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2)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16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82)
“소희 씨는 별 얘기를 다 해요. 이번에 강철이 봐요. 여자 친구 좋은 회사에 취직시키고, 자기도 한자리 꿰차고. 나 그렇게 우리 소대원들 뜯어먹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어?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나도 강철이에게 안 그래도 된다고 했는데. 강철이가 막 자기 마음이라고 하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얼마짜리를 준비하셨는데요.”
“으흠! 그건 일단 비밀입니다.”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공간인 아파트로 갔다. 집에서 한소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평택 부대로 출근을 했다.
“충성!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마치 오상진이 출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김태호 상사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 행보관님.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네네. 중대장님도 잘 보냈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제 사무실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무슨 일이냐니요. 오늘부터 윤태민 2소대장 교육이지 않습니까. 빨리 끝내야죠.”
“아······.”
오상진이 말을 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김태호 상사가 억울한 표정이 되었다.
“뭡니까? 저는 주말 내내 불안해서 잠이 잘 오지 않던데 말입니다. 그런데 중대장님 표정을 보니 잘 지내셨나 봅니다.”
김태호 상사의 입장에서는 오상진이 하는 일은 개혁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윤태민 2소대장처럼 썩은 고름을 짜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윤태민 2소대장의 집안은 물론이고, 나름 짱짱한 뒷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걱정으로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오상진은 정작 집안일 때문에 회사나 차리고 있었다. 이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집안일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마음이 달라지고 그런 것은 아니죠?”
“네?”
“아니, 윤태민 2소대장 말입니다. 지금 중대장님을 보니 표정이 영 아니라서 말입니다.”
김태호 상사는 혹시라도 주말에 누굴 만나서 저쪽으로 넘어갔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어후,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시죠.”
“그 말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뭐부터 할까요?”
“일단은 부대 전수조사부터 하시죠.”
“전수조사요?”
“네. 뭐라도 나와야. 그걸 가지고 추궁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애들 작업을 시키든 훈련을 시키든 내무실 쪽으로 접근을 하지 못하게 만들죠.”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소대 내무실을 훑어야죠.”
오상진의 지시에 김대호 상사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작업은 제가 알아서 만들어 놓겠습니다.”
“네. 행보관님.”
“그럼 일 진행하겠습니다.”
“네.”
“충성.”
김태호 상사가 오상진의 지시를 받고 중대장 사무실을 나갔다.
2소대, 아니, 4중대 전원은 뜻하지 않은 작업에 투입될 전망이었다. 그것도 해안 경계초소 보수공사였다.
2소대원들이 모두 작업복 차림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중 박형욱 병장이 잔뜩 짜증이 난 상태로 투덜거렸다.
“아, 시발! 무슨 작업이야. 작업이! 나 안 간다고 전해!”
“전원 집합이지 말입니다. 한 명도 빠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됐어! 나 정도면 빼줘야지. 요량껏!”
“아,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가서 나 아프다고 해. 아프다고. 그럼 그냥 넘어갈 거야. 야! 생각을 해봐라. 이제 나 제대 얼마 남지도 않았다. 말년 대우는 해줘야지. 안 그러냐?”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만 할 겁니다. 혼나도 저는 모릅니다.”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황익호 병장은 2소대원들을 싹 데리고 나가고, 남은 박형욱 병장이 구석에 짱박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 시발. 내일모레면 제대인데 무슨 작업이야. 진짜 생각이 없어, 생각이. 그보다 뭐 할까? 뭘 해야 하나?”
박형욱 병장이 고민을 하고 있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럼 모처럼 우리 언니들이나 볼까?”
박형욱 병장이 실실 쪼개며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아래쪽으로 향했다.
그 시각 오상진의 밀명을 받은 김태호 상사가 모든 부사관들을 싹 불러 모았다. 제일 먼저 나타난 이기상 하사가 김태호 상사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무슨 공사입니까?”
그의 물음에 김태호 상사가 어깨동무를 하고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야, 이 하사.”
“네.”
“너 맘 확실히 정한 거지?”
“저 말입니까? 네, 정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윤 소위에게 전화 왔었습니다.”
“뭐라고 그랬는데? 말했어?”
“말하긴 뭘 말합니까. 중대장님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그래서 서울에 볼일 보러 갔다고 했죠. 그 외 별 얘기 안 하고 끊었습니다.”
“그렇지?”
“네.”
“너 확실히 이쪽으로 넘어온 거 맞지?”
“도대체 뭔데, 아니, 뭐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김태호 상사가 짐짓 비장한 눈빛이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 중대 청소를 시작할 거야.”
“청소 말입니까? 대청소 말입니까?”
“그거 말고 말이야. 애들이 지금까지 이리저리 짱박아 놓은 것이 많을 거 아니냐. 그거 다 뒤져서 찾아야 해.”
“그, 그래서 우리 중대 애들 작업을 다 시킨 겁니까?”
“그래! 이제 알겠어?”
이기상 하사는 바로 감탄했다.
“와, 진짜······. 우리 중대장님 장난 아닙니다.”
“중대장님 얘기 못 들었어? 뭐든 일 처리하는 게 빠릿빠릿해서 젊은 나이에 진급을 빨리 한 거 아니야.”
“아, 그런 거였습니까? 2소대장은 무슨 연줄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무슨······. 인마! 나도 그 얘기를 듣고 이리저리 알아봤는데 그냥 뭐 일을 잘해서 예쁨받았다고 하더라. 특별히 연줄이 좋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입니까?”
