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9)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103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9)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책상 위에 뒀던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파인 엔터테인먼트의 홍만식 대표였다.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아이씨, 갑자기 왜 전화를 했지?”
최규식 대표가 고민을 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받아보면 알 일이었다.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안녕하십니까, 홍 대표님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고, 최 대표. 잘 있었어?
“저야 뭐 그럭저럭 지냈죠.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죠?”
-이 사람아.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하나. 그냥 안부 차 하는 거지.
“안부치고는 너무 갑작스러운 것 아닙니까. 여태까지 연락이 없다가 하시니······. 그냥 용건만 말씀하시죠.”
-에헤이, 참 재미가 없어. 알았네, 용건만 말하지. 듣기로 김승호가 그만뒀다면서.
그 말에 최규식 대표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하긴······. 그런데 홍 대표님께서는 저희 회사에 관심이 그렇게 많으십니까?”
-이 사람아. 관심이 많다기보다는 할 말이 있어서 그렇지. 자네 모르지? 김승호가 우리 회사 찾아왔다는 거.
“네? 거길요? 김 이사가 거길 찾아갔단 말이에요?”
-그래!
최규식 대표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열을 냈다.
‘아이, 김승호 이 새끼 진짜······.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이 인간을 찾아간 거야.’
사실 최규식 대표는 홍만식 대표와는 악연으로 엮여 있었다. 예전 최규식 대표가 빅스타 엔터테인먼트를 차렸을 때 제일 먼저 조롱했던 것이 홍만식 대표였다.
그리고 홍만식 대표는 최규식 대표가 스타 엔터테인먼트 이사로 있을 때도 반말을 하며 이사 대우를 해주지 않았다.
그런 것이 쌓이고 쌓여서 상대도 하기 싫은 사람이 바로 홍만식 대표였다.
“김승호가 거기 가서 뭐라고 합니까?”
-뭐라고 하긴. 투자 좀 해달라는 거지.
“하, 진짜 다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그보다 최 대표! 왜? 회사가 많이 어려워?
“그걸 알아서 뭐하시게요. 왜? 저희 회사가 어려우면 업어 가시려고요?”
최규식 대표가 좀 삐딱하게 말을 했다. 그러자 홍만식 대표는 연륜이 깊은 사람답게 유연하게 대처했다.
-에이, 자네 회사에 가져갈 것이 뭐가 있다고 그래. 듣기론 파워워크 저작권도 다 넘어갔다며.
“어? 그건 어떻게······.”
-어허, 이 사람! 나 몰라? 홍만식이야. 홍만식!
홍만식 대표는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떠드는 만큼 업계에 나도는 소문은 빠삭했다.
게다가 연예계 기자들이 홍만식 대표랑 워낙에 친해서 자그마한 소문까지 다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홍만식 대표를 싫어하거나, 경계하는 대표들도 여럿 있었다.
어쨌거나 싫든 좋든 모든 소문이 다 홍만식 대표에게 들어간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몇몇 사람은 홍만식 대표를 좋아하기도 했다. 홍만식 대표를 통해서 어떤 일이든 다 소문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어서 말이다.
그럼에도 최규식 대표는 홍만식 대표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왜 전화하셨어요? 설마 놀리려고 하신 겁니까?”
-어허, 이 사람. 왜 이렇게 날이 서 있어. 내가 설마 자넬 놀리려고 전화를 했을까.
“그럼요?”
-김승호가 그러더라고. 엔젤스인지 뭔지 받아주면 7년간 노예 생활 하겠다고 말이야.
“7년이요? 미친 새끼······.”
원래는 이 바닥이 7년 계약이 기본적인 룰이었다. 하지만 김승호는 그 계약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7년이 아니라, 데뷔 후 7년이었다.
만약에 데뷔를 하고 7년 동안 계약을 하면 연습생 기간 2년에, 계약기간 7년 그러면 거의 20대 후반이 되어버렸다.
보통 20대 후반이면 아이돌로는 끝이라고 봐야 했다. 인기가 있다면 솔로로 나서든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되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아이돌이라면 이미 끝났다고 봐야 했다. 아니, 거의 폐차 수준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김승호는 계약 기간을 줄이고, 최소한으로 잘 될 것 같은 아이돌을 다시 한번 계약해 장수 아이돌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최규식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이돌이 가장 돋보일 때 초창기에 한참 예쁘고, 풋풋할 때 열심히 돈 빨아먹는 것이 베스트였다.
실제로 파워워크도 초반에 돈 빨아먹은 것이 있어서 엔젤스를 키우는데 보탬이 되었다. 물론 너무 빨리 망해버려서 남는 것은 많이 없었지만······.
아무튼 최규식 대표 입장에서 파워워크 같은 보이그룹 하나 더 만들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김승호는 보이그룹보다는 걸그룹이 좋다며 그것에 집착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나야 김승호를 데리고 오면 좋지. 그런데 괜찮겠어? 김승호는 엔젤스 위약금 자기가 낼 수 있다고 하던데.
“네? 엔젤스 위약금은 무슨······.”
그 말을 하면서 최규식 대표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시발.’
그것을 눈치챈 홍만식 대표가 슬쩍 물었다.
-왜 가능한 거야?
“아, 그런 것이 있습니다. 홍 대표님은 알 필요가 없잖아요.”
최규식 대표가 그리 말을 했지만 사실 김승호가 했던 말이 맞았다.
