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23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9)
“시간은 많으니까. 네가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부터 해. 아니면 머릿속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아, 아닙니다.”
이민균 병장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민균 병장은 다시 입을 다물며 머릿속으로 뭔가 정리를 했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민균 병장은 원래 4중대 출신이 아니었다. 2중대에 있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4중대로 간 케이스였다. 사실 2중대로 자대배치를 받고, 나름 군 생활을 열심히 했다.
“야, 이번에 온 신병 완전 A급입니다.”
“행동도 빠릿빠릿한 것이. 제대로 들어왔네.”
“하하하, 너 인마. 군 생활 폈네.”
이런 식으로 나름 이등병 때 고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균 병장은 소싯적에 학교에서 싸움을 좀 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양아치나, 일진은 아니었다. 다만 다수의 폭력 전과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군대에 와서 자신이 어린 시절에 대해 적어 내라고 했을 때 그런 것을 적었다. 그것을 보고 상담을 했던 2중대장이 그런 얘기를 했다.
“너는 보니까, 밖에서 좀 놀았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된다. 군은 철저히 상명하복이고, 네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괜히 찍혀서 오히려 군 생활을 힘들어질 거야. 그리고 네가 고참이 되더라도 널 따르는 병사들은 없을 거다. 그러니까,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녔든 여기선 절대로 그러지 마라.”
이민균 병장은 그런 중대장의 말을 듣고 정말 열심히 군 생활에 임했다. 그런데 이민균이 막 일병을 달았을 때였다. 자신의 후임이 들어와 정말 기뻤다. 그래서 잘 챙겨 주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이 새끼가, 밖에서 놀다가 온 양아치 녀석이었다.
이민균 병장은 신병이 오자마자 그 녀석이 밖에서 양아치 짓을 하고 온 녀석이라는 것을 딱 알아봤다. 건들거리며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말이다. 목소리도 크게 하지 않고······.
처음에는 진짜 말로써 타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병은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엇나갔다. 그러다가 이민균 병장이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되어서 그 녀석을 따로 불렀다. 창고 뒤편 잘 안 보이는 곳으로 부른 후 대놓고 말했다.
“야, 너 나랑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을래.”
“자신 있으십니까?”
신병은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 실실 쪼개며 말했다.
“좋아! 대신에 너 나한테 지며 제대로 군 생활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한 판 붙게 되었다. 이민균 병장이 그런 신병을 일방적으로 밟아버렸다. 이민균 병장에게 있어서 신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민균 병장은 밖에 있을 때 정말 날아다녔다. 이번에 황익호 병장 때처럼 한 대 주고받고 했다. 그런 와중에 신병의 이빨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그 일로 부대가 난리가 났다.
“야! 누가 그랬어! 누가 신병을 때렸냐고!”
소대장부터 시작해, 중대장까지 난리가 났다. 이에 이민균 병장이 손을 들었다.
“일병 이민균. 제가 그랬습니다.”
“네가? 아니, 왜?”
“신병 교육하는 과정에서 제가 좀 과했습니다. 그래도 서로 한 대씩 치고받고 그랬습니다.”
이민균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런데 군대에서 쌍방폭행이 어디 있는가. 게다가 후임이 때려봤자 고참을 얼마나 세게 때릴 수 있었겠는가. 이런 문제가 돌출되었다.
이 일은 대대장에게까지 보고가 되어 이민균은 영창을 갔다 오게 되었다. 그사이 신병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갔다.
영창을 다녀온 후로 이민균은 제대로 된 군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신병의 이빨을 깨버린 녀석으로 소문이 쫙 퍼진 상태였다.
“야, 이민균. 너 밖에서 좀 놀았다면서.”
“좀 쳐? 아니, 폭력 전과도 있다더라. 이야, 무서워서 너에게 말 함부로 하겠냐.”
“설마 고참은 때리지 않겠지.”
“와, 진짜 무서워라.”
“너 이민균 무섭다. 그동안 어떻게 버텼냐!”
이런 식으로 이민균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는 무시하고 고참으로 인정도 받지 못했다. 그런 시간이 한 달이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 이민균은 완전히 왕따가 되었다.
그때 4중대에 결원이 생겼고, 냉큼 그곳으로 이민균을 보내버린 것이었다.
“그래 잘됐어! 차라리 잘된 거야.”
이민균은 2중대에서 4중대로 2소대로 넘어오면서 그렇게 맘을 먹었다.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돼.”
그런데 이민균이 느낀 4중대 2소대는 그야말로 정글이나 다름이 없었다. 2중대에서 왔다고 하니까, 꼴값에 보지도 않았다.
더욱이 웃긴 것은 자신의 맞선임이 박형욱이었는데 살가운 것도 아니었다. 그도 1중대에서 넘어와서 그런지 이민균을 외지인 취급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인원이 2~3명 정도 있어야지 4중대 인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4중대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면 거의 외지인 취급을 당했다. 한마디로 길들이기를 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 무렵, 윤태민 소위가 부임을 했다. 그리고 2소대장으로 들어왔다.
“반갑다. 이제부터 너희 2소대를 맡게 된 윤태민 소대장이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이민균이 본 윤태민 2소대장의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지만 말도 잘하고, 애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끔씩 면담 때 가면 초코파이와 콜라를 주고 그랬다.
“이거 먹어라. 우리 편안하게 대화하자. 딱딱하게 굴지 말고. 알았지?”
환하게 웃으면서 대화를 주도하는 윤태민 2소대장이 점점 맘에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이민균이 막 상병을 달았을 때 윤태민 2소대장이 따로 불렀다.
