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1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5)
“네, 중대장님 알겠습니다.”
김태호 상사가 씁쓸한 얼굴로 물러났다.
잠시 후 분류가 다 마무리되었다. 김호동 하사가 나오며 말했다.
“중대장님 분류 다 끝냈습니다.”
“고생했어.”
“저어, 중대장님.”
“응?”
“지금 이 녀석 휴가증을 써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박형욱 병장을 힐끔 바라봤다.
“아, 그래야지. 행정반에 가서 김 하사가 써줘.”
“네에, 알겠습니다.”
“결재는 나중에 올려도 되니까.”
“넵!”
김호동 하사가 박형욱 병장을 툭 쳤다.
“가자!”
“네.”
김호동 하사는 바로 휴가증을 끊어줬다. 이틀 더 포함된 박형욱 병장의 말년휴가였다. 그는 병장을 달자마자 바로 휴가를 가지 않았었다. 이렇듯 제대하기 전까지 아끼고 아낀 것이었다.
“지금 바로 출발해.”
“지금 말입니까?”
“그래! 어서! 애들에게 들키면 너만 곤란해지잖아.”
“아, 그렇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박형욱 병장이 후다닥 A급 전투복으로 환복하러 움직였다.
잠시 후 오상진의 호출을 받은 1, 3, 4소대장들을 중대장실로 불렀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어서들 와. 자리에들 앉아.”
“아, 네에······.”
소대장들이 쭈뼛쭈뼛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회의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을 확인하고 순간 움찔했다. 1소대, 2소대, 3소대, 4소대라고 적힌 종이 밑으로 잡지들과 부대에 반입해서는 안 될 것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 외 스타킹을 비롯해 여자 팬티, 사제 용품들까지 모두 다 말이다. 그것들이 차례차례 잘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당혹스러운 것은 소대별로 20명씩 소대원들이 있었다. 그들 중 안 걸린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신병들 빼고 다 하나씩 문제가 될 만한 서적이나, 문제가 될 만한 물건들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군에서 보급하는 물품 외에는 그 어떤 바깥 물품은 소지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 쪽으로 보면 단 한 명도 없다고 봐야 했다.
김진수 1소대장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이것은······.”
“1소대장.”
“네.”
“솔직히 말해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몰랐어?”
김진수 1소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솔직히 몰랐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100% 알고 있지도 않았다.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도 좀 그랬다.
왜냐하면 사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제가 관심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3소대장, 4소대장 역시 고개를 숙였다. 오상진이 김진수 1소대장을 다시 불렀다.
“1소대장.”
“네, 중대장님.”
“내가 일일이 조사할까, 하다가 그래도 자네들에게 명예회복을 할 기회를 줄까 해서 이렇게 부른 거다.”
김진수 1소대장의 눈빛이 바로 달라졌다.
‘명예회복? 그렇다면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겠다는 소리인가?’
김진수 1소대장은 여기서 판단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번에 중대장님의 행동을 보고 김진수 1소대장은 윤태민 2소대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윤태민 2소대장이 오상진을 먼저 건드렸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윤태민 2소대장의 치부를 먼저 싸그리 드러낼 줄은 몰랐다. 만약에 이 일이 불거질 경우 또다시 대대에 트러블이 생길 수 있고, 그 과정에 오상진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오상진이 증거를 가지고 부대 정리를 위해 싸운다고 해도 군부대라는 것이 항상 그랬다.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원치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원치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논리에 밀려 버리면 오상진이 다른 부대로 전출 가버릴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자신들만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괜히 오상진을 도왔다는 이유로 더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진수 1소대장은 오상진이 조금 전 말했던 명예회복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내가 이러려고 육사를 졸업한 것은 아니잖아.’
김진수 1소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눈빛마저 비장하게 바뀌었다.
“중대장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면 책임지고 제대로 이 일을 바로잡겠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이 일을 바로잡을 수 있겠어?”
“그렇습니다.”
오상진은 김진수 1소대장을 바라보다가 슬쩍 옆에 서 있는 3소대장을 바라봤다.
“3소대장은 어때? 자네도 같은 생각인가?”
박윤지 3소대장이 차렷 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상진의 시선이 다시 4소대장에게 향했다. 홍일동 4소대장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좋아, 그러면 1소대장부터 시작하자고. 한 명 한 명 만나서 이 물건들을 어디서 어떻게 받았는지 조사를 해와야 해.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다시 꿰어 맞춰야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일단 1소대부터 끝내야 하니까. 3소대와 4소대장은 애들 통제 잘하고!”
“네, 알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중대장님, 그럼 2소대는 어떻게······.”
“2소대는 행보관님이 봐주실 거야. 그건 걱정 말고.”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자, 1소대장.”
“중위 김진수.”
김진수 1소대장은 각오를 다진다는 뜻에서 관등성명을 댔다.
“이제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김진수 1소대장이 1소대로 적힌 곳의 문제의 물품들을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그걸 중대장실 옆 상담실로 가지고 갔다.
해안 경계초소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병사들은 점심시간에 간단히 전투 식량으로 때운 후부터 더욱 불만을 드러냈다.
“아, 진짜. 도대체 이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네.”
1소대 장인철 상병이 삽을 땅에 꽂으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조승욱 병장이 장인철 상병을 노려보며 말했다.
“야, 장인철!”
“상병 장인철.”
