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2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93)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들으시면 엄청 좋아하시겠네요. 아무튼 식사 마저 하세요. 저는 가 보겠습니다.”
“네에? 그냥 가시게요? 진맥이라도 한번 보고 가시지.”
“아닙니다. 저 군인인데요.”
“무슨 말씀입니까. 일단 들어와 봐요.”
한의사 최인준이 오상진의 팔을 잡고 진료실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오상진의 맥을 짚었다.
“역시 건강하시네요.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죠?”
“네.”
“그건 그렇고 여자친구분은 요새 안 보이던 것 같던데······.”
“혹시 헤어졌어요?”
아내인 김선주가 넌지시 물었다.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아직 잘 만나고 있어요.”
그 말에 아내인 김선주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곧바로 최인준이 바로 말했다.
“어이구 이 사람이······.”
“왜요?”
“아니, 우리 딸이 있는데요. 아니, 자꾸 이 사람이 욕심을 내네요.”
“따님이 있었어요?”
“네. 큰딸인데요. 이번에 한의대에 들어갔어요. 애가 여태까지 속 한 번 썩인 적 없고, 참 착해요.”
“그래서 혹시나 사장님 만나는 사람 없으면 우리 딸 한번 만나보라고 하려고 그랬죠.”
최인준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구, 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이 사람이 주책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한의원을 나섰다. 나가는 오상진을 보며 김선주가 말했다.
“아, 진짜. 아쉬운데.”
“왜 그래 이 사람아. 왜 그렇게 주책을 떨어.”
“봐봐요. 요즘 주위에 저런 신랑감이 어디 있냐고. 얘기를 들어보니 빌딩을 3채나 더 샀다고 그러잖아요.”
“이 사람아. 그럼 돈 때문에 우리 딸내미를 만나보라고 한 거야?”
“그게 아니고. 세상에 저런 바른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지금 몇 년째 우리 임대료도 그대로잖아요. 다른 한의원에서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한다고 난리를 칠 텐데······. 또 저런 효자가 어디 있어요.”
“뭐, 그건 그렇지······.”
최인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솔직히 아쉽긴 했다. 김선주는 계속해서 안타까워했다.
“아깝다, 아까워. 우리 애가 두 살만 더 많았어도. 어떻게 들이대 보는 건데.”
“어허, 이 사람이 진짜······. 왜 그래!”
최인준이 버럭 했다. 김선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쉬워서 그래요. 아쉬워서!”
“됐고, 어서 밥이나 마저 먹읍시다. 오후에 또 진료를 보려면.”
“알았어요.”
두 사람은 다시 탕비실로 들어갔다.
한의원을 나서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저 두 분은 보면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자신의 딸까지 소개시켜 주려고 했다.
“하하하, 내가 그렇게 맘에 드시나? 딸을 다 소개시켜 주신다고 하고.”
솔직히 한소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참 고마운 제안이었다. 막말로 한 의원 의사 부부의 인품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딸까지 소개시켜 준다는 것은 오상진을 아주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참 고마운 얘기이지만······.”
오상진에게는 어쨌든 한소희가 있었다.
“일단 이 얘기는 소희 씨에게 말하지 말아야겠다.”
오상진은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가 봤다. 4층은 학원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도 잘되고 있나?”
오상진은 까치발로 학원 유리문을 통해 안을 살폈다. 학원 내부는 아직 많이 조용했다.
“아, 애들이 아직 학교에 있을 시간이지. 지금 점심시간이니까.”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오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저기요.”
“네?”
“어떻게 오셨어요?”
여자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상진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아, 지나가다가 한번 봤습니다.”
오상진이 밝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여자 선생님이 붙잡았다.
“저기요.”
“네?”
“왜 보신 건데요?”
“그것이······. 원장님 안 계실까요?”
오상진은 딱히 둘러댈 것이 없어서 원장님을 팔았다. 사실 자신이 건물주라고 으스대는 것이 좀 그랬다. 게다가 학원이 아직 열 시간도 아닌데 와서 기웃거리는 것도 의심 살 것 같아서 말이다.
“원장님요? 원장님 뵈러 오셨어요?”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요. 겸사겸사요.”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 선생이 곧바로 학원 문을 열며 소리쳤다.
“원장님. 원장님!”
“왜요, 유 선생. 무슨 일이죠?”
“밖에 웬 이상한 남자가 저희 학원을 기웃거리기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니까. 원장님을 만나러 왔다는데요.”
“이상한 남자?”
“네. 딱 봐도 제 또래처럼 보이는데 안을 기웃거려서요. 혹시 변태 아닐까요?”
“변태?”
“요새 어린 애들 상대로 이상한 짓 하는 어른들 많잖아요. 혹시 그런 사람 아닐까요? 학부모는 아닌 것 같고······.”
“에이, 설마······.”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까요?”
“아니요, 잠시 있어 봐요. 대충 어떻게 생겼어요?”
“일단 머리는 좀 짧고, 피부는 많이 탄 것 같고······.”
유 선생의 얘기를 듣고 잠깐 생각을 하던 원장이 눈을 번쩍 떴다.
“아, 혹시······.”
원장이 후다닥 학원을 빠져나갔다. 오상진이 민망한 얼굴로 멀뚱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미소를 보였다.
“오셨어요.”
“네, 원장님. 잘 지내셨어요.”
“네. 오셨으면 들어오시지 그랬어요.”
“아뇨, 그냥 잠깐 확인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요.”
“그보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제가 일이 좀 있어서요. 여기도 엄청 오랜만에 온 거거든요. 그래서 인사라도 드릴까 해서요. 그런데 학원 불이 꺼져 있어서요. 제가 좀 일찍 왔죠?”