‘아, 생각해 보니 김승호에게 주겠다는 돈이 제법 많지. 지분까지······. 제기랄······.’
김승호를 데리고 올 때 농담 삼아 했던 말이었다. 이사로 참여하면 회사 지분을 주겠다. 그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 역시 계약서에 적혀 있었다.
만에 하나 김승호가 지분을 달라고 할 경우 어떻게든 줘야 했다.
문제는 지금 현재 회사에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쪼갤 수도 없고 말이다. 결국 김승호가 원하는 엔젤스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하, 그래서 당당하게 나갔나?’
최규식 대표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홍만식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딱 보니, 아무래도 최 대표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맞아?
“하아······.”
최규식 대표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하나 제안을 하겠는데.
“제안요? 뭔데요?”
최규식 대표는 일단 그 제안을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김승호를 다시 거기로 보낼게.
“네에?”
-못 들었어? 내가 김승호와 계약하지 않고 다시 거기로 보낸다고.
“원래 우리 회사 사람인데 보내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어요.”
최규식 대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에이, 무슨 소리야. 회사 나갔으면 남의 사람이지.
“그래서 원하는 것이 뭔데요?”
-김승호도 거기 보내고, 내가 투자를 할 테니까. 대신에 김승호에게 우리 애들 하나 키우라고 해줘.
“네?”
-왜 그래. 김승호 애들 잘 키우잖아. 지금 우리 애들 중에 새로 키우려고 준비 중인 애들 있거든. 걔네들 김승호에게 트레이너 좀 시켜 달라고 하라고.
“그러니까, 우리더러 지금 파인 엔터 하청을 하라는 겁니까?”
-어허, 이 사람. 말을 또 그렇게 받아들이나. 아니, 빅스타야 자금이 부족하고, 메인 프로듀서가 나가고 그랬는데 앞으로 어떻게 장사할 거야? 내가 앞으로 자금도 투자해 주고, 메인 프로듀서도 주고 그런다잖아. 대신에 우리 일 좀 해달라는 거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지금 자존심 세울 때야?
“하아······.”
최규식 대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진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빅스타 엔터테인먼트의 상황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거기다가 망할 형 돈까지 끌어들여 제대로 망하게 생겼는데 여기서 뭘 해봐야 더 밑으로 떨어질 것도 없었다.
‘그래. 망할 형 돈도 받았는데······.’
최규식 대표는 그렇게 싫어하는 홍만식 대표의 돈을 못 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뜻 알겠다고 말하는 것도 자존심이 좀 상했다.
“네. 일단 고민해 보겠습니다.”
-훗, 알았어.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고. 최 대표보다 먼저 김승호가 찾아오면 나 받아줘야 할지도 몰라.
“알았어요.”
최규식 대표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에이, 빌어먹을 새끼. 하필 왜······.”
최규식 대표가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는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황인철 이사가 들어왔다.
“대표님 저 왔습니다.”
황인철 이사가 꾸벅 인사를 하며 최규식 대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오늘따라 최규식 대표의 눈빛이 사나웠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황인철의 물음에 최규식 대표가 버럭 했다.
“야 황인철! 너는 도대체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그런데 황인철은 바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대표님! 절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언제까지 제가 매니저, 아니면 팀장으로 보이십니까. 저 이사입니다. 이사!”
“이사 같은 소리 한다. 그래서 내가 널 황 이사라고 불러 주리?”
“당연하죠. 직책이 딱 있는데.”
“지랄한다. 막말로 네가 이사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뭔데? 괜히 연습생들 건드려서는······.”
황인철 이사가 바로 인상을 썼다.
“아······, 언제적 얘기를 하세요. 저 이제 연습생들 안 건드리거든요.”
“에라이, 똥개가 똥을 끊지. 지랄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이쪽 바닥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소문은 들었다. 황인철 이사가 스타 엔터테인먼트를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대외적으로는 최규식 대표와 함께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황인철 이사가 연습생 한 명을 잘못 건드려서였다.
보통 연습생들 중 데뷔가 늦은 애들은 조금만 건드려도 알아서 넘어왔다. 그것에 맛을 들인 황인철이 만만한 연습생 한 명을 건드렸는데 하필 그 집이 잘살았다.
게다가 스타 엔터테인먼트 대표랑도 잘 알고 있는 사이였고 말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건드렸던 연습생 애들이 다 드러났고, 회사에서는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해서 나왔다.
사실 이 바닥에서 일을 못 할 실정이었는데 최규식 대표가 불쌍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너 나랑 일하면서는 절대 사고 치지 마라.”
“네, 대표님. 저 절대 사고 안 칩니다.”
“제발 부탁이다. 그리고 일단은 팀장 직함 달아줄 테니까, 애들 관리 잘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렇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고마워했던 황인철이었다. 그 뒤로 열심히 일했다. 사고도 안 치고, 파워워크도 잘 되고, 그러다가 이사까지 달게 되었다.
물론 김승호를 이사 직함을 해주면서 은근히 자신도 이사를 달아야 하지 않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 꼴을 보기 싫어서 달아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황인철이 최규식을 따라서 스타 엔터테인먼트를 그만두고 빅스타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승승장구해 이사까지 승진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생각에까지 이른 최규식 대표가 버럭 했다.
“너 새끼야. 나 아니었으면 이 바닥에 발도 못 디뎠어.”
“아, 진짜······. 왜 또 그 얘기를 하세요. 그래서 제가 의리로 계속 남아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