“넌 짬도 안 되는 새끼가 벌써부터 투덜거리고 있어. 병장인 나도 하고 있는데.”
“아니, 이곳으로 잘 파견 나오지도 않는데, 게다가 여긴 우리 구역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여길 보수합니까?”
“야이씨! 닥치고 그냥 해. 너 짬에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니까. 빨리 삽 들고 저길 파!”
“아, 진짜······. 조 병장님은 만날 나에게만 그럽니다.”
조승욱 병장과 장인철 상병은 이런 식으로 티키타카를 자주 하는 콤비였다. 하지만 장인철 상병은 조승욱 병장을 약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또 조승욱 병장은 장인철 상병을 폐급이라고 말하며 둘이 그렇게 잘 놀았다.
“저, 조 병장님.”
최진국 상병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물었다.
“왜?”
“우리 담배 한 대 피우고 일하면 안 됩니까? 한 시간 넘게 일한 것 같습니다.”
“야! 우리 담배 피운 지 30분밖에 안 되었거든. 조금만 힘들면 쉬려고 하냐.”
“너무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만날 뜯었다가 수리하고, 뜯었다가 수리하고! 완전 병신 짓이지 말입니다.”
“야이, 새끼야. 인철이랑, 진국이! 너희는 그렇게나 불만을 입에 달고 사냐! 여긴 군대야 인마! 까라면 까면 되잖아. 아무튼 상병 새끼들, 대가리 좀 컸다고 존나 투덜대네.”
조승욱 병장의 한마디에 두 사람의 입을 침묵시켜 버렸다. 그리고 4중대가 막말로 잡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진지공사는 대부분은 4중대가 맡아서 했고, 그 부위도 다른 중대보다는 넓고 컸다.
무엇보다 4중대가 무엇인가? 폐급들만 모인 곳이 아닌가, 그렇다 보니 불평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정윤호 하사가 다가왔다.
“야, 너희들 뭐냐? 왜 작업 안 하고 쉬고 있어.”
“저희 조금만 쉬면 안 됩니까? 조금 전까지 열심히 했습니다.”
“새끼들이 장난하나······.”
정윤호 하사가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와, 얘들아. 너희들 쉰 지 30분밖에 안 되었어. 이래 가지고 오늘 중으로 작업 끝내겠냐.”
“30분? 정말 30분밖에 안 되었습니까? 전 3시간은 지난 줄 알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정말 여길 다 끝내야 부대 복귀할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너희들 이거 못 끝내면 부대 복귀 못 해.”
“와, 대박······.”
지들끼리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소대원들을 보며 한심한 얼굴이 된 정윤호 하사가 분대장을 불렀다.
“박 병장!”
“병장 박용훈.”
“너 애들 관리 안 하냐! 빨리빨리 끝내고 부대 복귀할 생각을 해야지. 빨리 끝내면 그만큼 쉬는 시간도 많잖아. 고작 여기 초소 하나다. 집중하고 했으면 지금쯤 보수공사 끝내야 하지 않냐?”
정윤호 하사가 닦달했다. 박용훈 병장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요새 소대장님이 말했지. 애들 각별히 신경 좀 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이럴 거야? 정신 안 차려?”
“죄송합니다.”
박용훈 병장이 괜히 욕을 먹자, 인상을 썼다.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소대원들을 노려봤다. 그제야 소대원들이 움찔움찔 놀랐다. 정윤호 하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빨리빨리 움직여! 시간 얼마 없다.”
“네, 알겠습니다.”
다시 소대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때 정윤호 하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1소대장인 김진수 중위였다.
“충성. 정 하사입니다.”
-별일 없죠?
“네. 작업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말입니다. 김유경 일병 있잖아요. 지금 중대로 보내 주시겠어요?
“네? 지금 말입니까?”
-그래요.
“혼자 말입니까?”
-네, 혼자.
“소대장님, 여기 소대 근처가 아닙니다. 해안경계초소입니다. 고작 한 명 때문에 육공트럭을 운행한다는 것은······.”
-그건 걱정 마세요. 닷지 차량 보냈습니다. 거기에 보내세요.
“아, 알겠습니다.”
정윤호 하사는 휴대폰을 끊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이 되었다.
“아니, 뭐야. 왜 갑자기 유경이 혼자만 보내라고 하지?”
정윤호 하사는 혼자 고민을 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김유경 일병을 찾았다.
“김유경 일병. 유경이 어디 있어!”
“일병 김유경!”
구석진 자리에서 작업에 한창인 김유경 일병이 상체를 세웠다.
“너 이리 와.”
정윤호 하사의 손짓에 김유경 일병이 곧바로 뛰어왔다.
“네.”
김유경 일병을 데리고 공터 쪽으로 향했다. 일단 그곳으로 닷지 차량이 도착해 있다고 하니, 그곳으로 데려가면 슬쩍 물었다.
“김유경.”
“일병 김유경.”
“너 나 몰래 사고 친 거 있냐?”
“어, 없지 말입니다.”
“확실히 말해, 있어. 없어?”
“그게 잘 모르겠지 말입니다.”
“아, 진짜······.”
김유경 일병의 어리바리한 말에 정윤호 하사가 인상을 썼다.
“야! 어리바리 굴지 말고. 확실하게 말해. 있어?”
“어, 그게······.”
김유경 일병은 이제 일병 1호봉이었다. 아직까지는 눈치를 많이 봐서 그런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