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1) >
인생 리셋 오 소위! 2부 095화
02.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61)
오상진이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소주병을 들어 빈 술잔에 따랐다.
“그래도 제가 죄송하죠. 제가 먼저 올라가서 형님을 뵙고 그래야 하는데······.”
“알면 됐어, 자식아······.”
김철환 소령도 피식 웃었다. 오상진은 죄송한 의미로 잘 구워진 고기를 들어 김철환 소령의 앞접시에 놨다.
“그보다 형수님과 소원이는 잘 지내고 있죠?”
“그럼! 네 형수가 많이 보고 싶어 해.”
“네, 죄송하네요. 그보다 소원이는 이번에 초등학교 들어갔죠?”
“야, 말도 마라. 우리 소원이 벌써 반에서 반장하고 있다.”
“네에? 벌써요? 어떻게······.”
“우리 딸이 또 네 형수 닮아서 좀 예쁘냐. 남자들이 아주 그냥 줄을 선다. 서!”
“아, 정말요? 하긴 형수님을 닮았으면 충분히 그럴 만하죠. 소원이 진짜 보고 싶네.”
“소원이도 삼촌 많이 보고 싶어 해. 한 번쯤은 올라와도 되잖아.”
“그렇죠. 여기 일 어느 정도 정리하면 그때 올라가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런데 형님.”
“응?”
“소원이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데, 왜 형님이 뿌듯해하십니까?”
오상진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피식 웃었다.
“다행히 아직은 날 많이 안 닮았잖아. 네 형수를 닮아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와, 형님.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바뀌어야지. 이래야 딸내미에게 예쁨 받아. 그렇지 않으면 아빠 저리 가라고 해. 엄마랑만 비밀 얘기 하고, 치사하게······.”
“아, 형님이 왜 그런지 이해가 되네.”
“뭐, 인마?”
“그렇잖아요. 딸내미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야야야! 너도 제수씨 닮은 딸 낳아봐라. 내 맘 충분히 이해할 거다.”
“어! 저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철환 소령이 한번 크게 웃었다.
“하하하, 벌써 여기 딸 바보 한 명 더 추가네.”
“하아······.”
오상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오상진은 김철환 소령의 둘째 아들이 떠올라 물었다.
“참, 주호는요? 잘 크고 있죠?”
“주호는 세상 얌전한 아이야. 그렇게 안 우는 애는 처음이야.”
“그래요?”
오상진이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김철환 소령이 손을 흔들었다.
“야야야, 그런 거 아니야. 너희 형수랑 병원을 찾아갔는데 너무 건강하대. 그냥 성격이 순한 거래. 아무래도 날 닮았나 봐.”
아들 얘기해 김철환 소령의 입이 찢어질 듯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 자식이······.”
두 사람은 그렇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김철환 소령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세나가 있는 소속사 말이야. 한번 알아봤어?”
“아······. 제가 중대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야, 빨리 좀 알아봐줘. 제대로 좀······. 그렇지 않아도 엊그제 처제가 왔다 갔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 언니랑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우는 것 같더라.”
“세나가요?”
“그래.”
“네, 제가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상진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김철환 소령은 괜히 그 얘기를 했다는 듯 바로 표정을 풀었다.
“자자,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네 얘기부터 해봐. 요즘 어때? 중대장 생활은 할 만하냐?”
“저 말입니까? 하아······.”
오상진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김철환 소령도 대충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많이 힘드냐?”
“일단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손을 쓰고 있지만······.”
“많이 얽혀 있지?”
“네. 다 섞여 있습니다. 병사들부터 시작해서 윗대가리까지요.”
“훗, 고생이 많겠네. 그래도 신중하게 해. 절대로 너의 본분을 잊지 말고.”
“당연하죠.”
김철환 소령이 술잔을 권하려는데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응? 이 시간에 누구야?”
김철환 소령이 의문을 가지자 오상진 바로 확인을 했다.
“제수씨?”
“아뇨, 부대인데요.”
“부대? 얼른 받아봐.”
“네.”
오상진이 바로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래, 중대장이다. 무슨 일이지?”
-충성. 당직사령 4소대장입니다.
“그래, 4소대장.”
-중대장님 혹시 집에 계십니까?
“나? 아니, 지금 손님이 오셔서······. 무슨 일 있는 거야?”
오상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저기······ 시간 되시면 잠깐 들러주실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인지 보고부터 해봐.”
-그게······.
수화기 너머 설명을 듣던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오상진은 김철환 소령과 바로 헤어진 후 곧바로 중대로 복귀를 했다. 행정실로 들어선 오상진은 바로 홍일동 4소대장을 봤다.
“그래, 무슨 일이라고?”
“그게 말입니다······.”
홍일동 4소대장은 이민균 병장에게 들었던 것을 오상진에게 설명했다.
“이민균이 낮에 황익호하고 주먹다짐을 했는데, 그 일에 앙심을 품은 황익호가 소대원들을 시켜서 자는 도중에 집단 린치를 가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정말 밟힌 것은 확실한 거야?”
오상진은 확인을 위해 재차 물었다. 홍일동 4소대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온몸에 멍자국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한 두 사람이 가담해서 난 자욱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소대원 대부분이 이 일에 가담한 것 같습니다.”
