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4)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18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4)
‘시발 새끼······. 뭐야. 갑자기 왜 지랄이야. 그래, 소대장님께서 오면 다 얘기해 버릴 거야.’
사실 이기상 하사도 황익호 병장을 이런 식으로 갈구는 이유가 있었다.
그때 1소대 부소대장인 정윤호 하사가 슬쩍 다가왔다.
“이 하사 왜 그래?”
“아니, 이 새끼들이 그냥 오냐오냐 좋게 봐줬더니 내 머리 꼭대기에 있으려고 하네.”
“에이, 설마 그랬겠어.”
“아니야. 진짜라니까. 방금 나한테 말대꾸도 하고 말이지.”
이기상 하사가 씩씩거리자 정윤호 하사가 말렸다.
“에이, 왜 그래. 참아!”
“아니야. 그냥 못 넘어가. 이 새끼 이번 참에 제대로 군기를 잡아야겠어.”
이기상 하사가 이렇게 세게 나오는 이유는 만에 하나 황익호 병장이 억하심정으로 자신을 걸고 넘어져도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한마디로 작업을 하면서 황익호 병장에게 얼차려를 줬기 때문에 황익호 병장이 억하심정으로 이기상 하사를 음해한다는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물론 황익호 병장에게 이것저것 담배도 얻어 피우고, 못 본 척한 것도 여럿 있었다. 그런 것을 지들끼리 떠들어 봐야 물증도 없었다.
담배를 줬다고 해봐야, 애들이 줬습니다, 이런 핑계를 대도 되었다.
다만, 이기상 하사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만에 하나 황익호 병장이 걸렸을 때 윤태민 2소대장보다 자신을 걸고넘어지려고 했을 때 빠져나가려면 이런 쇼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기상 하사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정윤호 하사를 보며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한편, 부대에서는 김태호 상사와 김호동 하사가 1소대부터 4소대까지 싹 털었다.
“와, 많기도 하다. 많기도 해!”
각 소대별로 싹 수거한 것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했다.
“이게 다 2소대장이 지원해 준 거야.”
“지원이 아니라. 웃돈을 받고 판 거지 말입니다.”
“맞아. 그렇지. 이 정도면 아예 자판을 차리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김태호 상사의 시선이 박형욱 병장에게 향했다.
“야, 박 병장.”
“네?”
“너 새끼야. 어떻게 다른 소대도 잘 아냐?”
“애들 숨긴 곳은 뻔하지 말입니다. 제 눈은 못 속이지 말입니다.”
박형욱 병장은 2소대뿐만이 아니었다. 아예 작심하고 1소대, 3소대, 4소대까지 다 털어 줬다.
그럴 만한 이유는 이렇게 인원이 많아야지, 그래도 자신에게 피해가 덜 돌아올 거라고 생각을 했다. 물론 협조를 한다는 명목도 있고 말이다.
김태호 상사가 흐뭇한 얼굴로 박형욱 병장에게 말했다.
“아무튼 박형욱이.”
“병장 박형욱.”
“제대하기 전에 큰일 했다. 너 휴가 편히 갈 수 있게 행보관이 신경 써줄 테니까. 걱정 마.”
“감사합니다.”
박형욱 병장의 얼굴이 일순간 밝아졌다. 어차피 자신은 휴가를 나가고 복귀하면 제대였다. 그 뒤는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아, 참! 박형욱!”
“병장 박형욱.”
“이거 다 챙겨라.”
“네?”
“중대장실에 옮겨야 하니까, 다 챙기라고.”
“네, 알겠습니다.”
박형욱 병장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최대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대장실로 물건들을 옮겼다.
똑똑.
중대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태호 상사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오상진을 봤다.
“중대장님.”
“아, 네에.”
“물건 가져왔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형욱 병장이 안고 있던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놨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확인했다.
“와, 이렇게나 많습니까?”
“네.”
“누가 한 건지 확인은 됩니까?”
김태호 상사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체크를 해뒀습니다. 사진까지 찍어 뒀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김태호 상사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휴대폰이 아닌 아예 디지털 카메라까지 동원을 해서 찍었다. 수사 사건처럼 말이다.
“좋습니다.”
오상진은 흡족한 표정으로 사진을 확인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하하하······.”
김태호 상사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오상진을 불렀다.
“중대장님.”
“네?”
“여기 박형욱 병장이 찾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그래요? 오, 박 병장!”
“병장 박형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박형욱 병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그런 박형욱 병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러면서 박형욱 병장이 슬쩍 김태호 상사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내가 그 짓을 하다가 걸렸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김태호 상사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말인데 중대장님.”
“네.”
“박 병장, 휴가 먼저 내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휴가요?”
“네. 이 녀석 조만간 제대인데. 물건 찾는 것도 도움을 줬고, 어차피 말년휴가 나가는데 아예 이틀 더 플러스시켜서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호 상사의 말에 박형욱 병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상진 역시 이해를 했다. 박형욱 병장이 이렇게 협조를 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 배신을 했다는 것을 알면 곤란해지지 않을지,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래요. 그렇게 하죠.”
