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7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0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73)
최강철이 고개를 흔들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
“와우! 우리 소대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히 계산적이시네.”
“야, 인마. 뭘 그렇게 안 봐. 솔직히 말해서 너희 형이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지. 막말로 남이었으면 이런 것을 챙기겠냐.”
“뭐예요? 소대장님은 우리 형하고 신소라 씨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야! 둘이 그렇게 좋아서 못 살면 그냥 결혼할 수 있는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에이, 소대장님은 우리 엄마를 몰라서 그래요. 만약 그것을 알잖아요. 난리 나요.”
최강철이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지금도 저희 형, 제대로 된 재벌가와 연줄 만들려고 엄청 노력하시는데요.”
“어머니가 그러셔?”
“소대장님도 아시잖아요. 우리 선진! 엄마가 물려받으셨잖아요. 삼촌들이 우리 회사 탐내고 있는데 저희 형 혼자서는 힘들어요. 물론 우리 형이 똑 부러지고 그렇긴 하지만······. 그 와중에 며느리를 배우로 들인다? 턱도 없죠! 엄마 입장에서는 형의 우호지분이 되어 줄 수 있는 재벌가 며느리를 들이실 거예요.”
“그래?”
오상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최강호는 그런 식으로 결혼을 했지만 두 번이나 실패를 했다. 그럴 때마다 선진그룹의 지분은 계속해서 줄어만 갔다. 왜냐하면 위자료가 분할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차라리 신소라랑 결혼을 하는 것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형에게 말은 해볼 수 있는데 만약에 우리 엄마 귀에 들어가면 난리가 날 텐데요. 괜찮으시겠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형제들은 쉬쉬하고 있었지만 오명화 회장 성격상 신소라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놔두는 이유는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자신이 지인으로서 신소라를 관리해 준다면 오히려 오명화는 좋아할 수도 있었다.
“글쎄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소대장님께서 저희 엄마 성격을 몰라서 그래요. 저희 누나가 엄마 성격을 닮았다니까요.”
“그러니까, 강희 씨 보니까 천상 여자더만!”
“헐······. 대박! 소대장님 눈 삐셨어요.”
“야, 너는 무슨 그런 말을 하냐. 그리고 너도 우리 소희 씨 알지?”
“당연히 알죠. 소희 형수님도 지금 당장 연예인 해도 손색이 없을 텐데······.”
“야야, 예쁜 거 말고. 우리 소희 씨도 한 성격 하거든.”
“아, 맞다. 그렇죠. 우리 지은이는 참 착한데.”
“됐고! 막상 살아보면 자기주장이 뚜렷한 여자랑 사는 것이 좋아.”
“아, 저는 싫어요. 더 센 여자는 어후······.”
최강철은 두 손까지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한마디 했다.
“야, 누가 너보고 살래.”
“그러니까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여자와. 소대장님은 소대장님께서 좋아하는 여자! 이렇게 딱 맞게 결혼하면 되는 거죠.”
“오냐, 알았다.”
그때 회사 한 바퀴를 다 돈 김승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의 표정은 더 확연하게 밝게 흥분되어 있었다.
“대표님, 대표님! 여기 다 있습니다. 연습실부터 시작해서 스튜디오, 회의실 등. 전부 다 있어요.”
“김 이사님 지난번에 한 번 왔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한 번 오긴 했죠. 그런데 회사 구경시켜 달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습니다. 그냥 불러서 오긴 했지만 이것저것 구경은 못 했습니다.”
김승호가 나름 이름이 알려진 프로듀서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좀 그랬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상진과 최강철에게는 충분히 보여도 되었다.
“그래요? 딱히 손 볼 곳은 없어요?”
오상진이 물었다.
“손 볼 곳은 딱히 없을 것 같은데요. 단지 바로 사용하지 못해서 사무실 일부만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최대한 넓게 사용하는 것이 좋죠. 원래 회사는 제대로 갖춰져서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오디션 보거나 사람 뽑거나 할 때 편하고 아티스트와 계약할 때도 좋습니다.”
“아, 그래요?”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강철아 네가 형하고 얘기를 해봐.”
“어쨌든 여기서 하신다는 거죠?”
“그래.”
“우리 형이 좋아하겠네요.”
“그리고 그 얘기도 한번 해보고.”
“진짜요? 정말 받으시려고요?”
최강철이 잔뜩 의문을 가지며 재차 물었다. 그러지 김승호가 끼어들었다.
“뭘 받으신다는 것인지······.”
“아, 그건 나중에요.”
최강철이 일단 선을 그었다. 그리고 다시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정말이죠?”
“일단 한번 물어봐! 형님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스읍, 우리 소대장님 좀 세게 나오시는데······.”
최강철이 피식 웃었다.
은은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그곳에는 남녀 단둘이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단둘뿐인 레스토랑이었다.
남자는 선진그룹의 차기 후계자로 내정된 최강호 본부장이었고, 여자는 배우인 신소라였다.
두 사람은 마치 익숙한 듯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식사를 했다. 잘 구워진 안심 스테이크를 잘게 쓴 신소라가 포크로 꼭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작은 입 모양이 오물오물거리며 슬쩍 얘기를 꺼냈다.
