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7)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21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7)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런 모습이 조금만 보인다면 바로 자신에게 덤탱이를 씌울지도 몰랐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김유경 일병은 속으로 굳은 다짐을 했다. 박용훈 병장이 그를 잠깐 바라보고는 말했다.
“알았다. 가서 네가 작업하던 것을 마저 끝내라.”
“알겠습니다.”
김유경 일병이 몸을 돌려 조금 전 작업하던 곳으로 갔다. 그곳에 있던 노성훈 일병이 선임들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경아.”
“일병 김유경.”
“뭐야? 뭔데?”
“네?”
“아니, 너 다음에 왜 박상태 일병이야? 그다음은 나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뭔데, 얘기 좀 해줘봐!”
그러면서 툭 쳤다. 그런데 갑자기 김유경 일병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치지 마십시오.”
“야이씨, 김유경! 너 방금 뭐라했냐. 돌았냐!”
김유경 일병의 발언에 노성훈 일병이 순간 놀랐다. 하지만 김유경 일병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아이씨······.”
김유경 일병이 괜히 열을 내며 폭풍 삽질을 했다. 노성훈 일병은 갑작스러운 김유경 일병의 행동에 순간 뇌정지가 왔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에 어리바리하고, 만만했던 김유경 일병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행동을 하니 솔직히 움찔했다.
“와, 이 새끼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그렇게 있는데 최진국 상병이랑 눈이 마주쳤다. 최진국 상병은 어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노성훈. 지금 노냐?”
“아닙니다.”
“새끼야, 상병도 이렇게 삽질을 하는데, 감히 일병 새끼가 놀아?”
“아닙니다.”
“어쭈, 삽질이 눈에 보이네.”
“아닙니다.”
그 탓에 노성훈 일병은 방금 김유경 일병의 행동은 생각지도 못하고, 폭풍 삽질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동작 봐라. 일병 새끼들, 손이 보인다.”
“아닙니다.”
일병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한편 박윤지 3소대장과, 홍일동 4소대장은 단둘이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아, 이번에 중대장님께서 단단히 칼을 뽑으신 것 같습니다.”
홍일동 4소대장이 말을 하면서 슬쩍 박윤지 3소대장의 눈치를 봤다. 솔직히 말해서 박윤지 3소대장의 의중이 제일 궁금했다. 왜냐하면 최근에 박윤지 3소대장이 많이 바뀐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예전 같으면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에게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그런 캐릭터였는데, 이번엔 이런 얘기를 꺼내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굳은 표정의 박윤지 3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 언제까지 계속 이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네?”
“아니, 솔직히 우리가 4중대로 쫓겨 온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한마디로 대대에서도 열외 같은 거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박윤지 3소대장의 말에 홍일동 4소대장은 놀라면서도 바로 반박은 하지 못했다.
“······.”
“막말로 우리가 너무 소대를 방관하지 않았습니까. 지난번에 김호동 하사 건도 그렇고······. 저도 이제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그렇습니까.”
“4소대장님은 안 그렇습니까? 솔직히 4소대장님께서 제일 열심히였지 않습니까.”
홍일동 4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열심히 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때 뒷짐을 진 채 바라만 본 것이 누구인데······. 이제 와 저런 소리를 하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런 4소대장의 속내를 읽은 박윤지 3소대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4소대장님에게 죄송했습니다.”
“네? 저한테 말입니까?”
“예전에 말입니다. 4소대장님이 고생하고 그랬을 때 옆에서 좀 거들고 그랬어야 했는데······. 그때는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이 말을 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정확하게 말을 하면 박윤지 3소대장은 그때까지도 힘도 없었고, 군 생활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또 이민식 대위가 자신만 믿고 따라오면 잘 대해주겠다고 말을 했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박윤지 3소대장은 그 말만 믿고 있었다.
‘결국 난 이용만 당하고 버려졌지만······. 이제는 안 그래.’
오상진이 오고, 그런 중대장님께 따끔한 소리와 함께 위로의 말까지 듣고 나니 눈이 떠졌다. 박윤지 3소대장은 그때 당시의 자신이 얼마나 치사하고 영악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4소대장을 외면하는 것으로 되어버렸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홍일동 4소대장이 놀랐다.
“아,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그때는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나섰던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때는 4소대장님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저도 함께 동조를 하고 나섰다면······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윤지 3소대장의 말에 홍일동 4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아뇨,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 변화는 이번에 오신 오상진 중대장님 때문입니다. 그때 이민식 대위였다면 절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솔직히 지금 3소대장님이 달라진 것만 봐도 놀랄 일입니다.”
“제가 예전에는 그렇게 별로였습니까?”
“아, 아닙니다. 별로라기보다는······.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소대장님이 여자로 보였습니다.”
