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75)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09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75)
-그래, 이 하사. 지금 어디인가?
“저 말입니까? 부대에 잠깐 나와 있습니다.”
-부대에?
“네. 그렇습니다.”
-잘 되었네. 안 그래도 뭐 좀 물어보려고 했는데.
“뭘 말입니까?”
이기상 하사가 잔뜩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대전에 내려와 있는데 소대가 너무 걱정이 되잖아.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또 이렇듯 육본에 온 것도 처음이고 말이지. 그래서 소대는 별일 없지?
윤태민 2소대장이 뭘 알고 물어보는 것인지, 정말 걱정이 되어서 물어보는 것인지 잘 몰랐다. 어쨌든 이기상 하사는 지금까지 별 이상이 없기에 바로 말했다.
“네. 아무 일 없습니다.”
-그래? 혹시 중대장님 소식은 알아?
“중대장님 말입니까?”
-그래. 오늘도 부대 출근하셨어?
“오전에 잠깐 나왔다가, 바로 나가셨습니다. 서울에 볼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서울? 서울에는 왜?
“여자 친구 보러 가신다고 했습니다.”
-여자 친구? 아······. 중대장님도 참······. 하긴 한창 좋으신가 보네.
“네?”
-아니야. 부대 별일 없다면 됐어. 그리고 소대에 별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줘야 해.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윤태민 2소대장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기상 하사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며 중얼거렸다.
“아이씨, 무슨 얘기를 들은 거야? 아니, 잘하지도 않는 전화를 몇 통씩이나 해. 찝찝하게······.”
그러고 있는데 이기상 하사가 2소대로 향했다.
“얘들아, 잘 쉬고 있냐?”
2소대원들을 TV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던 박형욱 병장이 벌떡 일어나며 경례했다.
“충성, 2소대 휴식 중.”
“쉬어.”
“다들 별일 없지?”
“네, 없습니다.”
이기상 하사가 쭉 소대원들을 훑어보다가 황익호 병장을 응시했다. 만약에 이 중에서 누군가 전화로 얘기를 해줬다면 황익호 병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황익호 병장은 이기상 하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놀라기는커녕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이 하사님, 왜 그러십니까?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야······.”
이기상 하사는 황익호 병장에게서 시선을 치우고 곧장 박형욱 병장에게 말했다.
“야, 오늘 날씨 좋잖아. 어때? 족구 한 판 할까?”
박형욱 병장이 바로 인상을 썼다.
“무슨 족구입니까. 저 제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알아.”
“저 제대 무사히 하고 싶습니다. 다치면 안 되지 말입니다.”
“알았어!”
박형욱 병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래서 뭐 내기입니까?”
이기상 하사는 무슨 말이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 소리야. 넌 안 시켜줄 건데.”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또 2소대 족구왕이지 말입니다.”
“족구왕 같은 소리 한다. 분대장님은 제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무사히 보내서 제대하십시오.”
“······.”
“그보다 너 언제 휴가냐?”
“다음 주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까지 제발 있는 듯 없는 듯 있어. 작업하라고 하면 언제 어디로 사라지는지 찾아볼 수도 없는 놈이 족구 하자니까, 눈 반짝이는 것 봐.”
“작업은 작업이고, 족구는 족구지 말입니다.”
“야! 너는 제대할 때까지 병장 놀이를 하고 싶냐!”
이기상 하사는 박형욱 병장에게 혀를 한 번 찬 후 다시 시선을 황익호 병장에게 향했다.
“야, 황익호!”
“병장 황익호.”
“나가자, 족구나 한 판 하게.”
“하아······. 그럼 이 하사님께서 치킨 사 주시는 겁니까?”
“치킨? 그래! 까짓것 내가 사 준다. 치킨!”
순간 황익호 병장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지만 괜히 싫은 척했다.
“에이, 쉬고 싶었는데······. 알겠습니다.”
황익호 병장이 단상 아래에서 활동화를 꺼내 신었다. 그때를 같이 해 2소대원들도 하나 둘 활동화를 신고 족구장으로 나갔다.
제일 마지막까지 자리해 있던 최헌일 상병이 슬쩍 이기상 하사에게 다가갔다.
“이 하사님.”
“응?”
“이민균 병장 괜찮습니까?”
“이 병장? 괜찮······진 않고. 본인 말로는 충격이 좀 큰 것 같더라. 그런데 왜?”
“걱정 되어서 말입니다.”
“야야야, 평소에 잘해라. 평소에! 그리고 너는 그때 안 했어?”
“네?”
최헌일 상병이 눈을 부릅떴다. 이기상 하사가 슬쩍 귀 근처로 다가가 속삭였다.
“애들이 밟을 때 너는 안했냐고.”
“저는 영문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진짜입니다.”
“그래? 확실히 애들이 밟긴 한 거지?”
이기상 하사가 슬쩍 물었다. 최헌일 상병이 움찔했다.
“네? 아, 그게······.”
사실 이기상 하사의 물음에 최헌일 상병은 자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애들이 밟긴 밟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숨길 수는 없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
“어두워서 솔직히 완벽하게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다만 실루엣과 소리를 듣고······. 아무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최헌일 상병이 이기상 하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아무튼 알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부소대장인 나에게 직접 와서 말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이기상 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헌일 상병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곤 이기상 하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족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나는 언니인 김선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는 조카인 김소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모!
“어? 어어, 소원이니?”
-응! 이모 언제와?
“이모? 우리 소원이가 이모를 많이 보고 싶어 하는구나.”
-응! 엄청 보고 싶어. 너무너무 보고 싶어.