“민균아.”
“상병 이민균!”
“소대장이랑 얘기 좀 할까?”
“아, 네에······.”
윤태민 2소대장은 휴게실로 가서 담배까지 건네며 물었다.
“너, 밖에서 뭐 했냐?”
“네?”
“뭘 그렇게 심각하게 쳐다봐. 그냥 소대장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너 밖에서 뭐 했는지 말이야.”
“어, 그게······.”
이민균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윤태민 2소대장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왜 말하기 곤란해? 사실 너에 관한 것은 소대장이 좀 봤다. 너 밖에서 사고를 좀 쳤더라.”
“······.”
이민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태민 2소대장은 자기 말만 했다.
“그리고 원래 2중대였는데 후임 한 대 치고, 4중대로 쫓겨온 거더라고. 후임은 왜 쳤냐!”
“어, 그건 저기······.”
“됐어, 인마! 널 추궁하려고 말한 거 아니야. 어쩌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런 거지. 안 그래?”
“아, 네에······.”
“그건 그렇고 여기 4중대 생활은 어때? 할 만해?”
“네,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기는······. 너, 정유찬이 아직도 괴롭히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지난번에 봤는데.”
정유찬 병장은 이민균이 처음 2소대에 왔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알고 보니 정유찬 병장 역시 나름 밖에서 좀 놀았던 애였다. 자신과 같은 부류가 2소대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던 것이었다.
나름 2소대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비슷한 부류가 오니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민균의 눈빛도 살아 있고, 그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뭔가 도전적인 눈빛 말이다.
“야! 이민균!”
“상병 이민균.”
“뭐야, 새끼야. 눈빛이 왜 그래.”
“아닙니다.”
“아니긴······, 시발! 그러다가 나 한 대 치겠다. 쳐, 새끼야. 쳐!”
머리까지 들이밀며 괜히 이민균을 괴롭혔다. 이민균은 주먹까지 말아 쥐었지만 끝내 선은 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사고를 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버티고 있었던 모습이 윤태민 2소대장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민균아. 소대장이 말이다. 유찬이랑 붙는 자리 한번 마련해 주면 어떻게······. 다이다이 붙어볼래?”
“아닙니다.”
“아니야? 왜, 자신 없어?”
“그건 아닙니다.”
“그럼, 이번 일로 문제 생길 것 같아서 그래?”
“······.”
이민균이 입을 닫았다. 그것을 느낀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민균아, 막말로 말이야. 정유찬이 제대하려면 얼마 남지 않았고, 설마 쪽팔리게 너에게 맞고 졌다고 해서 이르고 그러겠냐. 게다가 내가 자리를 마련하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소대장이 그것도 2소대를 책임지는 사람이 싸움을 이렇듯 당당하게 붙이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이민균이 그런 윤태민 2소대장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아아, 됐고. 이렇게 하자. 내가 소대 단합대회 겸 권투시합 한번 열 테니까, 어떻게 글러브 끼고 한번 해볼래?”
이민균이 눈을 번쩍였다. 솔직히 권투 도장에도 한 몇 달 다닌 적도 있었다. 글러브를 착용하면 더 잘 움직일 수 있었다.
“소대장님, 가능합니까?”
“그럼, 인마! 대신에 너 내 말 하나 들어라.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 당시 이민균은 소대장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소대장이 직접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윤태민 2소대장이 뜬금없이 상금을 걸고 권투대회를 하자고 했다.
“얘들아, 소대장이 말이야. 이번에 격투기를 봤거든. 장난 아니더라. 너희들 중에서 주먹 좀 치는 사람 있냐?”
소대원들 대부분이 정유찬 병장을 가리켰다.
“정 병장이 좀 하지 말입니다.”
“네. 정 병장이 주먹 좀 씁니다.”
윤태민 2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바라봤다.
“오오, 정 병장. 너 좀 치냐?”
그러자 정유찬 병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맞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정유찬 병장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윤태민 2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정유찬이. 그리고 또 누가 좀 치냐?”
다들 조용히 하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윤태민 2소대장이 이민균을 쳐다봤다.
“맞다. 민균아.”
“상병 이민균.”
“너도 밖에서 좀 치지 않았냐.”
“네?”
“아니, 내가 본 것도 있고, 들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윤태민 2소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민균은 애써 당황하는 척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뭘 모르는 척하고 그래.”
윤태민 2소대장이 힐끔 정유찬 병장을 봤다.
“유찬아, 어때?”
“네?”
“이민균이랑 스파링 어때.”
정유찬 병장이 대번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소대장님 그러지 마십시오.”
“왜 인마. 만약에 스파링해서 이기면 소대장이 치킨에 피자, 맥주까지 쏜다.”
그 말에 정유찬 병장의 눈이 반짝였다. 그 정도면 소대 회식으로 충분했다.
“아예 소대 회식시켜주시죠.”
“그래, 알았어. 소대장이 그 정도도 못 해주겠냐.”
그리고 곧바로 자리가 마련되었다. 윤태민 2소대장은 글러브를 어디서 구해왔는지 바로 가져왔다. 심판은 윤태민 2소대장이 봤다.
“너희들 경고하는데, 둘 중 누구 하나라도 봐주거나. 장난식으로 하면 소대장이 가만 안 둬! 내 돈 걸렸다!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
이민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스파링을 했고, 이민균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정유찬을 녹다운시켜 버렸다. 그날 이후로 이민균의 기세가 올라갔고, 정유찬은 조용히 군 생활 하다가 제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