“네?”
박윤지 3소대장이 깜짝 놀라며 홍일동 4소대장을 봤다. 그러자 홍일동 4소대장이 당황하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자 장교로 보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여자 장교들 군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지 않습니까.”
“그건 편견 아닙니까?”
“물론 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보고 들은 것은 대부분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3소대장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보기 좋습니다.”
“요새는 달라져 보입니까?”
“네. 이제 같은 동료로 보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박윤지 3소대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최근에 중대장님으로부터 자신감 있는 모습과 행동을 보이라는 말에 그리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홍일동 4소대장이 그걸 보고 인정을 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일동 4소대장은 씨익 웃는 박윤지 3소대장을 보며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흐흠······. 다음번 면담은 제가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홍일동 4소대장이 얘기를 하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발끈했다.
“안 되죠, 그건······.”
“네?”
“그래도 제가 3소대장인데 먼저 하는 것이 맞죠.”
“아, 네에······.”
“새치기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홍일동 4소대장과 박윤지 3소대장이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조사 당일 1소대를 시작으로 다음 날 3소대, 4소대의 면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 오상진의 책상 위로 1소대와 3소대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허, 이거 참······.”
보고서를 쭉 훑는 오상진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곧장 1소대장과 3소대장을 중대장실로 불렀다. 오상진은 보고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보고한 내용이 모두 사실인가?”
김진수 1소대장이 나서서 대답했다.
“네. 보고서에 올린 내용 그대로입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어이가 없네. 여기 군대 맞아?”
정확하게 말을 하면 각 소대의 고참들은 윤태민 2소대장이 내세운 대리인에게 받았다.
“그리고 받은 물건들은 마치 세습하듯 밑의 후임병들에게 비싸게 돈을 받고 되팔았고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게······ 아니, 진짜 이것이 맞는 말이야? 정말이야?”
“······.”
김진수 1소대장과 박윤지 3소대장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원래 군에서 지정한 물품 외에는 외부에서 반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물품에 한해서는 모른 척 눈감아 주곤 했다. 게다가 PX에서 파는 물건이라면 외부에서도 구입해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밑에 애들에게 철저히 외부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적발 시에는 가혹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윤태민 2소대장이 사 온 물건이 물려받듯 내리고, 내려가는 형태가 되었다.
그렇게 후임에게 비싼 가격으로 판돈으로 다시 윤태민 2소대장에게 물건을 사는 그런 식의 반복이었다.
그렇다 보니, 윤태민 2소대장에게 의존하게 되고, 4중대는 윤태민 2소대장의 왕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미친······. 어떻게 이런 일이······.”
오상진은 생각보다 윤태민 2소대장의 뿌리가 깊이 내리고 있어 많이 당혹스러웠다.
모든 병사들이 이 일에 연관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그런데 찬찬히 따져보니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모든 병사들이 다 윤태민 2소대장에게 물이 들었다고 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제 갓 전입 온 이등병들은 철저히 배제를 시키는 영악함까지 보였다.
한마디로 일병부터 그 모든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자 이등병들은 일병이 되기를 기다렸다고 바로 물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이등병 때부터 지켜보며 서서히 동화되어 버렸다. 오상진이 생각하기에 이 사태는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았다.
“이제 2소대 남았나?”
“네, 그렇습니다.”
“중대장님, 2소대는 어떻게 합니까?”
박윤지 3소대장이 물었다. 2소대장인 윤태민 소위는 육본에 교육을 받으러 간 상태고, 부소대장이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오상진 본인이 나서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음, 중대장님께서 나서 주시는 것이 좋을 듯한데. 이 모든 것의 씨앗은 바로 윤 소위니까.’
김진수 1소대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막말로 진짜 2소대는 철저히 털고 싶은 것이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오상진 중대장이었다.
그 와중에 1소대, 3소대, 4소대는 그나마 2소대보다는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오상진이 잠깐 고심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2소대는 중대장이 직접 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이만 나가봐.”
“네. 충성!”
김진수 1소대장이 경례를 하고는 중대장실을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고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쩌다 이렇게 썩어 빠진 중대로 오게 되었는지······.”
오상진은 머리가 아픈지 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그보다 심 소령님은 이 부대가 이 정도 상태라는 것을 알고 보낸 건가? 아니면 운명처럼 내가 이곳으로 중대에 온 것일까?”
처음 오상진은 심 소령이 모든 것을 알고, 부대를 뒤집어 달라는 것으로 자신을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상진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4중대로 발령을 낸 것은 대대장이지. 심 소령이 대대장님에게 지시를 내릴 수는 없지. 이건 우연이라고 봐야겠지.”
오상진이 어이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한쪽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오상진. 너도 참 군 생활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