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2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5)
똑똑똑.
“네에.”
오상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소희가 안경을 쓴 채로 책상에 앉아 뭔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
“소희 씨!”
한소희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오상진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예요. 온다는 얘기도 없이······.”
한소희는 완벽한 오피스 룩을 입은 채 오상진을 맞이했다. 오상진은 바뀐 그녀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왜요? 뭐 이상한 거라도 있어요?”
“아, 아뇨.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내가 아는 소희 씨 맞아요?”
“많이 이상해요?”
“이상하다기보다는 확실히 대표 느낌이 확 나는 것 같네요. 옷도 그렇고······.”
“진짜, 뭐예요.”
한소희가 살짝 부끄러운지 오상진을 툭 쳤다. 오상진이 힐끔 책상 쪽을 바라봤다.
“혹시 내가 방해한 것은 아니에요?”
“방해는요. 상진 씨 안 와서 내가 계속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전화라도 해주지.”
“잠깐 집에 갔다가 오는 길이에요.”
“집이요? 아파트?”
“아니요. 한울빌딩 갔다가······.”
“어멋! 거기 청소 하나도 안 했는데······.”
“내가 대충 정리는 했는데. 아무래도 아줌마 불러서 청소 한번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거기가 우리의 소중한 아지트였는데.”
“맞아요. 그렇죠.”
“오랜만에 거기 가니까, 좋더라고요. 소희 씨 생각도 나고.”
“뭐예요. 응큼하게······.”
한소희가 눈을 흘겼다. 그러자 오상진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 저는 소희 씨 생각이 났다고 말했을 뿐인데. 소희 씨는 이상한 상상을 했나 봐요.”
“칫······.”
한소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왜요?”
“됐어요. 일단 자리에 앉기나 해요.”
“그건 그렇고, 우리 소희 씨 대표실에 앉아 있는 모습 보니까, 멋있는데요.”
“자꾸 그러지 마요. 쑥스럽게······.”
“아니에요. 절대 빈말이 아니라. 소희 씨가 앉아 있으니 뭔가 달라요.”
오상진이 보는 이미지는 진짜였다. 솔직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의 이미지는 강했다. 뭔가 날라리처럼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른 남자들은 자신을 여자로 바라보는 시선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오상진을 만나면서 많이 유해지긴 했지만 한소희가 살림만 할 성격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이 일을 맡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왜요? 자신이 없어요?”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솔직히 우리 아가씨가 들어간 걸 그룹을 맡는 걸로 알았는데, 신소라 씨도 맡게 되었고······ 게다가 지현 언니가 직원들을 한가득 데리고 와서는, 뭔가 일이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해서요.”
“그래요? 그보다 직원들은 어때요? 맘에 들어요?”
“다 괜찮아요. 솔직히 일일이 직원들 전부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차피 지현이 언니가 다 아는 사람들을 어련히 알아서 데려왔겠어요. 저는 뭐, 대표로서 따로 할 일이 있는 거겠죠.”
“오, 매니지먼트, 아티스트는 모두 최지현 씨에게 맡기고 소희 씨는 운영만 하겠다.”
“네. 저는 그것이 나을 것 같아요. 아티스트 뒤쫓아 다니면서 하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요, 괜히 고생하지 말고 일 잘하는 사람 시키세요.”
“그러다가 손해 보면 어떻게 해요?”
“손해 보면 손해 보는 거죠. 안 그래도 소중 픽처스가 돈 잘 벌잖아요.”
“맞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오빠가 그러던데요.”
“뭐라고요?”
“이사 자리 빼는 거냐고요.”
“어후, 어림없죠!”
“그러니까요. 상진 씨가 그만큼 돈 벌어다 줬으면 됐지. 이사 월급 얼마나 한다고······. 내 지분을 그렇게 노린다니까요.”
소중 픽처스에 오상진의 지분 역시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 지분은 한소희 앞으로 되어 있었다.
한중만도 오상진 덕분에 잘나가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 대표로서 지분을 많이 가지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오상진은 소중 픽처스의 지분을 뺄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소중 픽처스에서 지분을 빼버리면 더 이상 한중만을 도와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뭐, 둘째 형님이 서운해하실지는 몰라도 소희 씨가 거기 있어서 지금 돕고 있는 거예요.”
“알죠. 그렇지 않아도 얘기했어요. 내가 여기 빠지면 상진 씨가 도와줄 것 같아? 그랬거든요.”
“형님은 뭐라고 하세요?”
“오빠는 아무런 말도 못 하던데요.”
“그렇다고 너무 기죽이지 마시고요.”
“아뇨! 오빠는 기 좀 죽어야 돼요. 아니, 무슨 쓸데없이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되지도 않는 영화에 돈을 낭비하고 있잖아요. 지금 까 먹은 것이 얼마인 줄 알아요?”
“소희 씨가 그럴 정도면 많이 까 먹었나 봐요.”
“10억이 넘어요.”
“어후, 생각보다 많이 까 먹으셨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소희가 입을 열었다.
“참, 오빠가 상진 씨 언제 오냐고 물어보던데요.”
“그렇지 않아도 한번 찾아뵈려고 했어요. 말 나온 김에 내일 찾아갈까요?”
“그래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오상진도 그런 한소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가 나오고 오상진이 한 모금 마셨다.
“참! 엔젤스 계약 문제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가서 계약 해지했어요.”
“그쪽에서 순순히 해지해 줬어요?”
“어후, 말도 마요. 제가 일이 바빠서, 언니랑 강철 씨, 그리고 김승호 이사님이 갔는데 그쪽에서 못해주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거예요. 완전 난장판이었어요. 소리치고, 난동부리고 그걸 강철 씨가 보고 있다가 본부팀 지원 불러서 해결을 해줬어요.”