“하, 미치겠네. 중대꼴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이제 하다하다 같은 소대원끼리 집단 린치까지 해!”
오상진의 한마디에 홍일동 4소대장이 얼굴을 붉혔다. 오상진이 막 들어왔지만 홍일동 4소대장은 몇 개월 정도 생활을 했었다.
“전 중대장이 있었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나?”
“솔직히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
“제가 처음 왔을 때도 병사들끼리 잘 통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네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말입니다. 전 중대장님께서는 일이 커져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하에 쉬쉬하고 넘어갔습니다.”
“여긴 뭐, 계급이 통용되지 않는 건가? 이게 무슨 군대야!”
“······.”
오상진의 호통이 이어질수록 홍일동 4소대장의 고개만 자꾸 숙여졌다.
“아무튼 그런 일을 자꾸 봐주고 그러니까, 장병들이 무서운 줄 모르고 저러고 있는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후임하고 계급장 떼고 주먹질을 한다는 것이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오상진은 한쪽 구석에 있는 이민균 병장에게도 들리게 소리쳤다. 물론 이민균 병장이 피해자이지만 애당초 원인제공을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민균 병장도 잘한 것은 없었다. 홍일동 4소대장이 슬쩍 이민균 병장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은 어떻게 합니까?”
“내일 오전 일찍 보고서 작성해서 올리고, 저 두 녀석 모두 영창 보낼 준비 해.”
홍일동 4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이민균 병장 린치를 가했던 모든 소대원들도 함께 영창 보내는 것입니까? 아니면 조사를 해봅니까?”
“하······.”
오상진은 진짜 짜증이 났다. 물론 조금 전 말은 홧김에 꺼낸 말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저 두 사람을 영창 보내면 나머지 녀석들도 함께 보내야 했다. 그것이 형평성에 맞았다.
그러한 사실을 보고하면 당연히 송일중 3대대장 역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괜히 일을 키워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말이다.
솔직히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이 일은 좋게 덮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었다.
“이민균과 대화를 해보겠다.”
“네, 중대장님.”
오상진은 몸을 돌려 한쪽 구석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민균 병장을 바라봤다. 그리곤 홍일동 4소대장을 향해 말했다.
“중대장실로 보내.”
“네.”
오상진이 행정실을 나가 중대장실로 향했다. 홍일동 4소대은 이민균 병장에게 다가갔다.
“하아······.”
그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민균아······.”
“병장 이민균.”
이민균 병장이 고개를 들었다. 어쨌거나 그의 표정은 많이 침울해 보였다.
“일단 중대장님께 보고는 드렸다. 아마 이번 일에 대해서 물어보실 거야. 그러니 거짓없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 중대장님께 말입니까?”
“그래. 네가 살고 싶으면 꼭 그렇게 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지금 행정실 나가서 딴 곳에 새지 말고, 곧장 중대장실로 가.”
“네, 소대장님.”
이민균 병장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행정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는 홍일동 4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민균 병장은 홀로 복도를 걸어서 중대장실로 향했다. 향하는 동안 그의 머리에는 온갖 생각들로 가득했다.
‘시발새끼, 황익호 개새끼! 내가 여길 나가봐라, 너 진짜 가만 안 둔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뭔가 잔뜩 황당했다.
‘아니, 황익호가 밟으라고 했다고 진짜 밟아버리네. 새끼들이 정말 생각이 없는 건가? 새끼들 날 어떻게 보려고 그러지?’
이민균 병장은 머리를 빠르게 매만졌다.
‘하아, 시발. 좀 있으면 제대인데 내가 지랄해 봐야, 들은 척이라도 하겠냐. 이놈의 군대 빨리 떠나고 싶네.’
그러다가 또 윤태민 2소대장이 떠올랐다.
‘가만 이 사실을 2소대장이 알면 어떻게 하지? 하, 2소대장 날 죽이려고 할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중대장실 앞에 도착을 했다. 중대장실 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이민균 병장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상진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민균 병장이 바로 문을 닫고는 경례를 했다
“충성!”
“내 얼굴은 알아봐?”
“네, 당연합니다.”
“여기로 와서 앉아.”
“네, 알겠습니다.”
이민균 병장이 바짝 긴장한 채로 자리에 앉았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사고 거하게 쳤더라.”
“죄송합니다.”
“죄송한 짓을 한 것은 맞고?”
“······네.”
“뭔 잘못을 했는지 어디 한번 말해봐.”
“그게······. 낮에 황익호 병장이랑 주먹다짐을 했습니다.”
이민균 병장이 말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오상진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그래, 아무리 네가 선임이라고 해도 후임에게 계급장을 떼고 붙자고 하는 것은 가혹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이 짧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먹다짐을 했잖아.”
“······.”
“너, 그걸로 영창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죄송합니다.”
이민균 병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 전까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화가 나서 씩씩거렸는데 막상 오상진의 얘기를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오상진은 그런 이민균 병장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
“좋아, 일단 물어보자. 왜 그런 거야?”
“그게, 자꾸 황익호 병장이 저를 자꾸 짜증 나게 해서······.”
“짜증 나게 해서? 그게 진짜 이유야? 아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오상진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민균 병장의 얼굴이 궁지에 몰렸다. 그도 나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단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뿐이었다.
오상진의 눈빛이 깊어졌다.