“자기, 식사가 좀 늦은 거 아니야?”
그러자 최강호가 힐끔 신소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누구 때문에 늦었는데.”
“언제는 천천히 와도 된다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약속 시간을 3시간이나 늦게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서 뭐? 나 미워?”
신소라가 새침한 표정으로 물었다. 최강호가 피식 웃었다.
“예쁘지만 않았어도 내가 참······.”
신소라가 씨익 웃었다. 원래 두 사람은 오늘 점심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신소라가 늦잠을 잔 것이었다.
“미안해요. 시간이 그렇게 된 줄 몰랐네.”
신소라가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런 미워할 수 없는 여자를 보는 최강호가 살짝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무슨 준비를······.”
“이 정도면 양호하지. 자기 만나러 나올 때 기본 5시간 걸려!”
“뭐?”
최강호가 살짝 놀랐다. 사실 오늘도 신소라가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최강호는 무려 3시간을 기다렸다.
어차피 신소라를 위해서 하루 종일 레스토랑을 빌려 놓은 상태라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래도 최강호는 졸지에 점심을 쫄쫄 굶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배가 많이 고팠어?”
“아니, 배가 고팠다기보다는 빨리 보고 싶었던 거지.”
“정말?”
신소라가 씨익 웃었다. 사실 신소라의 이상형은 자기랑 함께 음식을 잘 먹어주는 남자였다.
하지만 최강호는 원래부터 입이 많이 짧았다. 포식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신소라와 데이트가 잡힌 날에는 늘 위장을 비워두는 편이었다.
“그런데, 자기. 여기 어때? 괜찮아?”
신소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최강호가 주변을 쓰윽 한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쁘지는 않네.”
그러면서 다시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신소라가 환하게 웃었다.
“난 자기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몰라.”
“네가 우리 어머니야?”
“왜? 어머니도 그런 소리를 해?”
“우리 어머니 소원이 나 배부르게 먹이는 거라던데.”
“하긴 자기 입이 좀 짧긴 하지.”
“아니, 짧은 것은 아니고 너무 배가 부르면 일할 때 신경 쓰이니까. 집중도 안 되고······.”
“그래서 나 만날 때 이렇게 노력하는 거야? 어이구, 예쁘네.”
신소라가 말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처음 최강호를 만난 것은 파티에서였다. 첫인상은 매우 날카로웠다. 선진그룹 장남이라고 해서 관심이 가긴 했지만 눈빛과 싸늘한 이미지를 보고 생각했다.
‘아, 나하고는 다른 사람이구나.’
그렇게 애써 무시하며 자신과는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강호가 파티가 끝날 때쯤 직접 찾아와서는 팬이라며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하고 싶다고 먼저 얘기를 꺼내왔다.
신소라는 솔직히 당황했다. 자신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 데다가, 먼저 식사까지 하자고 청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소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음, 저랑 식사를 하시면 좀 불편하실 텐데요.”
“네?”
“저는 깨작거리는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제 앞에서 복스럽게 먹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데 사업하시는 분들은 식사를 잘 못 하더라고요.”
신소라의 말에 최강호가 당황했다. 아니, 처음에는 그녀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했다. 그냥 자기랑 식사를 하기 싫어서 꺼낸 말이라 여겼다. 그래서 담담하게 헤어졌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그녀에 대해서 확인을 했다. 그러다가 데뷔 초 때 인터뷰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안이 많이 어려웠다.
-연예인이 된 이유도 배불리 먹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인터뷰를 할 때도 대부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은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몸매를 유지하는 것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강호는 자신을 거절하기 위해서 둘러댄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재미있는 여자네.”
최강호는 그녀의 인터뷰를 확인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지만 한 달 후 다시 그녀를 만났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말이다.
“식사 한번 하시죠.”
최강호가 다시 한번 식사 제의를 했다. 신소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멋! 지난번에 말씀드렸는데······.”
“제가 솔직히 신소라 씨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신소라 씨를 만나는 날에는 공복으로 나가겠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제가 뭐라고······.”
최강호는 그때 왜 그런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는지 현재까지도 잘 몰랐다.
“그때도 말씀드렸다시피 팬입니다. 그리고 제 이상형입니다.”
“어후, 제 이상형이라는 사람이 워낙에 많아서 별로 감흥이 없는데요.”
신소라가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저 만나겠다고 쫄쫄 굶고 오겠다는 남자는 본부장님이 처음이시네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신소라는 자신의 음식을 다 먹고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힐끔 최강호의 접시를 확인했다.
“자기 것 다 먹을 거야?”
“나 배불러서 못 먹겠다.”
“그럼 나 몇 조각만 줘.”
그 말에 최강호가 피식 웃으며 자신이 잘라놓은 고기를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
처음 신소라와 식사를 할 때 다 먹은 후 그녀가 자꾸 힐끔거리는 모습을 보고 최강호는 눈치 없이 한 접시를 더 시켰다.
그랬더니 신소라가 맛있게 다 먹은 후 나갈 때쯤 말했다.
“그런데 저에게 음식 나눠주기가 그렇게 싫으셨어요?”
최강호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신소라는 정(情)까지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요새는 한 접시 더 시키지 않고, 자신의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