“이모도 우리 소원이 많이 보고 싶어. 이모 몇 밤만 더 자고 내려갈게.”
-치이, 전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미안 이번에는 이모가 꼭 지킬게. 그런데 우리 소원이는 학교 잘 다녀?”
-응! 소원이는 학교 잘 다녀.
“괴롭히는 사람은 없고?”
-괴롭히는 사람? 으음······, 없어.
“그래? 그럼 소원이는 남자 친구 있어?”
세나가 농담 삼아 물었다. 그러자 소원이로부터 즉각 답변이 왔다.
-응, 있어.
“진짜? 그런데 남자 친구가 무슨 뜻인 줄은 알아?”
-서로 좋아하는 사람.
“어? 그, 그렇지······.”
-이모는 남자 친구 있어?
“이모는 남자 친구 있으면 안 돼.”
-피이.
“뭐야. 김소원 너 반응이 왜 그래.”
-이모 인기 없구나.
“무, 무슨 소리야. 이모 인기 많아.”
-남자 친구도 없으면서······.
“어머머, 없는 것이 아니라. 이모가 안 만드는 거야.”
세나가 당황한 나머지 말을 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 김선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원아, 넌 이모에게 못 하는 말이 없니. 어서 전화기 줘봐. 여보세요? 세나니.
“으응, 언니······.”
-소원이가 하는 말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그럼. 그런데 요새 애들 왜 그래?”
-사돈 남말 하시네. 너는? 중학교 시절부터 가수 되겠다고 발랑 까져서는······. 네가 지금 누구에게 뭐라고 하는 거니.
“언니! 나랑 소원이랑은 다르지. 그리고 나 지금 가수 하고 있잖아.”
-가수는 무슨······. 너 지금 연습생이잖아. 그리고 연습생을 몇 년이나 더 해야 하니. 이러다가 너 데뷔도 못 하고 시집가겠다.
“언니!”
-알았어. 그런데 너 주말인데 나가지도 않고 뭐하고 있어? 진짜 만나는 사람 없어?
“연습생이잖아. 나가면 돈도 쓰고······.”
세나가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씁쓸했다.
-뭐야. 너 언니가 용돈 보내주잖아. 그걸로 부족해?
“아니. 그건 나중에 쓰려고······. 회사에서 잘해줘서 돈 쓸 데도 없어.”
세나가 그리 말을 하지만 김선아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으구, 너 솔직히 말해봐. 너 거기서 데뷔는 할 수 있는 거야?
“그럼!”
-지난번에 언니가 이사님과 통화를 해보니, 회사 사정이 힘들다고 하던데······. 너 정말 괜찮은 거야?
“그럼. 대표님 형님분께서 투자를 해주셔서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럼 올해 안에 데뷔 할 수 있는 거지?
“그럼.”
-에효, 그래. 빨리 데뷔를 해야 하는데 나이만 자꾸 먹어가고 있으니······.
“언니······.”
-걱정이 돼서 그래. 걱정이······. 그건 그렇고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 거니?
“그럼 방금 전에도 많이 먹었어.”
-뭘 먹었는데?
“그냥 이것저것 장난 아니게 많이 먹었어.
-으이구, 너는 거기 가서도 식탐을 놓지 못했냐? 걸 그룹이라면 몸매 관리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언니는 진짜······. 이랬다저랬다 그래. 그럼 밥 먹었냐고 묻질 말든가.”
-하이고, 너 성질은 달라지지가 않니.
“됐어. 끊어!”
세나가 휴대폰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두 손에 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언니는 만날 전화할 때마다 잔소리야.”
세나가 투덜거리다가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세나는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잡고, 거실로 나왔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 컵케이크가 턱하니 놓여 있었다. 세나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 맛있겠다.’
당연히 컵케이크의 주인은 세나가 아니었다. 최정아 것이었다. 그 컵케이크를 가만히 바라봤다. 세나는 침을 다시 한번 삼켰다. 하지만 저걸 먹었다간 최정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런데 웃긴 것이 최정아는 세나가 좋아하는 것들로 냉장고에 잔뜩 넣어 놓곤 그랬다. 그것이 세나를 더 짜증 나게 만들었다.
“하아, 그냥 물이나 마시자.”
세나는 미련을 버리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싱크대 옆 정수기로 향하는데 식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지잉, 지잉.
세나는 다시 걸음을 돌려 휴대폰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김승호 이사였다.
세나의 표정이 환해졌다. 바로 주위를 확인한 후 휴대폰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이사님. 무슨 일이세요?”
-그래, 세나야. 어디니?
“지금 저 숙소에 있어요.”
-다른 애들은?
“애들요? 지금 다들 각자 방에 있는데······.”
-그러니? 그럼 지금 잠깐 밖으로 나올래?
“어······ 알겠어요.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응, 너희 엔젤스 투자자 구했어.
“네? 투자자요?”
-그래. 그런데 세나 너도 아는 사람이야.
“제가요?”
김승호의 얘기를 들은 세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세나는 통화를 마치자마자 거실로 나갔다.
“얘들아, 모두 거실로 나와봐. 어서!”
세나의 부름에 각자 방에 있던 애들이 하나둘 나왔다. 거실로 오상희, 김승혜, 이은영, 박승미가 나왔다. 최정아는 오늘도 밖에 나가서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오상희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언니 왜요? 무슨 일인데요.”
“무슨 일이에요?”
세나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애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얘들아, 방금 김승호 이사님께 전화가 왔었거든.”
“김 이사님이요?”
“김 이사님이 뭐라고 하세요?”
애들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세나를 바라봤다.
“김 이사님이 투자자를 찾았다고 해.”
“투자자요? 그럼 우린 어떻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