“그래! 군인 집안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윤 소위 같은 사람이나 장군 집안이라고 으스댔지!”
“하긴 그렇지 말입니다. 그럼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이미 중대 부사관들에게는 미리 통보를 했다. 그러니 너는 애들 데리고 가서 애들 빡시게 일 좀 시켜라. 알지? 해안 경계초소 말이야.”
“당연하지 말입니다. 제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그보다 애들이 좀 불만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갑작스럽게 작업을 시키면 말입니다.”
“그럼 뭐? 단체로 훈련이라도 할까?”
“에이, 훈련보다는 단체로 잡일을 하는 것이 좋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애들 데리고 가서 내가 연락할 때까지 애들 붙잡고 있어. 한 놈도 열외시키지 말고.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이기상 하사가 대답을 하고는 연병장으로 나갔다. 이미 오늘을 위해 대대에 육공트럭까지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김태호 상사는 연병장으로 나왔다. 부소대장들이 미리 자신들의 소대 앞에 서 있었다. 단상에 오른 김태호 상사가 물었다.
“열외 없이 다 왔지?”
“네.”
“부사관들 인원 체크 후 보고하지.”
“알겠습니다.”
부사관들이 인원을 체크한 후 하나하나 보고를 했다.
“4소대 이상 없습니다.”
“1소대 이상 없습니다.”
“3소대도 이상 없습니다.”
이기상 하사도 2소대원들을 체크했다.
“앉으면서 번호······.”
“하나, 둘, 셋, 넷, 다섯······ 번호 끝!”
이기상 하사가 체크를 한 후 고개를 갸웃했다. 한 명이 비었다.
“야, 한 명이 없는데? 누구야?”
황익호 병장이 냉큼 말했다.
“이민균 병장 의무실에 있습니다.”
“아아아, 그렇지. 그럼 됐네.”
이기상 하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명을 빼버린 것이었다.
“2소대 이상 없습니다.”
“좋아. 4중대 다 왔지?”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부사관들만 따로 단상 앞으로.”
김태호 상사의 지시에 부사관들 모두 집합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중대장님께서 해안 경계초소 보수공사를 지시했다. 이번에 첫 부임하고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야. 그러니까, 알아서들 잘 처리했으면 좋겠다.”
“아. 그걸 하필 꼭 오늘이어야 합니까? 아침부터······.”
김태호 상사의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
“스읍! 그럼 내가 지금 중대장님께 가서 1소대 정윤호 하사가 못 해먹겠다고 그렇게 말을 할까?”
정윤호 하사가 바로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제가 언제 그런 말 했습니까. 행보관님도 참······.”
정윤호 하사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막말로 정윤호 하사도 어지간히 뺀질거리는 스타일이었다. 4중대 왔으니, 일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시간만 때우다가 퇴근하고 그러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고, 총대 메고 그럴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니, 힘들어서 일 못 하겠다는 사람 있으면 미리 말해. 내가 중대장님께 친히 가서 말할 테니까.”
“에이, 행보관님 왜 그러십니까.”
“저는 아무 말 안 했습니다.”
3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2소대장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홍일동 4소대장과 죽이 잘 맞는 하진균 하사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빨리빨리 끝냅시다. 기왕 작업할 거.”
김태호 상사가 피식 웃으며 정윤호 하사를 봤다.
“정 하사.”
“네.”
“자네가 맡은 구역 확실하게 보수공사 마무리 지어. 내가 가서 확인했는데 마무리 안 되어 있다거나 그러면 진짜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후 자신의 소대로 갔다. 다른 부소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1소대가 먼저 육공트럭에 올라탔다.
그사이 김태호 상사는 마지막으로 출발하는 이기상 하사랑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김태호 상사가 전화하라는 수신호를 보냈고, 이기상 하사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자자, 얘들아, 다 탔냐!”
“네. 그렇습니다.”
2소대원들의 손에는 삽, 곡괭이를 비롯해 풀을 정리하기 위한 낫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기상 하사가 차량에 올라타며 운전병에게 말했다.
“자, 출발해.”
“네.”
그렇게 4중대 전원이 해안 경계초소 보수공사를 위해 떠나자 중대가 조용했다. 그때 김호동 하사가 나타났다.
“야, 김 하사.”
“네.”
“너 인마. 요즘 행동이 부쩍 느리다.”
“행동이 느린 것이 아니라, 저도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서 그렇지 말입니다.”
“일 같은 소리 한다. 아무튼 움직이자!”
“그럼 저희 둘입니까?”
“그럼 누가 있다고······.”
“저희 둘이서 중대 전체를 다 뒤집니까?”
이미 김태호 상사는 김호동 하사에게 미리 말을 다 전달한 상태였다.
“인마, 우리 둘이 하자. 사람 잘못 들였다가 일이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래?”
“만날 저에게 그런 말씀 하십니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알았어, 인마. 일단 움직이기나 하자. 시간 없다.”
“어느 소대부터 갑니까? 1소대부터 갑니까?”
“아니, 2소대부터!”
김태호 상사는 대답을 한 후 빠른 걸음으로 2소대를 향해 걸어갔다. 2소대 문을 확 열며 말했다.
“자, 시작하자!”
그런데 덜컹하는 문소리와 함께 김태호 상사와 김호동 하사가 들어섰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 뭔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순간 정적이 흘렀다.
“······.”
“······.”
김태호 상사와 김호동 하사가 목격한 것은 팬티 차림으로 서 있는 박형욱 병장이었다. 그는 덜컹 열리는 문 소리에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있었다.
‘하아,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