써? 뭐가 벌써야. 너 같으면 계약 해지를 했는데 그곳에 있겠냐.”
“와, 시발. 애들 너무하네. 그래도 그동안 키워준 은혜가 있는데 여기 와서 인사는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 같으면 그러고 싶겠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던데, 에휴.”
황인철의 헛소리에 최규식이 헛웃음을 흘렸다. 왜냐하면 이 비유가 딱 황인철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이 자식은 열심히 일하라고 데리고 왔더니 만날 접대를 핑계로 룸살롱이나 처 다니며 회삿돈이나 쓰고 다니고 말이야. 알게 모르게 뒤로 돈 빼돌리는 것도 그냥 뒀더니······.’
지금 이 순간 가장 그것이 후회스러운 최규식이었다. 게다가 저 긴장감 없이 떠드는 꼴을 보니 저런 놈을 계속 데리고 일을 해야만 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 내 발등을 찍었어.’
황인철은 최규식의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에이, 대표님은 또 그런 걸로 의기소침하세요. 애들은 또 만들면 되죠.”
“뭐? 곡 쓸 사람은 있고? 너 데리고 올 수 있어?”
“대표님은 이 바닥에 곡 쓰는 사람이 어디 김승호 한 명밖에 없습니까. 막말로 김승호는 보이 그룹 곡은 잘 만들지만 걸 그룹은 실질적으로 적지 않습니까.”
솔직히 황인철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보이 그룹 노래로는 김승호가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걸 그룹으로는 인지도를 쌓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보이 그룹과 걸 그룹 자체 색깔이 많이 달랐다. 그런 과정에서 엔젤스를 성공시킨다는 보장은 확실히 없었다.
그래서 최규식 역시 엔젤스에 대해서 시큰둥했다. 그리고 계속 보이 그룹을 만들자고 말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땅한 작곡가는 있고?”
“당연히 있죠. 혹시 가로수길 호랑이라고 아세요?”
“가로수길 호랑이? 뭐야? 동물이야?”
“에이, 형님도 참. 가로수길 호랑이라고 강남에 잘 나가는 작곡가가 있어요.”
“무슨 이름이 그래.”
“요즘 누가 자기 이름을 꺼내고 그럽니까. 예명을 다 쓰죠. 트렌드가 그래요.”
“그래서 그 가로수길인가 그 친구가 잘한다고?”
“네. 지난번에 술 한잔하면서 다 얘기를 끝내 놨거든요. 아이돌 만든다고······.”
“그래? 그럼 그 친구한테 곡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냥은 못 받죠. 못해도 천만 원 정도는 줘야 할걸요?”
“뭐? 천만 원? 천만 원을 줘야 한다고?”
“에이, 대표님. 그 정도는 써야죠. 곡을 얻으려면 말입니다. 아니면 동요로 애들 데뷔시킬 겁니까.”
“너 이 새끼, 뒤에서 또 해 먹으려고······.”
“아니, 진짜 그런 거 아닙니다. 물어보십시오. 거기 규정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황인철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뭔가 의심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뭐? 천만 원 정도면 되는 거야?”
“녹음하고 나면 원래 음반 제작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어쨌든 그 돈은 원장님이 대주기로 했지 않습니까.”
원장은 최대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대식은 음반이 나오면 추가적으로 돈을 더 주기로 했다.
“야, 그건 데뷔를 했을 때지. 어느 세월에 데뷔를 시키냐.”
“정 안되면 그냥 정아만 그냥 데뷔시키죠.”
“너, 정아 노래 못 들었냐. 완전 엉망이야.”
“에이. 그건 요새 기계로 다 조작이 가능합니다. TV에 나갔을 때는 립싱크로 하면 되고요. 그걸 철저히 연습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망하면?”
“망하면 망하는 거죠. 솔직히 지금 급한 것이 정아 데뷔 아니에요? 정아를 데뷔시켜야 추가 지원금도 받을 수 있는 실정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방금 전 최대식과 통화를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올해 안에 데뷔를 시키라고 반협박식으로 말했다.
“그런데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가능하겠냐?”
“못할 거는 또 뭡니까. 다른 기획사에서도 6개월 안에 아이돌을 만들고 그러는데.”
“6개월 만에? 너 가능하겠냐.”
“그럼요. 요새는 금방금방 만듭니다. 그리고 아이돌은 얼굴만 받쳐주면 됩니다.”
물론 이건 약간 억측이 있던 것이 6개월 안에 아이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긴 연습생 기간을 거친 아이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 6개월 안에 완성을 시키는 것이다. 황인철은 반만 주워들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돌을 만들자고?”
“두 가지 다 해보자고요.”
“두 가지 다?”
“네. 아무래도 우리 기획사에서도 연습생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정아도 집에 가서 얘기를 할 거 아닙니까. 연습생 한 명도 없이 다 나갔다고 하면 원장님이 투자하겠어요?”
확실히 이럴 때는 황인철의 말이 맞았다. 이런 쪽으로 어찌 보면 비상하게 머리가 돌아갔다.
“그러니까, 네 말대로 연습생 들여서 키우다가 정 안 되면 정아를 먼저 솔로로 데뷔시키자는 거잖아.”
“그럼요. 그리고 만약에 아이들 준비가 잘되고 있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해도 그 정도면 정아에게 잘 얘기하면 되는 거죠.”
최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최대식이 화가 난 것이 자신의 딸인 최정아 데뷔가 무산되었고, 자신이 헛돈을 쓰게 될 것 같아 화가 난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연습생들을 불러 모아서 아이돌 그룹을 짜고, 잘 트레이닝시켜서 차근차근 데뷔 준비를 한다면 최대식도 굳이 올해가 아니더라도 기다려 줄 것이다.
또 추가적인 투자도 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좋아. 이러면 형의 투자 건은 해결된 것 같고, 문제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회사에 아티스트가 없단 말이야.’
최규식이 골머리를 앓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올해 안으로 최정아를 데뷔시키든지 아이돌로 데뷔를 하든지 간에 그들이 돈을 벌어다 줄 확신이 없었다.
“걔네들 확실히 성공하겠냐?”
최규식의 물음에 황인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공하면 좋지만, 솔직히 말해서 성공은 포기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