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3)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97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3)
“······.”
“앞으로 중대장이 직접 너에게 지시를 내린다. 너는 그 지시만 따라와. 한 번만 더 불법적인 일을 했다간 그때는 중대장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여기서 진술서 작정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볼펜과 A4용지를 이민균 병장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이민균 병장이 천천히 그간의 얘기를 써 내려갔다.
그것을 보다가 오상진이 중대장실을 나와 행정실로 갔다. 그곳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홍일동 4소대장을 만났다.
“4소대장.”
“네.”
“저 녀석 진술서 쓰고 있으니까. 다 적고 나면 의무실로 보내서 거기서 잠을 재우도록 해.”
“의무실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2박 3일 정도 그곳에서 지내도록 조치를 해놔.”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지시를 내린 후 행정실을 나왔다. 다시 중대장실로 향하는 오상진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
“하, 윤태민 이 새끼는 군대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던 거야.”
심도윤 소령의 얘기로는 윤태민 2소대장 외할아버지인 신봉규 중장은 참 괜찮은 분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외손자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 올곧은 분을 옆에서 지켜보고 배웠다면 저런 식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윤태민 이 자식을 바로 불러서 따져 묻고 싶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참는다. 윤태민! 지금 육본에 교육 간다고 좋다고 들떠 있을 텐데······. 돌아오고 나서 두고 보자.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준비를 끝내놓을 테니까. 그리고 그 증거들을 보고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지켜보겠어.”
오상진은 굳은 얼굴로 중대장실로 향했다.
홍일동 4소대장은 중대장실에 있던 이민균 병장을 찾았다.
“이민균.”
“네.”
“일어나.”
“지금 진술서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
“의무실에 가서 적어.”
“의무실······ 말입니까?”
“그래. 중대장님께서 당분간 그곳에서 생활하라고 하신다.”
홍일동 4소대장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이민균 병장의 표정은 다소 밝아졌다. 사실 뭔가 좀 찜찜한 기분이었다. 후임병들에게 린치당한 것도 쪽팔리기도 했으니 다행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민균 병장이 쓰던 것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고 이민균 병장 혼자 의무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일동 4소대장은 불침번인 송중규 상병에게 바로 얘기했다.
“2소대 이민균 병장 의무실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으니까, 열외로 빼놔.”
“네, 알겠습니다.”
송중규 상병이 대답했다. 홍일동 4소대장이 사라지고 송중규 상병의 눈이 번쩍 하고 떠졌다.
“오······.”
그 길로 곧장 2소대로 갔다. 어둠 속에서 쌕쌕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황익호 병장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황 병장님.”
“그래.”
황익호 병장도 뭔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눈치였다.
“이 병장, 의무실에서 당분간 지낸다고 열외로 빼 놓으라고 합니다.”
“뭐? 의무실? 와, 시발새끼! 얼마나 처맞았다고 의무실에 있어. 그 새끼 밖에서 좀 놀다고 왔다고 한 거 구라 아니냐.”
“그러게나 말입니다.”
두 사람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사이 박형욱 병장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야이씨! 너희들은 지금 웃음이 나오냐.”
“아, 왜 그러십니까.”
황익호 병장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런 황익호 병장을 보며 박형욱 병장이 말했다.
“야, 익호야. 이민균이 의무실에 갔다는 것은 일을 더 키우겠다는 의도가 아니냐. 이러다가 나중에 중대장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중대장님께서 인범이까지 날려 버린 거 기억 안나?”
그 말을 듣곤 황익호 병장을 비롯해 송중규 상병까지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내무실에 있는 후임병들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 역시 마음이 찝찝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한 녀석이 황익호 병장에게 물었다.
“황 병장님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옆에서 자고 있던 장태진 병장이 버럭 했다.
“야, 새끼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너희들 조금 전에 뭐 했어?”
“아, 아닙니다. 저희는 아무 짓도 안 했지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냥 누워서 잤습니다.”
“네. 잠만 잤습니다.”
“그래, 새끼들아. 너희들은 그냥 잔 거야. 그리고 경고하는데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 지금 상황은 이민균 병장 혼자 난리 부르스를 친 거야.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그런 소대원들을 보며 박형욱 병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이구, 병신 같은 새끼들! 아까 보니 이 병장 웃통 깠을 때 멍자국을 안 봤나? 그건 뭐, 잠자고 있을 때 막 생긴 건가? 어후, 진짜 멍청한 새끼들이야. 아무리 꼴통이라지만 이렇게 생각이 없나?’
박형욱 병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나는 어차피 이 인간들과 상관도 없고. 곧 제대인데 그냥 모른 척할란다.’
박형욱 병장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바로 자신의 자리에 누워 모포를 머리끝까지 덮었다.
다음 날 아침 이기상 하사는 어제 일로 4중대에 나와 있었다. 때마침 윤태민 2소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헐, 이 양반 보게. 무슨 촉이 있나?”
이기상 하사는 깜짝 놀라며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곧바로 아무일 없는 것처럼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소대장님.”
-이 하사, 지금 어디야?
“아, 저 잠깐 볼일이 있어서 중대에 나왔습니다.”
-중대? 설마 소대에 무슨 일 있는 거야?