“그래요? 아이고, 강철이 덕분이 일을 쉽게 풀었네요.”
“저쪽에서도 놀라던데요. 갑자기 선진그룹이 나와서요.”
“그렇겠죠.”
솔직히 이쪽에 일하는 사람들이 선진그룹이 나왔다고 하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선진그룹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이었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최익현 의원이 선진그룹 회장의 남편이었다.
그래서 감히 선진그룹에 들이댈 만한 회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엮을 수 없는 것이 선진그룹 역시 세금과 관련된 것을 철저히 관리를 했다.
비자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꼬투리 잡힐 만한 것은 아예 사전에 봉쇄해 둔 상태였다. 혹시라도 최익현 의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선진그룹이 조만간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강철이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해야겠네요.”
오상진이 웃으며 전화기를 꺼냈다. 한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요. 강철 씨랑 통화하고 있어요. 저는 잠깐 커피 좀 타서 올게요.”
“여기 있잖아요.”
오상진이 다 먹은 녹차 잔을 보였다. 한소희가 자신의 잔을 들었다.
“저 녹차 말고 커피가 먹고 싶어요. 상진 씨도 그렇죠?”
“네, 그래요. 우리 소희 씨가 타주는 커피 오랜만에 먹어봐야겠네요.”
“통화하고 있어요.”
“알았어요.”
한소희가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폴더를 열었다. 그곳에서 최강철을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소대장님, 무슨 일이세요?
“나 지금 오 엔터 사무실에 있다.”
-그래요? 말씀을 미리 해주시지.
“그래서 지금 전화했잖아.”
-소대장님 너무 하시네. 내가 얼마나 도움을 많이 줬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전화했다. 고맙다, 너 덕분에 계약 해지 잘했다며.”
-아이, 뭘 그 일 가지고 그러세요. 우리가 남도 아니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막말로 오상진은 최강철과 이렇게 잘 지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원래 간부와 병사는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 제대를 하고 나면 그냥 남남이 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최강철은 다른 누구보다도 살갑게 자신을 챙기고, 가족들 역시 챙겨주는 것을 보면 참 고마웠다.
“그보다 계약 해지는 어떻게 된 거야?”
-어후, 진짜······. 말도 마세요. 김승호 이사님 있잖아요.
“김 이사님이 왜?”
-그 사람 허풍이 너무 심해요.
“응? 왜? 계약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아뇨. 그것보다 자신이 받을 것이 있고, 그거 정리하면 애들 계약 해지될 것이 분명하다고요. 자신만만하게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뭔지 모르게 찝찝하더라고요. 솔직히 내가 알기로는 엔터테인먼트 계약이 쉽게 해지되는 것이 아닌 걸로 알거든요.
“그렇겠죠. 어느 계약서든 마찬가지겠지. 원래 이 바닥처럼 계약을 꼬고 그러는 곳이 없잖아.”
-그러니까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형에게 전화를 했죠.
“본부장님께 전화를 했어?”
-네, 혹시나 조언 구할 것이 있나 해서요. 아무튼 물어봤는데 형이 그러더라고요. 본사 법무팀 한 명 보낼 테니까. 같이 가라고 말이에요. 솔직히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막상 가서 저쪽 대표하고 얘기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소송으로 가자니, 뭐니. 생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뭐라고 하더라, 가처분 소송? 계약 위반으로 걸어서 데뷔도 못 하게 하겠다고 하는데······. 김승호 이사가 자기 지분 어쩌고 하는데 씨알도 먹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본사 법무팀에 지원을 부른 거야?”
-네. 내가 나서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보다는 본사 법무팀이 나을 것 같아서요. 어쨌든 법무팀이 와서 선진그룹 법무팀에서 나왔습니다. 이 한마디 하니까, 그냥 꼬리를 내려버리던데요.
“그래? 아무튼 잘 해결은 된 거지?”
-네. 계약 해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김승호 이사 못 받은 돈도 해결되었고요. 그다음 계약 이행이 거의 되지 않았더라고요. 해주기로 한 것이 거의 없고, 저쪽에서 억울한 것이 있겠죠. 그런데 이쪽에서는 선진그룹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아무리 저쪽에서 로펌을 쓴다고 해도 우리는 더 높은 로펌을 쓸 텐데요. 그걸 아니까, 알아서 해주더라고요.
“그래. 아무튼 잘 마무리되었다고 하니까, 다행이네.”
-그런데 본사 법무팀 말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하네요. 한동안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렇듯 뒤가 구린 인간들이 그냥 안 넘어가고, 온갖 치사한 짓거리를 한다고 하네요. 어쨌든 법무팀 그 사람이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네요.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본부장님께서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하면서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법률 자문 듣고 그러지 않겠어?”
-물론 저희 본사 법무팀이지만 나름 그 사람에게도 조금의 수고비는 들어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후, 당연히 그래야지. 이렇게 큰 빌딩까지 받았는데 그 정도 지출이 대수겠냐.”
-오오, 역시 우리 소대장님. 배포가 남다르셔.
“아, 그리고 강철아.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저기 빌딩은? 파신대?”
-아, 그건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안 파실 것 같은데요.
“그래?”
-네. 안 그래도 형하고 얘기를 해봤는데요. 형도 알던데요. 앞으로 그 빌딩의 가치가 얼마나 될 것인지 말이에요.
“하긴 너희 형이 모를 리가 없지.”
-그래도 소라 누나 받아줬다고 고마워서 이렇듯 지원해 주셨잖아요. 본사 법무팀까지······.
“그렇지. 그렇게 도움을 받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