박형욱 병장의 입꼬리가 실룩실룩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김태호 상사를 연신 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는 사이 오상진은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행보관님. 이제 서서히 애들을 만나봐야겠죠?”
오상진은 다시 고개를 들어 김태호 상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일 처리를 두고 오상진은 잠시 고민을 했다.
‘물증은 확보를 했고, 내가 직접 애들과 1 대 1로 만나서 진실을 파헤칠 것인가. 아니면 소대장들을 한 번 더 믿어볼 것인가.’
의자에 앉아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대략 10여 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오상진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말해서 오상진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속 편하긴 했다.
하지만 그리될 경우 소대장들이 불편해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조사를 하는 와중에 중대장이 중앙에 끼어버리면 그들로서도 난감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그 과장에서 본의 아니게 표현적으로 소대장들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다. 병사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신들, 즉 소대장들의 근무 태만이나 관리 미숙에 대한 모든 것이 낱낱이 나올지도 몰랐다. 아니, 소대장들이 자신들의 소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아마도 100% 나올 것이다.
그리된다면 소대장들에게 오히려 불똥이 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이 일은 소대장들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게 문제라는 거야. 이 일이 소대장들이 꺼리는 일이니까. 하지만 만약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고······.’
오상진의 눈빛이 깊어졌다. 사실 소대장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좀 더 타이트하게 관리를 하고 그랬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상진은 그리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4중대를 바로 세우는데 기존의 소대장들을 배척할 수도 없고······.’
그것도 4중대 전체 다 한꺼번에 뺄 수도 없었다. 이 일의 책임자인 2소대장만 처리하면 되었다. 새로운 소대장들을 뽑는 것도 쉽지 않고, 그리된다면 대대랑 또 마찰을 일으켜야 할 문제였다. 아니면 사단 쪽이라도 말이다.
‘일을 크게 키워서도 안 되고······.’
그렇게 곰곰이 생각을 한 끝에 오상진은 결정을 내렸다.
“그래, 안고 가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야.”
오상진은 김진수 1소대장을 비롯해, 박윤지 3소대장, 홍일동 4소대장까지 모두 안고 가기로 했다. 그런 뜻에서 이번 한 번은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번 기회를 통과하면 더 이상 과거의 잘잘못은 묻어두기로 말이다.
“저, 행보관님.”
오상진이 김태호 상사를 불렀다. 김호동 하사와 박형욱 병장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네, 중대장님.”
“으음, 행보관님께서, 아니다. 김 하사도 날 좀 도와줘야겠다.”
“네? 저랑 김 하사가 말입니까?”
“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기 나와 있는 잡지를 다시 나온 순서대로 이름과 소대를 적어서 새롭게 분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전부 소대별로 말입니까?”
“네. 아까 다 적어 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가 나섰다.
“네, 알겠습니다. 그 서류도 제가 들고 있습니다. 바로 분류 작업하겠습니다.”
오상진이 김호동 하사를 봤다.
“그렇게 해줘.”
“네.”
김호동 하사가 대답을 하고 옆에 서 있는 박형욱 병장의 어깨를 툭 쳤다.
“중대장님 말씀 들었지?”
“네? 이걸 제가 해야 하는 겁니까?”
박형욱 병장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호동 하사가 바로 반응했다.
“야! 너 어차피 중대장님께서 휴가 끊어주실 텐데 이거 빨리 끝나고 가야 할 거 아니야. 그럼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박형욱 병장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맞다! 인간 박형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로 태세를 전환하는 박형욱 병장이었다. 김호동 하사와 함께 박형욱 병장이 열심히 분류 작업을 했다. 그사이 김태호 상사와 오상진을 데리고 슬그머니 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행보관님?”
“지금 중대장님의 행동을 보니까. 혹시 말입니다. 조사를 소대장들에게 맡길 생각이십니까?”
“네. 그리할 생각입니다.”
“어······.”
김태호 상사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오상진이 물었다.
“왜, 못 미더우십니까?”
“못 미덥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자신의 소대이고, 소대장들 아닙니까. 슬그머니 덮으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상진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듯 증거가 확실한데, 덮는다면 이건 4중대 자체가 갱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된다면 나도 더 이상 미련이 없는 것이고······.’
오상진이 속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곤 김태호 상사를 보며 말했다.
“이번 한 번만 더 믿어볼 생각입니다.”
“아, 네에······.”
“솔직히 말해서 4중대의 특수성 때문에 소대장들이 무기력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김태호 상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런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차하면 자신들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김태호 상사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실제로 김태호 상사는 군대의 부조리를 바로 잡으려고 하다가 여기까지 쫓겨 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도와줄 소대장들과 척을 질 수도 없었다. 소대장들 역시 알게 모르게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오상진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군말 없이 협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본인들도 어느 정도 4중대를 바꿔야 한다고 오상진의 계획에 어느 정도 찬성을 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한 번만 저를 믿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