“에이, 모르셨어요? 오늘 토요일이잖아요. 오전에 벌써 수업 끝나고, 저희도 마무리하고 퇴근하려고 준비 중이었죠.”
“아, 맞다. 오늘 토요일이죠. 하하하······.”
오상진이 민망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잘되시죠?”
“그럼요. 잘되고 있어요.”
“다행입니다. 저는 학원 불이 꺼져 있어서 좀 걱정을 했거든요.”
“별 걱정을 다 합니다. 요즘에 너무 바빠서 선생님도 몇 명 더 뽑고 그랬어요.”
“그랬구나. 어쨌든 잘되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원장이 뒤를 돌아봤다. 유지선 선생이 멀뚱멀뚱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 선생. 이리 와요.”
“네.”
유지선 선생이 다가왔다. 원장은 환한 얼굴로 소개를 했다.
“아, 이분은 오 사장님.”
“아, 안녕하세요.”
유지선 선생은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원장이 말했다.
“오 사장님이라고 여기 건물주셔.”
“예?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유지선 선생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머나. 어머! 어쩜······. 그럼 말씀을 하시지.”
유지선 선생이 갑자기 몸을 배배 꼬며 머리를 귀 뒤로 슬쩍 넘겼다. 그런 가식적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그저 대답만 했다.
“아, 예에······. 아무튼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본 것인데 본의 아니게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차라도 한잔하시죠.”
“괜찮습니다. 차는 마셨습니다. 원장님 만났으니까, 됐습니다.”
오상진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원장에게 인사했다.
“그럼 원장님 담에 또 인사드릴게요.”
오상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5층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며 원장이 말했다.
“어후, 자기는 참······.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 어떻게 해. 어디가 이상한 사람이야.”
“네? 그게 좀······ 스포츠머리잖아요. 피부도 탔고. 보통 저런 머리는 잘 안 하잖아요. 얼굴도 약간 험상궂게 생겼고······.”
“어디가 험상궂게 생겼어. 잘만 생겼는데. 그리고 오 사장, 직업 군인이야.”
“직업군인이요? 부사관인 거예요?”
“아니야. 육군사관학교 나왔어. 유 선생도 알지? 육군사관학교는 보통 머리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인 거. 거기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지금 계급이 아마 대위로 알고 있어.”
원장은 마치 자신의 아들을 자랑하듯이 신나게 설명했다.
“대위요? 오호, 대위는 월급 많이 받나요?”
“그건 나도 모르지. 아무튼 다음에는 실수하지 마. 오 사장님이 우리가 교육 관련 일을 한다고 얼마나 세를 싸게 주셨는데. 이 근방에서 이렇게 세가 싼 빌딩 없어.”
“네. 원장님. 죄송합니다.”
“나에게 죄송할 필요 없고, 오 사장님이나 잘 봐둬. 앞으로 실수하지 말고.”
“알겠어요, 원장님.”
원장이 몸을 돌려 학원으로 들어갔다. 유지선 선생은 살짝 인상을 썼다.
“뭐야. 내가 뭐 알고 그랬나?”
그러다가 바로 휴대폰을 꺼낸 유지선이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대위 월급이 좀 많나? 얼마나 받는 거지?”
유지선 선생이 아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지선아 무슨 일이야.
“오빠 군대 다녀왔지?”
-당연히 다녀왔지. 나 육군 만기전역자잖아.
“그럼 오빠. 대위 월급이 얼마인 줄 알아?”
-대위 월급? 얼마 못 받을 텐데······.
“아, 그래?”
-대신에 군인들은 장기복무를 하면 군인연금을 받잖아.
“군인연금?”
-그래. 그거 장난 아니야. 매달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잖아.
“그런 거야? 알았어, 오빠. 고마워.”
유지선 선생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여기 이 학원을 잠깐 다니고 말려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오래 다녀야 할 것 같은데.”
유지선 선생이 혼자 김칫국을 마셨다.
한편, 오상진이 5층에 올라섰다.
5층에는 출판사를 포함해, 관리실. 그리고 예전 오상진과 한소희만의 공간도 남아 있었다. 그곳을 슬쩍 바라보던 오상진은 피식 웃고는 출판사를 기웃거렸다.
“문이 잠겼네. 주말에는 영업을 안 하나 보네.”
그다음 관리실로 들어갔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오상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관리소장인 박민호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상진을 보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사장님 오셨습니까.”
“소장님 잘 계셨죠.”
“네.”
“별일도 없고요.”
“그럼요. 무슨 별일이 있겠습니까.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울빌딩을 포함해 관리할 빌딩이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빌딩을 관리해 주는 소장을 한 명씩 뒀다. 박민호 소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경력도 있고, 이모부의 후배였다. 일을 맡겼더니 참 잘했다.
“너무 오랜만에 왔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차라도 한잔하셔야죠.”
“아뇨, 아뇨. 그냥 인사나 드릴까 해서 들렀어요.”
“인사는 제가 먼저 드려야 하는 건데······.”
“그러지 마세요. 편안하게 말씀하세요. 한참 어린데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없죠. 저희 사장님이신데요.”
박민호 소장의 이런 모습이 오상진은 맘에 들었다.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오상진은 이모부의 후배라고 해서 은근슬쩍 말을 놓거나 편안하게 굴 수도 있는데 박민호 소장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릴게요.”
“지금 가시게요?”
“네. 일이 있어서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 사장님. 들어가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오상진은 인사를 하고 나와서는 예전 비밀장소로 향했다. 비밀번호도 그대로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공기가 탁한 것이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없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여기 청소 한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