“네? 갑자기 그것은 왜 물어보십니까?”
-아니, 혹시나 간밤에 별일 없었나 싶어서 말이야.
“간밤에 말입니까? 갑자기 왜······.”
이기상 하사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게 아니라, 잠을 자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말이지.
“아, 그러셨구나. 하하하, 괜찮습니다. 별일 없습니다. 애들도 잘 있고 말입니다.”
-그래? 정말 별일 없는 거 맞지?
윤태민 2소대장이 재차 물었다.
“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보다 중대장님께서는 오늘 출근했어?
“중대장님 말입니까? 네, 출근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이 있으시다면 출근 하시자마자 바로 나가셨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중대장님 없으니까 무슨 별일은 없겠지. 알았어.
뚝!
윤태민 2소대장은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기상 하사가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무튼 이 사람 참······. 조상님 묏자리를 좋은 곳에 했나. 무슨 일만 있으면 귀신같이 느낌이 오나 보네. 이제는 꿈까지 꾸고그래.”
사실 이기상 하사가 토요일 아침인데도 출근을 한 이유는 4소대 부소대장에게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4소대 부소대장에게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다.
“아무튼 이 새끼들······.”
이기상 하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이민균 병장과 황익호 병장과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적힌 내용이었다.
“하아, 미친 새끼들 도대체 어떤 정신머리로 이따위 짓을 벌이지?”
이기상 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서류를 툭툭 건드렸다.
“그보다 잘한 거겠지? 그래, 잘한 거야. 이제는 시대를 타야지.”
이기상 하사는 2소대 부소대장이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겼다면 바로 윤태민 2소대장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막상 중대에 도착해서 상황을 파악해 보니 이건 아니었다.
이미 오상진 중대장에게 보고가 올라갔고, 이민균 병장도 중대장과 면담을 모두 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중대장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윤태민 2소대장을 따로 부르지 않는다? 이건 뭔가 있다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이기상 하사도 더 이상 윤태민 2소대장의 줄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소대장님 미안하지만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저를 너무 원망하지 마십시오.”
이기상 하사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황익호 병장이 쭈뼛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이 하사님.”
이기상 하사가 바로 서류를 숨기며 고개를 돌렸다.
“왜?”
“이민균 병장 말입니다. 오늘 상태 어떻습니까?”
마치 염탐하러 온 듯한 황익호 병장의 모습에 이기상 하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야, 황익호.”
“병장 황익호.”
“야이, 빌어먹을 새끼야. 너 소대장님이 없는 틈에 사고를 쳐? 너 진짜 죽어볼래!”
이기상 하사가 바로 황익호 병장에게 으름장을 놨다. 황익호 병장은 이미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바로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그런 거 아닙니다.”
“뭐? 야 이 새끼야. 속일 사람을 속여. 그럼 뭐? 귀신이 다구리라도 놨냐.”
“어, 그게······.”
“너 딱 기다리고 있어. 소대장님 오시면 뭔 짓거리를 했는지 다 보고할 테니까.”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뭘 왜 그래. 네가 친 사고 때문에 나만 깨졌잖아! 너 각오해, 너는 이민균하고 세트로 영창 보낼 테니까.”
“부소대장님······.”
“닥쳐 새끼야. 조용히 하고 내무실에 있어.”
이기상 하사가 으름장을 놓으며 황익호 병장을 돌려보냈다. 황익호 병장은 뭔가 잔뜩 억울한 얼굴로 있다가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이렇게 겁까지 줬는데 소대장에게 연락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이기상 하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엔젤스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20평대 아파트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발!”
흠칫 놀란 세나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왜? 왜 그래.”
세나의 시선이 거실을 훑어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니나, 다를까 최정아가 냉장고 앞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정아야 무슨 일이야.”
세나의 물음에 최정아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홱 돌렸다.
“여기에 내가 먹다가 둔 떡볶이 누가 먹었어요?”
“떡볶이? 그거 상해서 버렸잖아.”
“상해요? 누가 상했대요.”
“야, 안에 곰팡이 피어나고 난리가 아니었어. 그걸 누가 먹니.”
“하, 진짜······. 왜 그걸 말도 하지 않고 버려요.”
소란스러움에 나온 오상희가 눈을 부릅떴다.
“야, 최정아. 너 말 웃기게 한다. 냉장고는 공용이고, 먹다 남은 음식은 넣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왜 자꾸 먹다 남은 음식을 넣고 그래!”
그러자 최정아가 피식 웃었다.
“상희 언니는 빠져요.”
“뭐? 빠져? 너 정말 한번 해볼래!”
두 사람이 불꽃을 피우자, 곧바로 세나가 말렸다.
“상희야, 됐어. 너도 그만해.”
“언니! 왜 그래요? 언니가 자꾸 봐주니까, 정아가 만날 언니에게만 그러는 거예요.”
“정아야, 알았어. 언니가 미안해, 언니가 대신 사과할 테니까. 너도 그만해. 됐지?”
“······.”
오상희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최정아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세나 옆을 지나가며 한소리 했다.
“내가 진짜······. 리더면 리더답게 잘 좀 해요. 만날 이게 뭐예요.”
최정아가 자기 방으로 홱 들어갔다. 오상희가 눈을 부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